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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 궁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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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28절-29절: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지금 무슨 역사를 한 후에, 무슨 사건 끝에 이 말씀이 나오는 것이냐? 그 앞에 보면 귀먹고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고친 후이다. 귀신만 들어가면 불에도 물에도 들어간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 물불을 못 가리는구나. 구별 분별을 못하는구나. 이걸 교회적 교훈적으로 끌고 오면 말씀을 구별 분별을 못한다.


‘불’ 하면 활활 탄다. 활활 타는 그게 보기 좋아서 거기에 쑥 들어가고, 물을 보면 또 쑥 들어가고. 이걸 보면 오늘날 교회에서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준다’ 하면 그곳으로 쑥 들어가고, ‘복 받아라’ 하니까 마음이 정신이 그곳으로 쑥 들어가고 하는데 이건 물불을 구별을 못하는 신앙이구나. 그러면 이건 뭐가 든 거냐? 귀먹고 벙어리 귀신들린 것이다. 그러니까 구별 분별되는 말씀을 못 들었구나. 귀가 먹으면 듣지를 못한다. 듣지를 못하니 말을 못하게 된다. 원리가 그렇다.


성경에 나타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마지막 날에는 없어진다. 그걸 염두에 두고, 또한 현재에서도 없어지는 것도 우리가 보고 있다. 어제까지 살았는데 오늘 없어지고. 없어질 것은 언제 없어져도 필연적으로 없어지니 이것은 현상이다. 왜 현상이라고 하느냐? 실상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현상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는 임시성이요 현상인데 눈에 보이는 것을 영원히 가는 것으로 알고 사랑하고 매달리면 그 사람은 시험에 들고, 자칫하면 귀신들리고 귀신들린 짓을 하게 된다.


세상은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나빠도 다 내 눈앞에서 지나가고, 해도 달도 지나간다. 아무리 좋아도 불타면 없어진다. 이 세상은 다 현상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현상이다. 그것을 영원히 가는 것처럼 붙들지 말아라. 현상적인 것을 붙들고 늘어지면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근심 걱정 고통을 앉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 믿는 이치를 어기지 말라. 예수 믿는 것은 이치를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결과가 왜 이렇게 됐느냐’ 하는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 원인이 반석 위에 섰느냐, 모래 위에 섰느냐’를 밝혀내는 것이다.


‘자기의 사는 생각이, 모든 이해타산 사고방식이 그 뿌리를 어디에 내려놓고 예수를 믿고 있느냐’ 하는 이걸 밝히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다. 즉 구원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똘똘 뭉쳐진 분이 예수다. 그 예수님은 질적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다 들어있다.


믿는 우리가 교훈을 받아도, 교회에 다녀도, 예수를 믿어도 그 깨달음이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면 자기의 이해타산 평가성은 전부 세상에 내려져 있다. 이러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못 깨닫는다. 이러면 어느 교회에서 펄펄 뛰고 뭘 하면 ‘성령 받았구나’ 하며 그리로 쏠린다. 왜 그러냐? 정확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본문에 귀신이 나오는데, 귀신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귀신들린 마음 정신은 안다. 사람은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의해서 행동이 나오게 된다. 생명과를 먹었으면 하나님 앞에 신앙이 반듯하게 성장이 되지만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 땅을 쳐다보고 자기의 소원 목적이 그렇게 들어가 있다.


이렇게 되니 세상에는 비바람이 불고 사건이 일어나고 병들고 죽고 하는 세상인 고로 그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게 돼 있다. 이렇게 되니 그 성질 성격에서 남을 해치려는 것도 나오고, 자기 스스로 생명단축도 나온다. 그러니까 성질이나 성격을 갖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사람이 미친 것을 볼 때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선악과 먹은 기준으로 보면서 ‘아, 저 사람 미쳤다. 옷을 벗고 다니네. 이상한 짓을 하네’ 그런 차원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아이들도 아는 거고, 그런 것은 성경을 안 배워도 눈으로만 봐도 일반적으로 다 아는 거다. 믿는 우리는 정신 사상 면에서 미친 것을 봐야 한다.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그 속을 들여다 볼 때 많은 병이 든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의 진리이치의 말씀을 못 듣고, 성경을 봐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는 이건 소경이다. 못 듣고 모른 채 그 사람이 입을 벌려서 예수전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은, 소원 목적은 하나도 안 나온다면 이건 벙어리다. 성격 성질부리는 걸 보면 ‘아, 이건 귀신들렸구나’ 하는 것도 있다.


