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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박형룡의 설교신학과 설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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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의 설교 신학과 설교 연구

 

 

류응렬 교수(총신대 신대원, 본회 학술정보이사, 설교학)

 

 

 

 

 

들어가는 말

 

박아론은 박형룡의 신학여정을 변증학자로 시작하여 조직신학자가 된 분으로 지적하고 그의 신학을 청교도적 개혁주의 정통신학이라고 집약한다. 박아론의 말대로 박형룡 박사도 시대적이며 사회 문화적인 제한성 속에서 살아가 간 한국의 신학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남긴 신학적 족적은 한국교회사의 거대한 등뼈와도 같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일생 조직신학과 변증학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고수하려 했던 박형룡의 신념은 그의 설교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박형룡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지만 그의 설교에 대한 연구는 아직 폭넓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의 설교는 그의 신학의 총체적인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신학을 강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설교라도 자신의 신학적 흔적을 담고 있다. 신학과 설교가 따로 존재할 수 없다. 박형룡의 설교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박형룡의 설교를 연구하는데 그의 신학적 탐구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한 인물의 신학과 설교 연구에는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저자의 저술을 통해 신학을 정리해 가면서 그 신학적인 시각으로 그의 설교를 읽어갈 수도 있다. 또는 그의 신학이 묻어 있는 설교를 통해 그의 신학 혹은 설교신학을 추적할 수도 있다. 두 가지 방법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박형룡에 대한 신학적 연구는 그의 설교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본 소고에서 박형룡 신학에 대한 연구는 따로 다루지 않고 설교에 나타난 그의 설교신학과 설교의 특징에 집중하고자 한다.

본 소고는 박형룡의 설교신학과 설교 연구를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첫째, 설교자로서의 박형룡을 소개하고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박형룡에 대한 설교연구를 고찰한다. 둘째, 박형룡의 설교신학과 설교의 특징을 설교본문을 통해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박형룡의 설교의 특징을 요약하고 한국교회에 던지는 의의를 찾고자 한다.

 

 

설교자로서의 박형룡과 그의 설교에 대한 이전의 평가

 

1. 설교자로서의 박형룡

 

박형룡의 설교는 현재 그의 전집 가운데 마지막 3권을 설교로 묶어놓은 것으로 모두 166편이 있다. 그는 거의 완벽한 원고설교를 했기 때문에 설교원고를 통해 그의 설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신학자로서의 박형룡은 미국유학을 마친 후에 두각을 드러내지만 설교자로서의 박형룡의 부상은 이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정성구는 박형룡의 설교자로서의 자질을 특별한 경험에서 발견한다. 1920년 숭실전문학교 전도대를 인솔할 때 목포에서 행한 천의 검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폭로한 설교 때문에 목포경찰서에 잡혀 10여 개월 감옥신세를 한 것이 민족을 생각하며 설교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밝힌다. 그는 감옥생활을 통해 조국의 현실을 체감했을 것이며 장차 암울한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종으로서 시련에 빠진 민족을 향한 소망의 메시지를 심어줄 것을 다짐했을 것이다.

박형룡의 설교를 경험했던 정성구는 그가 철저하게 원고를 작성했을 뿐 아니라 원고를 그대로 읽어가는 설교를 했다고 지적한다. 그의 설교가 거의 완벽하게 원고로 준비된 설교라는 것은 몇 편의 설교를 읽어도 바로 알 수 있다. 박형룡은 거의 모든 설교마다 대지를 나누고 때로는 대지를 소지로 나누어 매우 조직적으로 설교한다.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것은 청교도 설교자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원고를 읽는 설교는 전달 면에서 청중의 눈을 보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보다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비록 원고에 의존하는 설교일지라도 박형룡의 설교는 은혜의 강줄기가 흘렀으며 대단한 감화력으로 청중을 감동으로 몰아갔다. 정규오는 박형룡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박 박사님께서는 불타는 마음으로 붓을 들어 그의 예리한 필치로 복음을 증거한다. 교리강좌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은혜가 넘치는 설교이다. 신복윤 역시 그의 설교에서 느껴지는 감동을 그는 구변이나 전달에 있어서 뛰어나지 못했으나, 감동적이었고, 청중을 사로 잡는 조용한 웅변이 있었고, 시와 눈물이 있었다라고 지적한다. 박형룡은 원고에 의존하는 설교였지만 그의 설교는 전달하는 자의 가슴에서 나오는 설교였기에 청중을 움직이는 강한 에토스의 힘을 싣고 있었다.

