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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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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로마서 15장 14-21절)
 

 <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


  사람들은 멋진 외모에 끌립니다. 멋있고 잘생기고 돈이 많은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 기분은 좋지만 그런 외적인 요인들을 앞세우면 진솔한 친구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힘듭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소외되고 돈이 없는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면서 자기 명예를 나눠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주려고 할 때 성공하고 친구관계도 주려고 할 때 성공합니다. 특히 자기 명예를 나눠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와 함께 하심으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란 별명까지 얻으셨습니다(눅 7:34). 그처럼 명예를 기꺼이 나눠주려고 하고 말로만 정의감이 넘치지 않게 하십시오. 말만 넘치는 정의감은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공산주의의 기반이 된 칼 막스의 철학은 노동자에 대한 애정을 기초로 하지만 그의 실제 삶은 자기 철학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노동자를 무시하며 중산층 지식인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평생 노동자 친구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하녀 두 명을 데리고 살면서 매우 사치스럽게 살았습니다.


  가끔 보면 칼 막스처럼 말은 정의롭게 하지만 삶은 정의롭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이나 실천적인 사랑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고 죽은 믿음에는 하나님의 축복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1. 서로 격려해주는 삶


 로마 교회 성도들은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서로 권하는 자’였습니다(14절). 즉 그들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복음을 권하며 서로를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쓴 이유도 복음의 진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15절). 복음의 진리를 ‘가르친다’는 표현 대신 ‘생각나게 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로마 교인들을 존중하는 바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처럼 서로 복음을 권하고 존중해주고 칭찬해주십시오. 그런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십니다.


  사람은 잘한다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줄 때 더욱 큰일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신의 성공비결이 어머니의 칭찬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 무시했어도 어머니만 자기를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분이 전도사 때 설교하면 어머니는 늘 앞에 앉아 은혜 받고 눈물 흘리셨고 간간이 “얘야! 오늘 설교에 은혜 많이 받았다.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낙심을 이겨낼 수 있었고 마침내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입주하면서 큰 부흥을 이뤘다고 합니다.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칭찬받는 사람도 축복 받지만 칭찬하는 사람은 더 축복 받습니다. 지혜로운 격려와 칭찬은 선한 변화를 일으키고 시련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가정과 교회의 부족함을 고치는 가장 좋은 길도 칭찬입니다. 칭찬이란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르게 지적하면서도 그 잘못을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서로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공동체에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2. 이방인을 위하는 삶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일꾼이 된 것을 무엇보다 큰 은혜로 여겼습니다(16-19절). 우리나라는 과거에 이방인을 위한 일꾼이 된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의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 빚을 갚으려고 지금 2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헌신적인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사명 때문에 같이 고생하며 사는 선교사 자녀들을 보면 마음이 더욱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선교사 자녀들을 보면 대부분 훌륭하게 잘 자라는 것을 봅니다. 최대의 자녀교육은 조기 영재교육이 아니라 부모의 헌신하는 삶을 보여주는 교육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마십시오. 부귀와 권세가 잘 활용되지 못하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영혼 구원을 위해 활용해야 합니다. 요새 어려운 경제 때문에 후원이 많이 줄어서 선교사들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와 후원의 손길을 펼 줄 알아야 합니다. 직접 선교하면 좋겠지만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어서 후방에서 전방 선교사들을 후원하면 그것도 선교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힘써 선교에 동참하십시오. 전방 선교사를 후방에서 기도와 물질로 힘써 도우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도 넘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삶의 지경도 넓혀질 것입니다. 선교를 외면하면 기복주의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 복음이 내포한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살지 않는다면 아무리 변명해도 그런 믿음은 기복적인 믿음입니다. 이방인을 위해 마음을 여는 만큼 자기 영혼이 건강해질 것입니다.


