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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여가화를 통한 사회적 변동과 쉼의 목회 - 주 5일 근무제의 실시와 한국 교회의 당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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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화를 통한 사회적 변동과 쉼의 목회

-주 5일근무제의 실시와 한국 교회의 당면 과제-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머리말

 

2003년 8월 29일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1000인 이상의 대기업은 2004년 7월부터 주일과 함께 토요일에도 근무를 쉬게 되며 차츰 그 규모를 넓혀 나가 2008년에는 20인 이상의 중소기업도 이 주5일근무제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한다. 이러한 전면적인 주5일근무제의 실시는 우리 일반적인 생활과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우리 목회에도 급격한 방향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막연한 예상을 우리는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이 사회적인 변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환되어질지 예상하지 못하고 있고 또 이것이 우리들의 목회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며 우리 목회자들은 이에 어떠한 대응책을 내 놓아야할지 아직은 정확한 판단을 이루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에 본고에서는 목회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먼저 주5일근무제가 가져올 사회적인 변동을 예측해 보고 그것이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는지, 또 부족하나마 목회적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아직 주5일근무제의 학문적 접근이 이루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많은 부분 학문적 증명 보다는 개인적 예측에 의존하게 됨을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이곳에 미리 밝히는 바이다.

 

1. 안식일과 주일의 의미

주일성수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고백의 가시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주의 날을 거룩하게, 즉 그 날을 구별하여 지킴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자신이 고백하는 신앙을 따라 지키어야할 것이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세상에 스스로가 주일을 기준으로 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일을 기준한 신앙고백은 그 가운데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은 이 세상에 창조자(출 20:8-11)이시며, 동시에 그가 우리의 구원자(신 5:12-15)이심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백은 십계명으로부터 이어지는 Sabbat의 전통에 따라 우리 신앙형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것은 우리 신앙고백의 가시적 형태로 표현되어져 왔다.

주일의 구약적 의미는 안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두 곳의 말씀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것은 쉼 없는 노동의 삶 가운데 쉼의 신적 정당성의 부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은 신앙의 고백이 있는 자들이 쉬어야했음은 당연하며 그 자녀들도, 남종과 여종들도, 그에 더하여 소나 나귀와 같은 유축들도 쉼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날로 의미되어졌다, 이러한 쉼의 정신은 안식년과 희년의 역사에서도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안식년(레 25:2)에는 그 쉼의 범위가 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또 희년(레 25:8-17)에는 축제의 의미까지 더하여 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안식일로서의 의미는 쉼에 있으며 그 쉼은 노동에서의 놓임을 의미하며 동시에 이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지는 기억과 의미부여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기에서의 쉼은 일상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일하며, 일하기 위해 노동하는 인간들에게 그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부여이며 또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되찾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한 삶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의미부여는 신앙고백으로 이어지며 사색 가운데 일상의 영성을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 자신임을 선포하신다. (막 2:23-28) 그것은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함을 강조하시어, 안식일이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바리새인들의 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안식일이 인간에게 쉼이 되어지지 아니하고 짐이 되어지고, 인간의 신앙고백에 의한 준수가 아니라 안식일의 준수를 통한 자신의 의의 증명이 되어지는 것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는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잊고 있었던 안식일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며 그 주인 되시는 주님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이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의미 가운데 부활의 날로 기념되어지게 되었고 이후 안식일이 아니라 우리의 부활에 대한 고백으로 주님의 날로 기념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일은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가운데 우리 인생의 의미를 돌이키며 우리 일상의 영성을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하여야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을 위해 제정되어진 안식일의 의미를 되찾으며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행위적 신앙고백이 되어져야할 것이다.

 

