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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오직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살았다" - 16세에 美8군 입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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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용해 권사 간증 
 
“작전명 ‘레빗’(토끼),임무는 북한군 정보수집,작전 성공시 바비큐 파티,실패할 경우 자폭할 것.”

1950년 6·25 전쟁 당시 미8군 8240부대 첩보원으로 군생활을 한 심용해(69·아시안교회) 권사는 매년 6월이 되면 악몽에 시달린다. 6·25 전쟁이 발발한 날 심 권사는 경기도 수원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16세 평범한 소녀였다. 그녀가 고초를 겪게 된 것은 전쟁이 터진 지 6개월 후.

전쟁이 치열해지자 그녀는 ‘여기서 죽으나 나라를 위해 죽으나 하나님께 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이듬해 2월 미8군 25사단 8240부대 첩보원으로 입대했다. 심 권사는 첩보원들 중 나이가 가장 어렸다. 하지만 그녀는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수없이 넘나들며 정보를 수집했다. 오직 ‘하나님과 나라를 위한’ 16세 소녀의 일념이었다.

미군의 지령을 받아 독도법을 공부하고 적진으로 침입,북한군의 위치를 확인했다. 전선에서 기도하며 숨어지낸 적도 많았다. 산열매로 허기를 때우고 무덤을 베개 삼아 잠자기 일쑤였다. 미아리 광릉 퇴계원 의정부 동두천 철원 등 중부전선이 그녀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미군은 심 권사의 정보를 토대로 폭격지점을 찾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첩보원들은 인천상륙작전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인천의 북한군 동태를 샅샅이 파악해 아군에게 보고했다. 첩보원들 덕분에 한·미 해병대는 인천 월미도에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고 전세를 뒤바꾼 계기를 마련했다. 중공군에 붙잡혀 고문당할 때는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저를 살려주시면 당신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갇혀 있던 동굴 반대쪽이 뚫려 있었다. 그녀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고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심 권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당시 1000여명이 첩보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첩보원이 죽으면 또 모집하고…현재 살아있는 사람도 400여명이나 됩니다. 오는 9월15일쯤 인천 맥아더 동상 앞에 모여 기념행사를 가질 계획입니다. 목숨을 걸고 조국을 위해 싸웠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전장에서 꽃다운 처녀 시절을 보낸 심 권사의 ‘6·25 노래’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들려온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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