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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고하고 무거운 짐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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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아담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아담은 평생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형벌은 그 자체가 인생의 커다란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착각이라는 짐을 더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 모든 사람이 짊어진 짐

모든 사람은 짐을 지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삶의 실존적인 짐인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자기의식이 살아나자마자 죄책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38편 4절에도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죄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또한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정말 가치있는 일만 하고 산 것 같으나 지나고 보면 다 헛되고 헛된 것밖에 없습니다. 전도서 1장 2절로 3절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말씀합니다. 

그 다음, 무거운 짐은 죽음의 짐입니다. 누구든지 죽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유명한 소설 ‘설국’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학계의 거장입니다. 그런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지 4년 만에 가스관을 입에 물고 자살했습니다. 청년시절에 “자살은 깨달음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그였지만 노년이 다가오자 삶의 허무를 견딜 수 없어서 자살했습니다. 

그는 지위도 있고 명예도 있고 돈도 있었으나, 눈에 안 보이는 가슴속의 허무와 공허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그 가슴속에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모시기 전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헤밍웨이도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그 역시 삶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담의 타락 이후 삶 자체가 짐입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재능이 많아도, 유복하고 명예를 얻어도 인간은 누구나 삶의 짐에 눌려서 몸부림을 칩니다. 죄책과 정죄, 허무와 무의미, 죽음과 무의 고통속에 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 맥도날드가 쓴 ‘잊혀진 명령 거룩하라’는 책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써있습니다. 정신병자는 판단력도 뚜렷하고 바른 소리를 하는 것 같으나,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 자기 이외의 것에는 흥미도 없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슴속이 온통 자기로 가득 차 있어서 짐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데 따르는 짐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 같은 것이 그것인데 자신의 욕구인 것입니다. 

자기 욕심에 잡혀서 그것만 바라보고 그 말만 하고 그것만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사람은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없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인 식욕과 성욕, 안목의 정욕인 명예욕, 이생의 자랑인 부귀영화와 권세는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얽히고 설킨 무거운 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2. 짐에 눌린 사람

짐에 눌린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가지는 이유는 그 짐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파탄에 이를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염려 안할 수가 없습니다. 

욥기 5장 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욥기 3장 25절로 26절에도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 두려움과 무서움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둥지를 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려워말라고 한 것은 두려움이나 불안은 마귀가 와서 둥지를 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는 마음과 좋은 일이 생겨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 성령께서 오셔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앞에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십시오. 사실 내가 고통스럽고 괴롭고 시련에 처했을 때 생각을 평안하게 꿈을 희망차게 긍정적인 믿음, 적극적인 말을 한다는 것은 힘듭니다. 그럴때는 목회자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교회와서 목회자의 도움을 받고 말씀을 들으십시오. 

잠언 19장 3절에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야훼를 원망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잘못해놓고 원망은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로 27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니까 억울하고 답답하면 분이 생기는데 해가 지면 분도 치우라는 것입니다.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고 있으면 틀림없이 마귀가 들어와서 둥지를 트는 것입니다.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해야 우리에게 무서운 파괴가 다가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과 기쁨, 평안,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해야지 이것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성경에는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했는데 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근심이 없는 사람은 얼굴이 환하고 빛나고 좋은데 근심이 있는 사람은 벌써 눈에 빛이 사라지고 얼굴에 광채가 사라지고 고통이 역력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1만 명을 상대로 신경과민과 불안증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신경과민과 불안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중요한 특징이 나타났는데, 늘 부정적인 것만 보고 듣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 언제나 불평을 말하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불만족을 말하는 것이 정신과민과 불안증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신경과민과 불안증이 없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짐에 눌린 사람들은 늘 불안과 공포 가운데 생활합니다. 그들은 자신과 주변 환경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늘 미움, 원망, 탄식, 불평만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건강의 적이 바로 스트레스인데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행동을 할 때 스트레스에 걸리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좋게 보고 건강하게 보고 행복하게 보면 스트레스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억지로라도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형통하다’라고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로써 우리 삶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초청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종교 이상인 것은 예수님이 우리 현실 생활에 들어와서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도덕이나 윤리를 강론한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짐을 짊어지고 도와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성령을 통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우리가 나갈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일까요. 

내가 인간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력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많은 시련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도 내가 얼마나 무능한 사람인지를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당당하던 야곱도 얍복 나루터에서 절름발이가 되고 나서야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우리가 무능력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21편 1절로 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켜 세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해주셨으니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감하게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무능력을 깨닫는 자를 초청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근심이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카고 러쉬대학교의 메디컬 센터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 1064명을 대상으로 걱정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조사했습니다. 조사해 보니까 걱정과 스트레스에 고통을 많이 당하는 사람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평소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들일수록 발병률이 2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6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께서 우리 위해 고난 당한 것을 생각하여 마음에 깨닫고 그것을 꿈꿔보고 그것을 믿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갖고 산다고 입술로 고백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몸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은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의 몸에 나타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우리가 마음속에 짊어지면 부활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란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 삶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참 기쁨도, 참 만족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실존적 짐을 져주시고 우리를 쉬게 해주십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로 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선택과 올바른 방향만 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할 때에 세상을 따라 갈 것인지 주님을 따라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기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나라와 하늘 의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영광을 다 가지신 주님께서 말씀하시므로 우리는 다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에는 저주 받은 사람은 십자가에 매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무에 매달려 처형을 당했으니 그것은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이 진리를 통해서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우리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같은 기도를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해도 좋습니다. 기도할 때 웅변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 잘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의 마음을 보시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한가지 기도를 반복해도 좋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서기 9세기 경 사라센 제국을 49년간이나 통치했던 압둘라만 3세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인을 3321명이나 거느렸습니다. 자식을 616명을 낳았습니다. 그는 부귀와 영화, 권력과 쾌락을 또 건강을 끝까지 가졌습니다. 세상에 그사람 만큼 이 세상에 행복하고 잘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에 유언할때 “나는 한평생을 살면서 행복을 누린 날은 14일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전도서 5장 10절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파스칼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행복은 우리 안에 있는 것도, 우리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144편 15절에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야훼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19세기 미국의 사회 개혁가이며 설교가였던 헨리 워드 비쳐는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40년 간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의 제자 플라톤은 50년 간 그리고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40년 간 그들의 사상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단지 3년 동안 하늘나라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친 총 130년의 영향력보다 3년 간 가르친 예수님의 영향이 오늘날까지 온 세계에 더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영향력’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미술가인 라파엘, 미켈란젤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위대한 그림들은 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감 받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수님은 시를 한 줄도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위대한 시를 썼습니다. 예수님은 작곡 한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이든, 헨델, 베토벤 등 위대한 작곡가들은 예수님을 찬양하기 위해 작곡한 곡으로 완성된 곡을 지어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일은 사람들이 이룬 그 어떤 위대한 일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삶의 짐으로 깨어질 때, 순종하고 낮아져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깨어져서 주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짐을 내려놓게 하시고 승리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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