2. 여가와 자유, 그리고 안식

주5일근무제의 의미는 근로시간의 단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주5일근무제라고 하는 것의 핵심 사항은 주40시간노동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이 개정된 근로기준법 49조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져 있다. 1989년 1주당 근로시간이 44시간으로 규정된 이후 15년 만에 또 이루어진 노동시장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어 주당 48시간의 노동시간이 법적으로 규정된 데서 36년 만에 주당노동시간이 4시간 줄어든 것에 비한다면 이것은 사회적 변화의 속도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과 비교를 해 본다면, 이미 1967년 주5일근무제를 도입한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상당히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늦은 주5일근무제의 도입은 이것이 단순한 경제적 논리에 의한 사회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여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독일에 비해 40년 정도의 경제적 차이가 남으로 인해 이러한 시간적 차이가 생긴 것이 아니라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기에 그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여가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근면에 대한 신성한 견해들이, 좀 더 넓게 말한다면 인간에 대한 낮은 가치기준들이 주5일근무제의 도입을 이제까지 저지해 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주5일근무제의 도입은 여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노동에 비한 인간의 가치에 대한 재고 역시 강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여가사회학자 스탠리 파커(Stanley Parker)는 여가(leisure)의 정의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첫째 여가를 잔여시간(residual)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그리고 식사와 여러 생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으로서의 여가이해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시간적 관점에서의 여가를 논하는 것이 아닌 여가 참여자들의 정신적 상태에 의해 여가를 정의하는 관점이다. 즉 여기서는 주로 여가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의미들이 부여되는데 여가를 단순히 외재적인 요인들의 결과라든가 혹은 남는 시간, 휴일, 주말, 휴가의 결과가 아닌 마음의 태도이며, 영적인 상태로 보는 견해이다. 예를 들면 ‘자유’라는 개념으로서의 여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규칙으로부터의 자유, 또는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부과된 행위로부터의 자유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이러한 두 견해의 복합적 접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여가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의미부여에 따른 규범적 진술과 함께 시간적인 관점에서 여가를 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노동 혹은 그 밖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우며 휴식, 기분전환, 사회적 성취, 개인적 발전을 위한 목적에 활용되는 시간으로 정의되는 여가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실제적 의미에서 여가는 어떻게 이해되어지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남는 시간이라는 의미의 여가(餘暇)라는 단어의 사용에서 보듯이 여가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견해가 일반적으로 주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 비해 산업화가 늦게 시작되어진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구별이 뒤늦게 도입되어졌다. 이것은 일과 삶의 구별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농경문화의 영향이 늦게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고 또 근면이 강조되는 가운데 여가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생산하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는 여가를 노동과 삶에 필요로 되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이외에 잔여시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또 여가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여가란 노동을 위한 재충전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다시 일하기 위해서, 또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여가가 필요로 되어진다는 시각인 것이다. 즉 육체적 휴식으로서의 여가와 정신적 긴장의 완화를 위해서 여가가 필요로 되어진다는 것이다. 또 여기에 덧붙여서 여가는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즉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야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가는 쉼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함에 의한 시간이 아니라 더 나은 노동을 위한 강요의 시간일 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가라는 의미에는 자유라는 의미가 더 해져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Gordon Dahl이 이야기하듯이, “오늘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여가는 자유시간이 아니라 자유정신이며, ‘더 많은 취미활동과 즐거움이 아닌 일상의 바쁨’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하는 은총과 평화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 자유의 시간은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의 시간을 제외한 시간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즉 노동력의 재창출과 효율성의 재고를 위한 강요되어진 시간이 아니라 내가 꾸며 나갈 수 있는 나의 시간이 되어질 때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이 발견되어지고, 삶의 의미가 되찾아지고, 그의 세계가 자리를 찾아나가는 시간으로서 자유가 드러나며 그의 삶의 소망이 현실이 되어지는 시간으로서 기쁨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성서는 이러한 자유와 기쁨을 안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우리 인생은 7일의 생애주기가 만들어져서 그 일곱째 날에 우리는 쉬며 그 안에서 창조주의 권능 가운데 만들어진 세계를 바라보며, 구원자의 손에 의해 생명으로 의미되어진 자신을 발견하고, 율법이 아니요 인간을 주목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케하심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또 그것은 부활의 주로 우리 인생의 소망을 주시고, 또 그 첫 열매가 되심으로 소망의 현실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우리 인생은 이 시간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가 이야기하는 안식은 진정한 자유의 시간의 누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주5일근무제가 가져올 사회적 변동사항과 목회적 변화 예측

주5일근무제는 이 사회와 교회에 단순한 주말의 연장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길어진 주말로 인해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고 2박3일로 산으로, 들로 여행을 나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비어갈 것이라는 예상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안일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단순한 사고대로라면 교회에서 강요되어진 여가 가운데 있는 은퇴자나 퇴직자들, 그리고 실직자가 눈에 띄게 없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은퇴자나 퇴직자의 경우는 교회에 더 자주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5일근무제의 의미는 이렇게 단순한 물리적 시간의 배분문제가 아니라 이제 이 사회가 본격적인 여가사회, 아니 본질적으로 말해 자유시간사회(Freizeitgesellschaft)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신세계의 변동과 삶의 태도, 그리고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의미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들과 그러한 것들이 교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본인의 독일에서의 13년간의 생활에 비추어 실증적인 고찰을 해 보고자 한다.

