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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을 지키는 길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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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지키는 길 (창세기 3장 1-6절)


< 영적인 안전거리를 두라 >

 저는 1988년 미국에서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땄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여름에 시카고에서 개최된 <한인세계선교대회>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자정이 넘어 억수같이 비가 내릴 때 졸면서 운전하다가 죽을 뻔한 큰 사고를 당했다. 다시 얼마 후 초겨울에 뉴욕 시내 고속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7중 충돌을 일으켰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주차장에서 동료 목사님의 차 범퍼를 손상시킨 것 외에는 30년간 길에서 사고를 낸 적이 없었다.

 30년간 차 사고가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위기의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40세 이전에는 졸음운전도 많이 했다. 고속도로에서 앞차와 30센티쯤 남기고 급정거하기도 있었다. 그래도 30년 무사고에는 한 가지 운전습관이 큰 기여를 했다. 안전거리를 상당히 두고 운전하는 습관이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안전거리만은 최대한 지켰다.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2가지는 필수적이다. ‘과속하지 않는 것’과 ‘안전거리를 두는 것’이다.

 인생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도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과속하지 말아야 한다. 저는 새벽에 기도할 때, 책상에서 말씀을 묵상할 때, 사우나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제일 잘 들린다. 하나같이 마음의 속도감을 최대한 줄였을 때다. 운전하며 영어를 들을 때 천천히 운전하면 잘 들리지만 빨리 운전하면 잘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도 인생을 과속하지 않을수록 잘 들린다. 그래서 침묵 시간과 여가 시간도 필요하다.

 둘째, 안전거리를 두어야 한다. 좋은 것은 가까이하고 나쁜 것은 멀리해서 영적인 안전거리를 두라. 사탄은 끊임없이 다가와 영혼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신앙이 어릴 때는 위협 방법을 쓴다. “너, 예수 믿으면 죽어!” 그러나 신앙이 깊을 때는 위협하면 더 하나님을 찾기에 신식 예수 믿는 방법으로 미혹한다. “믿으려면 정도껏 믿어라. 주일에 예배드리면 되지 왜 매일 아침마다 말씀을 보느냐? 머리만 커지면 안 된다. 아무개 집사는 성경공부도 하는데 왜 삶과 인격에 변화가 없느냐?” 그런 말들이 영혼을 삼키는 수렁이 될 수 있다.

 본문에서도 사탄은 하와에게 핍박보다 유혹으로 찾아왔다. 만약 사탄이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이 거짓말을 했어. 선악과를 먹으면 최고의 지혜와 능력을 얻고 죽지도 않아.”라고 하거나 하와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선악과를 먹이려고 했다면 하와는 죽어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와에게 슬쩍 찾아와 간교한 말로 하와를 유혹했다. 말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요즘은 말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말보다 삶으로 말하려고 하고 말보다 삶을 보면서 영적인 안전거리를 두려고 해야 영혼을 지켜낼 수 있다.

< 영혼을 지키는 길 >

 지금도 사탄과 이단의 유혹이 곳곳에 덫처럼 놓여 있다. 그런 유혹으로부터 영혼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사탄의 간교함을 알라

 본문 1절 전반부를 보라.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은 원래 ‘기는 동물’이 아닌 들짐승(wild beast)이었는데 사람을 죄에 빠뜨린 사탄의 이용도구가 된 후 저주 받아 지금처럼 기어 다니게 되었다. 뱀이 어떤 간교한 행동을 했는가? 먼저 여자를 유혹 대상으로 삼은 점이 간교하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창세기 2장 22절에서 하와를 만들기 전에 주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들은 아담보다 간접적으로 들은 하와를 유혹하기 쉽기에 사탄은 먼저 하와를 찾아온 것이다.

