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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홍렬 <11> 천재 같은 전유성 선배… 멘토로 여기고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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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그맨이 전유성 선배 앞에서 재미있는 개그를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형님, 이거 제가 처음 만든 개그예요.” 그의 얘기를 들은 전 선배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내 입에서 나와서 너한테 듣는 데까지 5년 걸렸어.”

전 선배는 촌철살인의 대가다. 선배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많다. 매번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면서도 본인은 무심한 표정을 짓는 게 포인트였다.

한번은 느닷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 “주소 불러 봐”라고 하신 적이 있다. “네? 아니 왜요?”라고 묻자 그는 “책 보내줄게”라고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늘 핵심만 말하는 분이었다. 이런 선배를 자주 후배들에게 자랑했다. “너희들은 갑자기 후배한테 전화해서 책 보내준다는 선배 있어?”

전 선배는 천재 같은 면이 있다. 연극 용어인 ‘개그’를 가져와 개그맨이란 단어를 처음 대중화시켰고 KBS 2TV 개그콘서트를 기획해 공개 코미디의 시대를 열었다. 독특한 독서 습관을 보면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선배는 침대 화장실 거실 서재에 책을 한 권씩 놔두고 그 자리에 갈 때마다 읽는다고 했다. 누군가 “그렇게 읽으면 헷갈리지 않을까요. 한 권 다 읽고 다음 책을 읽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라고 하자 선배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책을 안 읽어 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야.”

전 선배는 후배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분이었다. 예전 다른 선배 중 만날 때마다 연락을 안 한다고 야단치는 분이 계셨다. 어느 날 전 선배는 안부전화를 안 한다고 후배들에게 짜증을 내는 선배들에게 특유의 말투로 한마디 내지르셨다. “선배도 후배가 보고 싶으면 먼저 전화하면 되는 거지이∼. 왜 꼭 후배가 먼저 전화해야 하는 거야아.” 선배는 실제로 갑작스레 내게 전화하기도 한다. “야, 홍렬아. 서울 왔다가 그냥 전화했어. 끊는다.” “홍렬아, 홍대인데 나올 수 있냐. 바쁘면 그냥 일 봐.”

2009년 서울 마포의 한 호텔에서 열렸던 전 선배의 환갑잔치 역시 인상적이었다. 연예인들은 보통 잔칫집에 가면 축의금과 동시에 노래를 하나 준비해야 한다. 좋은 날이라 즐겁게 축하하면 되지만 어떨 때는 망설여지거나 무대에 올라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그는 하객 중 단 한 명도 무대에 올라가지 않도록 했다. 무대에서는 다른 팀을 불러서 공연을 했다. 찾아온 개그맨과 연예인 후배들은 모두 편안히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선배의 배려심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 선배는 현재 경북 청도에서 ‘코미디철가방극장’이라는 개그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개그 공연뿐 아니라 강의도 하고 있어 코미디 사관학교라 불린다. 특히 반려견과 주인이 함께 참석해 즐길 수 있는 ‘개나소나 콘서트’는 2009년부터 매년 열리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선배는 이처럼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배들을 위해 새롭게 도전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서 늘 선배를 멘토처럼 생각한다.

썰렁하지만 전 선배가 하면 재밌는 ‘아재개그’가 생각난다. 선배한테 이렇게 물었다. “형, 사도세자 보셨어요?” “사도가 왜 세 자야. 두 자지.” 쉴 틈도 없이, 대비할 여지도 주지 않고 쏟아지는 선배의 개그가 나는 참 좋다.

정리=구자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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