 

2. 박형룡의 설교에 대한 이전의 평가

 

박형룡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지금까지 그의 설교에 대한 의미 있는 시도가 있었다. 정성구는 박형룡 목사와 그의 설교에서 박형룡 박사를 정통보수주의 신학의 사수와 전파한 신학자로 지적하면서 그의 설교신학과 신앙을 탐구한다. 그의 설교집을 시대별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박형룡의 설교를 기독교의 근본신앙을 상술한 신학적인 설교로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는 설교자로서의 삶을 통해서 조국을 빼앗긴 민족과 성도들에게 소망과 확신을 주었던 그의 설교는 아버지의 음성처럼 근엄하면서도 어머니의 음성처럼 자애로운 메시지였다. 정성구의 연구는 박형룡의 설교에 대한 처음 시도된 연구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클 뿐 아니라 박형룡의 시대별 설교의 변화를 잘 파악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신복윤은 박형룡의 신학과 설교에서 그를 청교도적 칼빈주의 신학을 전승하여 그것을

고수한 학자로 평가하면서 그의 설교를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위엄과 진지한 설교, 둘째, 감동적인 설교, 셋째, 신학적인 설교, 넷째, 제목 설교, 다섯째, 변증적인 설교. 신복윤의 연구는 박형룡의 신학에 대한 일차적인 탐구를 거친 후에 그의 설교의 내용을 집약해서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는 점에서 좀 더 설교내용에 근거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권성수는 박형룡 박사의 성경해석에서 그의 성경해석을 탐구한다. 권성수는 박형룡 박사가 설교에서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통해 그의 설교신학을 간략하게 지적한다. 박형룡은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성경관을 설교에 그대로 나타내었으나 본문을 문맥에 맞게 살려내지는 못한 점을 지적한다. 권성수의 연구에서 특이한 점은 박형룡 박사가 본문을 설명한 후에 당시의 교인들에게 삶으로 적용하게 한다는 소위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을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박형룡 박사의 설교는 소위 본문에 충실하다고 하여 성경의 지평만 소개함으로써 성경 내용을 은하수 세계에 매다는 설교가 아니라 본문을 땅으로 끌어내려(down to earth) 삶의 현장에 착근시키는 설교였다. 그것은 본문의 의미를 해설하여 현대 속에 '활성화하는'(actualize) 지평융합적 설교였다.

최근에 박형룡의 설교에 대한 폭넓은 연구로서 박세환의 박사논문 죽산 박형룡 목사의 설교 연구가 있다. 박세환은 박형룡의 설교사역을 세 시기로 나누어 1920-1930년을 한국교회의 신앙에 대한 기초를 세우기 위한 변증설교, 1940-1950년을 영적 회복과 부흥을 열망하는 사명설교와 부흥설교, 1960-1970년을 목양설교와 신학교 후학을 위한 사명설교로 구분한다. 그는 박형룡의 설교특징을 청교도 신앙생활과 복음진리에 합당한 삶의 기반으로 하는 신앙고백적 성경설교로 정리한다.

지금까지의 박형룡의 설교연구를 통해 두 가지 정도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박형룡은 철저하게 신학적 설교를 했다는 점이며 둘째, 박형룡은 복음진리에 근거하여 삶의 현장을 설교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연구에 기초하여 박형룡의 설교본문을 통해 그의 설교신학과 설교의 특징을 살피고자 한다. 필자의 연구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연구와 근본적인 맥을 같이 하면서 박형룡의 설교문에 근거하여 조금 더 정밀하게 살피고자 한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주해하고 적용하는 설교작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강단에서 청중을 향해 전달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박형룡의 설교를 직접 목격하지 못함으로 그의 설교전달에 관한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의 설교를 통해 오늘날 조국교회가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과 발전시켜야 할 부분을 계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조국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기대한다.

