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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방인의 제사는 우상숭배다 (고전 10: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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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제사는 우상숭배다 (고전 10:14-22) 

  
명절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명절이 즐겁지만 않은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명절 때마다, 제사 문제로, 영적갈등을 겪는, 고통스런 날이 되기 때문이다. 
제사는 불신자와, 항상 대립되는 단골메뉴다. 그래서 가정에 불화가 생긴다. 자꾸 갈등이 생기니까 요즘은 제사를 미풍양속으로 합리화시킨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천주교회다. 그들은 옛날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미풍양속이라고 한다. 

만일 제사가 미풍양속이라면, 신유박해 때 이승훈과 여러 사람이, 왜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나? 갈등과 핍박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면, 믿음의 변질이요,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오히려 그들을, 신앙세계로 인도해야 한다. 
제사 지내는 분은,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놓으면, 조상이 신으로 와서, 음식을 들기에, 제사 드리지 않으면 불효라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제사 지내지 않기에, 나쁘다고 한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지 않기에, 불효의 종교라고 하면 잘못이다. 기독교만큼, 효행을 강조하는 종교는 없다. 

성경은 불효를, 사형 죄로, 엄히 규정한다. (출21: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처럼 효도를 강조하는데, 불효의 종교라고 하면, 이는 기독교를 모르고 하는 소리요, 음해하는 소리일 뿐이다. 

기독교에는 추모식은,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유언을 되새기고, 불효한 날을 회개하는, 추모식이 있다. 추모식과 제사의 차이는, 죽은 자를 위해, 음식을 차리거나, 절하지 없을 뿐이다. 명절은 돌아가신 조상에게 제사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1. 우상숭배는 어리석은 일이다(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휴고, Φεύγω) 했는데, 죽임당할 수 있으니 ‘도망하라, 탈출하라.’는 뜻이다. 우상(에이돌론, εἴδωλον)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 마음속에 있는 어떤 상이나, 개념과 같은 형태’를 말한다. 에이돌론은 70인 역에 약15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예외 없이 이방 신들의 형상들과, 그것들에 의해서 나타나는 신성을 언급한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여러 가지다. 

(1) ‘헛된 것, 공허한 것’ 허된 예배 대상, 손으로 만든 우상이든지, 재물, 이 세상의 신들을 묘사(엘릴). 
(2) 통나무, 큰 토막 등의 돌과, 나무로 형상으로 만든 것(길룰) 
(3) 조각된 형상(페쎌), 주조된 형상(마쓰쎄카), 서 있는 돌 형상(미쯔쩨바), 사람의 수공물(아짜브) 
(4) 가정의 수호신(트라빔) 
(5) 무서운 일(미플레쩨트)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1) 생명이 없는 돌과, 나무 형상을 만들어 놓고, 마음으로 위하는 것도, 우상숭배다. 
(2) 귀신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다. 
(3) 신접한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거나 점치는 것도 우상숭배다. 
(4) 어떤 일을 하기 위해, 택일을 하거나 사주팔자를 보거나, 궁합을 보는 것도 우상숭배다. 
(5)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제사도, 우상숭배다. 

조상에게 제사지냄을, 고유전통으로 알고 있지만, 애당초 우리나라는 하늘에 제사하는, 제천행사가 있었지, 조상숭배의 의미는 없었다. 중국도 공자 이전에는, 제사가 없었다. 황제에게만 제사 드렸는데, 나중에는 일반인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제사제도가 생겨났다. 

중국 송나라 유교학자 주희가, 제사제도를 만들어서, 제사제도가 발전했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로 건너온 후, 무속신앙, 불교, 유교가 결합되어, 오늘 제사로 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농사를 잘 짓게 도와주신 조상들께, 감사드린다는 명목으로, 제사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성도들이, 수용할 수 없는,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조상을 신으로 여겨, 절하고 제사하며, 지방을 쓰고, 제사상을 차려올리고, 향을 피우고, 절하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 제사(祭祀)의 제(祭)는, 사람과 신이 서로 접한다는 뜻이다. 조상은 신이 아니다. 

