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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지기의 삶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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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의 삶 (마 25:14-30)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놀라운 경험 두가지가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분에게만 공개합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한번은 볼링대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볼링을 제대로 지도받아본적도 없고 남 치는거 보고 몇 번 따라 쳐본거 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볼링대회를 하니까 저도 선수로 참여를 했습니다. 담임목사가 참여를 하니까 교인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제가 볼링공을 들고 할렐루야 하면 교인들이 아멘하고 볼링을 치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치면 다 스트라이크입니다. 제가 평소에 치면 80에서 120정도 나왔는데 그때 그날은 200점이 넘게 나왔습니다. 제가 그래서 일등을 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은 아무리해도 그런점수가 안나옵니다. 어찌보면 우연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기적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또 한가지는 몇 년 전에 우리 가족이 여름휴가로 강원도쪽으로 가다가 콘도를 지나가게 되어서 우리 조금 쉬었다가 가자 탁구도 치고 콘도에 들어가면 그래서 콘도에 들어갔는데 오락실에 들어갔더니 마침 거기에 공기총을 쏘는게 있었습니다. 점수를 매기는데 몇점 이상이 되면 인형을 준다고 합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가족대결 공기총 대회를 하자. 그래서 했는데 그 당시 큰애가 이제 막 제대를 한 때입니다. 작은애는 ROTC인데 큰애는 자기는 군대에서 특등사수였다는 겁니다. 자기가 꼭 일등할 거라고 그런데 결과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큰애는 특등사수였다고 했지만 별로 좋은 성적이 아닌 2400점 정도 나왔습니다. ROTC하던 작은 애는 2200점 저는 공군출신인데 총을 많이 못쏴봐서 2500점 정도 나왔습니다. 문제는 우리 집사람입니다. 총을 한번도 쏴본 적이 없고 만져본 적도 없는데 2700점이 넘게 나왔습니다. 이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의심했습니다. 이 여자가 옛날에 스파이가 아니였나 말입니다. 어디서 이렇게 총을 잘쏘는 것을 배웠을까. 아마 운동을 좋아해서 집중력이 있으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능력을 진작 좀 발견했더라면 이걸 좀 개발해줬더라면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나가서 동메달 정도는 땃을텐데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다양한 재능과 은사들이 숨겨져 있는데 어떤 우연한 기회에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일생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내게 이런 능력이 있는 줄도 모릅니다. 어떤 분은 싸움자체를 두려워합니다. 싸움도 없고 힘도없고 그런생각을 했습니다. 밤길을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강도를 만나 어려움을 당합니다. 의협심에 도와주려고 가서 뜯어 말리다가 강도하고 싸움이 붙었다고 합니다. 강도가 자기를 한 대 치니까 자기도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대 쳤는데 강도가 한 대맞고 즉사해 버렸습니다. 자기가 싸움 잘하는 것을 그때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 기회가 없었으면 그분은 영원히 자기는 싸움도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알고 인생을 끝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런 능력들을 잘 발휘하지 못할까. 늘 눌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재능들, 은사들을 주셨는데 인간이 범죄함으로 아담이 범죄함으로 죄가 들어오고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인간들은 긍정의 마음보다는 늘 못한다는 부정적인 마음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그것이 죄속에 파뭍혀 버렸습니다. 또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위에 부정적인 암시나 부정적인 경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억누르며 실패자로 이것이 내 팔자려니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운명이려니 그렇게 사는 분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태리 나폴리에 카루소라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7남매중에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에 너무 가난해서 자녀가 너무 많으니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이 어린아이는 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니까 어린나이에 공장에 가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임금을 받아서 학원에 등록을 해서 교습, 성악지도를 받았습니다. 