 

 

박형룡의 설교신학과 특징

 

1. 진리수호를 위한 변증적 설교

 

설교란 신학이 피어난 열매와 같다. 한 사람의 설교에는 자신의 신학이 뿌리를 이루고 삶 전체가 녹아 있는 인격과 청중을 향한 관심이 표출된다. 박형룡의 설교에는 자신의 일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진리를 수호하는 변증적 설교가 강하게 나타난다. 변증적 설교란 밖으로는 비기독교 세계에 기독교의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사명과 안으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경진리와 기독교의 가르침이 정당하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박형룡의 설교 가운데 교리에 대한 신학적 변증이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변증적 요소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초자연 도태,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둘 것, 그리스도 부활의 당연성, 성경의 재발견, 십자가는 하나님의 이적, 종교는 영구한 기초적 신념, 바울의 종교생활의 삼 단계 등의 설교는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변증하는 설교이다. 초자연 도태라는 제목으로 고린도전서 1:27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박형룡은 당시에 논란거리로 올랐던 다윈의 진화론의 허구를 공격한다. 박형룡은 다윈의 진화론 발표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 도태설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성경의 원리에 근거하여 초자연 도태라는 이름으로 설교한다.

 

나는 진화론을 믿지 아니하며, 반 진화론의 입장에서 천지창조와 인류창조의 성경적 진리를 해설하기에 노력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강단에서 말하려는 것은 진화론을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학술 강연이 아니라, 특별히 다윈의 진화론의 중심원리인 자연 도태의 정신적인 면에 대항하여 초자연 도태라는 하나님의 성경적 진리를 밝히고자 함입니다.

 

박형룡은 세상의 역사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집어 삼키는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인류의 외관적인 형상일 뿐 근본적인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신자들이 따라야 할 세계관은 세상의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원리는 자연 도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 도태로 이루어지는 것을 설교한다.

 

자연 도태 즉 자연 법칙에 의한 도태는 강자와 미자를 택하여 약자와 추자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 영구적인 사실이 아니고 반면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초자연 도태가 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세계는 얼른 보면, 자연법칙과 자연세력의 운동에 의하여 도태가 행해지는 것 같으나 자연 이상에 대 주재 하나님이 존재하시어 자기의 기쁘신 뜻, 열의대로 약한 자를 택하여 강자를 부끄럽게 하시니 이 세계는 자연 도태의 무대가 아니라 초자연 도태의 장소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에서 구현되는 초자연 도태를 강조하면서 박형룡은 당시 시대의 상황 속에 말씀을 적용한다.

 

외인들의 세력 아래 국토 양단되어 완전한 자주독립의 생활 없이 약소국민의 설움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우리의 겨례들아, 약자를 택하여 강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 도태의 진리를 믿고 아무쪼록 분발 분투하여 이 시대의 가열한 생존경쟁에 필승을 하십시오.

 

박형룡은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도록 살아가는데 필요한 두 가지의 촉구로 설교를 마친다. 첫째, 약자들아 자립하자. 둘째, 약자들아 단결하자.

변증적 설교는 본문에 대한 직접적 해설에 근거한 설교보다 본문 가운데 하나의 이슈를 택하여 그 부분을 교리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증명하거나 변증해 나가는 설교이다. 박형룡의 변증적 설교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변증적 설교를 통해 기독교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주요한 가르침을 폭 넓게 설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기독교의 가르침, 그리고 성경관을 설교를 통해 가르침으로 성도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기본가르침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유익이 있다. 신복윤은 박형룡의 변증설교를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증하려는 것이었으며, 구속의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정들을 묻고 답변하는 형식들을 보게 된다고 지적한다.

둘째, 변증적 설교를 통해 당시에 잘못된 사조나 사상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비판하고 성경적인 가르침을 강조한다. 진화론에 대한 도전이나 1900년대 초기에 활발했던 자유주의의 허구를 설교를 통해 지적한다. 이런 변증적 설교는 박형룡을 신학교의 교수뿐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시대의 도전 앞에 성경의 가르침을 세운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박형룡의 변증적 설교에는 개선되어야 할 점도 지적된다. 그의 변증설교는 성경본문에 근거한 설교보다 변증을 위해 본문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점이다. 초자연 도태 설교에서 박형룡은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 자연계에 존재하는 자연도태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약자들에게 자립할 것과 단결할 것을 호소하는 적용은 본문의 문맥과 적절하지는 않다. 성경의 재발견 설교에서 그는 본문에 율법책이란 단어에 근거하여 성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본문의 문맥에서 벗어난 교리설명이나 변증은 변증적 설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점이다. 이종성은 박형룡은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추구하는 주석신학보다 변증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지적한다. 정성구도 동일하게 평가한다. 박형룡의 설교는 설교를 성경해석학적인 강해설교라기보다는 변증적이고 조직신학적인 제목설교의 유형이 발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주제를 통해 기독교를 가르치는 제목설교

