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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지키시는 여호와 (시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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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시는 여호와 (시 121:1-8)
     
베이커 주석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호’라는 제목으로 귀한 간증이 있었습니다. 

한 유명한 여행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삼년 만에 그의 살던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전에는 전혀 백인들이 발길이 닿지 않았던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서 횡단하였습니다. 그는 귀국하여 영국에서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조용한 마을 런던의 교외에 있는 켄티쉬 마을에 이르렀을 때에 그가 들어간 곳은 그의 늙으신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작은 예배당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예배당 바닥에 엎드려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3년 간 숫한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아프리카 횡단을 성공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시편을 읽었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3년의 여행에서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일생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켜주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하면서 이 시편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이 시편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읽어드린 시편 121편은 제목이 있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의 15개의 시들이 모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우 즐겨 부르는 시편으로, 그들이 성전에 올라갈 때면 이 시편을 찬송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멀리 이방에 거주할 때에도 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르면서 예루살렘을 사모하고 성전을 사모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이 찬송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찬송이었지만, 우리는 천국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들로 우리의 가는 길에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르면서 힘 있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유명한 성가곡 중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찬양곡이 있습니다. Carrie B. Adams(캐리 아담스)라는 분이 작곡하신 노래인데, 시편의 가사를 중심으로 하여 쓴 찬양곡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주 여호와만을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 없이 영원히 있음 같네

주 여호와만을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 없이 영원히 있음 같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같이 여호와가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영원히 두르시리로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같이 여호와가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영원히 두르시리로다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여호와 하나님의 집으로

시온으로 올라가자 오- 예루살렘 오- 예루살렘

시온으로 올라가자 시온으로 올라가자 시온으로 오르는 발걸음 성도의 발걸음 복 있다

시온으로 올라가자 오- 예루살렘 오- 예루살렘

시온으로 올라가자 시온으로 올라가자 시온으로 오르는 발걸음 성도의 발걸음 복 있다. 발길 복있다. 

만민아 기쁘게 찬송하라 주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여라

만민아 기쁨으로 찬송하라 만민아 기쁘게 만민아 기쁘게

만민아 소리 높여 찬송하라 만민아 기쁘게 주 찬송하라 

    
이 곡은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웅장한 찬양입니다.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여호와 하나님의 집으로” 중간에 부르는 중창 부분은 다른 노래인 것처럼 감미로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른 찬송에 73장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라는 찬송은 영국 스코틀랜드와 캐나다 성도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시는 시편121편을 가지고 쉽게 풀어 찬송 시로 만들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공작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사위였으며, 캐나다 총독으로 있었던 존 캠벨(1845-1914)이라는 사람이 이 찬송시를 썼습니다. 이 시에 찰스 퍼디(Charles Henry Purday 1799-1885)라는 분이 곡을 붙였는데, 세계 많은 성도들이 애창하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1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산악이라/날 돕는 구원 어디서 오나 그 어디서/

하늘과 땅을 지은 여호와/ 날 도와 주심 확실하도다. 

2 주께서 나의 가는 길마다 지키시며/ 졸지도 않고 깨어계셔서 늘 지키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 쉬지도 않고 살펴주시네

3 여호와 나의 보호자시니 늘 지키며/ 오른팔 들어 보호하시고 그늘 되네/

낮에는 해가 상치 못하며/ 또 밤의 달이 해치 못하네

4 여호와 나의 영혼 지키사 돌보시며/ 내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늘 지키네/

이제로부터 영원 무궁히/ 주 나의 출입 지켜주시리 아멘


이 찬송, 정말 은혜로운 찬송입니다. “날 도와 주심 확실하도다” 멜로디가 우아하고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잘 표현하였습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깊이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 시편은 많은 성도들이 애송하는 시인데, 저자를 알 수 없습니다. 

이 시편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1-2의 말씀으로, 도움을 구하는 순례자의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락은 3-8 말씀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시편은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누구와의 대화입니까? 시인과 시인 자신과의 대화일 수도 있고, 순례자로 나선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일 수도 있습니다. 

1절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1년에 세 차례,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 되면 동리의 많은 남자들이 어울려 함께 출발하여 성전에 가서 예배하고 돌아왔습니다. 

멀리 흩어져 살던 성도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면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90m의 높은 고원지대입니다. 그리고 여리고는 해발 -350m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니까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면 1140m를 올라가야 합니다. 여리고와 예루살렘 사이에는 유대광야가 있는데 유대광야는 이스라엘 땅의 약 30%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유대광야에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간혹 가시덤불이 있고, 양과 염소들이 먹을 수 있는 풀이 조금 나 있는데, 그것도 건기가 되면 다 말라버립니다. 광야 길을 걸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다보면 험한 산이 나오고, 험한 광야도 나오고 인적이 드문 곳에는 강도들이 숨어 기다리다가 해를 가하고 가진 물건을 빼앗아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성전에 올라갈 때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찬송을 부르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성도들은 산을 향하여 눈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산’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거룩한 산, 성산이었습니다. 

