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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평화를 원합니까? (사 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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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평화를 원합니까? (사 11:1-10)

 
엊그제 서해에서 한미 연합 훈련이 실시되었습니다.
이번 훈련은 6.25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훈련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가 들어왔습니다. 그 외에도 구축함, 이지스함 등 이름을 대기도 힘든 많은 군함들이 이번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조지 워싱턴 호를 필두로 하는 그 함대는 웬만한 국가의 전투력을 능가한다고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북한의 주요 시설들을 단숨에 박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훈련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져야 합니까? 사람들은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그 원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끔찍한 만행이었습니다. 아무리 그쪽 입장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민간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무차별적으로 포를 쏘았다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빌미로 해서 미국의 항공모함을 서해로 끌어들인 것도 별로 지혜로운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미국의 신세를 져야 합니까? 우리의 처지가 우스운 것 같습니다. 마치 마마보이와 같습니다. 힘이 없다면 모르지만 지금 남한과 북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G20 정상 회의도 치렀습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2위를 했습니다. 국방비도 북한의 10배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정도 덩치가 커졌으면 좀 어른답게 행동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훈련은 엊그제 끝났지만 연평도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사나운 맹수들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잇감을 놓고 싸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배가 불러도 서로 다툽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은 물론 많은 민간인들까지 희생되었습니다. 그 동안 남한은 북한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오히려 다툼의 길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만행 앞에서 서로 다투는 우리의 고질적인 분열상입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면서 우리 군을 향해서는 훈련도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이 커질수록 우리 안의 다툼과 분열도 커지는데 북한이 어떻게 도발의 유혹을 떨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편을 갈라 싸우고 있을 때입니까?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의 위기 상황도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운명도 풍전등화,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신세였습니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은 다 동원했지만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이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선지자 이사야가 놀라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선포했습니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무슨 말입니까? 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가 이제 곧 오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여기서 이새의 아들이란 표현은 일찍이 사람들이 다윗을 업신여기며 썼던 표현입니다.

전혀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에서 놀라운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까?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0)
결론적으로 말해서 참된 평화가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가 이제 곧 오실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오직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지혜와 총명의 영이시며 모략과 재능의 영이시요 또한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의 위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는 다른 임금들처럼 자신의 즐거움을 목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실 것입니다. 그는 보고 듣는 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공의와 정직으로 모든 판단의 기준을 삼으실 것입니다. 가진 자라고 해서 우대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물론 가진 자라고 해서 특별히 불이익을 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나 약자가 더 이상 억울하게 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뜻이 아니라 공의와 정직과 성실, 곧 하나님의 선한 뜻이 지배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나라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양육강식의 법칙이나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평화의 동산입니다. 과연 하나님 나라에서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전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목적이 과연 무엇입니까?
그저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면 괜찮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평화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다시금 하나님의 공의가 지배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때문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아주 분명해졌습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상반절)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지금도 간절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제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참된 평화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합니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 선지자가 외친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하반절)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 우리는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선을 취하고 악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단순히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주님은 온전히 하나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옛날 로마 제국은 자신들이 이룬 평화를 '팍스 로마나'라고 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검과 말발굽에 의한 억지 평화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로 영국에 의한 ‘팍스 브리태니카’와 미국이 주도하는 '팍스 아메리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이 자랑하는 그 평화도 또한 강력한 군사력에 의한 억지 평화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에 따른 반발로 지금 지구촌은 온통 테러로 얼룩져 있지 않습니까? 갈등과 분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라 평화로 위장된 거짓 평화일 뿐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는 것이 몹시 불안하고 두렵습니까? 참된 평화를 원합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참된 평화는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인류의 수고와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고... 때문에 우리는 그 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이새의 뿌리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를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비록 우리 앞에 짙은 어두움이 깔려 있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고 끝까지 주님만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주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평화의 동산을 건설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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