 

박형룡 설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본문에서 한 가지 주제를 제목으로 정하고 그 제목을 중심으로 본문과 성경전체 혹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설교하는 제목설교라 할 수 있다. 정성구는 박형룡의 제목에 근거한 설교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의 설교는 성경본문을 강해하여서 그 본문의 뜻을 설교하는 것보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교리적 또는 포괄적으로 설교하였다. . . . 교리적 설교는 동시에 설교의 형식상으로 보면 제목설교의 경향을 띠게 된다. 또한 제목설교는 논리적이고 청중이해에 도움이 되나 해석학적인 이해에 다소 부족하다.

정성구의 지적은 정당하고 볼 수 있다. 박형룡은 주경신학에 근거하여 본문에서 저자의 의도를 찾아낸 후 설교하는 강해설교라기 보다 설교하고자 하는 주제를 위해 본문을 택하고 알맞은 제목을 정한 후 그 제목을 따라 설교하는 형식을 보인다. 세계 안목에 나타난 조선교회 제하의 데살로니가전서 1:8절 설교에서 박형룡은 본문에 대한 메시지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세계인들이 오늘날 조선교회를 어떻게 보는지를 설교한다. 조선교회의 믿음의 소문의 좋은 점을 8가지 대지로 나누어 설교한다. 1. 교회의 급성장. 2. 급성장의 비결은 첫째, 성경공부에 치중했기 때문. 3. 직접 복음주의. 4. 자급. 5. 경건. 6. 교인들의 조직과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7. 교회의 설립 분포가 평균화된 것. 8. 모든 교회 사업이 그리스도 중심.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라는 본문에 근거하여 조선교회가 세계 교회에 아름다운 믿음이 퍼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역경의 은총 제하의 고린도후서 1:9절 설교에서 박형룡은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역경이 은총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역경을 당하는 수난은 인간들을 훈련하여 지능적, 정신(도덕)적, 특히 종교적으로 진보되고 발달되며 완성되는 은총을 누리게 합니다. 역경이 주는 은총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인생의 일반적인 방면에서 역경은 은총의 기회입니다. 둘째, 인생의 종교적인 방면에서 역경은 은총의 기회입니다. 바울이 당한 역경을 다섯 마디 정도로 설명하고 역경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역경이 주는 유익에 관하여 설교한다.

박형룡의 제목설교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박형룡은 제목설교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세계 안목에 나타난 조선교회는 세계 교회가 급성장한 한국교회를 칭찬하고 그 성장의 비결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힌다. 설교자가 전하고자 하는 말씀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고 청중이 쉽게 설교를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제목설교의 가장 큰 이점이라 할 수 있다. 역경의 은총 설교도 마찬가지다. 역경이 주는 은총에 대해 일반적인 영역과 종교적인 영역에서 명확하게 제시한다.

둘째, 박형룡의 제목설교는 제목설명에 그치지 않고 적용까지 나아간다. 본문을 정당하게 다루는데 한계를 지닌 제목설교에도 불구하고 박형룡의 설교는 당시 청중에게 철저하게 적용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 선지학교의 중건이란 열왕기하 6:1-2절 설교에서 박형룡은 오늘날 총신대학교의 학훈의 기초가 되는 다섯 가지를 적용으로 제시한다. 1. 경영자가 되십시오. 2. 학자가 되십시오. 3. 성자가 되십시오. 4. 전도자가 되십시오. 5. 목사가 되십시오.

박형룡의 제목설교가 지니는 한계는 변증적 설교의 약점과 연결된다. 첫째, 기독교설교는 반드시 성경본문의 내용에 근거해야 한다. 설교자의 원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설교의 기본정의라는 관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설교란 하나님께서 저자에게 계시한 본문의 의도를 묵상과 주해작업을 통해 찾아내어 거룩한 영적인 변화를 위해 오늘날 청중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박형룡의 제목설교는 본문의 의미를 저자의 의도를 좇아 살려내는 주해작업보다 본문에서 발견한 한 가지의 이슈를 문맥과 상관 없이 적용한다. 이런 약점에 대해 권성수는 박형룡의 설교가 문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중심 주제를 뽑아낸 다음 그것을 전개하는 식으로 성경을 사용했기 때문에 문맥을 등한시한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고 평가한다.

