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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십계명과 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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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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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10가지로 나누어 전한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이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은 부자 청년의 질문에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나는 율법(계명)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려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과 인간에 대한 계명 (제5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으로 나누어집니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6-41)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기본 정신은 사랑이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내용을 살펴 봄으로써 삶의 기준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다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앉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라도 절대자인 하나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분에게서 생명이 나오고 그분에 의해 생명이 보존되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분를 대신 하는 모든 것은 거짓 신이며 우상입니다. 인류는 과학이나 기술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여 이것들을 섬기며 경배하려는 시도도 해보지만 그러나 창조자는 한 분 하나님 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모든 것이 우상임을 말합니다. 우상숭배란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부수적인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모든 것의 궁극적인 것을 그렇지 않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대신 재물(mammon)을 섬기는 일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재물을 땅에 쌓는 것이야말로 몸의 등불인 눈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며 이는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마태복음 6:19 - 25).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업수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범해지는 각종의 불의를 금합니다.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게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한 것 (출애급기 20:9)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일하는 자에게는 안식이 주어져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아담에게 내린 하나님의 저주로 오인되고 있으나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한복음 5:17)고 하심으로써 일은 저주가 아니라 인간의 본분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계명은 인간이 힘써 일한 뒤에는 일에서 놓여나 쉼을 얻어야 하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로운 힘을 얻으며 가정을 돌볼 여유를 갖게 합니다.





이 계명은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란 약속을 지닌 계명입니다. 조상의 은덕을 잊지 말 것과 좋은 전통을 존중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에베소서6:1)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주께 하듯 순종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나를 낳은 가시적인 창조자입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과 존경과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와 감사를 배웁니다. 조상들이 모두 부모로 인정되듯 나이 많은 이들을 부모로 공경되어야 합니다.



살인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과 권리를 파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 22)고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미움이나 욕설, 경멸은 살인과 같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비하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을 농락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그 부모를 떠나 그 둘이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6). 성경에서는 부부의 관계를 생물적인 관계에 머물지 않고 영적인 관계에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간음은 가정의 파괴를 의미하며 인간의 가치를 동물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돕는 배필로서(창세기 2:18) 보완적인 관계를 가질 뿐 어느 한 성이 다른 성보다 우위에 있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성차별은 인정될 수 없으며 각 성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계명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소유권을 행사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청지기로서의 관리할 몫을 갖고 있습니다. 도적질은 하나님의 위탁을 거부하며 질서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위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삶을 풍성하도록 맡겨진 자원을 활용하며 공정한 분배를 책임집니다. 예수님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태복음 24: 45-46). 여기서 종이란 책임을 받은 모든 사람을 가리키며 이 계명은 유한한 자원의 적절한 분배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 (마태복음 24: 48-51) 왜냐하면 때를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한 것이 도적질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대신 정직과 신실성을 지닐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 말의 실수가 많으므로(야고보서 3:2) 혀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온 몸이 더럽혀지고 생의 바퀴 마져 불살라지게 됩니다 (야고보서 3:1-12). 이 계명이 의미하는 바는 거짓말과 함께 저주의 말로 금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을 저주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훈련되지 않은 욕망을 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15)고 하셨습니다. 귀중한 인간의 생명은 그 소유의 많고 적음과 무관합니다. 탐심이란 하나님 이외의 것을 하나님 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서 우상숭배가 됩니다 (골로새서 2:5). 탐욕이 십계명에 열거한 모든 계명을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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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도가 믿어야 할 기본적인 교의(敎義)를 간결하게 요약한 성도들의 표준 신앙고백입니다.