또한 옳은 진리이치를 못 들어서 옳은 판단이 안 되니 이상한 곳에 가서 이상한 것을 배워서 그 정신이 드니 이제는 가정살림이 되나, 부부생활이 되나, 자녀교육이 되나? 그렇게 되니 내 아내 찾아달라고 하고, 내 살림살이 찾아달라고 하고, 내 재산 찾아달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면 그렇게 믿는 것이 귀신들린 거냐, 성령이 들린 거냐? 이건 말씀기준에서 보는 거다. 하나님의 진리본질,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에서 보면 이게 다 보인다.


여기 본문에 귀신들린 아이가 나오는데, 그러면 대조를 해 보면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내가 올라가서 장로들에게 잡혀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난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주여, 그리마옵소서’ 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지글지글 끓는 마음으로 ‘주여, 그리 마옵소서’ 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는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일을 먼저 생각해서 ‘나중에 살아날 것인데 왜 죽어야 합니까? 그리하지 마십시오’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그 말에 대해 하시는 말씀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했다. 그러면 왜 베드로의 그 말이 사단의 말이냐? 베드로는 주님을 생각해서 죽지 말라고 한 것인데 그게 왜 사단의 말이냐?


귀신은 성도의 이룰구원을 망치고, 사단 마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망친다. 판을 둘러엎는다. 밥이 맛이 없으면 자기 밥그릇을 던지는 자도 있고, 아니면 식구들이 앉아서 먹는 밥상을 둘러엎는 자도 있다. 못 먹으면 자기만 못 먹지 왜 남이 먹는 것마저 둘러 엎어버리느냐? 사단 마귀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마치 그런 것과 같은 짓을 한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라고 했는데, 그러면 이건 귀신보다 더 나쁜 자라는 거냐, 아니면 조금 더 나은 자라는 거냐? 주님이 하시는 일은 당신의 백성을 위한 구원역사를 하는 건데 이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귀신보다 더 나은 거냐, 더 못한 거냐?


그러면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은 것은 성령의 정신으로 팔아먹은 거냐, 돈 때문에 팔아먹은 거냐?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파는 걸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귀신 같은 마음이요 마귀 같은 마음이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했다.


신앙의 세계에서 보는 눈은 일반세계가 보는 눈과는 다르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면 눈부터 바로 떠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성령의 눈으로 봐야지 왜 마귀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이해타산을 하며 사람을 비판하고 비평을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보면 옳은 해석이 나오느냐?


신앙의 세계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 모습을 보는 거다. 성경을 본다면 그 성경에서 자기 모습을 봐야 한다. 하지만 성경을 하나씩만 똑똑 떼어서 보면 자기는 안 보인다. 성경을 자기가 원하는 구절만을 하나씩 떼어서 보게 되면 뭘 얻으려고 자꾸 달라고 하게 되고, 눈으로 보고 믿으려고 하니 유혹 미혹을 당한다. 이러면 말씀의 이치는 못 깨닫는다. 이러면 귀신에게 속게 된다.


예수 믿은 후에 자기의 성격 성질을 고쳤느냐? 아니라면 누구부터 귀신이 들린 거냐? 누구부터 정신이 없는 소리를 하는 거냐? 가정살이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덕성으로 바로 살고 있느냐? 자기가 기준이 돼서 모든 것을 판단하지는 않느냐? 그렇다면 이게 성령님이 들린 정신이냐? 교회에서 뭘 배우느냐? 자기가 하나님 앞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기에 시간낭비를 그렇게 하느냐?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해도 세상에서 돌아다니는 생각을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말씀에서 예수를 만나고, 생활에서 예수를 만나고, 말씀을 깨달아서 말씀에 적중성으로 연관시켜 나가고, 이해타산을 바로 가져야 한다. 그런데 예수를 어떻게 믿고 있느냐?