박형룡의 제목설교는 본문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의 본문선택은 한절로 된 설교가 많고 두세 절을 주로 넘지 않는다. 하나의 주제가 강해의 단위(expository unit)가 되는 강해설교와 달리 제목설교는 일반적으로 짧은 본문을 선택한다. 제목을 위한 짧은 본문선택은 에드워즈와 같은 청교도 설교자와 로이드 존스에게 발견되는 방법이다. 하나의 중심사상이 담겨있지 않는 짧은 본문을 선택하면 그 본문의 문맥과 정황 속에 저자의 의도를 주해하기 보다 한 절에 나오는 주요 주제나 단어를 뽑아내어 그것을 풀어가는 제목설교로 나가기 쉽다.

제목설교는 한국교회 강단에 오랫동안 주류를 형성해 왔으며 지금도 많은 목회자들이 제목을 위주로 본문을 설교한다.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을 대하는 주해자나 설교자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의미를 일차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조국교회의 강단에 아직도 제목설교가 성행하는 이유를 정성구는 박형룡에게서 어느 정도 찾고 있다. 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의 대부분이 지금도 제목설교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박형룡 목사의 설교의 영향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3. 시대와 청중의 삶에 뿌리 내리는 적용적 설교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날 시대와 청중 속에 적실하게 가르치고 적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위로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경적인 설교는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는 주석작업과 이해한 본문의 의미를 오늘날의 삶으로 적용하는 두 가지의 요소를 필요로 한다.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주해자인 동시에 청중 앞에서 적용시켜 삶의 거룩한 변화를 일으키는 설교자라는 두 가지의 사명을 지닌 것이다.

박형룡의 설교는 그가 살아왔던 암울했던 일제침략기와 조국분단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 그리고 신학적 대치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더욱 적실하게 피어났다. 박형룡의 설교는 시대를 호흡하는 설교자의 인식과 정통신학을 인도하는 신학자로서의 혜안 그리고 진리를 통해 청중의 삶에 변화를 촉구하는 적용을 동일하게 추구한다. 정성구는 박형룡의 시대적 설교의 추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초기의 설교는 주로 믿음을 지키라는 1941년의 설교집에 나타난 것으로 1929년 박형룡 박사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0여 년간 전한 설교로서 조국교회의 참된 신학과 신앙을 보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고등비판, 진화론, 범신론, 사회복음주의 등의 세력에 대항하여 정통기독교 신앙을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초기의 설교에 나타난다.

한국전쟁은 박형룡에게 새로운 설교자로서의 면모를 세운다. 이 시기의 설교는 1953년에 출간된 [우리의 피난처]에 소개된 것으로 전쟁의 화염 가운데 박형룡은 진정한 피난처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우리 민족과 교회가 직면한 시련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극복할 것을 강조한다. 초기의 설교는 변증적이고 공격적이고 선포적인데 반해서 이 때의 설교는 보다 체험적이면서 위로의 복음을 증거했다. 위로의 복음뿐 아니라 민족의 시련을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할 것을 촉구한다.

해방 후 박형룡은 1954년과 1955년에 출판된 두 설교집, [남은 백성]과 [역경의 은총]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라는 대환란 속에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역경을 은총의 기회로 삼도록 설파한다. 이후의 박형룡의 설교에도 시대와 상황을 반영하는 적용적인 설교가 잘 나타난다. 1956년 서울 승동교회 기독학생예배회에서 전한 종교의 영구한 기초적 신념이라는 제하의 설교에서 박형룡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반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종교 또는 하나님은 일정한 시대의 사회적 관계의 반영이요 종교적 체계는 사회의 물질적 제 조건에 의하여 규정된다. 종교는 이 현실적 고뇌에 대한 항변을 현실적 행복으로써 하지 않고 환상적 행복으로써 해결코자 한다. 그런고로 종교는 민중을 위한 아편이다.'고 종교의 장래 소명을 오연히 단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물사관의 편견을 먼저 가진 자의 색안경적 관찰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억설이요, 결코 종교철학의 공명한 시건을 유인하지 못합니다.

