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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통곡하는 요셉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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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통곡하는 요셉                             

창45:1-8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어려움 당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기로 새롭게 다짐했는데, 일이 잘 되기는커녕 오히려 힘든 일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사는 것 때문에 손해를 당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믿음 좋은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하여 앞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고 선하게 역사해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가졌는데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때 사탄이 이것을 가지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응답해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렇게 되면 믿음을 지킨 너만 손해를 보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속삭입니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하신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며, 우리를 가장 선하게 인도해주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이것 때문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섬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죄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과거의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해와 기대와 상상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신실하십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선하게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기까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길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처한 곤경


  야곱의 아들들은 양식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갔다가 애굽의 총리가 간첩이라고 엄하게 추궁하는 바람에 혼쭐이 났습니다. 애굽의 총리는 다시 양식 사러 올 때는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고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애굽에서 사온 양식이 다 떨어져가자 그들은 다시 양식을 사러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총리는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만큼은 절대로 같이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유다가 베냐민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간곡하게 설득하여, 형제들은 겨우 베냐민과 함께 다시 양식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베냐민을 데려가자 애굽의 총리는 약속대로 시므온을 풀어주고, 형제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양식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양식을 사가지고 시므온과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가게 되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데 총리의 청지기가 그들을 급하게 추격해 오면서 모든 일이 꼬이고 말았습니다. 총리의 청지기는 형제들에게 왜 은혜를 배신하고 총리의 은잔을 훔쳐갔느냐고 추궁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의 곡식자루를 조사했는데, 베냐민의 자루에서 바로 그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형들은 정말 영문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은 결코 총리의 은잔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의 자루에서 그 은잔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음모요 함정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애굽의 총리는 그들을 모두 죽이거나 노예로 삼기 위해서 이런 음모를 꾸민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무나도 기가 막히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애굽 총리는 은잔을 훔쳐간 베냐민만 남아서 노예가 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못한다면 아버지는 죽고 말 것이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나서서 베냐민을 위해 생명을 걸고 탄원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곡식을 사러 오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이 막내 아들을 절대로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막내 동생을 책임지겠노라고 맹세하고 설득하여 겨우 이 동생을 데리고 왔습니다. 만일 이 막내 동생이 돌아가지 못한다면 아버지는 죽고 말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막내 동생을 책임지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므로 막내 동생 대신에 내가 노예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를 노예로 삼고 막내 동생을 돌려보내주십시오.” 유다는 정말 자기가 동생을 위해 죽거나 노예가 될 각오를 가지고 이렇게 탄원했습니다. 생명을 건 유다의 탄원은 너무나도 간절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유다의 말을 듣고 있던 애굽의 총리는 갑자기 방성대곡하며 자신이 바로 요셉이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상황이 완전히 반전된 것입니다. 형들은 어리둥절하며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두려워하는 형들을 다정한 말로 위로하며 안심을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애굽으로 먼저 보내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흉년이 5년이나 더 남았는데, 이제 자기가 아버지와 모든 가족을 봉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유다의 믿음의 승리


  여기서 우리는 유다가 애굽의 총리에게 탄원한 것이 얼마나 귀하고 훌륭한 일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유다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이 일을 했습니다. 만일 애굽의 총리가 유다의 탄원을 받아주었더라면, 유다는 영락없이 베냐민 대신에 노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은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유다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유다는 아버지 집을 떠나 쓰라린 고통과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 때 유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심판하시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부터 유다는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믿음이 회복되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때 유다는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방탕했던 자신을 이렇게 강권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으니 이제는 오직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나서서 모든 책임을 지고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베냐민을 대신해서 노예가 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겠다는 사람은 늘 이렇게 손해를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결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손해와 희생을 당한다 해도 믿음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믿음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받았으며, 그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려움과 손해가 있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하고 옛 생활로 돌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주님을 배반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을 지키면 맹렬히 타는 불 속에 던져져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


  이런 믿음이 순수한 믿음이며, 이런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분노한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불 속에서 조금도 해를 입거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 믿음으로 분노한 느부갓네살의 절대 권력을 이겨냈습니다. 유다도 바로 이 믿음으로 엄한 애굽 총리의 마음을 녹여냈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끝까지 승리하게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요셉의 통곡


  유다의 목숨을 건 탄원을 들은 요셉은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형들에게 자기가 요셉임을 알리고 통곡했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1-3절)


  오랫동안 요셉은 타국에서 아버지와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팔아버린 형들을 생각하면 그립다가도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형들이 자기 앞에 나타났습니다.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를 나타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형들을 변화시켜 하나님 백성답게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감정을 억제하고 형들을 시험했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형들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생을 팔아버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베냐민을 위해 서로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동생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형들은 죄를 회개하고 변화되었으며, 요셉은 그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제 더 이상 형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나자, 요셉은 그 동안 억제했던 감정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자기를 밝히고 그렇게 통곡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지금까지 애굽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참고 또 참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해주셨고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 앞에서 통곡하는 순간에 그 모든 것이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큰 은혜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눈물이 말라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는 잘 울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우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를 자복하며 통회는 일은 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흐느끼는 모습은 흔치 않습니다. 형제를 용서하며 관계를 회복하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여시고 감동하셔서 우리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흐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와 기쁨과 사랑의 눈물을 맘껏 흘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요셉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을 드러냈을 때,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는지라”(3절) 15년 전에 자기들이 팔아버렸던 동생, 이제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동생 요셉이 이렇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지금 자기들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형들은 놀랍고 두려워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두려움과 충격으로 할 말을 잊은 형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설명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절)


  사실 처음에는 요셉도 자신이 애굽으로 팔려오고 계속해서 기가 막힌 일들을 당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을 붙잡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면서 견뎠습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요셉은 점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인 야곱의 가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그렇게 인도하시며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요셉은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 그래서 그토록 고난을 당하게 했던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 모든 것이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6-8절)


  가장 비참하고 불행했던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니, 그 모든 일들이 가장 복되고 귀한 일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하나님의 은혜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넓어져서 형들을 용서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아름답고 능력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당신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상하고 안타까운 일들을 믿음으로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이 믿음으로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이 믿음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성도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그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은, 당시에는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배는 이상하게 생긴데다가 축구장 길이만큼이나 되었습니다. 배에는 어떤 동력장치도 없었고, 창도 가장 높은 곳에만 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배를 바다가 아닌 내륙에다 만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홍수심판이 시작되자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 방주는 홍수심판을 견딜 수 있는 완벽한 배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정확하고 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당장 우리가 알 수 없다 해도, 언제나 가장 선하고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고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유다는 생명을 바쳐 동생을 구하고자 했는데, 이것은 그가 믿음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믿음 때문에 기꺼이 생명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이 믿음이 애굽의 총리를 감동시켜 상황이 역전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음으로써 고난과 절망을 이겨냈으며, 원한과 복수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는 형들을 용서하고 다시금 화해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요 교회였던 아버지의 온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능력 있고 귀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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