실제적으로 주5일근무제로 여가산업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할 수 있다. 또 그것이 교인들의 교회출석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서구사회에서와 같이 큰 영향력을 줄지는 의문이다. 그 이유로 먼저 주5일근무제의 단계별 도입을 들 수 있다. 고용인원 1000명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 올 7월부터 주5일근무제가 도입되지만 그 외의 사업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2008년까지 단계별 시행을 기다리거나 아직 그 기대가 요원하다. 더구나 한국과 같은 노동관에서 그 시행이 그렇게 일괄적으로 행해질 수 있을지 역시 의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의 유급휴가일수가 공식적으로 22일에 달하지만 그렇게 휴가를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이 주5일근무제가 도입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그렇게 전체적으로 시행이 되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더구나 학교의 경우 2005년부터 초, 중, 고등학교에서 월 1회 주5일 수업제가 실시되고 그 후는 아직 정확한 계획이 나와 있지 않는 상태인지라 학생들에게 있어서 주5일 수업제는 우리나라 교육여건상 그렇게 쉽게 빠른 시간 내에 되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이 든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여가를 즐기기 위한 토대를 갖춘 사람이 그렇게 많겠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이것은 여가와 사회계층화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록 여가를 위한 가용시간은 계층간에 비슷할 수는 있다할 지라도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은 계급적으로 구분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문제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많은 부분 소비지향적 여가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그렇게 자주 주말을 교외로, 해외로, 그것도 며칠씩 숙박을 하면서까지 보낼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본다. 더군다나 주5일근무제는 가계수입의 감소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노조에서는 반발하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이라는 궁극적 의미에서는 월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아이들의 교육비가 가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시간적 여유가 곧바로 여행과 같은 소비성 여가로 연결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셋째 아직 우리는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일천하다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많은 사람들은 개인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너른 정원에 가족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여건이 되어져 있다. 그들은 정원을 가꾸고 집안을 가꾸며 시간을 보내면서 여유롭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즐길 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성과위주의 삶의 태도를 가진 우리로서는 그러한 여가의 자유함을 즐기기에는 아직 그 문화가 이루지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본인이 격은 독일 사람들의 경우는 여행을 가도 길게는 한달을 또는 일, 이주일을 한 곳에 머물며 여유를 즐기는 여행을 한다면 한국 사람의 경우, 특히 유럽의 경우는 10일 안에 몇 개국을 다녀왔는가에만 관심이 있고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는지는 관심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심한 경우는 10일간 5000km를 운전을 하였다는 등의 여행무용담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한국 사람들은 여행도 성과위주의 관점에서 하며 그 가운데 자유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러한 여가관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연장된 주말은 즐거움이 아니고 오히려 부담일 수 있다. 더구나 국민의 대부분이 좁은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는 현실에서 그 주말은 오히려 여유로움이 아니고 강요되어진 문화소비로의 내몰림이 되어질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본다.

