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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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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사실 세상에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마는 세례요한 같은 자를 낳은 자는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복중에 생기기 전부터 그의 아버지가 전 안에서 이상을 보았고, 이름도 미리 지었고, 경수가 끊어진 엘리사벳에게서 잉태가 되었고, 심방 갔을 때에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메시아를 보고 복중에서 뛰놀았고, 주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하여 생득적으로 제사장의 반열에서 제사장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광야생활을 시작했고, 요단강가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메시아가 곧 오니 새로운 각오로 살아보자고 외쳤고, 종교지도자들의 죄를 지적도 하였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의의 세례를 베풀었고, 주님을 알아보았고, 하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인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런 역사는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인간인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은 흔한 인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확실히 세례요한은 청빈생활을 하고, 죄 회개를 부르짖었고, 메시아가 오시니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메시아를 영접하여 과거와 같지 않은 때묻지 않은 이스라엘로 살아보자고 외친 것입니다. 참말로 큰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이것은 또 왜 그럴까? 세상에서의 세상이 알아주는 업적이 크면 천국에 들어가서도 큰상을 받는 것입니까? 이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것입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신령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단일성으로 만들어지고 바꾸어진 것만 가지고 들어갑니다. 지혜 지식성 도덕성 능력성 곧, 성품 인격성이 하나님의 것으로 닮아진 것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일한 업적의 양과 신앙의 질 즉, 자기가 하나님의 성품을 입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교회들을 보면 보통 교인이 일반 세상 일, 의식주에 관한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일이고, 전도를 한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하나의 종교활동의 업적을 크게 남길수록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인식들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특정한 종교적 활동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해서 하라고 했듯이 어느 처소, 어느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신앙의 본질만 바로 잡았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운동의 성격과, 주님의 운동의 성격과는 질적인 면에서 약간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 것이냐? 세례요한의 운동은 회개의 세례운동이고, 주님의 운동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사람의 속에서 이루는 운동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전에 반드시 회개의 세례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 도덕적 회개.

방향을 바꾸는 회개.

마음을 바로 잡는 회개.

 

새로운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세례요한의 역할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붙잡지 못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보통 보면 회개의 세례만 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을 성품이 아닌 사역으로 큰 일을 이루고, 큰 종교업적을 이루는 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일을 이루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인간세상 의식주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신앙과 전혀 상관없는 육의 일, 세상 일로 보고 있고, 종교적인 사역은 하나님의 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로 생각을 하고, 이런 큰 업적의 양이 많을수록 천국에서 상을 탄다, 면류관을 얻는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세례만 받은 상태로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서 하나님의 의를 넣지 못한 상태로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자기 속에 성품적으로 이루지 못한 상태로서 아무리 자기가 큰 업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는 천국에서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좋게 알고 가야 할 것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했는데 물론 참 선지자는 다 주님의 보내신 사자들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여 일깨웠고, 미래에 메시아가 오신다고 예언을 하는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신령세계를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시기적으로 시간적으로 신앙사상적으로 다른 선지자들보다 오신 주님과 매우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요한의 운동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매우 밀착성의 사역이라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는 시간적으로 사상적으로 그 만큼 주님을 빨리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큰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쉽게 생각을 하자면 세상에서 큰 것과, 천국에서 큰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큰 것은 사역적으로 일을 많이 크게 해서 큰 것이 있고,

훌륭한 선생을 만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공이 큰 것이 있습니다.

 

111215: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에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선지자들이 말한 것, 율법에 예언된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예언적 사건적 인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의 도성인신 존재성을 말함이지마는 이 예수 그리스의 존재성 안에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는 것과 영적 영인의 영능의 실력성과 천국에 들어가서 실력대로 누리는 누림성까지 다 포함된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성입니다. 성경은 곧 그것을 다 포함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선지자들과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으로 오시기 직전까지의 선지자는 세례요한까지인데 시간적으로 활동적으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직전에서 끝납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부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이고. 예를 들자면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은 선지자들의 예언된 율법의 결정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인 당사자에게 바톤을 넘겨주어야지!