 하와가 혼자 있을 때 유혹한 점도 간교하다. 사탄이 볼 때 고독과 외로움은 시험의 최적기다. 사람은 대개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죄에 쉽게 넘어간다. 또한 하와가 선악과 바로 옆에 있을 때 유혹한 점도 간교하다. 본문 6절에 나오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이란 표현은 그때 하와가 선악과 근처에 있었다는 암시다. 사탄은 물건을 보면 탐심이 생기는 견물생심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하와가 경계심을 갖지 않게 접근한 점도 간교하다. 본문 1절을 보면 사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지 마!”라고 윽박지르지 않고 질문 형식을 빌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했기에 하와가 경계심을 풀고 그 말에 응대한 것이다. 사탄은 처음부터 죽일 듯이 찾아오지 않고 처음에는 논리적인 말 몇 마디나 로또 2등에 당첨된 것이나 가벼운 인터넷 채팅이나 문자 등의 작은 미끼를 가지고 찾아온 후 점차 영혼을 사로잡는다.

 사람은 아무리 영리해도 사탄의 간교함을 따를 수 없다. 불신적인 영리함은 간교한 사탄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사탄의 간교함을 알고 늘 작은 의심, 작은 죄, 작은 불성실, 작은 부정적 불씨도 주의하라. 나쁜 사람은 남과 공동체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대의보다는 자기 유익을 위해 은근히 이간질을 한다. 실제로 싸울 자신과 배짱도 없으면서 이간질로 사람 간에 싸움을 붙이는 사람이 꼭 있다. 그런 이간질에 속지 말라.

 요새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화해 무드 자체를 은근히 깨려고 이간질하는 세력도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일본과 중국의 치우친 정치 세력들이다. 분단국 국민은 분단 자체보다 분단을 이용하는 이간질 세력으로부터 더 큰 고통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 이간질에 속으면 삶과 영혼을 통째로 빼앗길 수 있다. 고난도 고난 자체보다 고난을 이용해 간교하게 사람 마음을 이간질하고 거짓된 치유와 예언과 능력과 축복을 내세워 미혹하는 사탄과 이단으로부터 더 큰 고통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 미혹에 당하지 않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력을 기르라.

2. 유혹의 자리를 멀리하라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면 선악과 근처에는 가지도 말아야 하는데 선악과 주위에서 서성거리다가 사탄의 덫에 걸린 것이다. 믿음이 좋아도 유혹의 자리는 힘써 피하고 유혹하는 물건은 쳐다보지도 말라.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인생도 크게 달라진다. 특히 본문 6절의 표현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 생긴 것을 주의하라.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어느 날 한 사람이 죽어 저승사자 앞에 섰다. 사자가 물었다. “천당에 갈래? 지옥에 갈래?” 그는 지옥에 갈 줄 알았는데 선택권을 준 것을 의아히 여기며 주제넘게 부탁했다. “천당과 지옥을 한번만 구경해도 되나요?” 곧 천당과 지옥 영상이 인터넷에 떴다. 천당을 보자 사람들이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높이는 얘기만 했다. 따분해 보였다. 반면에 지옥을 보니까 화려한 카지노가 있고 고액 칩이 원하는 대로 주어지고 고급 양주도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전 아무래도 지옥 체질입니다.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지옥을 택했다. 결국 지옥에 갔는데 가자마자 뜨거운 불길이 쏟아지더니 사방에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니! 아까 그 장면은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했다. 저승사자가 말했다. “이 사람아! 아까 그곳은 지옥 관광비자로 잠깐 들르는 곳이고 지옥 영주권자는 평생 이 맛을 봐야 돼.”

 보암직한 것은 영혼을 삼키는 미끼가 될 수 있다. 나쁜 자리는 힘써 피하라.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할 때 미혹되기도 쉽기에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혼자 고립되지 말라. 요새 자녀 교육 문제로 부부가 오래 떨어져 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사탄이 신나서 춤출 것이다. 그것은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는 행위다. 하와가 아담에게서 떨어지자 뱀이 찾아왔다. 좋은 것에서 떨어지면 나쁜 것이 찾아오고 나쁜 것과 접촉하면 좋은 것이 떨어진다. 예배와 교제와 봉사 자리를 힘써 찾고 나쁜 사람도 힘써 피하라. 정보다 정의가 중요하다.

3. 입과 귀를 잘 지키라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묻자 하와가 대답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2-3절).”