위와 같이 주5일근무제는 교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외적요인으로만 본다면 그간 바쁜 직장 일 때문에 주일에 해야 했었던 일들을 토요일로 분산시킴으로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여건이 되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젊은 가정의 경우 부모님을 찾아뵙는다든가, 결혼한 형제들이 모인다든가 하는 경우들일 것이다. 또 못 만났던 친구를 본다든가 취미활동 등의 일을 토요일에 함으로 주일을 교회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중에 미루어 놓았던 가사(家事)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 역시 토요일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5일근무제의 도입이 가져올 문제점은 이와 같이 놀이문화에 근거된 여가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주5일근무제가 가져올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 실증적 예를 본다면 첫째 노동관의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1주일에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던 것에서 이제 이틀을 쉬고 5일을 일하는 삶의 패턴과 노동관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제 주5일근무제를 통하여 우리 사회가 결핍사회에서 완전한 잉여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그리고 가정생활의 유지를 위해 인간이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며 일하던 시대에서 인간다운 삶의 유지를 위한 토대마련을 위한 노동으로 그 의식의 변화가 생기게 됨을 의미한다. 즉 노동을 위한 여가가 아니라 여가를 위한 노동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삶의 질의 문제로 연관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표출될 것이다. 결핍되고 경쟁이 고도로 조장된 사회 속에서 이제까지 쉼 없이 살던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 속에서, 그리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쉼 가운데 보게 됨으로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고 가치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색 가운데 일보다, 그리고 돈보다 더 귀중한 것들에 대해 눈뜨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동관의 변화는 교회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필자의 소견에는 노동관은 소위 교회의 일군으로 불리는 교회사역에 적극적인 자들의 삶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자유시간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면서, 즉 삶의 중요한 부분이 노동시간인가 자유시간인가에 대한 가치의 판단이 변하면서 교회에 시간을 내는 사람들의 태도도 많이 변해 갔다. 노동시간이 많고, 그 강도가 더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헌신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70년대, 80년대 공장의 노동자들과 그 외의 일하는 자들이 -본인의 경험과 기억에 의하면- 현재에 비하면 오히려 교회에 더 헌신적이었다. 금요일 밤이면 정말 밤을 새워가며 철야기도를 했고, 무슨 행사가 있으면 모든 노동과 노력의 헌신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교회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고 교회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성령에 취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러나 자유시간에 대한 개념이 생겨난 요즘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는 더 많아졌지만 예전과 같은 노동적 교회헌신은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철야기도가 짧아지고 주일도 교회가 오후 3-4시 이후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회의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닌 자유함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독일의 실천신학자 랑에(Ernst Lange)는 이러한 자유시간에 대한 욕구는 세 가지 단계로 사람들의 후퇴(R?ckzuck), 또는 도피(Flucht)로 나타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단계로 사생활로의 (R?ckzuck ins Private) 후퇴, 즉 사생활화(Privatisierung)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작은 세계”로, 그리고 다른 어떤 주권의 지배가 없는 나의 공간으로의 들어감을 의미한다. 우리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예를 들어 나의 집, 나의 정원, 나의 차, 나의 캠핑장 등과 같은 경우라고 열거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로 친밀함으로의 후퇴(R?ckzuck ins Intime), 즉 가족화 (Familisierung)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세계 속에서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 안에서,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동아리 등에서 마음을 나누는 것을 인생에 중요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행복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나누는 행위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상처 받기 쉽고 깨지기 쉬운 법이다.

세 번째 단계는 회로의 후퇴(R?ckzuck in die Ablenkung), 즉 흩어짐이며, 동시에 단순한 시간 죽이기 (Zeit-Todschlag)로의 도피이다. 상처받은 인간들은 그가 할 수 있는 한 위로 받으려 한다. 그래서 방어적으로 가족 간의 대화가 침묵되고 T.V.가 대화를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쾌락적 도구의 소비를 통한 위로에 치중 할수록 그 위로는 더욱 의미를 상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시간인간(Freizeitmenschen)의 행태는 이미 한국교회에서 일정 부분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가 보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주5일근무제로 인한 자유시간시대에 돌입하게 되면 그 진행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언급했듯이 교회에서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정당한 이유들로 인해서 사라져 갈 것이다. 이제 우리 교인들은 참여를 통한 전적 헌신보다는 교회의 서비스를 즐기는 선택적 참여자로 변모할 것이다. 극장에 사람이 모이듯 소비적 교인들은 자신과 가족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일정 기준에 따라 선택하여 모여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교회는 동원형의 이벤트성 목회보다는 자신의 작은 세계에 있는 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그 안에서 친밀함과 자신의 여가적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그러한 소그룹 중심의 목회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둘째로 사람들의 의식이 쉼으로 전환될 것이다. 쉼은 인간의 내면화를 이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경쟁사회 속에서 이루어진 목적지향적 삶에서 안정화된 삶으로의 전환이다. 외부와 단절된 이틀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찾아가고 이끌림을 당하는 시간이 아닌 자신이 꾸며야할 그 시간 속에서 사색하며 인생의 시적, 종교적 의미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그러한 쉼에 익숙해질 것이며 요란한 이벤트성 교회 프로그램에서 떠나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색적 교회로 찾아가게 될 것이다.