 

우리에게 주는 교훈적 측면에서는 선지자들과 율법에 예언된 것과 세례요한의 신앙사상을 알아야 만이 그 신앙사상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는 역할들이라는 말입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선지자들의 말을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됨을 말합니다.

 

1114, 15: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사람이란 역사적으로 세례요한을 말한 것이지마는 요한이라는 사람만 알지 말고 요한이 가지고 있는 그 광야의 소리노릇을 하는 것과 같은 신앙사상이면 주님이 보내신 사자라는 말이고, 그 사상으로 주님을 만나 천국점령 즉, 성화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말입니다. 귀가 있으면 그렇게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111619: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장터에서 피리를 불면 사람들이 뭔가?’ 하고 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리면서 잘 쳐다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피리 부는 곳으로 더 잘 모여듭니다. 어린아이들을 비유한 것은 아이들의 마음의 동요성, 반응을 말함인데, 본문에서는 반응도 없고 동요도 없습니다. 즉 양심들이 화인을 맞은 것처럼 반응이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복음의 외침이 자기를 향해 슬퍼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를 향해 기뻐하고 있는지, 선지자가 이 세대를 향해 슬퍼하고 있는 건지 무감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이 시대의 감각성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불신세계만 보지 말고 특별히 기독교 종교의 세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쪽으로 민감한지! 불신세상은 놀이문화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들은 어떠합니까? , 교역자들은 어떠합니까?

 

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세례요한은 왜 잘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을까요? 세례요한이 자기 개인을 위해서 다이어트 하느라고 굶었습니까,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생각하니 슬퍼서 먹을 수가 없었을까요? 세례요한은 아버지 뒤를 따라 제사장으로 편안히 살 수 있는데 왜 광야로 뛰쳐나갔습니까?

 

이 일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하고 무관합니까?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하고 무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굶기를 잘하니까 귀신이 들렸다고 한 것이고, 주님에게는 주님은 죄인들과 같이 앉아서 먹기를 잘 하니까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죄인들과 음식을 왜 잘 먹습니까? 먹고 싶어 먹습니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먹습니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본문은 음식을 누구는 잘 먹고, 누구는 안 먹고그것 가지고 흉잡아 보는 말로 되어 있지마는 한편 그들의 입을 빌어, 그들의 신앙이라고 하는 그들의 사상을 빌어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선지자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아무 사상이나 함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구별된 신앙사상을 가지려고 애쓰고, 구별된 신앙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죄를 생각할 때 어떻게 함부로 이것 저것 주워 먹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주님은 능동적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려고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별스런 사상이 오더라도 전부는 천국복음으로 창출해 내십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자녀들)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세례요한은 무엇 때문에 금식했는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과 함께 무엇 때문에 먹고 마셨는지 그 이유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행한 일의 공적들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이유와 변명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반 불신세상을 가만 보면 할 일이 되게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느 배우하고 어느 가수하고 좋아 지낸다네’, ‘엊그제 결혼했는데 또 이혼 했다네하고, 남의 잠자는 안방에 들어가 사진이나 찍고 돌아다니고, ‘어느 가수, 어느 배우는 나이는 몇 살이고, 얼굴을 뜯어 고쳤다네 말았다네, 무슨 화장품을 잘 쓴다더라!’ 그들은 도대체 목숨은 몇 개나 되는 모양이지?

 

당시에 바리새인들도 할 일 없고 정신 빠진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드신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선지자의 일, 주님의 복음에 협조, 동참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헐뜯고 훼방하고. 그게 하나님의 심판대로 올라간다는 것을 알아야 할 터인데! 우리는 자타에게 구원이 된다면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하고 자타에게 구원이 안 될 짓은 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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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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