하나님의 심판은 개인으로 들어 있느냐, 무더기로 들어 있느냐? 무더기 속에 다 개인이 들어 있느냐, 개인이 없는 무더기 심판이냐? 개인이 없는 무더기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지니 그게 무더기다. 그 무더기의 질은 하나님 앞에 본질이 아닌 이질이다.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일반사람들의 이해타산으로 들어가 있다면 그 신앙은 이질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남 말할 것 없이 자기부터 하나님 앞에 한 가지라도 고치고 가는 게 있어야 한다.


본문을 보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 들리겠느냐? 귀신이 들리면 뭘 못 듣고 뭘 듣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너를 인간으로 만든 인간창조의 목적을 못 듣는다. 반면에 세상에서 부자 되고 잘 먹고 살 살고 하는 그 소리는 잘 듣는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고’ 라고 하셨듯이 나를 누구처럼? 하나님처럼 만들어 주시려는 것이다. 나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정신과 하나님의 이해타산으로 만들려고 성경을 기록해서 나에게 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자기는 어디에 정신을 쓰고 있느냐? 자기부터 성경이라는 거울 앞에 비춰봐라. 성경 모든 한 마디 한 마디는 다 자기에게 하는 말씀이다. 거울이다. 자기의 속마음을 비춰주는 것이다.


잘못된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이걸 가지고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시대다’ 하며 성경을 안 본다. 주님이 율법을 완성시켰다는 것은 내가 율법을 100%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죄인 된 내가 그렇게 못 사니까 내 대신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은밀한 뜻까지 다 성취시켜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시다.


그러면 율법을 폐했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의문은 폐했다고도 하는데, 지금은 양 잡아 제사 드리는 건 다 폐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성경을 보느냐?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의 정신 마음 이해타산 성품을 찾고 그것을 따라가며 그것을 내 것으로 삼으면 예수 믿는 자기는 예수님으로 정신도 닮아가고, 이해타산도 닮아가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실속 있는 자녀로 닮아간다.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속성이요 성품이고 정신이다.


이런 것은 없이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 믿으면서도 여전히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고 있다면 이게 뭐냐? 누가 그렇게 가르쳐 줬느냐? 예수님은 그걸 구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 옳은 것, 옳은 지식, 옳은 지혜, 옳은 선, 옳은 사랑, 옳은 거룩, 하나님 앞에 옳은 진실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뭘 구하고 있느냐? 그게 예수 믿는 사람이냐, 이방인이지. 십자가 붙이고 교회간판 붙이니 그게 교회냐?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속성을 안 닮을 바에야 왜 예수를 믿느냐? 주님 앞에 자기가 어떻게 보여지느냐?


‘예수님은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더라’ 그랬는데 자기는 땅의 복음을 찾고 있다면 그게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냐? 그게 하나님 앞에 제 정신이냐? 이런 사람은 어떤 사건 환경에 부딪히면 자기의 성격 성질 폭군 같은 게 막 나올 텐데, 그 장면을 누구든지 볼 때 그게 성령의 사람으로 보이겠느냐, 귀신들린 사람으로 보이겠느냐? 자기를 하나님 앞에 안 고치고 못 고치면 귀신들린 짓이 나오게 돼 있다. 남이 아닌 바로 네가 그렇다.


성경에 보면 예수 잘 믿는 사람은 크고 작은 사건 환경 속에서도 그걸 다 이기고 나온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세상 것으로만 구하고,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귀신들린 성격 성질이 막 나온다. 세상은 바람 불면 파도치는 곳인데 어떻게 잔잔하길 바라겠느냐? 그게 이치에 맞는 정신이냐? 우리는 그걸 이겨야 한다. 선악과 따먹은 세상은 성령과 악령이 공존하는 세상이니 자기는 지금 무슨 영이 들어와서 역사를 하는지, 자기 바탕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그걸 봐야 한다.


