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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영혼사랑 (빌 3:17, 딤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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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영혼사랑 (빌 3:17, 딤후 4:1-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주일이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죄악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구원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고 믿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단 한 가지“믿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습니까?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야기를 듣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믿음은 들음에서 나며...”하셨습니다. 복음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들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10장 13절~15절 말씀에“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듣게 되고, 들어야 믿게 되고, 믿어야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하지 아니하면 구원도 없습니다. 디도서 1장 2절~3절에“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천사를 통해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전도”로 나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미련해 보이는 전도를 통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도의 중요함을 깨달은 바울사도는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하다가 끝내 단두대에 목이 잘려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나를 본받으라”는 것은 영혼사랑에 목숨을 바친 자신의 삶을 본받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一. 바울사도는 어떤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을까요?

1. 바울사도는 시급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혼구원에 시급함을 절감한 바울사도는 본문인 디모데후서 4장 1절~2절에 말하기를“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시급합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지옥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내일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유명연예인 남매가 자살하므로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누나가 두 아이와 어머니를 두고 먼저 자살을 했습니다. 몇 년 뒤 동생도 자살을 했습니다. 그 동료 친구 연예인이 하는 말이“그 친구가 나를 몇 번이나 만나자고 했는데 바빠서 만나지 못했는데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그를 만나 위로하고 격려했었더라면 그 친구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한없이 후회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자살할 줄을 친구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자 다음에 만나자, 했던 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혼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종말인 죽음이 언제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일본의 대지진 참사가 우리에게도 언제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수없이 죽어가는 교통사고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닥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영혼 구원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던 것입니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 남부도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장성한 네 아들을 둔 어머니가 병원에서 임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아들들이 침대에 둘러있는 것을 보고는 마지막 사랑으로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엄마에게 키스로 작별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셋째아들에게는 차례로“얘야, 엄마에게 Good Night 키스를 해 다오.”말을 하고, 막내아들인 앤디에게 만은“앤디야 Good By 키스를 해 다오.”라고 말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Good Night 키스를 하게하고 나는 Good By 인사를 해야 하나요?”그러자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내어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앤디야, 너의 형들은 이제 머지않아 저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그러나 너와는 이것이 영영 마지막이야,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이 엄마는 너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를 여러 번 간곡히 가르치고 인도했지만, 너는 끝내 네 고집대로 어두운 길을 가고 말았어. 그러니 나는 너를 다시 만날 수가 없게 된단다. 그래서 네 형들과는 Good Night 이지만 너와는 Good By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막내아들은 어머니의 침대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 저도 Good Night 인사를 다시 하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저도 깨달았습니다.”하며 젖은 뺨을 어머니의 볼에 부비며 이제까지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어머니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앤디를 끌어안았습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은 소중합니다. 더구나 그가 내 가족일 경우에는 더욱 소중합니다.“Good By!”하고 말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 없도록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바울사도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심정을 밝히기를“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기는 하지만 그것은“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지 못해 억지로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화”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억지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는 좋아서 하는 일도 있지만 억지로 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억지로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꼭 져야 하는 것이라면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즉 억지로 지셨습니다. 억지로 지신 십자가가 인류를 구원하는 계기가 되었고,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천하의 무릎이 예수님 앞에 꿇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11절에 기록하기를“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의 결과는 더없는 영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시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시면서 넘어지며 쓰러지셨습니다. 이때 로마 군병들이 구경하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청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도록 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에“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고 했습니다.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로 인해 시몬의 가정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는데, 로마서 16장 13절에는 루포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했습니다. 남편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짐으로 인해 이 가정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훗날 시몬의 아내인 루포의 어머니는 전도자 바울사도를 적극 도왔습니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바울사도가“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했겠습니까? 이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또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복음증거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축복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10:40~42)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들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영접하며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주리라고 하였는데 바울사도가“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할 만큼 고마워한 루포의 가족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는 억지로 십자가를 진 결과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도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하되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억지로 감당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에게 주어질 훗날의 영광에 대해 말하기를“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육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사명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욕망이나 감정은 언제나 사명을 따라 살아가려는 삶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억지로라도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二. 바울사도는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1. 바울은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한 바울사도는 사도행전 20장 24절에 자신의 심정을 밝히기를“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영혼구원에 있어서 최선을 다한 것은 바울사도만이 아닙니다. 예루살렘교회 집사였던 스데반은 복음을 잔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루디아라는 여성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 집을 개방하여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15절에 기록하기를“두아디라성의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빌립보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교회가 유럽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유럽전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이 복음이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어 오늘 우리에게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가 사도이든지, 집사이든지, 루디아처럼 평신도 사업가이든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주어진 환경이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라> 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산꼭대기의 큰 소나무가 될 수 없으면 
골짜기의 작은 나무가 되려무나.
그러나 골짜기의 제일 아름다운 나무가 되라.

만일 그대가 나무가 될 수 없으면 
덤불이 되려무나.
만일 그대가 덤불이 될 수 없으면 
풀이 되려무나.

만일 당신이 풀이 될 수 없으면 
이끼가 되려무나.
그러나 호수에서 가장 생기 있는 이끼가 되라.
<더글라스 멜로크>

2. 바울은 영혼구원을 위해 자기를 비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내안에 있는 자신입니다. 이 자아가 나를 위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도록 미혹합니다. 이 자아는 나의 유익, 나의 생각, 나의 체면, 나의 자존심, 나의 안일을 우선하도록 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이 덫에 걸려 넘어진 사람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소리가 자신에게 더 유익하게 할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자아에 끌린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롯이 이 미혹에 넘어가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탈 때 다 타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종말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 누가복음 17장 26절~30절에 예언하시기를“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하셨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중심의 삶이 얼마나 안타까운 삶인지 가수 하덕규씨의 노랫말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둔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울사도는 이러한 자아를 극복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철저하게 비운 바울사도 모습이 영혼구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9절~22절에“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바울사도가 얼마나 애를 쓰며 정성을 다하는가를 잘 나타낸 말씀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맞추는 것이 전도의 중요한 전략임을 밝힌 말씀입니다.

벨기에 태생의 선교사 다미엔은 나환자들을 위해 살다 결국 자신도 나병에 걸려 죽은 위대한 성직자입니다. 1873년 그가 나환자 수용소인 몰로카이 섬으로 가게 됐을 때 그곳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습니다. 매일 수십 명이 죽어나갔고 환자들은 자포자기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다미엔은 그런 상황에서 10년을 전도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자신이 나환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스스로 손에 상처를 내고 나병환자들과 가까이 하자 자기에게도 전염되어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나환자들에게 전도할 자격을 갖게 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복음을 전하자 나환자들은 감동을 받고 모두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2. 바울은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악의 영들에게 사로잡힌 영혼을 빼앗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 귀신을 쫓는 비결에 대해 마가복음 9장 29절에 말씀하시기를“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기도의 능력과 기도의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바울사도는 골로새서 4장 3절~4절에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를“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것,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것은 기도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지만 인간의 기도를 넘어서는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절대자 하나님은 이 세상에 관한 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심으로써 하나님 스스로를 제한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일하시되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기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리신 결정은 인간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도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옥을 향해 줄달음질하는 불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세상에 모셨습니다. 
지옥을 향해 줄달음질하는 불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지옥을 향해 줄달음질하는 불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지옥을 향해 줄달음질하는 불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영혼구원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의 거룩한 희생과 봉사로 오늘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는 못할지라도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가족, 우리의 친지, 우리의 이웃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힘쓰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에“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기를“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쥐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되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영혼구원은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은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힘쓰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복 주시는 것입니다. 힘써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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