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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사 43:18-21, 빌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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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사43:18-21, 빌3:12-14절) 

  
사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은 2010년 마지막 주일인 송년주일입니다. 지금까지 줄곧 한 해 동안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목표를 가지고, 무엇을 행하며 달려오셨습니까? 개인마다 다 다를 수 있으나 한 해를 점검해 보는 거싱 지혜로운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아니 최소한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갖고 그 삶을 위하여 살아온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신 직분을 통해 사명을 가당하며, 믿음의 성장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오직 사명에 충성하는 전진만이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과거에 붙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마지막 주일에 우리 자신의 신앙 유익과 주신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년말이 되면 '송년회' 이름보다는 ‘망년회’이름으로 모임을 갖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망(忘)’은 ‘끝나다’는 의미도 있지만 ‘잊을 망(忘)’입니다. 송년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에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과 유익하지 아닌 것 즉, 잊어야 할 것은 과감하게 잊어버리고 새해를 새롭게 복 되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도 열심히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룬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아직도 온전히 획득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아직도 주님께 잡힌바 된 그것, 다메섹에서 부름을 받을 때 이방인과 왕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부여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도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구원의 온전한 성취와 자신의 사명의 완수는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뒤에 있는 것’입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시편45편 10-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이것은 새로운 삶의 자리에 왔으면 과거 삶의 자리를 때로는 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시집 왔으면 친정을 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정을 자꾸 생각하고 옛날 친구들 생각하면 결혼생활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집니다. 우리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잘 분별만 해도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구원받은 자로서 영적 생활을 함에 있어서 육체의 소욕대로 살던 과거의 삶을 잊어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잊어야 합니다. 오늘 송년주일을 맞아 새해를 준비하는 자로서 앞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잊어야 할 것을 살펴 봅시다. 

오늘 본문 이사야 43장 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전 일, 옛적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을 잊어버려야 할까요? 잊어야 하는데 잊어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 중신으로 잊어버려야 할 것을 살펴봅시다. 


1. 회개한 죄는 잊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3:10절에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라고 한 말씀이 있는데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나쁜 나무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뿌리에 도끼를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매가 없다면 우리를 찍어 버리려고 하십니다.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가련한 모습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 당시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라는 말씀은 두렵기도 하지만고 감사하기도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송년주일에 아직 도끼를 들지 않으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끼를 든다면 이제 구원받을 기회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멸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잠시 웃으며 허랑방탕하게 살고 있을지 몰라도 잠시 후에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끼를 들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사명,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심판의 때가 곧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7: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전한 복음으로 니느웨이성의 사람들이 회개하니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요나 3:10)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심판과 지옥과 상관없도록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항상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우울하던 어떤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자매님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명랑해졌습니다. 왜 그런가 누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루는 자기가 너무나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교회에 기도하러 갔는데 대낮에 자기 뒤에서 여러 가지 요란한 소리가 댕그랑 댕그랑 슥슥 슥슥하고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까 온갖 깡통 쓰레기 잡동사니가 줄에 매달려 자기를 따라서 끌려오는데 그 줄이 자기 목에 메어 있더랍니다. 계속 뒤를 돌아봐도 또 있고 또 있고, 눈을 감아도 또 있고 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겁게 그것들을 끌고 교회에 와서 앉았는데 자기 뒤에 그 쓰레기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가득히 쌓여서 뒤에 있더랍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애야, 너는 왜 그 많은 쓰레기 잡동사니를 목에 걸고 다니냐? 진정으로 회개하고 다 청산하라” 

그래서 자기가 통곡을 하며 불신앙을 회개하고 모든 죄를 다 고백하니까 어디에서 회오리바람이 확 불어오더니만 그 쓰레기 더미들을 순식간에 다 날려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되더랍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심신이 날아갈듯이 즐겁고 평안과 기쁨이 몰려오더랍니다. 그래서 지금 자기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과거의 죄악(罪惡) 된 일도 한번 회개하였으면 잊어 버려야 합니다. 행 3: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사람이 회개 한 것을 또 회개하면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회개하면 과거의 잘못된 죄악을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셨고, 기억도 아니 하십니다. 그래서 미가서 7:19절에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한 번 회개하고 다시 그 죄를 반복하지 않는 한 또 다시 같은 죄목을 갖고 회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회개 한 연후에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믿음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회개합시다. 믿어지지 않더라도, 이해되지 않더라도 회개합시다.  어떤 결과가 초래되어도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할 때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십자가를 의지하여 하나님만 생각하며,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하며 하나님께에만 나아가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회개해야 합니다. 후회만 하면 그 허물과 죄는 남아 있습니다. 온전한 회개를 하면 그 모든 허물과 죄는 사라집니다. 아무리 범한 죄가 크다 할지라도 용서받은 확신을 갖고 있다면 과감하게 떨쳐버리십시오. 잊어버리십시오. 오로지 선하게 살아갈 삶의 내용과 하나님이 주실 복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오직 한 일, 이미 지나간 일, 뒤로 밀려나간 일은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는 “모험이 없는 곳에는 성취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의 사전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다”라는 말입니다. 실패는 성공을 이루기 위한 한 단계입니다. 붕어빵을 굽더라도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해 기술을 쌓은 사람과 초보자는 다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기까지는 고통도 아픔도 있는 법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쓰러지면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 성공만큼이나 실패한 경험이 많습니다. 젊은이라면 도전정신이 분명해야 합니다. 젊은 날에 겪는 시련과 고통은 도리어 아름다운 열매를 위한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솔직히 말하여 성공한 일보다는 실패한 일이 더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에 불우하게 지낸 일도 있고, 시험에 낙방하여 실패한 일도 있었고, 선을 보았다가 딱지를 맞은 일도 있습니다. 왜 우리가 과거의 실패를 잊어 버려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한번 실패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 나는 못하는 사람으로 단정하면 영원히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기도를 못하는 사람으로 여기면 영원히 기도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 ‘나는 이제 못한다.’고 하면 못하게 됩니다. 결혼 문제도 한번 선을 보고 딱지를 맞았다 하여 나는 못 생겼고 장가도 못 갈 사람이라 생각하면 영영 장가를 못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과거의 알지 못함으로 지은 실수인 죄나 허물을 회개 할 때에 하나님은 잊어 버려 주시고 계신데 내가 그 일을 끝까지 생각하고 있고 얽매여 있다면 이는 큰 잘못입니다. 