교회에 가면 누구의 말씀을 들어야 하느냐? ‘목사의 말은 하나님의 말이거니’ 하고 들어야 하느냐, 예수를 하루 이틀 믿은 것도 아니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성경을 보고 ‘말씀의 이치가 그러한가, 안 그러한가’를 구별 분별하고 들어야 하느냐? 그냥 교회에 가서 앉으면 되는 거냐? 이런 식으로 믿으면 밥술이나 먹으니 든든하겠지만 그러나 개인이던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든 사건 환경이 몰아붙이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거냐?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아이의 집으로 들어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한 식구처럼 둘러앉았다. 그 때 제자들이 물었다.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까’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도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 제자들이 기도를 안 했다 그 말이냐? 예수 믿는 교인들이 기도를 안 하느냐? 새벽기도까지 하는데.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만 기도하는 거냐? 무시무종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냐? 늘 말씀에 깨어있는 사람은 기도한 사람이냐, 안 한 사람이냐? 기도를 한 사람이다. 사람이 깨어있다는 것은 구별 분별하는 걸 말한다. 기도를 하는 사람은 구별 분별을 한다. 그렇다면 자기가 구별 분별을 못하고 있다면 평소에 새벽기도를 했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했건 간에 그 사람은 기도를 안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깨어있다는 것은 무슨 기도를 했기에 깨어있다는 것이냐? 무턱대고 기도만 하면 깨어있는 것이냐? 영의 사람이 깨어있어야 한다.


사람이 움직이는 그것만 보지 말고 움직이는 그 배후에 무슨 영이 들어서 그 사람을 움직이는 건지 그걸 봐야 한다. 세상 말을 하는 자는 그 속에 거짓 영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걸 왜 거짓 영이라고 하는 거냐? 성경은 천국 하나님 뜻을 말하고 있는데 거짓 영이 든 거짓 목사와 교사들은 세상 소원을 이루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고 구하는 자는 거짓 영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런 교인들은 성격 성질이 안 고쳐진다. 이 사람은 귀신 집에 돼버린다. 말씀의 이치가 없으니 귀신이 들어간다. 물이 없으니 귀신이 들어간다. 그래서 귀신이 그 사람을 붙잡고 이용을 한다. 그런 귀신들린 거짓 목사가 있다면 무슨 짓을 하겠느냐? 그 사람에게 배우면 사람이 바로 서겠느냐, 가정이 바로 돌아가겠느냐? 사람이 깨닫지를 못하면 다 무너지는 법이다.


세상 모든 만사가 어떤 일을 해도, 뭘 만들어도 거기에는 설계가 있고, 그 설계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이치다. 그럼에도 세상 사는 것을 자기감정대로 살 수가 있느냐? 신앙의 세계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이 되는 것이니 예수 믿는 것을 자기감정대로 믿을 수는 없는 거다. 왜? 성경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도하는 것도 구하는 것도 왜 자기감정대로 구하느냐? 그건 안 들어준다.


절간에서 100일 기도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건 누가 준 것이냐? 불신자들은 부처가 줬다고 할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한테 물으면 그걸 누가 준 것이라고 하느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면 왜 절간에 가서 기도를 하니 아이를 낳았을까? 여자들은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롭고 걱정 근심이 없어야 아기가 생기기도 한다. 마음속에 신경성이 들어있고 시집살이에 마음이 바짝 오그라 붙어 있으면 아기가 생기겠느냐? 환경으로 인해서 그런 것도 있는 거다.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까’ 하니까 ‘기도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 아홉 제자들이 기도도 안 하고 ‘귀신아, 나가라’ 한 것인가? 사람의 말은 그 사람 속에 정신이 든 대로 나오게 돼 있다. 아침에 쌀밥을 먹었으면 뒤로 쌀똥을 싸게 돼 있다. 먹은 대로 빠지고 귀로 들은 대로 나오게 돼 있다. 이게 원리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 사람은 사람을 바로 세우는 말이 이치로써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없이 귀신들린 사람보고 ‘귀신아, 나가라. 안 나갈래?’ 하면 귀신은 나가지 않고, 이건 자기감정이 되고 자기 기준이 된다.


