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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 사용설명서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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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사용설명서 (롬 12:1-2)
 
 
1. 사용설명서

2007년 3월, 김영사에서 나온 『내 몸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겉표지 앞면에 있는 “내 몸의 주인은 바로 나! 100세까지 녹슬지 않는 몸을 만드는 나만의 맞춤형 인체 매뉴얼”이라는 문구도 재미있지만, 이 문구보다는 뒷면에 있는 “기계 하나에도 사용설명서가 있는데 평생 쓸 우리 몸에는 왜 사용설명서가 없을까?”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처럼 ‘작은 기계 하나에도 매뉴얼이 있는데 왜 우리 몸에는 설명서가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책은 말 그대로 우리 몸에 대한 사용 설명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에서 9년 연속으로 ‘最高 名醫’로 선정된 內科醫師 마이크 로이젠 박사와 인간 장수의 비밀과 몸과 영혼을 동시에 치료하는 의사라고 불리는 메멧 오즈 박사입니다. 

심장부터 머리, 손, 발, 내장 각 기관까지 신체의 각 부분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것을 지키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 우리 몸의 각 신체와 장기들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몸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풀 수 있으며, 나아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장수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아마 이 책의 영향으로 보이는데요. 2008년 5월, 『남편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병준이라는 목사님이 지은 이 책은 “Part 1/ 서비스를 의뢰하기 전에, 이럴 땐 고장이 아닙니다”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 남의 편이라서 남편 2. 버럭 남편 3. 밥만 찾고 TV만 보고 4. 사람인지 짐승인지! 5. 돈 이야기만 하면 돈다. 6. 제발 말 좀 하고 살자! 7. 노는 건 젬병이 8. 말마다 뻥 9. 여자를 능가하는 잔소리꾼 10. 나만 문제고 자긴 아무 문제없다구? 11. 영원한 어린아이 

12. 금방 또 싫증났어? 13. 소심하고 비겁해요 14. 너네 엄마하고 살지 왜 나랑 결혼했어? 15. 살수록 수수께끼.’ 이것이 이 책의 1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Part 2에서는 “남편, 이렇게 사용하세요.”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인 2009년 1월에 이병준 목사는 『아내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 남자의 몸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2008년 9월에 나왔습니다. 아빠, 남편, 가장이란 부담을 지고,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남자들. 일하는 즐거움을 느낀 게 언제인지 알 수 없고, 아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 했던 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고, 예쁜 짓하는 아이 때문에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퇴근 후 발걸음을 재촉하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그들! 이제는 삶의 낙이 없어진지 오래인 불쌍한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한 韓醫師가 전하는 생활 처방전이 바로 이 『대한민국 남자의 몸 사용설명서』라는 책입니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2008년 12월에 『여자 몸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아프고 지친 여자들을 위한 108가지 처방전!’이라는 副題를 가진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 비만 전문 한의사인 정지행과 탈모‧척추신경 전문 한의사인 이태후 부부가 여성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여성 특유의 질환과 질병들을 증상별로 그 해결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몸 상태가 병원에 가야 할지, 아니면 집에서도 관리가 가능한지를 가늠하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기 몸 사용설명서』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30여 년간 소아과 의사로 근무해온 일본인 의사 부부가 쓴 책입니다. 

이런 다양한 사용설명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나이와 남녀에 따라서 몸 사용 설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렇다면 일종의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몸 사용설명서’ 말고, 일종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인생 사용설명서는 없을까요? 이런 우리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듯 소설가 김홍신 씨가 『인생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도 副題가 달려 있는데요. 

그 副題는 “단 한 번뿐인 삶을 위한 김홍신의 일곱 가지 물음”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겠는가?’ 이처럼 단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항상 물어봐야 할 질문을 통해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인생 사용설명서』는 삶의 지침서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몸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많고 인생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설명서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만족할만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조자의 설명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제조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용 설명서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인생 사용 설명서

오늘 본문이 바로 여러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분의 인생에 대한 “사용설명서”입니다. 

