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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승율 <10> 질병 치유 기적에 이어 큰 교통사고에도 멀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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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출석한 지 2년째 되던 해 나와 아내는 몸 안에 자란 치명적인 질병을 발견해 치유했는가 하면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는데도 멀쩡한, 기이한 사건을 체험했다.

1991년 7월 교회 성도 6가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열사(熱沙)의 땅을 3주간 강행군해야 하는 상황이라 각자 건강을 체크하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다. 혈액검사를 했더니 GOT, GPT 수치가 650 IU/L(40 IU/L 이하면 정상)가 넘었다. 나는 청년시절부터 간이 좋지 않았고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였다. 아버지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CBMC에 처음 나갔을 때 ‘걸어 다니는 송장’이란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술독에 빠져 살아왔다.

의사가 놀랐다. 일주일 후 재검사하니 900 IU/L가 넘게 나왔고 세 번째 진단을 받으러 갔을 땐 1200 IU/L까지 치솟았다.

“당신, 죽으려면 성지순례 가고 살려면 여기 올라가요.”

의사가 가리킨 ‘여기’는 병원 침대였다. 곧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에 따르면 당시 나는 간이 급속도로 나빠지던 시점이었다. 간이 괴사하면서 나오는 피가 혈관을 통해 나가다 보니 GOT 수치가 급등했던 것이다.

이 시점이 지나면 간은 굳어지는 과정을 밟는다. 일단 굳기 시작하면 치솟던 수치는 뚝 떨어져 60, 70 IU/L 정도로 낮아진 상태에서 안정된다. 이때 측정하면 사람들은 “간이 약간 나쁜 정도네” 하고 소화제나 먹고 넘어간다. 그러다 3∼6개월 지나면 간은 회복 불능인 경변 상태로 변하고 만다.

내가 검사받던 그 시점이 바로 간경화 초기에 나타나는 활동성 중증 간염 상태였다. 1개월간 입원해 급한 증상을 치료한 다음 집에 돌아와 6개월을 투병했다.

그전에 아내는 나보다 먼저 척추수술을 했었다. 정형외과에선 1980년 80바늘을 꿰맸던 후유증이라 해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러다 소개받은 기독인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CT 촬영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이대로 놔두면 불구가 되기 십상입니다. 즉시 수술해야 합니다.”

척추 바깥으로 디스크가 튀어나와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은 12시간 넘게 걸렸지만 신기하게도 딱 한 가닥의 신경에만 혹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가장 경미한 신경이었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수술로 완치됐다.

절체절명의 교통사고는 1994년 8월 중순 발생했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에서 제2회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전국대회를 마친 뒤 아내와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곤지암IC를 지나면서 앞차를 추월하려다 뒤에서 오는 차량을 보지 못했다. 뒤늦게 충돌을 피하려고 차를 지그재그로 달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력을 다해 핸들을 움켜쥔 채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살리고 죽어도 내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있는 쪽으로 핸들을 틀었던 것이다. 에어백이 터지고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웠다. 차량이 중앙분리대와 완전히 직각을 이루면서 충돌하는 바람에 차체가 전혀 찌그러지지 않은 채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만약 각도가 90도에서 조금만 어긋났어도 전복되고 차체는 엉망이 됐을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할렐루야!

정리=정재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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