3. 장애인을 위하는 삶


 이방인 선교만큼 힘써야 할 것이 장애인 선교입니다. 장애인을 한 단계 아래의 사람으로 보지 마십시오. 사실상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이 더 큰 장애입니다. 장애인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영적 장애를 발견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장애인은 섬김의 중요성을 깨우치려고 하나님이 보낸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 잘 응답하며 사십시오. 약자를 업신여기는 모습은 결코 천국 백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약자와 함께 울고 웃으셨습니다. 약자의 눈물을 헤아릴 줄 모르면 믿음의 축제 후에 남은 것은 허전함뿐입니다. 장애인 목욕 봉사를 하는 한 성도는 말했습니다. “그들의 몸을 닦아줄 때 오히려 제 영혼의 때가 벗겨지는 체험을 합니다.” 장애인들을 힘써 돕고 존중하면 자기 삶의 어둠도 사라지고 영혼의 묵은 때도 조금씩 씻깁니다. 기쁘게 선을 행하며 사는 것보다 더 나은 복은 없습니다(전 3:12). 어려운 사람들의 곁에 있어주려고 할수록 영혼이 맑아집니다.

  때로는 큰 불길보다 작은 불꽃이 더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작은 불꽃의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장애인들은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 작은 불꽃입니다. 그 불꽃을 큰 불길로 피워내는 불쏘시개의 역할을 잘 감당하십시오. 장애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을 하나님은 누구보다 따뜻하게 보실 것입니다. 그처럼 장애인과 소외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복된 마음입니다.


4. 새로운 터를 찾는 삶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남이 이룬 터’가 아닌 ‘새로운 터’를 찾는 개척자적인 자세를 가지고 남이 복음을 전파한 곳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남의 사역을 존중하면서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 선교연맹(C&MA) 교단은 전 세계에 약 5만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도 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C&MA 교단이 매우 중시하는 구절인 본문 20절 말씀 때문입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1900년대 초에 기독교 선교연맹(C&MA) 지도부는 동북아시아 선교에 눈을 돌려 일본에 <동양선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선교회를 통해 신학공부를 한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C&MA의 4중 복음을 가지고 성결 운동을 하면서 생긴 교단이 한국의 성결교단입니다. 그처럼 성결 운동을 하는 교단이 자체로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C&MA 지도부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고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하는 대신 대만, 홍콩, 필리핀 등의 동남아 쪽으로 파송했기에 약 100년 동안 한국에 C&MA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 후 100년 가까이 지나 한국인들의 신앙 열정을 잘 활용하면 세계 선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교단 내 목회자들이 많아지면서 C&MA 한국 사역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25년 동안 C&MA의 불모지에서 힘들게 사역했지만 그 힘든 세월이 있었기에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 사역,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역, 네트영어 사역, 미션퍼블릭 사역 등이 생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 새로운 터를 찾으십시오 >


  개척의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면 측은하게 보입니다. 개척의 길은 겨울 산에서 눈보라를 헤쳐 나가는 것과 같고 밀림의 빽빽함과 사막의 뜨거움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그처럼 개척의 길은 고난과 고민과 고독의 길이지만 그래도 갈만한 길입니다. 세상은 개척자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지만 결국 개척자의 개척정신은 세상을 발전시키는 가장 귀한 초석이 됩니다. 개척자의 고독한 겨울은 머지않아 풍성한 봄을 가져다줍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개척자적인 삶은 힘들어도 최고로 복된 삶입니다. 축복 받기를 원하면 남의 터가 아닌 자신이 멋지게 활동할 새로운 터를 찾으십시오. 교회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살면서 오히려 남의 터가 되어주겠다는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인물도 붙여주시고 창조성과 능력과 지혜도 주시고 좋은 후대도 예비하시고 결국 최상의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탄원기도만 하지 말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터를 찾게 해달라는 비전기도도 하십시오. 누구에게나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터가 있습니다. 그 터에서 최상의 열매를 거두고 최상의 영향력을 미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거룩한 비전을 따라 준비하며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는 힘과 능력과 기회를 주실 것이고 비전대로 열매를 주시지 않으면 그 비전과 유사한 열매라도 주실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신학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대학 도서관에 갈 때마다 제일 탐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십 권의 방대한 <영문 스펄전 설교 전집>이었습니다. 그때 수시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방대한 설교 전집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습니다.” 역사상 가장 설교를 잘했다는 스펄전의 설교 전집을 번역해 출판하면 한국 설교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시에 그 전집을 다 번역하고 출판하려면 약 5억 원 정도가 들 것 같아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방대한 책을 번역하고 출판해 한국 설교자들을 돕도록 5억 원을 주소서!”