로마서는 1장부터 11장까지 교리적인 것을 정리한 후, 12장에 와서 그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1장부터 11장은 죄와 그 결과인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는 인생들, 죄의 심각한 오염에 의해 미래만 아니라 현재마저도 죽음과 같은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죄를 파괴하시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죄와 죽음의 모든 굴레를 벗어나게 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2장부터는 그에 근거하여 실제 생활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말씀하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실제 생활의 시작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본문을 제가 다음처럼 私譯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제가 형제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살아있고 거룩한 희생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들의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동화되지 마십시오. 대신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서 변화되십시오. 그리되면 여러분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본문이 말씀하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 사용설명서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우리를 위한 인생 사용 매뉴얼은 우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희생제물이 무엇입니까? 죄인인 인생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리고 자신의 지은 죄를 사함 받아야 할 때, 자신을 대신하여 그 죄를 지고 죽게 하는 소 양 염소 등을 말합니다. 즉 자신을 대신하여 희생하는 제물이지요. 나를 드려야 하는데, 대신 동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정한 규정에 따른 동물이 희생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께서 바울의 입을 빌어서 저와 여러분에게 “너희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1)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은 첫째로 여러분은 이미 죽어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진 희생제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나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지요? 전도사 시절, 학생들을 데리고 언양 어느 시골 교회로 수련회를 갔습니다. 어느 날, 저녁 메뉴가 ‘닭볶음탕’이었는데, 닭을 시장에서 사오는 것이 아니고 그 교회 성도가 키우던 닭을 가지고 와서 직접 잡아서 음식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식사를 위해 와 계시던 교회 집사님들이 하필이면 제게 그 닭을 잡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닭잡기는 처음이었지만, 시장에서 닭 잡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라, 닭 모가지를 비틀어 칼로 싹둑 잘랐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닭이 목이 잘리는 순간 ‘퍼더덕’ 하면서 요동을 쳤고, 그 순간 제가 놀라 움찔하면서 손에 잡고 있던 목 잘린 닭을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모가지 잘린 닭이 교회 뒤 식당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하더니 교회 앞마당 아이들 분반 활동하는 데까지 갔습니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뒤쫓아 가면서 얼마나 황당하면서 웃기든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공포 영화를 보는 것처럼 무섭기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 닭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된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단어가 함께 있어 문자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 죽어야 한다는 말인지 헛갈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산”, 즉 ‘살아있다’는 말과 “제물”, 즉 죽어서 하나님의 祭壇에 올려진 것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실 구약에서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드릴 때에는 그 짐승들을 죽여서 바치면 되니까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인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린다고 할 때에는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신적인 면, 감정적인 면, 육신의 한계, 현실의 상황 등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살아 퍼덕 거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삶에서 빚어진 상처와 아픔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이 세상과 육신에 매이게 하여 살아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오늘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미 죽어 제단에 올려진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양이나 송아지가 죽임을 당하여 제단 위에 올려지듯이, 여러분 자신은 항상 자신을 죽여 제단 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은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이전의 나, 옛사람으로서의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 만 살아계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전에는 내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결정했습니다. 내 마음대로였고, 내 방식이었고, 내 위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는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느 분이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말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운전하던 자리에서 내린다는 말이다. … 자기를 부인하여 차에서 내리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내가 내린 운전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운전하시게 해야 한다. … 이것이 진정한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이다.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나를 부인한 자리에 그리스도를 앉힌 사람은 많지 않다.”

Dave Branon이라는 분은 이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했습니다. 나의 아들 Steve가 2006년 여름에 미 해군에 입대하려고 집을 떠났을 때, 그는 자기 결정의 중대함을 알았다. 일단 그가 신병교육을 받기위해 해군기지로 걸어 들어가면 그는 그동안 즐기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자기의 자유, 기타, 음악, 그리고 여자 친구를 뒤에 남기고 떠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선택권을 포기하고 명령을 받는 대로 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사실상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를 산 제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조국을 위해 일합니다.” 스티브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방식을 포기하고 국가와 군대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젊은 스티브로서는 군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우리의 의지를 전적으로 포기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올려진 산 제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를 보면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성경 말씀이 들립니다. 그의 눈길에서 예수님의 눈길이 느껴집니다. 그의 손길에서 예수님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두 번째로 그 사람은 절대적인 겸손의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이 자존심이 어디 있고 자기 주장 자기 고집 자기 경험이 어디 있습니까? 세 번째로 그는 무력한 사람입니다. 그 대신에 그를 통하여 주님의 무한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산 제물이란 자신의 전부와 그가 살아가는 모든 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즉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로 알고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이,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우리의 듣는 귀가, 우리의 손이, 우리의 발이, 아니 우리의 마음까지, 그 모든 것이 제물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제물입니다. 여러분의 눈길이 제물입니다. 여러분이 듣는 것이 제물입니다. 여러분의 손짓과 발짓이 제물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과 모든 만남이 제물입니다. 여러분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리스도 안에 드려지는 제물이요, 그것이 영적예배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과연 여러분의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로서 부끄러움이 없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아오셨으며,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서 바울처럼 자신의 죽음과 여러분 안에 하나님만 사심을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여러분 자신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풍조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쉽게 동화되고 그것을 따라가려는 여러분의 본성을 억지로라도 하나님과 말씀에 복종시키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의 인생 매뉴얼 첫째 사항입니다.

2) 구별되게, 거룩하게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임을 분명히 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었다는 말이고,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이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 그 중에서 거룩한 것으로 구별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사장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성소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지성소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레 16:3). 

그래서 제사장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하여 더 엄격한 결혼과 순결 그리고 삶의 구별을 요구받았습니다(레 21:1; 겔 44:22). 이처럼 제사장이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祭儀 때 입는 衣服 역시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출 28:2,4; 29:9; 31:10).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레위인들이나 장자가 거룩하다고 묘사되었습니다(대하 23:6; 35:3).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 역시 거룩하다고 여겨졌는데, 그 중에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왕상 19:16, 왕하 4:9, 렘 1:5). 그리고 거룩한 물건이나 장소도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장소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이고(신 26:15), 땅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장소(출 3:5)와 성전이었습니다(시 74:3; 대상 24:5; 대하 29:5). 