몇 년후에 유명한 어떤 선생님에게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 계속 음악을 전공을 해야 하는지 평가를 받는데 그 선생님의 평가는 너무나 혹평이었습니다. 카루소야 네가 노래부르는 것을 보니까 네 소리는 꼭 문풍지가 떠는 소리 같단다 그 소리 가지고는 안돼. 너는 음악을 빨리 그만두고 노동자가 되든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겠어. 혹평을 했습니다. 이 아이는 너무나 실망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자질을 아는 분은 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카루소를 꼭 껴안고 카루소야. 엄마가 보건데 너는 유명한 유능한 성악가가 될 자질이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 너는 위대한 성악가가 될거야. 낙심하지 말고 우리 열심히 노력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뒷바라지 해 주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성악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어떤 부정적인 암시 때문에 때로는 잘못된 평가 때문에 자기 재능을 개발하지 못하고 일생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어떤 계획을 가지고 그를 이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세 전에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아셨고 우리를 위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을 보니까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그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지으시고 이 땅에 보내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선한일을 위하여 우리는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독특한 존재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속에는 하나님의 설계도 하나님의 계획을 오리지날디자인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마다 독특한 오리지날 디자인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대학생들이 전도할 때 쓰는 책자 사영리에 보면 제일 첫 번째 장에 아주 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당신을 위한 아주 기막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확신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 모든 사람이 나를 외면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구원보도 더 풍성하고 놀라운 삶을 우리에게 선물하고자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만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늘 패배자의 삶을 삽니다. 우리부모가 그러니 나도 그렇게 살수밖에 없는거지. 우리부모가 가난하니까 나도 가난한것이고 조상탓하면서 내 팔자소관인것처럼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안에서 우리는 다 특별한 존재들로 존귀한 인물들로 창조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주인이 먼길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서 어떤 종에게는 다섯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너희가 장사를 해서 이윤을 많이 남겨라.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 너희와 결산할 것이다. 종들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장사를 합니다.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장사를 해서 곱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그는 그 한달란트 가지고 뭘할까 생각하다가 주인은 무서운 사람이야. 괜히 장사하다가 본전마저 날리면 큰일나지 땅속에 파뭍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놀다가 주인에게 내어 놓을 때 그는 주인에게 책망을 받고 내어쫓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 15절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여기 보니까 그 재능대로 그랬습니다.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그 재능대로, 주인은 소유자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맡기느냐? 그 재능대로. 달란트라는 말은 탤런트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탤런트라는 말은 재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tv에 나오는 배우들을 탤런트라고 부릅니다. 최수종, 하희라, 이병헌 다 탤런트라고 합니다. 재능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재능을 가지고 우리를 즐겁게도 하고 예술적인 선물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달란트인 재능을 각기 다르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각기 다르게 독특한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 두배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이 와서 결산을 할 때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땅 속에 파뭍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8절 19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바로 우리 생애는 이 결산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성경에는 주인이 와 회계할새, 지금 성경은 결산할 새, 성경적으로 보면 또한 가지 주님 앞에 심판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주님의 심판대앞에 설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충성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게 바로 달란트입니다. 

달란트라는 것은 물질적인 의미도 있지만 재능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인 것입니다. 청지기란 하나님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 청지기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요셉이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가정총무가 되어서 그 집의 모든 재산을 다 관리했습니다. 얼마나 관리를 잘했던지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복을 부어주셔서 그 집이 크게 번성했다고 했습니다. 