시편87:1-2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125: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저 멀리 예루살렘을 두르고 있는 산들이 보이면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1-2입니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기 1절에 나오는 산이란 산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보이는 장소에 오면 이 시편 송을 부르면서 이제 거의 다 왔다고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힘으로 , 나의 경험으로, 나의 지식으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멀리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 보이는 곳에 이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스스로 자문자답하면서 찬송을 부릅니다. 우리도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산을 잘 넘어가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하고 잘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진정한 도움은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사람이 자기 혼자 자립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힘이 들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 도움이란 히브리어의 ‘에제르’라고 하여 원조하다, 물질로 돕다, 군사를 보내 돕는 원군을 보내다는 뜻입니다. 확실하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그런 큰 도움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 도우심을 간구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시편115:11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1절에서 진정한 도움이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2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만드는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힘겹게 살아갈 때에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하시면서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시20:1-2에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라고 하셨습니다. 성소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우리를 붙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실 때,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기독교 도서를 펴내는 여운학장로님이 경영하는 규장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변에는 수많은 상품 광고물이 늘어 서 있습니다. 장로님은 그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글귀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도하던 중에 마침 규장의 사옥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와서 1996년에 양재동에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여운학 장로님은 입주와 동시에 옥상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6개월 후에는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라고 바꾸었답니다. 마침 1997년에 외환위기가 터져서 온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경부고속도로를 오르내리던 많은 사람이 이 말씀으로 큰 위로와 깨우침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이에 여운학장로님은 힘을 얻어 큰 비용을 들여서 밤에도 볼 수 있도록 긴 형광등 120개가 들어간 전광판으로 바꾸었답니다. 

어떤 목사님은 부흥회에서 이 글귀를 읽고 낙심 중에 기도로 승리했다는 간증을 했고 어떤 믿지 않는 친구는 근심하는 장로 친구에게 “와 걱정하노? 기도할 수 있는데…양재동 가봐라. 거기 그렇게 써 있다”라고 충고했다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오셔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시18:6에서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서 성도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까?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편의 두 번째 단락은 3-8의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다녀오려고 하면 걸어 다녀야 하고 아니면 나귀나 낙타를 타고 가야했습니다. 낙타를 타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아 다 걸어 다녔습니다. 먼 길을 나서면 길에서 어떤 위험한 일을 만나지 않을까 하여 걱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구체적으로 지켜주심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3-4절에서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실족하다’는 말은 비틀거리다. 미끄러지다,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팔레스타인의 크고 작은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자칫 발을 헛디디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5-6절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팔레스타인의 낮은 찌는 햇볕으로 견딜 수 없이 뜨겁습니다. 낮에 가다보면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게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낮에 길을 다니면 일사병에 걸릴 염려도 있습니다.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게 하지 못하게 그늘이 되어주고, 밤의 달도 성도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밤에 달빛 속에 길을 가다보니, 어스름하여 두렵기만 하고, 길에서 넘어질 수 있고 실족할 수 있었습니다. 밤에 길을 나섭니다. 달밤에 길을 가다보면 실족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에도 지켜주시고, 밤길에서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켜주셨습니다. 내가 건강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건강을 지켜주셨고, 내가 나의 가정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 힘을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계적인 부호인 록펠러도 한때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해 원금까지 모두 날려버리는 위기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을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그 액체는 석유였습니다. 이 유전으로 그는 일약 거부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겐 위기는 축복의 기회로 바꾸어집니다. 

지금 조금 힘들고 어렵습니까?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헝클어진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간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7-8절을 봅니다.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환난을 면하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시고, 우리의 인생의 출입을 지켜주십니다. 

유명한 강철의 왕 카네기의 사무실 한가운데 벽에는 낡은 커다란 그림 하나가 그의 일생동안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거나 골동품의 가치가 있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 내용은 커다란 나룻배 하나와 배를 젓는 노가 썰물 때에 밀려서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것으로, 무척 절망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카네기에게 어째서 이 그림을 그렇게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가 청년 시절에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았는데, 어느 노인 댁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이 그림이 썩 인상적이었고, 특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글귀는 오랫동안 그의 뇌리에서 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8세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찾아가 용기를 내어 청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이 그림을 자기에게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노인은 그의 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카네기는 이 그림을 일생동안 소중하게 보관했고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말을 그의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하나의 신조와 같이 여겨야 하는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지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사람의 신세를 지면 그에게 매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은 감사요 간증이요,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오른 손 들어 지켜주시고, 낮에도 밤에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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