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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에서 다투지 말라 (창 4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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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다투지 말라 (창 45:21-28) 


오늘 오후에 교회창립 65주년을 기념하면서 건축한 군인교회 헌당예배를 드립니다. 이 교회는 1군단 산하에 있는 대대교회입니다. 한번은 군단장님께서 군단교회의 임직식예배 설교를 부탁해 오셨습니다. 예배 후 군병원 내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에 군단장님과 함께 갔습니다. 그 때 군단장님은 사복차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은 군기가 완전히 빠져 있는 듯했습니다. 군단장님이 마이크를 잡고는 "내가 누군지 아나?" 라고 했는데, 모두 다 '도대체 누구냐? 뭐하는 거냐?'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군단장이야" 라고 하자 병사들은 사시나무 떨듯이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창세기 45장은 요셉 스토리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입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자기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도 대제국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말입니다. 저들은 놀라서 말문이 닫혀버렸습니다. 이런 저들에게 요셉이 다가와 입맞춤을 해 주었을 때 비로소 입이 열렸습니다(창 45:15). 입술이 부정하다고 탄식했던 이사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7). 입맞춤은 단순히 사랑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용서, 화해, 씻음, 그리고 덮음을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입맞춤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으로 인해 제공받은 수레와 양식, 그리고 선물들을 가득 싣고 길을 떠납니다. 이런 저들에게 요셉이 간절히 당부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창45:24). 

도대체 뭘 다투지 말라는 것일까요? 왜 이 시점에서 생뚱맞은 당부를 하는 것일까요? 저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왔는데, 스파이로 몰려 감금되기도 하고, 형제 중 하나가 볼모로 잡혀 동생을 다시 데려와야 하는 일이 벌어지자 요셉을 팔아버린 사건을 똑같이 떠올립니다. 장남 르우벤은 동생들에게 책임전가하며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이런 저들을 향해 요셉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을 팔아버린 저들에게 일이 꼬여가면서 해결되지 않고, 어려움이 계속 닥치니 그 때 그 일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떠올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인 맞은 양심의 소유자,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 넘긴 가룟유다는 자신의 죄를 뉘우쳐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마 27:3-5). 

지금 야곱의 아들들의 심정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무거운 죄의식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아무리 뇌리에서 지우려고 델리트(Delete) 키를 누르고 또 눌러도 또렷이 그 때 그 일이 생각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들에게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저들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요셉이 저들에게 다가와 입맞춤으로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도 다시 가나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면서 한 말이 바로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길은 요셉이 살았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 요셉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고, 그동안 자신들을 짓눌러왔던 죄에 대한 사함을 받고 가는 전혀 다른 새 길입니다. 저들은 단지 양식을 사기 위해 요셉을 찾았는데 요셉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저들의 죄 문제까지도 깨끗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가나안,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이젠 다투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외 없이 나그네들입니다.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는 나그네들입니까? 우리 중에 거의 전부가 주님을 찾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솔직히 '양식' 때문이 아닙니까? 건강, 물질, 대학합격, 취직, 결혼이라는 양식을 얻기 위해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은 그보다 먼저 우리의 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입맞춤을 해주시면서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자들입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만나고 다시 가나안, 즉 아버지 집으로 가는 노중(路中), 바로 그 길에 들어서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신 당부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길에서 다투지 말라'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무서운 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끔 구원의 기쁨을 빼았아가며, 우리를 깊은 침체의 늪에 빠뜨리곤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지은 죄는 요셉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그 분이 나에게 다가오셔서 입맞춤을 해주시는 순간, 전부 깨끗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당부합니다. '이제 나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죄책감, 자책감을 버려라. 나를 만나기 전의 길과 나를 만나고 난 뒤의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그 때는 죄책감으로 힘들어 했다. 그게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다 용서했다. 입맞춰주었다. 더 이상 지난날의 죄문제로 자학할 필요가 없다.' 는 뜻으로 길에서 다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모든 죄는 사망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그분으로부터 입맞춤을 받는 순간, 다 깨끗이 정리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포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가끔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의 과거를 너무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과거가 들추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아직 맛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예수님, 죽었다고 생각했던 예수님,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팔았다고 생각하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자에게 신비한 건망증을 주십니다. 지난날의 허물을 기억하지 아니하는 영적 건망증 말입니다. 혹시 생각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다시는 나를 정죄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이 은혜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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