사도신조(使徒信條)라고도 하는데, 이 명칭은 예수의 12제자(사도)가 각기 1구절씩 만들었다는 전승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AD 4세기의 루피너스(Rufinus)가 "사도신조 주석"을 쓰면서 사도신조를 열 두 사도가 한 줄씩 썼다고 주장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신앙고백(마16:16; 28:19)을 기초로 한 단편적인 신조가 2세기 부터 존재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의 사도 신경의 모체가 된 것은 서기400년경의 라틴어로된 [로마 교회 구 신조](the Old Roman Creed)이고, 그 이후 300여년 동안 서방의 여러 교회들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신조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추가 구절들은 프랑스 지방이나 북아프리카 지방의 역본들로부터 수집되어 추가된 것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도신경은 8세기에 현재와 같은 언어로 확정되었고, 12세기에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공적으로 인준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뱅은 사도신경을 미사 전례에서 떼어내어 《교리문답서》에 넣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존중하게 되었는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내용은 2세기 후반 성립된 '로마신조'를 바탕으로 하여, 5~6세기경에 갈리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무렵, 이단적(異端的)인 주장들이 많이 대두하여, 이 신조를 기준으로 이단?정통 여부를 가렸으므로 상징(symbolum)이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삼위(三位) 즉 하나님?그리스도?성령에 대한 구체적 신앙고백으로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 수난 · 부활 · 심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 목차 :::
1. 사도신경의 의의
2. 사도신경의 역사
3. 사도신경의 내용
4. 결론





사도신경을 다함께 암송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도신경은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6000년 역사를 모두 합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도신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나타낸 신앙의 요약문입니다.



올바른 신앙 고백이 없다면 그 교회도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이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교회를 교묘하게 파괴시키려는 이단의 침투에도 성도들을 지켜줍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표준적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 고백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자기 중심적 신앙 표현이나 주장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공식적이고 성경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은 언제부터 암송하게 되었나요? 최초의 신앙 고백은 마태복음 제16장 16절에 나오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 제자들은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하며 신앙 생활의 본을 보이면서 복음을 전파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흩어져 나가기 시작할 때, 신앙으로 하나가 되고 신앙적 전통을 지켜 나가기 위해 조항을 만든 것이 그 시작입니다.

신앙 고백을 위해 만든 조항들은 이단들로부터 순수한 신앙을 방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내용이 첨가되기도 하면서 그 모양을 다듬어 나가다가, 서기 404년에 루피누스가 주석을 펴내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신앙 고백문이 채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무려 400여년이라는 세월 동안의 기독교의 역사가 압축된 신앙 고백의 결정판입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이 말은 사람과는 다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이며, 온 천지와 모든 생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으로서, 이 모든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세주요 메시야임을 굳게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서 사람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을 믿으며, 본디오 빌라도라는 총독에 의해 가장 극악한 죄수들을 사형시킬 때만 쓰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신 후에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셔서 무덤속에 계시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음과, 하늘나라로 승천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때가 되면 이 땅에 다시 오시는데, 그 때는 육신으로 초라하게 오실 때와 달리 온 인류를 심판하는 심판주로 오신다는 사실을 믿는 고백입니다.



이는 성령님을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감동하심으로 우리가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 은혜와 신령한 은사를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거룩한 공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믿는다는 뜻이며, 성도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이기를 힘쓰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힘이 성도의 교통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 내용입니다.

또한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죄를 사면해 주심을 믿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피흘리시고 죽으신 것을 믿을 때 우리의 죄는 흔적조차도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우리의 죽음 이후의 영혼의 영원함을 믿는 것으로서, 우리들도 언제가는 죽게 될 것이고, 또 예수님이 신령체로 부활하신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왕이나 제사장처럼 영원토록 살아간다는 사실을 믿는 고백입니다.



a)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영문에는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라는 구절이 있으나, 한글번역에서는 생략되었습니다. 오늘날 영어로 된 사도 신경에는 거의 모두가 "지옥에 내려가셨다가"를 그대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혼난 때문에 미국의 감독 교회는 1789년에 제정한 기도에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표현을 아예 삭제하거나 다른 표현을 쓰게 했다가 1892년에는 이를 철회하는 등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는 혼돈입니다. 사도신경에 삽입될 만한 구절이라면 성경에 조예가 깊은 성직자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2/40 -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1/18 -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베드로전서 3/19 -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요나는 고래 배속에 들어가 살지 못하고 땅 속 지옥에 내려 갔고, 거기서 회개해 다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에게 요나와 같이 사흘동안 땅 속 지옥에 내려갔다가 부활하는 표적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시록에서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자로 3일동안 흑암과 싸워 이겨 뺏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 또한 예수님이 무덤기간 동안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에 구원 받은 지하 낙원에 있는 영과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없었던 지옥에 있던 영들에게 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지옥에 갔다오신 것은 성경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 일이나, 이는 구원에 필연적인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해도 큰 지장은 없다고 사료됩니다.