구약의 제사는 지금의 예배이다. 따라서 우리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며,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으면, 이는 우상이라고 말씀한다. 우상숭배는 어리석은 일이다. 인도 ‘데쉬노크’지역의, ‘까르니마따’ 사원(Karnimata Temple)은, 일명 ‘쥐 사원’으로 불린다. 

경내에 들어서면, 수천 마리의 쥐들이,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우유와 빵을 먹고산다. 인도에서는 사람들은 굶어 죽어도, 쥐는 배부르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여기 모여 있는 쥐들은, 모두 신성한 쥐다. 쥐 신이다. 
순례자들이 어쩌다가 쥐꼬리를 밟게 되면, 벌금이 450달러이고, 발로 밟아 죽이는 날이면, 금으로 동상을 세워줘야 한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나라에서도 돼지머리 앞에 엎드려, 일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고, 마른 북어를 매달아 놓고 빌기도 한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게 기도하거나, 예배하는 일이 우상숭배다. 이렇게 어리석은 우상숭배니, 제사에 대한 분명한 성경관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지만 영혼은 떠나지 않고 남아서,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자기 후손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조상이 죽은 후에, 제삿밥을 주지 않으면, 천륜을 거역하는 죄이고, 조상신이 노하여 자손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자기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한 영혼과, 고생만 하다간 떠난 영혼들이, 저승에 곧바로 가지 못하고, 평소에 고생하던 곳을 배회하면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믿었다. 
이런 영혼을 달래야 한다는, 미신과 불교가 합쳐서, 천도제를 지내야, 저 좋은 세상으로 보내려고, 제사를 지낸다. 자신들도 돌보지 못하고, 굶주려서 떠돌아다니는 영혼이, 어찌 신이 되어서, 남에게 복을 줄 수 있는가? 말도 안 된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사람은 죽으면, 영혼이 분리된다. 

영이 육체를 떠나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영혼은 죽어, 없어지지 않고 가는 곳이 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가 가는 천국과, 불신자가 가는 지옥이다. 사람은 죽으면, 낙원과 음부로 곧장 가기에, 그 영혼이 구천을, 절대 떠돌지 않는다. 
따라서 조상귀신이 와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죽은 자의 영은, 절대로 이 세상으로 다시 오지 못한다. (눅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음부에 간 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죽은 자는, 제사를 받아먹으려고, 다시 지상에 올 수 없다. 다만 악한 영들이 하나님처럼, 제사를 받으려는 것이다. 죽은 조상으로 위장해서, 제사를 받으시기에, 성경은 제사를 금한다. 

기독교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 돌아가시면 아무리 좋은 상을 차려 놓아도, 와서 먹지 못하니, 소용없는 일이요, 오히려 귀신을 섬기는 행동이다.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고 했다.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2.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16-18).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여기서 축복의 잔과,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한다는 말은, 성찬을 먹고 마신다는 말이다. 성찬에 참여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여한다는(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상호교류, 교통을 말한다. 우리가 주님의 한 지체인데, 어떻게 우상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우리 중에 누구라도 우상숭배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성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는 자이다. 고대근동에서는 함께 먹으면 한 형제라는 말이다. 마호메트 시대의 유명한 아랍 장군 자이드 알 카일은, 낙타를 도둑질한 부랑자를 칼로 치기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가 도둑질하기 전에, 몰래 자신의 아버지의 우유 잔을 마셨기 때문이다. 