엘리에셀이라는 아브라함의 청지기도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신임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자기 아들 이삭의 며느리감을 구하는데 청지기 엘리에셀을 보내서 구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없을 때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청지기 엘리에셀이 제 후계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정도로 청지기는 주인의 신임을 받는 사람입니다. 청지기의 소유가아닌 주인의 소유를 잘 관리하다가 주인이 원할 때 다시 내어드리는 사람이 청지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여려분은 하나님의 청지기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믿는 모든사람들은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루하루보내는 24시간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박을 하는 일에 인간의 쾌락을 위해서 의미없이 물흐르듯이 떠내려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시간을 쪼개서 직장생활도 바쁘지만 공부하는 일도 바쁘지만 가정을 돌보는 일도 바쁘지만 그 시간을 쪼개서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선린봉사단같은 분들은 토요일에 그 귀중한 시간 한시간씩내서 내 부모도 아닌 다른 어르신들을 가서 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시간이란 그와같은 것입니다. 시간은 공평합니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지만 어떤 사람은 한시간을 10시간처럼 가치있게 쓰지만 어떤사람은 10시간을 남의 한시간도 못하게 허비하는 사람도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시간의 청지기가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내가 너에게 준 시간 일생을 하나님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느냐.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의 청지기입니다.

그런가하면 또한 우리는 물질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물질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물질을 잘 관리해서 우리도 사용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우리가 그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물질의 청지기이다. 우리가 물질을 선용하지 못하고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언제 하나님이 그 물질을 거두어 가실지 모릅니다. 

우리는 물질이 영원히 내 소유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거두어가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예전에 부자였고 잘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기도당하고 사업도 실패해서 아주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너무 아쉽다는 겁니다. 돈 많을 때 좋은 일좀 많이 할 껄. 그 돈이 평생 있을 줄 알았답니다. 지금은 좋은 일 할 마음이 있어도 돈이 없어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선하게 사용할 때 거기에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하시지만 잘못사용하고 쌓아놓기만 할때 쌓아놓는 재물은 필요없으니까 구데기가 찾아오니까 곰팡이가 피니까 걷어가시는 겁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넘겨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물질의 청지기입니다. 

또한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재능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달란트 재능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가 주님과 이웃을 위해 활용하고 봉사할 수 있느냐 매우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곱절의 이윤을 남겼고 주인을 기쁘게 했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네게 더 큰 일을 맡길 것이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들이 주님앞에 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오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인이 무서워 한달란트 땅속에 파뭍었다가 가져왔더니 주인이 분노했습니다. 진노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종아 네가 나를 정말 몰랐구나. 그는 변명합니다. 주인은 곧은 사람이라 심지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곳에서 거두는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당신의 달란트를 땅속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자기 것도 아닙니다. 주인의 것을 땅속에 파묻었다가 가져왔습니다. 그는 칭찬받을 줄 알았습니다. 칭찬은 커녕 그는 질책을 받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곳으로 내어좇아 슬피울며 이를 갈게하라. 이 사람은 왜 이런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그는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달란트를 주고 나는 한달란트밖에 안줘 에이 기분나뻐. 땅속에 파뭍어 둬야지, 그는 아무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의 불행이었습니다. 

일하는것이 행복한 겁니까 일하지 않고 노는 것이 행복한 겁니까. 일하는 게 행복한 겁니다. 어떤 분들은 창세기를 오해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인간이 범죄해서 땀흘리고 일하게 되었대. 일안하고 노는게 팔자 좋은거고 행복한거래.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이 백배행복하고 백배 건강하고 보람있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일할 수 있거든 열심히 일하십시오. 교회와서도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게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한 달란트 땅속에 파뭍어두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 파뭍어두고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미안하지만 교회도 종종 그런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세상일이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못내는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면 별로 바쁜거 같지도 않은데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시는 분들 있습니다. 30분만 시간내서 조금만 일찍와서 조금만 늦게 가고 봉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보람있는 삶을 살까. 내가 오늘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는데. 토요일마다 추운데 전도하러 나오는 장로님들, 남신도들계시는데 어떤 권사님은 안산에서 전도하러 나오십니다. 

