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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에 오신 아기 예수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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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오신 아기 예수(1)                  

눅2:21-39


  나이가 들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와 젊은 시절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 때는 인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다시 인생을 산다면 좀 다르게, 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녀들도 좀 더 제대로 양육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녀들, 학생들을 잘 가르치며 양육하려면 그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특히 어른들의 생각과 수준에 놓고 자녀들을 대하며 양육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움과 부작용이 많이 일어납니다. 가장 좋은 교사, 가장 좋은 부모는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가르치며 양육하는 교사와 부모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만으로는 잘 되지 않고, 인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난 후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고 판단하며 평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제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우리의 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힘들고 걱정이 되는데,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뭘 그까짓 것을 가지고 그러느냐고 핀잔을 주거나 야단을 칠 때도 있습니다. 관공서에 가서 일을 볼 때도 이런 문제를 겪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바르게 대하질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에는 문제와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갈등과 문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합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인간은 이렇게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에 있습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수많은 문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죄로 인해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겪는 모든 연약함과 비천함과 가난과 슬픔과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시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충분히 공감하시게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주님께서는 우리 연약함을 공감하시고, 우리를 얼마든지 가장 효율적으로 도와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은 죄와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아기 예수님께서 율법의 규례대로 할례를 받으시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려지신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아기 때부터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율법에 매이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율법은 죄인들에게 주어진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처음부터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지 8일째 되는 날, 율법에 규정된 대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으로 갔습니다.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21-22절)


  본문에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신 사실을 다섯 차례나 반복해서 기록했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22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23절)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24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27절)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39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율법을 지키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처음부터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절)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율법을 다 지키셨을까요? 그것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모든 율법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실 일들을 예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심으로, 그리고 율법이 가리키는 모든 일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을 구주로 믿는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께서 완수하시고 성취하신 모든 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나셨고, 율법을 다 지키셨던 것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할례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규정된 대로 탄생하신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17:9-1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는 악하고 추한 죄인이 하나님 백성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할례를 통하여 그 백성들 안에 있는 죄악된 것들을 멸하시고, 새 생명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죄악된 옛 사람을 멸하시고, 우리를 거룩한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거듭난 새 사람,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할례는 바로 이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누구나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만일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17:14) 할례를 받지 않는 자, 즉 이 언약의 표시를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할례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고백하고 받는 세례가 구약의 할례와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세례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백성된 것을 인치는 것입니다. 제가 세례 받는 성도들에게 강조하는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이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 받은 다음부터는 반드시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백성인 것을 무엇으로 나타낼까요?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를 다함으로써 입니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믿는다고 해도, 교회에 나와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하나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하나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아무리 믿음이 부족하다 해도, 최소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해야 하나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성도의 본분을 다함으로써 당신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굳이 할례 받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할례를 받으시고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할례를 받으심으로 스스로 하나님 백성에게 속하셨으며,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정결예식


  요셉과 마리아는 정결예식을 행할 날이 되자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으로 갔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결례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22절)


  여기서 정결예식은 아이를 낳은 여자를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가리킵니다. 율법은 아들을 낳은 여자는 7일 동안 부정하며, 33일 동안 집에 있다가 40일이 지나야 희생제사를 드리고 깨끗하게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되는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 삼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레12:1-4)


  정결예식에서 드리는 희생제사는 보통 번제를 위해 어린양을 드리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드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의 경우에는 번제로 드리는 어린양 대신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드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그 여인이 어린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레12:6-8)


  가난하여 율법에 규정한 예물을 드릴 수 없는 사람들은 부담이 훨씬 적은 제물을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난한 사람들도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은혜를 힘입을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가 바로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예물을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요셉과 마리아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를 주께 드림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23절)


  율법은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새끼를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출13:2) 장자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성전 세겔로 드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대속할 때에는 난 지 한 달 이후에 네가 정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대속하라”(민18:16)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장자는 하나님께 봉헌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처럼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의 세겔을 드리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구별하여 하나님 섬기는 데 드리도록 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 레위지파를 택하셔서 하나님 섬기는 지파가 되게 하셨습니다. 장자는 구별되었고, 하나님의 소유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장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특히 아기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는 제물이 되신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물은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순종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처음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순종하심으로 의를 이루셨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그 의를 입혀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율법 지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당신도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기쁘고 즐겁게,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순종이 즐겁고 쉬워집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즐겁게 순종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했지만 힘을 다해 율법대로 순종했습니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처음부터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순종하여 모든 일을 마치자, 선지자들을 통해 놀랍고 복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왔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마음을 다해 예배하고 순종하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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