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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승율 <17> 평양과기대 마침내 개교했지만 ‘천안함 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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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6일 평양과기대의 역사적인 개교 행사가 열렸다. 남북이 사업을 승인한 지 만 8년 만이었다.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불릴 만한 평양과기대 건립 프로젝트는 수많은 난관과 진통을 겪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승인했다고 해도 일각에서 끝까지 반대한 데다 공사비도 부족해 공사를 진척시키는 데 애를 먹었다. 한국이나 해외에서 후원해 오던 지원금이 남북관계 악화 및 경제난 등의 이유로 많이 줄어 재정난이 심해졌다.

평양과기대 건설은 서울 소망교회에서 40억원의 시드머니를 낸 게 바탕이 됐다. 전체적으로 320억원가량을 모금해 17개 건물을 지었지만 아직도 미지급금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미국 교단 등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았고 국내 크리스천 기업인들과 미국·캐나다·호주·일본의 교포, 조선족 기업인 등이 다양하게 참여했다. 이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협력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2008년이 되니까 캠퍼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단계 공사로 학사동 건물과 종합생활관·연구소·식당·기숙사·게스트하우스·R&D센터·파워플랜트 등 17개 건물을 완성했다. 2단계 공사로 본관 건물과 연구시설, 부대시설을 확충할 계획을 세웠다.

1단계 건물 준공식 및 개교 행사를 마친 다음 해인 2010년 4월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한다고 알리고 교수 요원 신청을 받았다. 주요 전공은 국제금융경영학부(MBA)·농생명과학부(BT)·컴퓨터전자공학부(IT) 등이며 지식산업복합단지(R&D센터)가 추가됐다. 1차적으로 해외 동포와 한국인 교수 30여명이 신청했다.

그중 한 명이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젊은 나이에 테뉴어(종신재직권)를 받은 촉망받는 교수다. 전공은 이행경제였다. 그는 안식년을 신청한 후 평양과기대 교수로 지원했지만 1년간 평양은커녕 서울대에서도 강의를 못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 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개학에 관련된 모든 일정이 늦어졌다. 연이어 취해진 5·24조치로 한국 국적을 가진 교수는 방북 허가가 안 나왔다. 4월 개학은 무기 연기됐고 이후에도 좀처럼 수업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늦출 수 없어 그해 10월 25일 개학을 감행한 후 한 달 정도 수업하는 것으로 형식적인 개학을 했고 2011년 정식으로 정상 수업을 했다.

2010년 가을학기에 급히 개학한 것은 북한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2009년 9월 개교 행사를 했는데 그해 겨울은 학생이 없어서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겨울 동안 속절없이 난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배관이 얼지 않도록 난방시설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2010년에도 수업을 시작하지 못하면 겨울에 또 학교 건물들이 텅 빈 상태로 난방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게다가 김책공대에서 갑자기 겨울방학 동안 건물 두 개를 빌려 달라고 했다. 김책공대 건물은 난방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김책공대의 요청에 응했다면 건물을 도로 찾기 어려울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학부·대학원생 145명을 받아 부랴부랴 개학했다. 외국인 교수 20여명이 들어갔지만 한국 국적 교수는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다.

정리=정재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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