어제같은 날은 얼마나 춥습니까. 그런데도 전도하러 나오십니다. 그렇게 하면 보람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도 주님의 일을 했다. 물론 그 중에 몇 명이 주님을 믿고 돌아올 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가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겁니다. 전도하고 돌아와 국수를 먹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일하는 것이 행복한 것인데 이 사람은 비교하다가 시험에 드는 겁니다. 사실 한달란트가 돈으로쳐도 작은액수가 아닙니다. 한달란트는 6천데나리온입니다. 한데나리온은 노동자 한사람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럼 기술자가 하루 십만원 받는다고 생각하면 한달란트는 6억이 되는 돈입니다. 결코 장사밑천하기에 적은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남과 비교하다가 땅속에 파뭍어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또한 이사람은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 완고한 사람이라. 심지않은데서 거두지아니하고 이런 핑계로 그는 주인의 뜻을 잘 몰랐습니다. 주인은 장사하다가 실패해도 이해해주고 받아줍니다. 오히려 네가 잘하려고 하다가 실패했구나 괜찮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설때 악하게 살고 악한일을 해서 심판받는게 아닙니다. 아무일도 하지않았기 때문에 심판받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않으려고 한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떤일이든 좋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 주님을 위하든, 이웃을 위하든 한번 해보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이 사람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 선한분을 두려운 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교회에서도 가끔 어떤분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봉사를 안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안하냐고 물어보면 두려워서라고 합니다. 교회는 목사님 말이 많은 곳이잖아요. 제가 봉사한다고 왔다갔다하면 교회나온지 얼마되지도 않은 사람이 설치고 다닌다고 그런 이야기 들을까봐. 또 하다가 실수하면 누가 뭐랄까봐 그게 두려워서. 아예 봉사할 생각을 안합니다. 아무것도 안하면 비판은 안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그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진정한 청지기는 자기의 주어진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겁니다. 이 재능은 내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활용해야 합니다. 개발해야 합니다. 