그래서 이렇게 구별된 장소에서 일하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 성전 제사와 관계된 법궤, 분향단, 진설병을 두는 상, 등잔대, 번제단, 그리고 물두멍 등이 거룩하게 여겨졌고, 祭物 역시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거룩해야 했습니다. 그 중 안식일이 거룩하게 구별된 날이었고, 무교절의 첫째 날과 일곱째 날이 거룩한 날이며(출 12:16; 레 23:7), 칠칠절, 일곱째 달의 초하루(민 29:1; 레 23:24), 대속죄일(레 23:27; 민 29:7), 초막절 첫째 날과 여덟 째날(레 23:36; 민 29:12) 등을 거룩한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길게 설명드렸습니다만, “산 제물”이란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진 것으로 알라는 것, 자신도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나 성도들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가타부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사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거룩하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4장과 골로새서 3장에 따르면, 거룩한 삶은 첫째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는 삶입니다. 

거짓에는 거짓증거, 과장, 덧붙이는 것 등과 남을 모함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두 번째로 거룩한 삶은 분노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분노 자체에 매이면 사단은 그것을 자기 기회로 삼아 버립니다. 그래서 義憤조차도 때로는 죄로 발전하기 때문에 금할 것을 충고합니다. 셋째로 거룩한 삶은 도둑질하지 않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얻고자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은 도둑입니다. 열심히 일하여 자신의 필요를 얻고, 그것을 통해 유익한 일을 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도와야 합니다. 

넷째로 거룩한 삶은 더러운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유익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인간이 제일 길들이기 힘든 것이 혀라고 했습니다. 언어생활은 그만큼 영향력이 있으며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좋은 말은 듣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유익하게 합니다. 그리고 좋은 말은 격려하는 말이며, 남에게 용기를 주는 말입니다. 다섯 번째로 거룩한 삶은 성령을 근심케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다시 죄를 짓는 옛 생활로 돌아가면 성령께서 슬퍼하십니다. 

세상과 옛사람과 엄격히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거룩입니다. 여섯 번째로 신자들은 肉慾的인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에게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악독, 오랫동안 노를 품은 상태 혹은 우리가 흔히 한이라고 부르는 것, 떠드는 것 즉 남의 잘못을 떠벌리거나 갈등이나 분열이나 싸움을 일으키는 것, 훼방하는 것 즉 이간질이나 중상 모략하는 것, 그리고 惡意 즉 마음의 악한 의지 등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없는 삶이 거룩이고, 곧 하나님께 올려진 산 제물로서 사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거룩한 생활의 신조”라는 것을 만들었더라고요! 그것은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생활에 성실하겠습니다. 남 이야기를 함으로 시간을 낭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습니다.
2. 내 자신의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겠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민감하지 않겠으며, 남을 질투하거나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3. 항상 미소를 띄우며 살겠습니다. 비록 우울할 때에라도 내가 침울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4.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겠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는 엄격하겠습니다. 

5. 고집부리지 않겠습니다. 내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을 수 있다는 아량과 이해심으로 노력하겠습니다.
6. 화내는 것을 조절하겠습니다. 화를 내면 그 화가 상대방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우겠습니다.
7. 하루하루를 넓은 광장에서 살겠습니다. 가능하면 아량을 베풀고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8. 핑계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적극적이고 실제적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9. 봉사의 삶을 살겠습니다. 이타적인 봉사의 일을 하지 아니하면 내 인격은 파멸되고 내 영혼은 메마르게 된다는 사실을 항상 자각하겠습니다. 
10.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임을 깨달아 내 노력, 내 힘만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의하여 일 처리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는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항상 거룩을 추구하면서 거룩을 덧입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사용설명서대로 살아야 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제품에는 사용설명서가 함께 따라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산 제품을 사용하기 전에 사용설명서부터 숙지합니다. 만약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제품을 사용했다고 해도,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그 설명서를 찾아 읽으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런 면에서 사용설명서는 정말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제품에 사용설명서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인생에도 사용설명서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고,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입니다. <인생 사용설명서>인 오늘 본문은 먼저 성도인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부터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올려진 산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살이는 이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올려진 산 제물”이라는 제품 이름에 맞추어 나와 있는 사용설명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은 이미 죽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말 여러분 자신을 죽이고 오직 주님만이 여러분을 통하여 드러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올려진 산 제물”답게 사는 것은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 방식, 인간의 방식 반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올려진 산 제물”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 인간의 방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거룩이 여러분의 삶의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올려진 산 제물들입니다. 그러므로 산 제물이라는 여러분의 이름에 맞추어 주어진 사용설명서대로 살아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여러분의 행복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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