 

박형룡은 유물사관뿐 아니라 홉스와 흄 그리고 칸트나 슐라이어막허를 비판하면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사모하여 갈망하는 특징이 본능적으로 있는 사실은 종교의 영구한 기초를 제공합니다. 하나님 신념은 종교의 영구한 기초적 신념입니다라고 강변하면서 우리는 이 신념들의 확신자 또는 열렬한 전파자가 됩시다로 청중의 다짐을 촉구한다.

정성구는 박형룡의 설교 가운데 삶 속에 뿌리내리려는 노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는 한국교회의 가장 어둡고 침울한 시대를 함께 살면서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방향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박형룡의 신학은 사변신학의 울타리에서 고사된 신학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기독인들이 어떻게 고뇌하고 사고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시대정신이 잘 나타난다.

박형룡은 본문에 대한 충실한 주해보다 오히려 한 가지의 주제에 대한 신학적, 변증적, 일반적 영역에서의 설명과 삶으로의 적용과 구체적 촉구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곁들이고 그 주제에 관하여 신학적 또는 이성적 설명과 변증을 거치고 많은 적용을 담고 있다는 점은 청교도 설교의 형식과 매우 유사하다. 1950년 10월 13일 목포 근해상의 군용선상에서 피난교우들에게 박형룡은 요한계시록 2:10을 본문으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제하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국가와 사회와 교회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맡은 자들이니 우리는 충성으로써 임무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임무에 충성하되 죽도록 충성하여야 합니다. 즉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를 완수하되 목숨을 버리기까지 전력을 다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지혜도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하나 그 보다도 먼저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대한 설명은 이것이 모두이다. 본문은 채 열 마디도 되지 않게 설명한 후 충성에 대한 실례로 충무공의 삶과 충성에 대하여 설명한다. 남해해상의 물길을 가로지르며 달려가는 배 위에서 충성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을 소개하면서 설교를 마칠 때까지 이순신 장군의 충성이 어떻게 일본의 침략 가운데 조선민족을 구원했는지 설교한다. 이어서 충무공의 충성을 본 받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충성을 촉구한다.

 

우리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 국가 사회에 봉사하는 동시에 천국과 그 의를 위하여 살려고 하되 충무공의 충성을 본받아서 죽도록 충성합시다. 충무공이 임금과 국가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셨다면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한 우리의 충성은 얼마나 더 참되고 지극해야 할 것입니까?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1).

 

피난의 선상에서 했던 설교라는 점에서 박형룡의 설교는 당시 청중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적용적 설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적용은 단지 특별한 시대 상황 속에서만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설교에서 내용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박형룡의 설교에서의 적용은 성경적인 설교를 추구하는 주해자와 설교자들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설교의 목적은 본문의 진리를 통해 오늘의 청중의 삶에 적용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설교를 본문해석에만 목적하는 것은 주해에 그칠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설교가 아니다. 주해는 설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중의 삶으로 뿌리내리는 적용이 있어야 한다. 성경기록 자체가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적용할 것을 가르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구원 받고 구원 받은 백성이 거룩한 삶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딤후 3:14-17). 스펄전은 적용이 시작될 때 비로소 진정한 설교는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성경적인 설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바르게 파악하는 일과 당시에 기록된 말씀을 오늘의 삶으로 적실하게 적용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말씀 앞에서 해석하는 주해자의 사명과 청중 앞에서 적실하게 적용하는 전달자의 사명을 동시에 지닌다.

권성수는 박형룡의 적용적 설교를 본문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연결하는 지평융합적 설교라고 부른다. 설교자가 성경의 세계만 소개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삶의 현장에 본문을 착근시키는 설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박형룡의 설교는 이런 점에서 오늘날 성경적인 설교자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잘 보여준다. 본문을 청중의 삶에 뿌리내려 그들을 일깨우고, 위로하고, 거룩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박형룡의 적용적 설교가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존재한다. 올바른 적용의 첫 근거는 그 적용이 본문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올바른 성경 해석 없는 삶의 적용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올바른 적용은 본문과의 깊은 씨름에서 출발되어 청중의 삶으로 향한다. 박형룡의 설교는 청중의 삶에 깊은 뿌리를 내림으로 청중의 가슴에 스며드는 설교는 가능했지만 때로 본문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권성수는 그 이유를 설교 본문 자체를 1-3절로 짧게 잡아 거기서 중심 주제를 뽑아낸 다음 그것을 전개하는 식으로 성경을 사용했기 때문에 문맥을 등한시한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개혁주의 강해설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적용을 향하여 나아가는 강해설교라고 부른다. 적용을 향하여라는 말에는 적용이 내려야 할 뿌리가 본문이라는 말과 설교의 목표를 동시에 함유한다. 박형룡의 적용적인 설교는 오늘날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 성경적인 설교를 추구하는 설교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 즉 설교는 청중의 삶에 뿌리내려야 할 적용과 청중의 거룩한 삶을 촉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설교란 본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아무런 권위도 없지만 적용 없는 설교는 목적 없는 화살과도 다름이 없다. 해설과 적용이 조화된 설교,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설교, 이것이 개혁주의 설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현대설교의 위험과 한계를 극복하는 개혁주의 설교