유시화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분이 쓴 책이 '성자가된 청소부' 라는 책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쓴 책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도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자기가 인도를 10번정도 여행했다고 합니다. 인도의 어느지역에 가서 일을 보게 됐는데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고 잠시 딴곳을 보는사이에 인도 사람이 와서 가방을 열고 물건을 가져가는 겁니다. 붙들어가지고 당신 왜 함부로 물건을 꺼내가느냐 내껀데. 그랬더니 인도사람이 정색을 하면서 묻더라는 겁니다. 무슨 이유로 이 물건이 당신의 소유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잠시 이 물건을 관리하고 맡고 있을 뿐입니다. 주인이 모자를 벗어 잠시 걸어논다고해서 그 모자가 벽의 소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이 잠시 모든 것을 맡겨두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잠시 맡고 있는것이지 당신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억지같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재물을 선한일에 선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유시화씨는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물질의 주인은 따로 있구나. 모든 물질의 소유가 내것이지 알았지만 주인은 따로 계시는구나. 나는 물질과 시간과 재물을 그분을 위해 바로 사용할 때 그분이 기뻐하시는구나를 바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기 1장 21절에 보니까 욥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즉 적신으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나는 벌거숭이로 왔다가 벌거숭이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건 내 소유가 아닙니다. 내 소유면 내가 가지고 왔어야 했고 내가 가지고 가야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만 내게 시간이 있고 재물이 있고 재능이 있는 것입니다. 잠시 맡은 주인의 재능을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이 재능과 능력을 어떻게 회복해서 주인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먼저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많은 분들이 마귀의 속삭임에 넘아가서 패배주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의 심리학자인 하드필드라는 사람은 힘의 심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어, 뭐든지 해날거야라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500프로를 발휘할 수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불량품같은 존재야. 나는 실패자야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30프로도 발휘를 못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안에서 자신감을 갖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 앞에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라고 하며 나가는 사람은 능히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못해, 옛날에도 싶패했잖아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의 실패 때문에 과거의 잘못된 경험 때문에 그것이 그의 발목을 끝까지 잡고 나가는 겁니다. 그는 결국 패배자의 삶을 살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할수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할일이 없느니라. 이 믿음의 확신을 갖는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재능과 능력을 회복하려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이하에 보면 창세전 그리스도안에 우리를 택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 자녀들이 되게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이 부자입니까 가난합니까. 부자입니다. 아버지가 부자면 자녀도 부자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십니까 능력이 많으십니까 능력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시면 나도 능력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어느 할어버지가 부자면 손주가 지나가도 부자집 손주가 지나가네 그랬습니다. 그집이 부자면 개가와도 부자집 개가왔네. 아버지가 부자면 나도 부자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전능하면 나도 전능한겁니다. 능력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를 가난한 아버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쫌팽이같은 아버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내 인생의 문제도 해결못하는 아버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통장에 돈이 한푼도 없어도 통장붙들고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하나님 통장에 돈이 없네요 우리 아버지 부자인데 통장 내놓고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갖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부자라고 맨날 목사님은 말하는데 나는 왜 맨날 가난해. 우리가 하나님앞에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축복을 우리에게 내어주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닉부이치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애인이고 한국에 와서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고 갔는데 그분은 태어나면서부터 몸뚱이밖에 없습니다. 양팔이 없습니다. 다리가 없습니다. 팔, 다리가 없는데 발만 왼쪽에 하나 달렸습니다. 그러니 장애인입니다. 중증장애인. 그러나 그는 못하는게 없습니다. 골프도 칠줄알고 수영도 할 줄알고, 농구도 할 줄 압니다. 못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단히 훈련하고 노력해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닉 부이치치는 그런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무엇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것을 알아야 한다. 온 세상의 다이아를 가지고도 살수 없을 만큼 값진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세상에서 최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장애인인데 자신이 제일 행복하답니다. 그 사람이가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희망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겁니다. 우리는 양다리가 양팔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늘 죽지못해서 사는 사람처럼 이래죽겠다 저래죽겠다 그러고 삽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이사야 43장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겼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배롭게 여기십니다. 자신을 그렇게 인정하고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금과도 은과도 바꿀수 없는 너무나 귀중한 분들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어떤 아이가 여행을 떠났는데 부자집 아이인데 가다가 돈이 떨어져 쫄딱 고생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나중에 물으면서 이놈아 니 옷속에 다이아몬드가 하나들었는데 이걸 팔면 되는데 모르고 고생만하다가 돌아왔느냐고, 내가 몰랐네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한 보화를 담아 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아버지품에 돌아가면 얼마나 비참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믿음의 능력을 풀어놓을 때 우리는 우리의 재능과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왔습니다. 나사로가 죽인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냄새도 납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었던 나사로가 생기를 회복하고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그를 묶은 것을 풀어놓아서 마음껏 다니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믿음의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가 의심이라는 끈으로 꽁꽁 묶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상자속에 가둬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으로 제한시켜 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믿음의 보화를 십분발휘할 때 우린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들 부정적인 것들 세상의 관습들 그런것들이 우리를 얽어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패배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메뚜기 정신으로, 그 거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와 같아.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12명의 정탐꾼중 10명의 부정적인 보고처럼 메뚜기 정신으로 삽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믿음의 능력을 풀어놓음으로써 믿음으로 선포하고 믿음으로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개발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귀하게 쓰임받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드온도 겁쟁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는 미디안사람이 무서워서 손으로 벼이삭을 비비는 꼼생이 같은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실 때 그가 큰일을 감당합니다. 기드온을 향해서 하나님이 내가 큰일을 행할 것이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뇌세포가 어떤 과학자에 의하면 136억 5천 3백만개랍니다. 

독일의 괴테는 그 뇌세포중에 0.4프로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0.6프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5프로나 10프로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역사를 바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느냐? 묶여있기 때문에 마음껏 그 재능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의심과 사회의 잘못된 관습과 부정적인 암시에 묶여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이것을 풀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풀어놓아서 믿음을 활용할 때 우리는 능력있는 크리스챤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안에서 능력과 자부심을 회복하시고 주어진 과제를 힘있게 감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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