 하와의 대답을 창세기 2장 17절의 하나님의 명령과 비교하면 하와는 2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에 자기 말을 더한 잘못’이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면서 하나님 말씀에 자기 말을 더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어 약화시킨 잘못’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You will surely die).”고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You will die).”고 하나님 말씀의 일부분을 뺐다.

 하나님 말씀에 자기 말을 더하는 사람이 있다. 신비주의자다. 그는 계시를 받았다면서 자기 말을 더한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을 빼려는 사람이 있다. 자유주의자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분을 빼서 이성적인 합리화를 시도한다. 2가지가 다 위험하기에 말씀을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잘 분별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성경을 보면 사탄도 하나님 말씀을 인용한다. 때로는 사탄의 말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본문 4-5절을 보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언뜻 들으면 뱀이 하와를 최고로 생각해주는 말 같다. 그런 달콤한 소리를 잘 분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 흔히 이 구절을 내세워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기에 타락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본문 5절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뱀의 말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은 뱀의 말처럼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또한 뱀의 말은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는 뉘앙스를 준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다(창 1:26). 또한 흙으로 사람을 짓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창 2:7). 그런 조치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뱀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것처럼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오히려 가장 원하실 수 있다. 성도의 최대 목표가 무엇인가?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아이가 아빠를 존경하면 이런 말이 나온다. “아빠! 저도 나중에 아빠처럼 될래요.” 그 말을 듣고 아빠가 기분 나빠서 “뭐야! 나처럼 된다고? 아주 교만하네.”라고 하면서 아이를 집에서 내쫓는가? 오히려 아이의 그런 말을 들은 아빠는 날아갈 것 같은 행복과 보람을 느낄 것이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성도가 기도한다. “하나님! 저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처럼 되게 하소서.” 그때 하나님께서 “아주 못됐구나. 네가 나처럼 돼? 버릇도 없고 교만하구나.”라고 말씀하겠는가? 오히려 “나도 네가 내 형상을 드러내고 예수 닮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런 간절한 바람이 주님의 고별설교인 요한복음 14장 12절에도 나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이 하는 일도 하고 또한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말씀이다. 다른 말씀은 다 믿어져도 그 사실만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사실이다. 그만큼 주님은 성도가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보다 더 뛰어나기를 원하신다. 물론 그 말씀은 성도가 그만큼 사랑받는 존재라는 비유적인 뜻이지 이단들의 주장처럼 진짜 예수님보다 더 능력 있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니다.

 이단과 사이비의 초월적인 능력 선전에는 미혹되지 말되 성도의 발전 가능성과 잠재 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라. 특히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에 대해서는 무한신뢰를 하라. 그런 신뢰를 깨려고 사탄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너 주제를 알라. 이제는 희망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 자기 주제를 아는 겸손함은 필요해도 자기를 너무 비하시키지는 말라. 뱀의 말을 잘 분별해 들으라. 특별히 불평이 들게 하고 믿음과 헌신을 떨어뜨리는 말을 주의하라.

 링컨은 말했다. “내가 실패했을 때 사탄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실패의 경험으로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했다. 그때 나는 사탄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말을 듣느냐가 중요하다. 말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들어야 한다. 예전에 어떤 사람의 개인 홈페이지를 보니까 이런 노래가 흘러나왔다. “미아리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그런 노래를 들으면 인생길을 잃기 쉽다. 말이나 노래를 잘 들어야 영혼을 잘 지킬 수 있다.

 듣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말하는 것도 잘해야 한다. 언어는 문명도 좌우하고 인격도 좌우한다. 언어가 발전하면 문명도 발전하고 인격도 좋아진다. 언어는 축복도 좌우한다. 남을 깎아내리는 언어가 많으면 자기 축복도 깎이고 남을 세워주는 언어가 많으면 자기 가정과 자녀와 일터도 세워진다. 입술을 지혜롭게 사용하라. 특히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라. 힘든 일을 당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부터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오게 훈련하라. 그 말에 마귀는 초동 진압이 된다. 감사하는 말처럼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삶은 없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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