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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을 믿는 성도의 삶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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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는 성도의 삶(1) (고린도전서 15장 12-19절)


1.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십시오

 본문은 부활에 관한 몇 가지 위대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첫째,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12절). 둘째, 죽은 자의 부활은 틀림없이 있습니다(13절). 셋째, 부활이 없다면 믿음은 헛된 것이 됩니다(14절). 넷째, 예수님의 부활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17절). 다섯째,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성도는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18-19절). 결국 부활하신 주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고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하십시오. 믿음은 윤리 도덕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주님 안에서 부활의 삶을 체험하고 장래에 영생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강단에서 아무리 좋은 말씀이 주어져도 그 말씀이 생활의 변화는 일으켜도 생명의 변화는 일으키지 못합니다. 생명의 변화가 나타나려면 기본적으로 살아계신 예수님과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한때는 예수님을 불신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최후의 만찬 때 야고보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죽음을 상징하는 잔을 권하자 그 잔을 걷어차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는 주님의 일에 큰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 엄청난 능력을 사용해서 세상을 무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데 죽겠다는 말씀만 하고 잔을 받아 마시라고 하니까 너무 울화가 치밀어 그 잔을 걷어차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 야고보가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한 번 야고보에게 잔을 권하자 그때 야고보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어떻게 개만도 못한 저를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그때부터 야고보는 최고의 전도자가 되어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 감독으로 30년간 지내다가 야고보서를 쓰고 순교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그때부터 위대한 삶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런 만남을 사모하십시오.

2. 십자가의 부담을 지십시오

 부활은 ‘부활절 달걀’이나 ‘부활절 칸타타’를 통해 경험되기보다는 십자가를 선택하는 모험을 통해서 경험됩니다. 십자가는 ‘삶의 마침표’가 아니라 ‘삶의 쉼표’로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영광을 만드셨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음을 믿고 십자가의 부담을 피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통과해야 부활도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기적은 장난이 되고 부활은 우화가 되고 재림은 헛된 망상이 됩니다. 그만큼 십자가가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중심이고 교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각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웁니다. 문제는 십자가의 삶이 요새 많이 퇴색되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모태신앙이 “못해 신앙!”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부모의 눈물의 기도로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면서 주님을 깊이 만납니다. 언제 그런 깊은 만남의 체험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십자가의 질 때 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가장 보편적인 의미로는 거룩한 부담을 지는 것입니다. 요새 부담이 되서 큰 교회 간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고 승리도 없고 축복도 없습니다. 집은 기초를 닦아야 올릴 수 있고 열매는 씨를 뿌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축복의 기초를 닦고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축복을 원하면 ‘부담 없는 삶’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을 때 부담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세상의 사교단체는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지만 사실상 그곳에도 부담이 있습니다. 어느 단체에 가든지 그곳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려면 부담을 져야 합니다. 친구관계도 부담을 지려고 해야 그 관계가 잘 유지됩니다. 전화도 받을 생각만 하고 전화할 생각은 안 하면 그 관계가 깊어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부담을 지지 않고 좋은 열매를 딸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적절한 부담은 축복의 열매도 맺게 하지만 영혼을 튼튼하게도 만듭니다. 오뚝이가 넘어져도 왜 쉽게 다시 일어섭니까? 오뚝이 밑의 바닥짐 때문입니다. 요트가 거센 풍랑으로 전복되어도 왜 금방 원상으로 회복됩니까? 요트 밑의 무거운 바닥짐 때문입니다. 그처럼 적절한 부담은 힘들 때 영혼을 일으키는 인생의 바닥짐입니다. 살면서 ‘부담을 주려는 마음’은 가지지 말되 ‘부담을 지려는 마음’은 가지십시오. 적절한 부담을 져야 우정과 사랑을 얻듯이 신앙생활에서도 십자가의 부담을 져야 하나님의 은총을 얻습니다.

3. 넘치는 희망을 가지십시오

 왜 사람들이 죽음을 무서워합니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고 끝난다면 많은 것을 남긴 사람은 죽으면 끝이기에 가진 것을 다 뺏긴 셈이 됩니다. 그러나 나쁜 일로 사회에 빚만 남긴 사람은 죽으면 끝이기에 그 빚을 다 탕감 받는 셈이 됩니다. 결국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은 가장 불의하고 불합리한 생각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면 악인은 좋겠지만 선인의 선행은 어디서 보상받습니까? 죽고 끝이라면 선한 일이나 착한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끝이 아니어야 합니다.

 실제로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이라고 하니까 너무 겁낼 필요 없습니다. 심판의 날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가장 무서운 날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가장 기쁜 날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하며 흘렸던 피와 땀과 눈물을 넘치게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은 꼭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그처럼 죽고 끝이 아니라면 성도에게는 무한한 희망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상상을 초월하는 찬란한 삶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죽는 상태에서도 넘치는 희망을 얘기한다면 현재 산 상태에서는 더욱 넘치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희망이 있으면 어떤 힘든 상황도 참을 수 있습니다.

 가끔 먼저 천국에 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해서 섭섭하지만 영적으로 깊이 교제하다가 앞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생각을 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늘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내일의 꿈과 비전과 희망을 가진 자가 현재의 재산을 가진 자보다 더 부자입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나가면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4. 자기를 극복하며 사십시오

 축복을 받으려면 주님 안에서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극복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부활시키십시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마십시오. 내 운명은 남들이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결정합니다. 남들이 아무리 부정적인 딱지를 붙여도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도 자신을 향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저지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항상 복된 내일을 꿈꾸며 사십시오.

 이제 잘못된 딱지를 벗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지경을 넓혀주소서! 저도 큰일을 하게 하소서! 제가 한때 주님을 모르고 실패했지만 이제는 주님만 바라보고 찬란한 미래를 얻게 하소서! 그래서 예수 믿고 인물이 되어 선교와 구제의 큰손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현재 모습만 보고 길이 없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눈에는 길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눈에는 길이 사방으로 많습니다.

 남들이 붙여 놓은 딱지와 부정적인 이미지에 갇혀서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가능성도 제한됩니다. 자신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잘못된 딱지를 벗어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축복의 딱지를 붙이십시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힘입어 자신의 가능성을 부활시키고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과거의 실패는 나를 제한할 수 없다. 내 앞에는 찬란한 새로운 세계가 있다. 나는 놀랍고 두렵고 경이로운 일을 하도록 창조되었다. 나는 그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리라.”  

 세상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성도님!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세요. 그저 편안히 살다가 가세요. 당신은 더 이상 날지 못해요.” 그런 인간 전문가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세상을 오래 경험하다 보면 자신도 조심 전문가가 되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어. 지금까지도 못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겠어?” 그러나 다른 전문가는 다 되어도 조심 전문가는 되지 마십시오.

 살다 보면 좋은 비전을 세우고 나갈 때 수많은 부정적인 의견이 들려오면서 비전을 흔들고 우리를 주저앉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내게는 하나님이 달아주신 강한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나는 이 비전을 이룰 수 있다! 이 비전을 이루도록 나는 운명 지워졌다!” 그처럼 좋은 뜻을 품고 거룩한 큰손의 비전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된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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