부모도 지혜로운 부모는, 영리한 부모는 아이들이 잘못했으면 잘잘못을 깨우쳐준다. 그러나 미련한 부모는 야단부터 친다. 그러니 그 아이는 깨닫지를 못한다. 그런 부모가 있는가 하면 분명히 야단을 쳐야 하는 건데도 자기 자식이 사랑스러워서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히 있는 부모도 있다. 이게 뭐냐? 사랑이 너무 풍부해서냐?


자식교육의 방법도 성경 속에 있다. 사람교육의 방법이 성경 속에 들어있다. 그런데 어디 가서 사람교육을 배우느냐?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게 사람 되는 교육이다. 세상은 돈 벌어서 생활이 편하게 모든 걸 연구하는 거다. 공부하는 것도 생활을 편하게 하는 거지 사람 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방종교는, 유교나 불교는 사람 세우는 건 없다. 조용하게 공만 드리게 만들뿐이지 들어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걸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어도 예수 믿는 이치를 모르면 그 사람은 어느 교회에 가도 속는다. 모르면 속기 마련이다.


오늘날 ‘기도밖에 없다’는 이 말씀을 보고 각종 귀신들린 자와 병자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그럴 때 그 병자도 그 무리들 가운데서 같이 기도를 할 것이다. 귀신들린 자를 위해 기도할 때는 귀신들린 그 자도 그들 가운데서 기도할 것이다. 어쨌든 기도들을 참 많이 하는데 왜 육신의 병이 안 나을까? 지금 기독교인들이 본문의 기록을 보고 육신의 병만 알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곱 교회 중 마지막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인데, 이 교회는 돈도 많고 부자였고 옷도 잘 입고 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나는 부자다’ 라고 했다. 이들은 물질적 부자이니 풍부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보는 눈은 그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다. 그러면 예수님이 보는 눈이 정확한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보는 눈이 정확한가?


지금 교인들이 보는 눈은 영적으로 영인성장 면으로 보느냐, 육적인 면으로 보느냐? 예수님은 어떤 눈으로 보느냐? 영적 영인성장 면으로 보고 있느냐, 육적으로 보고 있느냐? 예수님의 보는 눈은 천국에서 오셨으니까 천국의 눈을 가지고 보신다. 이 천국의 눈은 신령한 눈이요, 영의 눈이요, 성령의 눈이요, 사람을 볼 때는 그렇게 보는 거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예수 믿는 네 마음중심을 보신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나는 성령으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느냐?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중심 즉, 소원 목적이나 지식이나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을 놓고 보는 거냐, ‘예수 믿어 얼마나 잘 살고 복을 받았느냐’ 하는 그 눈으로 보는 거냐?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눈으로 바꿔야 한다. 예수님의 지식으로 바꿔야 한다. 성경을 본다면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꿔야 한다. 언제 바꿀 거냐? 세상은 어느 땐가 없어진다. 자기가 먼저 없어지든지 하나님이 다 거둬가든지 한다. 자기부터 먼저 거둬간다면 세상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지금 어떤 눈을 가지고 보고 있고, 어떤 정신으로 예수를 믿느냐?


영과 육은 분야가 질적으로 다르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세상이 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야다. 성경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거다. 성경은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기록이 돼 있으니까 자기가 성경을 깨달으려면 역시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되어서 봐야지 육신의 눈만 가지고 ‘예수 믿어 복 받아라’ 하는 것만 보인다면 그게 바른 눈이냐?


자기가 성경을 보고 해석을 하는 것과, 안 믿는 사람을 데려다가 그걸 해석해 보라고 하면 질이 달라야 할 텐데 말이 똑같이 나온다면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영과 육은 질적으로 분야가 다른 건데 오늘날 교회들이 성경을 보면서, 성경을 해석하면서 어떻게 말이 나오고 있느냐?