b) 거룩한 공회(공교회)를 믿사오며

영문에는"거룩한 카톨릭 교회" 혹은 "거룩한 우주적/보편적 교회"로 되어 있으나, 한글번역에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나 "거룩한 공회"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공회(公會)는 "공적인 일을 위한 모임"(assembly)이나 종교 회의의 의미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church" 의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이는 해석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영 찬송가]에 함께 쓰여진 영문 사도신경에는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써서 그것이 8세기의 개정 신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5세기의 [로마 교회 구 신조]에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거룩한 교회(the Holy Church)를 믿사오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8세기 개정 신조에는 거기에 "카톨릭을 첨가하여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사오며"로 표현했습니다. "카톨릭"(catholic) 의 뜻은 본래 "보편적" 혹은 "세계적"(universal) 이란 뜻이어서 일반적으로 쓸 경우에는 구태여 로마 카톨릭(Catholic) 교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세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높히기 위해 인위적으로 삽입한 흔적이 보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공회"를 예수님의 지체되는 "거룩한 교회"로 고치거나 "거룩한 공회"로 발음하면서 '거룩한 교회'를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c) 성도가 서로 교통(성인의 통공)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교인들을 성도(聖徒.saints)라고 합니다. (고전1:2)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죽은 카톨릭의 신앙적 영웅을 성인(saint)으로 봉해 일반적인 의미의 성도(saint)를 신성시 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교제"를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죽은 성도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성인숭배와 죽은 사람에게 기도하는 교리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성인은 죽은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후에야 특별 심의를 거쳐서 품(敍品)되는 비성서적인 개념이고, 죽은 자와 교통하는 일은 사단의 속임수로 (삼상28:8-19), 성경에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사8:20; 신18:11.12)

사도행전 3/42 그들이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교제,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데 전념하더라. (한글 킹제임스)(And they continued stedfastly in the apostles' doctrine and fellowship, and in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KJV

교제는 영어로는 fellwship으로 서로 정감 있게 친분을 맺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본래의 문자적인 의미대로 거듭난 성도들이 서로 믿음과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과"로 바꾸어서 암송하셔도 무방합니다.

d) 본디오 빌라도

유대 총독인 빌라도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준 인물이지만 그는 오히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쓴 흔적을 여러 곳의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참고 : 마27:24 ; 눅23:4, 14-22]
사도신경에서 본디오빌라도가 들어간 것은 역사성 즉, 역사적인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첨가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켰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은 틈만 나면 기회를 노려 예수님을 없애고자 노력하였고 결국 빌라도를 윽박질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전히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행3:13)라고 책망했습니다.

이사야 53/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들의 죄, 좀더 구체적으로는 나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이므로 올바른 신앙 고백이 되려면 "나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고백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입니다.

e) 저리로서

참고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에서 오늘날 '저리로서'라는 표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리로서'라는 말은 "그곳"이라는 옛 말에다가 조사 "-으로부터"에 해당되는 옛 표현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그 곳으로부터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저리로서"를 "그 곳으로부터" 또는 "하늘로부터"로 바꾸어 암송하거나 이해하면 됩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잘 표현한 훌륭한 신앙고백서이나 부분적으로 오류가 있고, 카톨릭의 사상이 가미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이단 판별의 기준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도신경을 무시하는 것보다 바르게 이해하거나 바르게 고쳐서 암송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신앙이 흔들릴 때 사도신경을 외우면 힘이 나고 바른 생각이 정립됩니다. 교인들에게 마지막 혼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교리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을 성경적 교리에 맞게 수정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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