특히 요즘 개신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미흡하나마 성장세를 유지하는 가톨릭이나, 꽤 의미 있게 성장하고 있는 불교의 경우를 본다면 이러한 쉼을 찾는 현대인들의 정서적, 종교적 성향은 점점 더 뚜렷해지리라 믿는다. 그 한 예로 불교에서 최근에 시행하고 있는 ‘산사체험’ 프로그램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이 큰 호응을 얻는 것은 단순한 이벤트의 문제가 아니고 쉼 가운데 시적, 종교적 의미를 찾고자하는 현대인들의 심성에 다가간 결과라고 생각을 한다. 특히 많은 개신교인들이 불교로 전환하고 있는 데는 이러한 영향이 적지 않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내면지향적인 종교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로 되어지고 있으며 교회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의 목회적 방법론의 전환이 필요로 되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아버지들의 귀환이다. 물론 아버지가 가정으로 돌아옴으로 인해서 가정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가족이 여가시간에 모여 있음으로 인해서, 그리고 그 여가를 함께 보낼 수 있음으로 인해서 가족애가 더욱 돈독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우리보다 일찍 여가사회를 이룬 선진국의 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들이 모두 여가에 대한 기대가 다를 수도 있고 주말이 오히려 T.V.나 보는 무기력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옥외에서 여가를 보내기 힘든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는 그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가정은 산업화 이후 이제까지 어머니 중심의 구역이었다. 특히 자녀의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히 어머니 중심적이었으며 동시에 그것은 어머니들의 삶의 의미로 또는 목표로 설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이제까지 아버지는 경쟁사회에서 가정에 물질을 조달하기 위해 가정의 굴레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가정에 경제적 재원을 조달하여야하는 역할 가운데 살았고 그에 상응되는 가정 내 인정을 받아왔다. 주5일근무제는 이제 이 아버지들의 귀환을 의미한다. 물론 여러 가지 긍정적인 현상들이 기대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제 한국 가정들은 귀환한 아버지들로 인한 혼돈이 예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가정 내 질서권의 혼돈이 있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과 육아에 관해서, 그리고 시간배분과 소비문제에 관해서 남자와 여자의 관점은 많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제 여성 중심의 가정질서는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 속에서 새로운 갈등의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문제로서는 남자들의 존재의미의 전환이다. 이전까지 일하며 돈버는 기대역할을 수행하던 남자들이 가정으로 돌아올 때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한 전환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어색한 가정환경 속에서 이틀간 그들이 받아야할 스트레스는 이전까지 자신이 가졌던 사회적 관계속의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또 이것은 위에서 예를 들었던 장로님과 같이 자신의 삶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아버지들의 의미전환 역시 심각한 가정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 아버지의 귀환으로 인한 문제는 그리 장기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전까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문제로 나타나게 되리라고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최근에 들어 이혼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데는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해, 그리고 그에 따른 의미전환의 문제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가장의 경제적 역할에 의한 존재의미는 실업과 상대적 빈곤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을 가출과 자살로 몰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이 부분에서 참여할 것이 많이 있다고 본다. 특히 남자들이 가정이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서 만나게 되는 일상(日常) 가운데 자신을 적응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데 있어서 신앙적 의미부여의 과정에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넷째는 다양한 노동양태이다. 주5일근무제는 여러 의미에서 다양한 노동시간에 따른 노동양태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먼저 여러 직장들이 1주일에 이틀을 쉴 수 없는 경우들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생산 공장의 경우 이틀을 쉴 경우 생산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기계가 그렇게 쉴 수도 없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면 그것은 잔업만으로 채울 수 없는 공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맞는 주말형 노동자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또 사주의 입장에서 볼 때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순수한 임금 이외에도 여러 가지 들어가는 비용이 많은데 비하여 노동시간은 오히려 짧아졌으니 정규직 노동자 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선호되어질 것이다. 특히 이 부분은 현재 벌써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작년의 통계로 볼 때에 이미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동자를 그 수에 있어서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5일근무제로 여가사회가 되면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서비스 업종에 노동자들이 늘고 그들은 불규칙한 노동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인해 일주일에 4일이나 3일을 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고, 주말노동자, 주야교대근무자,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벌써 젊은이들 사이에서 정규직장이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알바인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이 현상은 저변화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교회에 이제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정해진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어떤 모임 속에서 공동으로 가질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이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상대적 빈곤 속에서 여자들도 사회적 일을 가지고 있는 경우 교회는 더욱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통의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도 교인 전체의 모임을 지향하는 모임 보다는 소그룹 모임의 활성화를 통하여 교인들이 그들의 시간여건에 맞는 모임에 모일 수 있도록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도 교회에서 지역적 여건에 따라 지정해 주는 구역모임과 같은 소그룹이 아니라 서로 시간을 맞출 수 있고 뜻이 맞을 수 있는 소그룹을 개발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회의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4. 제안과 가능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5일근무제는 우리에게 쉽지 않은 목회여건을 만들어 갈 것 같다. 물리적 조건 보다 더욱 문제가 되리라 생각되는 것은 역시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이다. 이제 교회는 김성봉이 지적한 바와 같이 환란과 핍박의 시대를 지나 유혹과 회유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투쟁의 대상을 볼 수 없는 정신적, 영적 전투에 처하게 된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진행할 수 있는 목회적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안식의 회복이라고 본다. 소비적 여가산업과의 경쟁 속에서 화려한 이벤트로 교인들을 불러 모이는 것은 이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제 교회는 교인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안식을 돌려 주어야할 것이다. 이 안식은 육체적 쉼과 함께 삶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정신적 쉼이며 동시에 창조주 되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으로 나타나야 한다. 또 그것은 우리의 일상 가운데 발견되는 하나님의 신비에 근거한 일상의 영성이어야 한다. 이제 교회로 모이는데 치중되는 영성이 아니라 우리 교인들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사색의 영성으로 드러나는 경건이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나의 삶의 의미를 되찾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나가는 영성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쉼과 안식에 근거한 목회를 위해 교회는 이벤트가 아닌 쉼의 공간으로 교회를 전환하고 신앙의 내면화와 영성에 근거한 예배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또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훈련을 위한 교육활동의 활성화를 이루어야할 것이다. 성경지식의 축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신앙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해야할 할 것이다.

