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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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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시편 93편 1-5절)


 저희 교회가 분당에서 창립예배를 드릴 때 설교해주신 A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분당의 중형교회를 섬기면서 교인들은 물론 목회자들로부터도 존경받는 분으로서 후임자도 백지상태의 공개청빙을 통해 정하고 깔끔하게 은퇴했습니다. 그분과는 약 3년 전쯤 연락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당시에 은퇴를 앞둔 상태였기에 잘 대접하고 섬기면 혹시 후임 자리를 노리고 그렇게 한다고 오해할까봐 연락을 끊은 것입니다. 최근에 그분이 후임을 정한 다음부터는 다시 마음 편하게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두 부부가 식사할 때 A 목사님 사모님이 A 목사님의 머리를 가리키며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여길 보세요. 은퇴한 후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해요.” A 목사님은 인품도 좋고 유머와 지혜도 넘쳐서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목회를 잘하셨고 교인들로 인해 속 썩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목사님에게도 나름대로 신경 쓰는 일과 남모르는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가 은퇴하면서 머리카락이 새로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혼의 인도자와 위로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늘 좋을 수만 없기 때문입니다. 요새 상처와 스트레스로 목사님들이 갑자기 쓰러지고 병들어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목회자가 그런 상처도 잘 극복하지 못해요?”라고 쉽게 말하지만 목사님들도 강철 영혼이 아닙니다. 물론 믿음을 권면하는 존재로서 일반인들보다 상처와 스트레스를 잘 극복해야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목양 관계는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 중 하나입니다. 관계가 가까울 때 생기는 상처는 더 크게 느껴집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 댓글로 욕하면 참을 만해도 지인이나 가족이 비판하면 상처가 크게 느껴집니다. 교회에서 가족처럼 친했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상황을 겪으면 그 상처는 깊은 상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가까울수록 더 위로와 격려와 이해가 필요하듯이 가족과 교우는 더 위로하고 격려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가족과 교우로부터 위로를 받겠다고만 하지 말고 가족과 교우에게 위로를 주려고 하십시오. 기도해달라고만 하지 말고 소리 없이 기도해주십시오. 극심한 시련 중에도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사람보다 소리 없이 남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훨씬 더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의 감동’은 곧 ‘기도 응답’입니다.

 어느 날, 시험에 든 성도가 전화로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가도 되나요?”라고 하면 보통 교회를 떠난다는 얘기를 하러 올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가슴이 철렁해서 간절히 기도한 후 결심합니다. “하나님! 믿음으로 잘 대처하게 하소서!” 그렇게 잘 대처해야 암 등의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떠난다는 얘기를 할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알고 보니까 헌금하러 온 것이었다면 그때 목회자가 어떤 기분이 되겠습니까? 영혼에 대 평안과 기쁨이 넘치면서 마치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 될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목사님으로부터도 시험이 듭니다. 그 시험이 불의나 잘못이 아닌 생각이나 스타일 차이로 생긴 시험이라면 교회를 떠날 생각부터 하지 말고 깜짝 선물을 줄 생각부터 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시험 든 것을 느끼는 목사님에게 조용히 따로 만나자고 한 후 목사님이 불안해하며 나올 때 “목사님! 이제 교회를 떠날게요.”라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목사님께 “목사님! 이것을 교회를 위해 써주세요.”라고 깜짝 헌금을 해보십시오. 그 깜짝 선물이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도 최상의 기쁨과 평안과 치유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길이 다 막히고 희망은 안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죽고 경제적으로는 파산하면 하나님을 크게 원망하며 믿음을 버려도 될 만한 상황입니다. 그때 옆 사람들도 불안해서 지켜봅니다. “저분이 언제 폭발해서 공동체를 난장판으로 만들까?” 그렇게 큰 시험에 들 줄 알았는데 변함없이 충성하고 감사하고 최후의 남은 돈으로 헌금까지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시험에 들 때’를 ‘선물을 줄 때’로 만들면 불안하게 지켜보던 옆 사람도 크게 감동하고 하나님도 크게 감동하실 것입니다. 그 깜짝 믿음이 깜짝 선물로 변해 찾아올 것입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면 깜짝 놀랄만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때 삶과 가치관이 새로워지고 소망도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절망이 없고 극적인 인생 반전의 역사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 때는 지식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knowing about God)’보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1절). 그 사실을 진정으로 믿을 때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환경상태보다 마음상태가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은혜도 넘치게 부어지고 계속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격려하며 존중하되 교만한 자아는 힘써 버리십시오. 교만했던 자아를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서 항복할 때가 은혜와 축복의 문이 열릴 때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포기하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원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2절).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영원하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소망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우리의 자녀를 향한 사랑보다 훨씬 큽니다. 영원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은 자녀로 택하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을 확신하고 늘 굳건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셋째, 하나님은 높이 계신 능력의 하나님입니다(3-4절). 본문 3절에서 ‘큰 물’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적하는 악한 세력을 상징합니다. 악한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은 그런 세력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만 생각하면서 불평과 원망에 빠지지 말고 믿음과 소망 가운데 더욱 복된 길을 찾아 나아가십시오.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잃은 것은 잃은 것입니다. 지금 있는 것과 남은 것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신실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5절). 하나님은 신실하고 거룩한 분이기에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시편 84편 11절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은 신실하고 정직하게 행하는 성도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신실한 자녀에게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악한 자는 미래가 없지만 선한 자는 미래가 있습니다. 신실하고 거룩하게 살면 당대는 물론 후대도 반드시 잘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지키려고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해도 하나님께서 그 인생과 계획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인생은 알 수도 없고 스스로 지킬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방어운전을 해도 하나님이 운전대를 잡아주시고 사고를 막아주셔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꾀로 인해 더 망가질 때도 많습니다. 좋은 식품만 찾아서 먹다가 불필요한 영양 과다로 어떤 부분의 세포가 과도하게 증식되면서 암이 생기기도 합니다.

