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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소서 (신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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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소서 (신 1:1-11)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알게 된 것은 신비적이거나 철학적 논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맹세하신 말씀의 성취를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 가까이 도달한 모세는 만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40년 광야생활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종 모세가 파란만장했던 40년 광야 여정을 결산해야 될 시간이 왔습니다. 가나안 입성을 두 달 열흘 앞두고 그는 지금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 즉 가나안 세대(역사 세대)들을 향하여 유언적인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신정국가를 이룬 후에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 규범들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이 교훈은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데스바네아에서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두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민 14:26-38).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지금 출애굽 1세대(체험 세대) 중 유일한 생존자인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출애굽 제 2세대들(역사 세대)이었습니다. 
지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40년 동안 걸어온 출애굽 여정을 배경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날들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본문 1장 11절에 『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이러한 축복의 기원은 

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것입 니다. 

본문 1장 3절에 『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종된 애굽에서 학대받으면서 살다가 나온 자들입니다. 애굽은 저들이 있을 곳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를 지도자로 삼아 애굽에서 종살이 430년을 마치고 나올 때 피 흘린 양을 불에 구워먹고 나왔습니다(출 12:9-11).
그 양의 피로 집문 좌우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하나님께서 애굽땅을 칠 때에 그 피가 있는 집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넘어가서 이것이 출애굽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그날을 역사의 새 기원으로 삼아 해의 첫 달 첫날이 되게 했습니다(출 12:1-2). 모세는 80세 되던 해에 출애굽 원년을 맞이했고 120세에 운명했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출애굽 40년 11월 1일은 이스라엘의 40년간 광야 유랑생활이 마감될 무렵이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죽음이 임박한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했습니다. 지금 모세는 확신에 찬 감격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현재보다 천 배나 많은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운동은 오늘의 신약의 교회운동입니다. 
성경은 세상을 애굽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애굽이라 하기도 하고 소돔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계시록 11장 8절에 『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로 나오는 신앙운동이 곧 영적 출애굽운동입니다. 이런 성도에게 주님은 현재보다 천 배나 더한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의 기원은 

Ⅱ.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중단 없는 전진 을 계속하는 자들에게 한 것입니다. 

본문 1장 6-8절에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찌니라 』고 했습니다.

저들은 애굽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신령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가나안을 향해 중단 없는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39년 10개월이 지났습니다. 광야 길 40년 동안 하나님은 저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헸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초자연적인 역사와 만나와 메추라기의 신비적인 양식과 목이 갈할 때 반석에서 터지는 생수와 수많은 대적들의 싸움에서 승리는 39년 10개월 동안의 잊을 수 없는 저들의 기적의 현장 역사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목전에 두었지만 아직도 통과해야 될 관문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요단 동편을 점령해야 하는 일과 또한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여 가나안 입성이라는 대 과업을 필연적으로 성취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요단강 도하작전과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분배하는 실로 감격적인 일이 남았습니다. 이제 이들에게는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의 땅 곧 그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는 순서가 있을 뿐입니다(신 1:8).

이러한 막중한 대업을 수행하기 위해 불철주야 가나안까지 가는데 남아 있는 길을 중단 없이 전진하는 백성들에게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겠다는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자들에게 축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자의 것입니다. 천국(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는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12절에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고 한 것입니다. 
현재보다 천 배나 많은 축복은 이 세상에서 나와 주님의 몸된 교회로 나온 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쉴새 없이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중단 없는 교회운동을 계속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일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내가 잘 될 것을 믿고 주를 위하여 청사진을 작성(drew up a blue print for christ)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Ⅲ. 현재보다 천 배나 많은 축복의 내용이 무엇 입니까?

본문 1장 11절에 『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1) 수적인 축복입니다.
본문 1장 10절에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입니다(창 13:16; 15:5).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요셉이 보낸 특별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일행은 불과 70명이었습니다.
창세기 46장 27절에 『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명이었더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할 때는 성인 남자만 60만이었으니 굉장한 숫자입니다.
출애굽기 12장 37절에 『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닷가의 모래나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수는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다분히 영적인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축복은 곧 오늘 신약 교회 운동의 경우 신령한 아브라함의 자손,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자의 수가 폭증할 사실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수가 현재보다 천 배나 많아지는 것이 오늘 우리가 받을 약속된 축복입니다.

2) 물질적인 축복입니다.
창세기 12장 1-3절에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26장 3절에 『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창세기 26장 24절에 『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맹세는 이삭을 통하여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창세기 28장 13-15절에 『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약속은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게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의 기업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체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모든 활동은 애굽의 바로왕이 정해준 규범 아래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유의 몸이 될 저들이 모세가 받은 율법대로 행하고 파종하면 애굽에서보다 천배나 더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세상을 정복하는 정복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만물은 우리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22절에 『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 질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세계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쓰임당하는 그것이 이 세상 피조 세계의 존재의의이며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3) 제단을 쌓는 축복(교회)입니다.
창세기 15장 8-10절에 『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한 것은 아브람이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해 반문한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브람과 맺은 언약의 영원성을 확신시키고 동시에 이를 통하여 영광받으시기 위해 희생제물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에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나는 풀무가 보이더니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창 15:17).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옛날 자신들의 조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쌓았던 제단을 회복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예배의 자유를 얻어 모든 제사와 절기 행사가 자유롭게 되고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될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맹세와 언약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맹세는 어떤 구두 진술이나 증인에 의해 확증된 서약을 말합니다. 반면 언약은 맹세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것을 종교적 의식을 통하여 다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맹세하신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맹세가 이미 실현된 것을 아는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이 세상 가운데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해달라고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주의 택한 백성들을 향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의 약속을 굳게 믿고 천성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교인의 수가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소서!
물질의 축복이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소서!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축복이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소서!
'천'에 대한 여자적 해석의 의미가 무의미하지만 제가 개척할 때 제 아내와 5살된 엘림이와 3살된 혜빈이 뿐이었습니다. 어떤 주일은 설교도 못하고 5분 만에 예배가 끝난 주일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재적교인이 천 명이 넘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홍천 땅을 합하면 공간자원은 그 때에 비하면 천 배가 넘고 물적자원 역시 천 배가 훨씬 넘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많은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천'이란 숫자는 최고의 만족한 수를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의 배만 위하여 살았던 지난 날은 애굽 땅 바로 앞에서 종살이하던 때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하시는 기도는 이미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성취의 영광에 참예시키고자 우리의 분발(奮發-마음과 힘을 다하여 떨쳐 일어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기 이름을 위한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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