둘째 가정회복의 목회가 되어야할 것이다. 아버지의 귀환 이후 겪게 되는 변화 가운데 교회의 역할을 찾아야할 것이다. 길어진 주말로 무료함에 지친 가족들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어야한다. 주일 아침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또 한 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회로 오는 행복한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 교인들의 심장에 심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족들이 서로 헤어져지고 나뉘어 지는 일이 줄어들도록 주일 봉사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하면서 교회직원들의 일을 늘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셋째 창조적인 소그룹 활동을 장려해 나가야할 것이다. 이 소그룹은 자발적 참여를 근거로 하며 인생의 의미를 전환해 줄 수 있는 창조적 소그룹이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이 자신들의 여가에 대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즉 소비적 여가 양태에서 신앙적 여가로의 전환을 돕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봉사적 모임으로 토요일이면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모임을 갖는다든가 무의탁 노인을 찾아가 돕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여가적 모임으로 스포츠나 영화, 문화행사를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을 갖도록 장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적 모임으로 세미나 형태의 소그룹 연구모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관심 사항에 따라 폭넓은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소그룹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행위와 사회적 인정에 근거했던 존재의미에서 나눔에 근거한 존재의미를 찾게 될 것이며 우리로 믿음 안에서 행복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을 통한 존재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에 살펴본바와 같이 주5일근무제는 우리 인생에 새로운 Paradigm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동시에 교회에 목회의 새로운 Paradigm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까지 개교회주의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 폐해를 낳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사회적 변동에 개교회의 쇠퇴와 성장으로 발빠르게 적응해 온 것 역시 사실이다. 또 그로서 각 시대마다 요구되어지고 있는 역할과 기능을 감당하며 성장하여 온 것이다. 이제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함께 성장하여온 한국교회가 여가화의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의 전환 시기에 와 있다고 본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교회의 부침 가운데 이 새로운 사회적 변동 가운데 적응해 나갈 것이다. 바라기는 그 피해가 적으며 많지 않은 시간 안에 한국교회가 다시금 부흥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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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경험, 신앙 그리고 교육, 「한국개혁신학」, 한국개혁신학회, 2004, 논문집 15권, p.215-239.

조성돈, 목회사회학. 행동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실천신학 접목, 「신학과실천」 한국실천신학회, 2004, 제7호, p. 83-103.

한미준/한국갤럽, 「한국개신교인의 교회활동 및 신안의식 조사 보고서」(서울: 두란노 1998)

Biehl, Peter: Erfahrung, Glaube und Bildung. Studien zur erfahrungsbezogenenen Religionspaedagogik, Guetersloh 1991.

Frost, Michael, 「Eyes Wide Open. Seeing God in the Ordinary」홍병룡 옮김, 일상, 하나님의 신비 (서울: IVP 2002)

Lange, Ernst, Mehr Zeit-Chance f?r unser Menschsein, in: Ders., Sprachschule f?r die Freiheit. Bildung als Problem und Funktion der Kirche, Gelnhausen 1980.

Parker, Stanley, 「The Sociology of Leisure」이연택, 민창기 옮김, 현대사회와 여가 (서울: 일신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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