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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므리바 물 사건의 교훈 (민 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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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리바 물 사건의 교훈 (민 20:10-13)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 웃지 못 할 동영상이 보도 됐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일본에서는 인기 있는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이틀간 도쿄와 하코네를 왕복해서 이어 달리는 시합으로 일본의 유명 대학 선수들이 출전합니다.

금년에 이 대회에서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1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결승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코스를 이탈한 것입니다. 이 선수는 아무 생각 없이 방송중계차를 따라 달렸습니다. 그런데 결승점 부근에서 이 방송중계차가 마라톤 코스를 이탈해서 우회전을 했습니다. 이 선수도 그 방송중계차를 따라 코스를 이탈해서 우회전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한 번의 실수로 이 선수는 이틀 동안의 경기를 고생고생해서 1등으로 달리다가 마지막 순간 단 한 번의 실수로 1등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이 선수가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또 얼마나 후회가 될까요?

아마도 오늘 본문에서 모세도 마치 이 마라톤 선수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가 이 므리바 물의 사건에서 단 한 번의 실수를 저질러서 그는 끝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지난 40년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그 광야 생활의 고생을 견디고 이겨왔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뼈아픈 통한의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또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요?

그러면 도대체 모세는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충성되게 헌신해온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일까요? 본문의 므리바 물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 가데스까지 오게 됐습니다. 이 가데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38년 전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뒤로 돌아서야 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크게 혼이 났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가데스에 머무는 동안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실 물이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저들이 갈증에 시달리게 되자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내 뱉는 말이 고약합니다. 얼마 전 고라 일당이 모세에게 대항하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그 때 자기들도 거기서 죽었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고라 일당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고, 그 때나 지금이나 모세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가데스를 이집트와 비교합니다. 가데스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그리고 마실 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왜 자기들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이런 곳으로 인도해 왔느냐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를 잡고 이스라엘 백성을 한 바위 앞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그리고 나서 모세는 지팡이로 그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많이 솟구쳤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들이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한 마디로 모세가 하나님 앞에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모세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가 결정적인 실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이제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아보겠습니다.

1. 다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0: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인 모세와 다투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세가 이 다툼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우선 모세가 저들을 “반역한 너희여!”라고 저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들이 시비를 걸어오는 것에 나름대로 맞대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이 시비를 걸어오자 다툼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다툼에 휘말리게 되면서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새해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의 다툼이 한국사회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내에 비방과 음해가 난무하고 급기야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을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이후 교권을 장악하기 위해 볼썽 사나운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교회에서는 담임목사와 부목사들 간의 난투극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전현직 담임목사 간의 불화가 부목사들의 이권 문제와 결부되어 표면화되고 만 것입니다.

이 일로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로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다툼은 어떤 이유에서든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다툼은 사탄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고, 신앙공동체의 영적인 힘을 무력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공동체 내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납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공의와 정의를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죄와 허물과 잘못은 척결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화평을 지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 둘을 다 지켜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공동체에서 공의와 정의를 지키는 과정에서 화평을 잃어버립니다. 자칫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공의도 세우고 화평도 지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창 13: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이 조카 롯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기근이 들자 함께 애굽으로 피난도 다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아브람의 식솔과 가축이 많아졌고, 또한 롯의 식솔과 가축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물 때문에 서로가 다투고, 가축 먹일 풀 때문에 서로가 다투는 일이 생기게 됐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공동체 안에 위기가 생긴 것입니다.

이 때 아브람이 용단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투지 않도록 서로 분가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롯에게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하라고 양보를 했습니다. 그 결과 공동체 안에 다툼이 사라지고 서로 좋은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됐습니다.

아브람은 다툼의 무서움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것보다도 다툼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다가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툼을 없애는 일을 먼저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툼의 무서움을 알아야 합니다. 다툼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다툼이 일어날 때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2.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첫 번째 잘못을 “나를 믿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사건에서 모세의 우선적인 실수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물이 없어 죽게 되자 모세를 찾아와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심지어 모세 때문에 죽게 됐다고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모세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했습니다. 믿음의 행동으로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백성들을 바위 앞으로 모으고 바위에게 말로 물을 내라고 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10절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내시는 것인데 자기가 물을 내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말로 명하라 하셨는데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의 행동을 보시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믿음을 잘 지켜오다가 다툼에 휘말리면서 믿음이 흔들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가 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큰 실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서울 메트로의 유실물 센터가 작년 한 해 동안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물건을 조사해 보았답니다. 단연 1위가 가방인데 10년 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그 다음이 전자제품으로 그 중에 특히 핸드폰이 압도적으로 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잘 잃어버리는 것들은 늘 가까이 두고 잘 쓰는 것들이고, 꼭 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잘 잃어버리게 되는 이유는 있겠거니 하고 방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항상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늘 믿음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방심하기가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13:5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지금 내가 믿음 안에 있는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늘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법적으로 표현해 보면 믿음은 늘 현재진행형이어야 합니다. 지금 믿고 있어야 합니다. 잘 믿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4:7에서 자기의 간증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자기는 예수 만난 뒤에 지금까지 믿음을 잘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운 지금까지 믿음 흔들리지 않고 잘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떠나는 날까지 믿음만은 잘 지켜야 합니다. 

3.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또 다른 실수로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가리었다는 말입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다투고 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고 있고, 하나님께 항의하고 있다고 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들과 맞대응하지 않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셔서 저들을 진정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하듯이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이나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감정조절에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 놀라운 능력으로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심으로 그 거룩을 나타내시고자 하신 것을 방해하고 만 것입니다.

그토록 온유했던 모세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두 가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모세는 상중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0:1을 보면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입니다. 이 누이가 죽어 장사를 지냈고 아직도 그 슬픔에 잠겨있을 때입니다. 이 때 백성들이 모세의 슬픔을 위로하기는커녕 물이 없다고 모세를 찾아와 따졌습니다. 모세도 인간인지라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세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사건이 4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다른 므리바 물 사건이 또 나옵니다. 출 17장에 나오는 또 다른 므리바 물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 있었습니다. 상황이 똑같습니다. 마실 물이 없었고,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이 때 모세와 다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므리바 사건이 일어나 지금 모세와 다투고 있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들입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저들을 1세와는 다르게 세워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40년 전과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마도 영적 지도자로서 좌절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애쓰고 노력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모세는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그토록 온유하던 사람이 화가 폭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거룩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정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와 화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채로 폭발해 버리게 되면 자칫 하나님의 거룩을 가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므리바 물과 같은 사건이 자주 일어납니다. 주변에 다투자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동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투는 일에 앞장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투는 일에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 신앙생활에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므리바 물 사건과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정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분노가 폭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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