실패한 것 자꾸 붙잡고 있으면 성공은 할 수 없습니다. 코카콜라를 세계 1위의 브랜드로 만든 경영의 귀재 도널드 R. 키오가 쓴 “실패하는 사람들의 10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실패의 원인을 10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실패원인 중의 첫 번째가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험을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모험을 건다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험을 하다가 실패를 경험한 것을 딛고 일어설 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승패병가지상사(承敗兵家之常事)'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패의 일들은 하루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누가 복음 9장 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쟁기를 잡았으면 밭고랑이 바르게 만들어 지고 있는지 앞만 보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위기’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고후 12:9절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혹시 금 년 한 해 동안의 여러분의 삶이 실패라고 생각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 아니 전체는 아닐지라도 일부분이라도 실패한 사실을 인정하며 그것으로 인해 고민에 빠진 분은 안 계십니까? 만약에 계신다면 남은 날에 다 잊어버리시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새롭게 새해를 맞기를 바랍니다. 


3. 내가 잘한 점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장점, 잘난 점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잃어버리기를 원하고, 그 좋은 장점들을 배설물 같이 여겨 버렸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학문의 최고 상아탑(象牙塔)인 가말리엘 문하생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로마 시민권 자인 모든 자랑을 자기의 세상적인 장점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지난 날 화려했던 삶도 잊어버리십시오. 자랑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화려한 자신의 삶을 아무리 자랑한들 무엇 하겠습니까? 과거에 받았던 축복을 잊어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도 잊어야 합니다. 안일함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안일함에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교만이 따라다닙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잘 공경하여 나라가 부강하고, 부귀가 극에 달한 왕이요, 병에서 기도하여 15년을 생명을 연장 받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고, 일영표의 시계가 거꾸로 20분간을 돌려서 지구를 거꾸로 돌아가게까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경험하고, 질병이 고쳐지고 부강하여지고 여러 나라 왕들이 히스기야에게 조공을 드릴 때에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자기의 모든 재산과 성전의 보고를 열어 보이고 자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도 결국 교만하니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그 보물이 바벨론으로 다 빼앗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웃시아 왕도 하나님을 잘 섬기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라가 부강하여지니 교만하여 제사장의 권위를 침범하며 자기가 제사를 드리며 분향을 하려 하다가 나병에 걸려 평생을 궁궐 밖에서 홀로 살아가게 됐습니다. 축복 받아 잘 살 때에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 왕도 교만하니 7만 명의 백성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재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공경하고 예수를 잘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일수록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욥기에는 하나님은 세상의 교만한 자를 낱낱이 찾아서 낮추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잘한 점, 장점을 자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도록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항상 겸손하게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자랑은 교만이고, 교만은 자랑임으로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낮추는 것입니다. 옛날을 자랑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4.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잊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35절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으며,

마태복음 6장 14~15절에도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과실은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실(過失)이라는 것은 조심하지 않았거나 일부러 하지 않은 잘못을 과실이라고 말합니다. 과실은 상대편이 잘못하였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3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에베소서 4:32절에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악의를 가지고 고의로 범죄를 할 때에는 용서하라고 아니 하시고 경계하라고 하셨습니다. 경계는 마음을 단속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같이 죄에 참여하지 않도록 주의를 하고 그 사람이 용서를 구할 때에는 하루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하여 주어야 합니다. 

실수(失手)로, 모르고, 일부러 하지 아니한 잘못은 저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용서를 하여 주고, 잘못을 잊어 버려 줘야 합니다. 

그러나 악의를 가지고 행한 일은, 용서 대신 경계(警戒)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람을 안 만나고는 살지 못합니다. 사람은 오래 대하다가 보면 누구나 다 허물이 있음이 나타나고 죄악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러 할 때에 저놈 죽일 놈이다, 나쁜 놈이다. 라고 생각하면 결국 내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에 오는 손해가 있습니다. 우선은 내 허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 가운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용서하여 주옵시고”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하여 일부러 하지 않은 실수는 내가 용서하고 다른 이의 잘못을 잊기를 힘써야 합니다. 