예수님을 시험해서 넘어뜨려는 마귀가 세상을 자랑하고 세상 것을 이루라고 하지 않더냐?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라.’ 하지만 뛰어내리면 하늘이 아닌 땅이다. 그런 것처럼 오늘날 각 교회마다 땅에서 영웅소리 들으라고 하고 있고, 목숨 바쳐서 충성봉사 하라고 하고 있고, 세상 것 이룬 것을 명함에 찍어서 자랑하고 있다. 이건 마귀의 시험에 진 거다.


예수님은 마귀가 땅으로 뛰어내리라는 시험에 안 뛰어내렸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규모가 크던 작던 서로 땅의 운동을 하느라고, 서로 먼저 땅으로 뛰어내리려고 야단이다. 예수님께서는 영인성장 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온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장성하라고 하시는데 예수 믿은 지가 언젠데 그 모양이냐?


우리의 몸에 고통을 주는 것은 영인성장 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그 촉구성으로 자극을 주는 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인성장 면의 중요성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사건 환경은 자기에게 영적 면에서 영인성장 면의 박차를 가하라고 자극을 주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취직을 해서 회사에서 돈을 많이 받는데 주일예배를 까먹는 게 예사라면 취직을 한 게 그 사람에게 축복이냐? 그 사람은 육신의 음식은 배터지게 먹을 런지는 모르겠지만 영적 면에서는 굶고 말라가고 있는데도 그게 축복이냐? 그럼에도 속사람이 말라져 있는데도 먹는 게 풍부하면 그걸 축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축복은 물질에 들어있는 게 아니고 사람에 들어있는 것이다. 시편에 보면 사람이 복이다. 물질이 있던 없던 사람이 복된 사람이 돼야 한다. 시편 1편은 왜 읽느냐?


자식들 공부 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되라는 것인데, 그런데 학교공부를 많이 시키면 사람이 되더냐? 본인들이 마음에서 내려지는 정답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 당신의 입으로부터 나간 말씀은 빈 것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다.


성경에 혈루증 병든 여자가 있는데, 사람은 피가 많이 빠지면 생명이 단축이 된다. 피가 많이 빠지면 사람 얼굴이 하얘지면서 죽는 거다. 그러니 이 여자가 돈 버는 거, 먹는 거, 약 쓰는 것마다 전부는 피로 몸에서 빠져나간다. 아무리 먹고 마시고 약을 써도 피로 다 빠져나가니 감당이 안 된다. 또 여자이기 때문에 시집을 가겠느냐, 시집을 간들 남편에게 사랑을 받겠느냐? 이걸 교인으로 본다면 영적으로 이런 병이 들면 그 사람은 생명적인 건설을 못 한다. 이치가 그렇다.


오늘날 신체의 혈루증은 병원에서 수술을 해서 의학적 첨단기계로 고친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에 그런 의료기계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병을 고쳐주신 것이냐? 예수님은 언제고 이 땅에 오실 수 있다. 의료기계가 발달됐을 때 오시려면 오시고, 그렇지 않을 때 오시려면 오시고 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옳지, 내가 의료기계가 없을 때 가서 고쳐줘야지’ 해서 그 때 고친 거냐? 만능의 능력자 주님이 그 때 그 생각으로 오셔서 고친 것이냐?


그게 아니라 성경은 비유요 비사요 하나님의 특별계시요 우리의 온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동원시켜서 기록케 해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육신적으로는 혈루증 병이 안 들었다고 해도 영의 눈으로 보면 여자가 혈루증이 들어서 먹고 마시고 활동하는 것이, 삶 자체가 전부는 사망계로 빠지고 있었듯이 예수 믿는 자기의 모든 이력과 먹고 마시는 것과 투자성 활동성 전부가 돌아올 수 없는 사망계로 빠져나가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혈루증 여자를 바로 내 앞에 동원시킨 것이다.