신과 예배자가 함께 먹고 마시며, 이런 표현을 통해, 교제가 선포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는 자이다. (19-20)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고린도 교회도 우리처럼, 제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제사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해 주었다. 하나님께 하지 않는 모든 제사는,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이다. 죽은 자들 위해 제사 드린다면, 귀신과 교제하는 일이요, 귀신에게 경배하는 자가 되고 만다. 
왜 죽은 자들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귀신에게 드리는 우상인가? 제사 때 지방(紙榜)을 쓰는데,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 쓴다. 현고(顯考)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뜻한다. 학생(學生)은 생전에 벼슬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부군(府君)은 ‘돌아가신 아버지나, 대대의 할아버지’를 높이는 말이며, 마을을 지키는 신을 말한다. 신위(神位)는, 제물을 차려 놓았으니, 신으로 앉으라는 뜻이다. 즉, 돌아가신 아버지와 조상신이 나타나 우리를 굽어 살펴 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패를 모시고, 향을 피워놓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차려 놓아도, 한번 떠난 영혼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귀신만 기쁘게 할 뿐이요, 귀신과 교제하는 일이다.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다. 무당들은 점치러 온 사람의, 조상의 생전 모습을 설명하면서, 제사나 굿을 요구한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어쩌 
면 귀신 같이 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이런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귀신은 어느 정도 시공을 초월할 수 있기에, 사람의 과거를 알거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자기 모습을, 변신할 수도 있다.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보자마자, 하나님의 아들임을 즉시 알아보았다(막3:11). 사탄은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며 둔갑한다. 

(고후11:14-15)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 둔갑술은 생전의 조상에게 붙어 있었던 악령이다. 

악령이 어떤 존재에 붙어서, 오랫동안 공생하게 되면, 그 붙어 있던 실체를 많이 알게 된다. 오랫동안 사람에게 붙어살았으므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고, 조상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속지 말라. 귀신 따르면 망하고 만다. 
(요10:10) “도둑(사탄, 마귀, 악령, 귀신)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귀신은 절대로 축복권이 없다.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오는데, 무슨 축복을 주겠는가? 

자신도 부족하여 얻어먹으려는 거지 신세인데, 무슨 축복을 사람에게 줄 수 있는가? 귀신 섬겨서 복을 받는 이들도 더러 있다고 하지만, 속지 말라. 이는 복이 아니라 미혹이요, 지옥으로 유인하는 미끼다. 하나님은 우상 앞에 절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출20:3-5)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수23:16)하셨다. 복을 고사하고, 하나님의 저주만 받는다. 

3.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21-22).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과 우상을 동격시하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되어,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일이다. 제사지내고 난 뒤, 상에 차렸던 음식을 나누어 먹음을 ‘음복(飮福)’이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음복을 해도 되는가? 하지 말아야 한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어려움은, 그 당시 지중해 연안에, 민속신앙같이 넓게 퍼진 영지주의다. 구원받은 자는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교만한 생각이 영지주의이다. 이러한 영지주의 때문에,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썼다. 
고린도 지역에는 각종 신전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신전들에 가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을 일상생활로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드려진 제물들을, 다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들의 대부분은, 신전에서 우상에게 드려진 것들이다. 

서양 사람들의 고기가 주식인데, 우상 앞에 드려진 고기가 있으니, 어떤 고기를 먹어야 되는지를 물었다. 어느 경우도, 우상 앞에 드려진 제물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행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계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말은, 그 우상을 신으로 섬기고, 귀신과 하나 되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자, 구원받았으면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 ‘바울은 정말 사도 맞느냐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울은 영지주의자에게, 네가 지식이 있다고 하지만, 안다고 생각하면 모른다(고전8:2)고 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서 넘어진다. 그래서 제사상에 참여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분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금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면, 하나님을 노엽게 만드는 일이 된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왕국에서, 우상숭배 하는 일에 열심이던 왕은, 모두 다 망하고 말았다. 여로보암 왕은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었다(왕상13:28-29). 

그래서 (왕상13: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우상숭배에서 돌이키지 않자,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왕상14:17). 이어서 여로보암 왕도 죽고 말았다(왕상14:20.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우상숭배를 하지 말자. 
(22) ‘노여워하시게’는, ‘질투하게 하다’는 뜻이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산다면, 내 마음속에 노여워하는 마음이 일어날 뿐 아니라, 동시에 질투하는 마음도 일어난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헛된 우상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것을 섬길 때, 하나님은 노여워하시고 질투하신다(신32:16, 21, 출34:14).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서린다고 했다. 하물며 우리가 우상숭배 함으로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하면, 우리의 생활이 잘 될 수 없다. 
반대로 우리가, 지조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바란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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