 그런 비전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5억 원은커녕 5십만 원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뜻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일에 누가 나서겠습니까? 1년이 지나도 주시지 않고 5년이 지나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점점 그 비전에 대한 저의 기도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 기도가 헛된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비전과는 약간 다르지만 지금은 저 스스로 <성경 전체 강해설교>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성경 전체 강해의 약 70%를 완성했습니다. 앞으로 약 10년 안에 그 작품이 완성되면 다시 그것을 영어로 번역해 문서를 통한 세계 선교의 비전을 이룰 것입니다. <월새기 영어판>은 그 비전의 일환으로 잘 활용될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비전입니까? 비록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전집을 번역해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비전은 이루지 못했지만 제가 직접 성경 전체 강해를 만들어 설교자들을 돕겠다는 비전으로 구체화되었으니 제 입장에서는 훨씬 의미 있고 감동적인 비전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특히 온새기와 월새기 사역은 원대한 문서선교의 비전을 뒷받침할 기도부대가 필요했기에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온새기나 월새기를 보는 독자 100명 중 1명 정도의 ‘백일조 후원자’는 틈틈이 후원의 손길을 베풀어주시고 있고 1000명 중 1명 정도의 ‘천일조 동역후원자’는 마치 가족처럼 저희 비전을 위해 최상의 헌신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떨어졌고 얼굴을 모르는 분도 많지만 그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사역을 잘 지속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기도합니다. “하나님! 전 세계 영혼들을 변화시키는 문서선교의 찬란한 비전을 잘 이루도록 <월새기 영어판> 동역후원자를 붙여주소서!” 문서선교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는 놀라운 일을 이뤘지만 그가 이룬 더욱 위대한 일은 신약 27권의 성경 중에 절반 가까운 13권을 쓴 일입니다. 저작자에 대한 논란이 있는 히브리서를 사도 바울의 저작으로 보면 절반이 넘는 14권을 쓴 셈이 됩니다. 그는 ‘위대한 이방선교의 개척자’이면서 ‘위대한 문서선교의 개척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런 위대한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까? 혼자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최고 옷감으로 꼽혔던 ‘두아디라 산 자주’의 유럽 총판으로 상당한 재력을 갖췄던 루디아와 같은 동역후원자들이 사심과 계산이 없이 그를 위해 기도와 물질로 뒷받침했기에 사도 바울이 그런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루디아와 같은 신실한 동역후원자를 통해 <월새기 영어판>이 발행될 수 있다면 문서를 통한 세계선교는 더욱 멋지게 이뤄질 것입니다.

  인생을 가장 알차게 사는 길은 거룩한 비전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거룩한 비전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 비전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다른 모양으로도 그 비전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새로운 터를 추구하며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새로운 터와 블루 오션을 찾는 기발하고 창조적인 비전과 지혜를 주셔서 물질적인 영역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멋지게 쓰게 하소서!”


 요새 한국교회가 어렵습니다. 이때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는 데 나름대로 일조하고 교회가 선교하는 모델 교회가 되게 하십시오. 또한 후대들을 인물로 만드는 터전이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그런 축복을 약속해 놓으셨다고 믿습니다.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이방인과 장애인과 소외된 사람과 함께 하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터전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인물이 되고 인물을 배출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복된 삶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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