‘혈루증 든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네가 봐라.’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걸 다 보고 있는 것이다. 사망계로 빠지고 있는 이것을 영생이요 생명이요 영능의 실력의 삶으로 고쳐놓을 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바울의 눈병은 교만하지 말라고 그런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의 병이 다 그런 거냐?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신다.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그러니 진리이치를 잘 깨달아서 자기의 정신과 마음을 잘 다스리고, 생활을 이치 있게 하고, 자기감정 마음을 잘 다스리면 왜 병이 날까?


물론 사람이 병이 들 수는 있다. 문제는 자기가 몸에 병이 들었을 때 사람이 바로 못 서서, 미련해서 영인성장 면에 오는 피해는 없는 건가? 그러니까 못 깨달아서 자기 영인성장 면에 병은 없는 건가? 성경에 귀신들린 사람을 보여주는 것은 육신적으로 병이 든 것을 말하는 거냐, 정신 사상 면에서 영인성장 면의 병을 보여주는 거냐?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들어있으면 그건 세상 영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건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 어떤 정신이 들어서 예수를 믿는 건지를 성경은 말을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왜 그걸 지적을 못해주느냐? 성경이 누구에게 다 해당이 되는 거냐?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거다. 성경에 소경이 나오는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영적 소경이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자신들이 헐벗은 줄을 모르고 있는데 그 눈이 소경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자기 인격화 시켜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자기 인격화 시키는 사람이 없다. 이게 마지막 시대 교회의 현상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려는 사람은 없고 기도해서 응답만 받으려고 하고 이상한 짓만 하려고 한다. 맨 이해타산이 이방 불신들과 똑같이 들어있다. 세상 것을 이루는 목적으로 믿고 있다.


각종 병자를 동원하심은 선악과 따먹은 이후에 온 인류의 영적 상태를 다각적으로 다양한 면으로 동원해서 우리 각자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알게 해 주시는 거다. 영적 상태는 그 사람의 사상이다. 그 사상은 자기의 정신 인격 마음 씀씀이 소원 목적이 다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보면 성경해석도 그렇고,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고 성경에 있는 병자를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병자로만 말해버린다. 주님은 영적 병자를 보게 해 주려고 육신의 병자를 동원시킨 것이다.


병원에 가면 육신의 병의 원인을 찾으려고 그 사람의 속을 기계로 들여다본다. 보이는 병은 주로 속에서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계로 속을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에서 육신의 병만을 알아서 목사가 육신의 병자에게 기도해서 나으면 기도한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그러고, 병자가 낫지 않으면 병자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고 있다. 이건 날강도 목사다. 말씀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귀신들린 자가 얼마나 많은지? 성령의 눈으로 말씀의 이치로 성령의 영감의 감화성으로 병자를 보고 교회를 인도하고 사람을 바로 세우고 해야지 어떻게 육신의 병자만 보이느냐?


아홉 제자들은 영과 육 중에 어느 분야 쪽으로 보고 기도를 했을까? 우리고 그 점을 명심하라. 영과 육이 있는데 어느 분야 쪽으로 기도를 할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분야를 귀중하게 보시고 고쳐줬을까? 예수님은 인간창조의 근본목적에 맞도록, 하나님의 온전의 구원목적에 맞도록 고쳐주신다. 이게 성경이다.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감화로 기록영감을 받은 기록자들로 통해서 기록케 했다. 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고. 하나님의 속성적 성품적 인격적으로 온전케 하려고. 따라서 우리의 속사람이 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진다면 이게 우리의 실상이다.


자기 속에 기존적으로 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현상이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것으로 채워라. 예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예수님의 부활성으로 된 그 성질에 먹혀야 한다. 이게 옳은 거다. 예수님 사랑에 먹히고, 예수님의 지식에 먹히고, 예수님의 온전한 그 성품에 먹히고, 예수님의 도덕성에 먹히고. 이건 하나님의 것이다. 이게 옳은 거다.


내 속에 하나님의 것이 들어있다면 내 속에 왜 귀신이 들어가겠느냐? 내가 왜 무당 점쟁이 짓을 하겠느냐? 계:에 보면 교회가 무당 집, 귀신 집이 다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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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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