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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한 화목과 연합을 향하여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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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온전한 화목과 연합을 향하여              

창43:16-34


  2003년과 2004년, 우리 영화계에는 역사상 최초로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들이 나왔습니다. ‘실미도’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영화들은 과거 불행했던 우리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처참하고 쓰라렸던 6.25 전쟁을, ‘실미도’는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특수부대 양성 과정과 그들이 버림을 받은 불행한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는 울고 또 울어야 했습니다. 이 영화들은 세월이 많이 흐른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도대체 사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거기에 사로잡혀서 이렇게 잔인하고 처참한 일들을 저질렀나?”하는 반성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북한에 대한 국민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들을 적으로 알고 대치해왔는데, 이제는 동족으로 생각하여 친밀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한 때는 여론 조사에서, 만일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미국보다는 북한 편을 들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상입니다. 더 나아가서 북한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이와는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북한은 우리를 침략해서 전쟁을 일으켰던 원수라는 것입니다. 기껏 식량을 원조해주고 돈을 보내주면, 그것으로 군량미를 삼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을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양측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우리와 한 민족이요, 한 핏줄입니다. 그러므로 남북이 화해하고, 더 나아가서 통일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돕고 협력하면서 꾸준히 화해 분위기를 조성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과연 남한을 침략할 생각을 완전히 버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해진다면 북한을 돕고, 화해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더 나아가서 통일하는 일도 훨씬 쉽고 빨리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개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화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저 모든 것을 덮어두고 겉으로만 잘 지내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상처와 불신이 해소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한 화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계속해서 형들을 엄하게 대하는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요셉이 일방적으로 형들을 용서하고 화해를 청한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형들이 자기들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해야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형들이 과거의 죄를 후회하고, 이제는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지금 형들에게서 이것을 확인하려 하고 있습니다.


    포기와 헌신이 가져오는 축복


  야곱의 가정은 진퇴양난의 문제에 빠져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는 시므온을 억류시켜 놓고,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엄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절대로 베냐민을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사온 곡식은 이제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때 유다가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을 걸고 동생 베냐민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침체되어 있던 야곱의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14절)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곡식을 사기 위해 다시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이제 그들 앞에는 큰 축복의 길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갔던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보낸 수레와 많은 선물을 가지고 아버지 야곱을 모시러 오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애굽에 들어가 염려 없이 평안히 살게 될 것이며, 큰 민족으로 번성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다의 헌신과 야곱의 포기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헌신할 때, 끝가지 붙잡고 있던 것을 포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당신이 움켜잡고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까지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형들


  드디어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가서 애굽의 총리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청지기에게 명하여 형제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게 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16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까?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그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빨리 양식을 사서, 억류되어 있던 시므온을 데리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총리의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자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특히 그들이 지난번에 곡식 사러 왔을 때 가져왔던 돈이 자기들의 곡식 자루에 들어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17-18절)


  그래서 그들은 자진해서 요셉의 청지기에게 이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19-22절)


  이러한 형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전에 그들은 못할 짓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통간을 했으며,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로 사람들을 속이고 칼을 차고 가서 한 부족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작당하여 죄 없는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유다는 아버지 집을 떠나 이방인들에게 가서 살았고, 본의는 아니었으나 며느리에게서 아들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지금은 자기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까지 자진해서 자백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습니까? 그들이 당한 어려운 일들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하면 진실해집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진심으로 회개해야만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이렇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청지기에게 그들을 안심시키도록 일러두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말을 들은 청지기는 그들을 안심시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 내고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23-24절)


     베냐민과 만나는 요셉


  형들은 그 집에서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과 함께 오찬을 먹게 된다는 말을 듣고, 예물을 준비해놓고 총리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애굽의 총리가 나타나자,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예물을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이제 요셉은 형들과 함께 오찬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열두 형제가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감회가 어떠했겠습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 베냐민을 보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29절) 동생 베냐민을 보는 순간 요셉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안방으로 들어가 울고 나왔습니다.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30-31절)


  요셉이 베냐민에 대해서 왜 이렇게 특별한 감정을 가졌을까요? 그것은 29절에 나오는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이라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네 명의 아내들에게서 낳은 아들들이었습니다. 야곱은 네 명의 아내들 중에서 라헬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바로 요셉과 베냐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열두 형제들 중에서도 요셉과 베냐민은 어머니가 같은 형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특별히 자기 동생 베냐민을 많이 보고 싶어 했습니다. 어머니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냐민은 처음부터 어머니 없이 자랐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어렸을 적부터 이 동생을 한없이 가엽게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없는 동안에 형들이 자기에게 했던 것처럼 동생 베냐민을 미워하고 구박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 베냐민을 이렇게 만나게 되자, 요셉은 감정이 복받쳐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화목과 연합을 위하여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형들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차례대로 앉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다시 한 번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의 아버지에 대해서 자세히 안부를 묻고, 또 자기들에게 호의를 보여주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요셉은 어서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에게 맘껏 사랑과 호의를 베풀고 싶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와 온 가족을 애굽으로 초청해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일을 한사코 절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진심으로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고 있는지, 이제는 그런 악한 생각과 행실을 버렸는지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만일 형들이 회개하지도 않고, 또 여전히 예전의 생각과 행실을 가지고 있다면, 요셉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는 화해를 하고 다시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진정한 화해와 연합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으로 회복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원하지 않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원하시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을 데려오게 한 것은 이러한 형들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베냐민이 형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형들이 자기에게 했던 것처럼 베냐민을 미워하고 시기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베냐민에게 위험이 닥치면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라도 동생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형들이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악한 생각과 행실을 버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에게 특별히 다른 형제들보다 음식을 다섯 배나 주었습니다. 과연 베냐민이 이렇게 특별대우를 받아도 형들이 시기하지 않을까요? 일단 형들에게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한 요셉의 마음은 한결 가볍고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직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좀 더 시험을 해보아야만 했습니다.


    속죄와 화목


  요셉이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회복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이미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형들은 아직 화해와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형들이 아직 자기들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요셉은 형들이 베냐민을 위해 서로 대신 종이 되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예전의 죄와 악한 생각을 버린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자신을 밝힙니다. 그러나 형들은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자기들이 팔아버렸던 동생이 절대 권력을 가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들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그런 형들을 용서하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이제 요셉이 자기들에게 복수할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두려워했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용서했는데 형들은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요셉의 용서를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저주를 한 몸에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원수되게 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우리 중에는 아직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항상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꾸만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나를 무궁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다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다 버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죄는 그 어떤 것이든지 다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 당신의 모든 죄와 허물을 내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도록 하십시오. 그 때 우리 마음속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요셉과 형들은 15년 만에 만났고, 잔치 자리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형들이 아직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주저하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죄는 없습니까? 그것을 속히 버리고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어떤 형제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잘못한 것을 내놓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죄를 버리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고, 형제와의 관계도 거리낌 없이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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