 요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건으로 떠들썩합니다. 저도 죽을 뻔했습니다. 몇 년 전에 한 집사님이 제 사무실의 가습기에 곰팡이로 인한 물때가 끼는 것을 보고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가습기 살균제를 써보세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공기가 맑다는 산에도 먼지 속에 엄청난 균들이 있어 심호흡을 할 때마다 균들이 침투하고 광부들은 탄가루를 먹으면서도 일한다. 사람의 몸이 어느 정도의 균과 먼지는 극복할 수 있는데 굳이 살균제까지 쓸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고 가습기 살균제를 쓰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 순간 지켜주셔야 합니다. 작은 일 하나가 인생 전체도 태울 수 있기에 결코 교만하게 행하지 말고 남에게 악도 행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돈이나 이성을 너무 좋아하면 돈이나 이성 때문에 망할 수 있고 자녀를 너무 좋아하면 자녀 때문에 망할 수도 있습니다. 배우자나 자녀를 아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배우자나 자녀도 하나님보다 앞세우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이나 어떤 일보다 하나님을 앞세우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정도로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교만은 마음이 높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도 교만입니다. 좋은 것이 주어져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언젠가는 그 좋은 것 때문에 큰 화를 당합니다. 왜 최순실 사태가 생겼습니까? 그의 딸 정유라의 개가 발단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최순실과 정유라의 개 사랑은 지극했습니다. 독일에 단기 체류를 할 때도 개 15마리를 6천만 원 들여 공수해 키울 정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처럼 좋아했던 개가 그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셈입니다.

 사소한 일도 사소하게 보지 마십시오. 소심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소한 일을 사소하게 볼 줄 아는 대범함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작은 일을 경시하면서 세상을 자기 멋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교만은 없어야 합니다. 작은 문제를 위해서도 겸손하게 기도하십시오. 때로는 사소한 일이 큰 일로 증폭될 수 있기에 저는 수시로 작은 문제에 대해서도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때 어떻게 조치해야 합니까? 언제 그 일을 해야 됩니까?”

 큰 것에 흔들리지 않는 배포도 필요하지만 작은 것을 살피는 사려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세상은 자기 뜻이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 게임이나 선거에서 이겼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잘하고 대비를 잘해도 세상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민심이나 언론도 자기 뜻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바람이 어떻게 불지 알 수 없듯이 민심의 바람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파의 든든한 원군 언론이 되어달라는 의미에서 이전 정부에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편 방송채널 4개를 허가했을 때 한국 사회는 상당 기간 ‘우측이 높아진 경기장’이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 예상과는 달리 그 종편 방송채널 2개가 앞장서서 지금 정부를 탄핵에 이르게 했습니다. 방송 기자나 PD들도 다 자기들 생각이 있기에 사람 맘대로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세상이 한때는 좌측이나 우측으로 기울 수 있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어느새 경기장은 다시 평형을 갖춥니다. 지금처럼 정보화시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영향력과 감화력이 있는 큰 인물의 꿈을 가진 사람일수록 정도를 걷고, 좌측이나 우측이 높아진 ‘기울어진 경기장’이 아닌 ‘평형 경기장’에서 정당한 승부를 걸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회라면 다른 쪽도 살피고, 더 나아가서 양쪽을 다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인생과 가정과 가문이 오래도록 복된 길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평형 경기장’에서 개인이 반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때는 심판의 경고나 징계 등으로 최대한 반칙을 막으면 됩니다. 그러나 경기장 자체가 ‘기울어진 경기장’이 되면 안 됩니다. 공정한 경기장을 만드는 데 최대의 길잡이로 삼아야 할 책은 역시 ‘성경’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도 공정한 경기장을 만드는 데 나름대로 작은 길잡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사회의 경기장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기울어진 경기장을 평형 경기장으로 복원시키는 사회적 치유 과제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목회자와 성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월새기(월간 새벽기도)>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반대편까지 품게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서 좋다고 합니다. 월새기를 꾸준히 읽으면 반대편의 입장도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시각을 조금이나마 더 가지게 됩니다. 월새기는 ‘좌우측 진영논리’를 가진 사람에게 ‘선교마인드’를 심어줌으로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에 대한 꿈을 품게 하는 책입니다. 그 꿈은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소중한 꿈입니다.

 궁극적으로 인생과 가정을 복되게 하는 핵심 요소는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면 이뤄지지 않을 선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대면 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손을 떼면 길이 막힙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제 인생은 제가 맡습니다. 손을 떼주세요.”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 제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손을 대주세요.”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진흙 인생을 친히 빚어주셔야 작품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붙들려 사십시오. 때로 하나님께서 매를 대셔도 “아멘! 감사합니다. 그래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십시오. 그러면 매를 든 손길이 어느새 축복의 손길로 변합니다. 기도 응답도 너무 재촉하지 말고 하나님의 침묵을 기뻐하며 때를 기다리십시오. 깊은 사랑은 침묵을 재촉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믿음과 감사를 잃지 않을 때 하나님은 최상의 때의 최선의 것을 최대로 주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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