6. 억울하고 원통한 일도 잊어야 합니다. 

이 세상엔 동서양(東西洋)을 막론하고 억울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친형에게 억울하게 맞아 죽은 아벨의 피가 호소하고(창4:)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 정당하게 주지 아니한 품삯이 소리 지르며 (곱5:4), 소돔(Sodom)의 억울한 일 당한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들린다고 (창18:20)하였습니다. 

욥기 9:27절에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이 성경구절에서 ‘불평’이란 단어는 개역성경에서는 ‘원통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원통하면 불평이 생깁니다. 쉽게 잊어지지 않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잊어야 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가 되면 사람들이 원통함을 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원통함을 풀어야 기도가 됩니다.

억울함을 풀기위해 원수를 죽이고,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행위대로 갚으시는 두려운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계 20:13). 남을 사랑할 수 없거든 자기라도 사랑하여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짓 하지 말고 선행에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원통함을 다 수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하 16:12절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 감찰하셔서 나의 원통함을 헤아리시고 풀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그 분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원통함을 풀지 않으면 나의 마음만 답답하고 증오가 생겨서 악한 죄를 짓게 됩니다. 

창세기 27장에 보면 에서와 야곱이 헤어집니다. 왜 헤어졌습니까? 형 에서가 아버지로부터 복을 받아야 하는데 동생 야곱이 약싹 빠르게 자기가 가로채버렸습니다. 사실은 가로챘다고 보기보다는 에서가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고 야곱은 어머니의 지도를 받아 장자의 명분, 즉 축복권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분하기도 하고 원통했습니다. 씩씩거리면 분을 이겨내지 못하고서 부모님의 눈을 피하여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41절에 보면 에서는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아파 눕거나 세상 떠나시면 동생을 죽일 것이라고 말을 어머니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가 오빠 라반에게로 보냈습니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동생이 행한 것을 잊어버리면 사람을 보내어 기별을 할 것이니 그때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사실 자기가 실수하였습니다. 팟죽으로 장자권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통함과 억울함이 있을 때에 빨리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6. 어려움을 당했던 과거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남다른 고난을 많이 당한 다윗은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19: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하였고, 

욥기 11:16절 말씀에는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환란을 잊어버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지난날의 어려웠던 시기, 환란의 날만 생각하고 그것만 바라보다가 정작 좋은 날은 다 놓쳐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욥기서 11장 17절에 보면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즉, ‘어둠의 날, 고통의 날, 어려움의 고거나 환란의 날을 빨리 잊어버려라’는 뜻입니다. ‘옛날 과거에 묶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대낮보다 더 밝은 날이 임하고 지금 조금 어둡지만 곧 날이 밝아오는 새아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곧 수평선 너머로 이글거리며 떠오를 태양을 바라보면서 살아야지 옛날 어두웠던 시절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날 환란의 날은 지나간 때가 족합니다. 그런 날을 반복하여 경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잠언 31:6-7절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가난을 통한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포도주를 마신다고 했습니다. 술을 통해서 고통을 잊어보려고 하지만 영영 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술에 취한 그 순간만이라도 고통을 잊어 보려고 술을 마십니다. 그러나 술이 깨면 역시 그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가난한 것 때문에 당한 고통이 있다면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 가면 가난의 고통은 잊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65:16-17절 말씀에는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바울도 고난의 유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롬5:3~4절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는 성도가 환란을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요 16: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람은 누구나 환란을 싫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고난과 환란을 통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성숙되게 하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우리가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어느 남군 병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성취해보려고 하나님께 힘을 구했으나, 약하게 되어 겸손히 순종을 배웠습니다. 큰일을 도모해 보려고 건강을 구했으나, 병약하게 되어 더 나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재물을 구했으나, 가난하게 되어 지혜롭게 처신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싶어서 권력을 구했으나, 무력하게 되어서 하나님이 필요한 줄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즐기려고 모든 것을 구했으나, 생명을 받아 모든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구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오래 전부터 소원했던 것은 다 받았습니다. 나는 미련한 입술로 하나님께 아뢰었으나, 입술로 드리지 않은 기도도 다 응답 받은 셈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풍성히 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게 하시려고, 주님이 고난으로 훈련하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지난날의 환란, 즉 가난, 실패, 고통과 고난 등등 도 빨리 잊으면 잊을수록 좋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금년 한 해 동안 겪었던 어려운 일을 다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쉽게 잊을 수 없겠지만 믿음으로 잊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전 일은 기억하지 마십시오.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3장에 보면 ‘옛 일을 잊어버리면 이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시행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옛날 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아니 며칠(그 달의 몇 째 날'과 몇 날<동안>'이라는 뜻) 남지 않은 2010년도에 버릴 것은 이해가 다 가기 전에 믿음으로 과감하게 버립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을 소망하며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위대한 충성된 일군이요, 복음의 사역자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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