 

박형룡의 설교는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설교이다. 개혁주의란 성경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즉 개혁주의의 근간은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영감 된 말씀으로 믿고 신앙인의 삶의 지표로 삼는 것에서 출발한다. 도날드 맥킴은 성경관에 따라 설교가 결정된다고 지적한다.올바른 성경관 위에 올바른 설교관이 나온다는 말이다. 성경계시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 그의 신학과 설교의 뼈대를 형성한다.

 

성경은 다른 데서 찾아 볼 수 없는, 유일의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기록된 책으로써 하나님이 계시하신 모든 교훈을 성령의 감화 밑에서 일점의 오류가 없이 기록하였다고 믿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성경에 대한 정통신학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박형룡은 기독교의 근간이요 진리 수호의 변증을 위한 첫 걸음으로 성경에 대한 철저한 보수신앙을 견지했다. 성경에 대한 절대적 신뢰 없이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는 사상이나 그리스도의 말씀의 역사성은 인정하지 않고 말씀의 교훈만 찾으려는 당시의 자유주의를 공격하기도 한다. 성경이 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오류가 많다는 해리 포스틱(Harry Emerson Fosdick)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박형룡은 성경의 무오성에 대하여 강변한다. 박아론은 박형룡의 성경무오에 대한 자세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박형룡 박사는 이렇게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믿는 신앙과 신학을 비상한 열의를 가지고 가르쳤고 그것을 변증하며 수호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그와 같은 영감적 성경관을 추호도 타협하지 않는 것이 그의 신학을 일관하는 특색으로 되어버린 것 같다.

 

성경무오에 대한 변증은 그의 설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성경의 재발견이란 제하의 열왕기하22:8-13절의 설교에서 박형룡은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으로 말미암은 특별계시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영원불변의 규준이며 모든 신앙인이 이 말씀을 수행할 의무가 있음을 설교한다. 박형룡은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고수하는 것이 한국교회 생명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고 강변한다.

 

성경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를 사랑하며 경외함으로써 구원을 성취하게 하는 참 종교를 가르치려고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특별계시의 영감적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인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영원불변의 규준이어서 무상 명령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법전이니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것을 서약한 신도마다 이 법전을 수행할 의무 아래 제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여 그 말씀의 효력을 감쇄함으로써 성경의 존재를 유야무야로 만들려는 사상운동은 예로부터 교회를 따라다니는 것이며 우리 나라에서도 일본 사람과 붉은 사람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라도 그 사상운동은 따라 와서 강력히 성경의 위력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가르치는 이 성경학교와 같은 성경교육기관들이 강력히 역사하고 있는 한 그런 사상운동의 파괴적 세력이 우리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박형룡의 성경관은 오늘날 들불처럼 번져가는 새로운 설교학의 흐름에 쇄기를 박는 가르침이다. 현대 설교학은 새 설교학(New Homiletic)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며 1971년 프래드 크래독이 As One Without Authority [권위 없는 자처럼]을 출판한 이후 지난 35년간 설교학을 형성해 온 흐름을 가리킨다. 새로운 설교학이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주로 크래독, 유진 로우리, 그리고 데이빗 버트릭 등의 설교학자들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신학에 근거하여 전통적인 설교에서 강조했던 성경의 권위와 영감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고 청중의 삶에 경험적으로 복음을 체험하게 만드는 전달 부분에 혁명을 일으켰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청중의 심도 깊은 이해는 얻어내었지만 성경의 권위와 영감은 잃어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더 이상 성경관에 대한 논의는 불필요하며 복음을 어떻게 경험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옮겨진 것이다.

박형룡의 신학과 설교에 나타난 성경관은 오늘날 일단의 새 설교학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한다. 바로 성경관의 문제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체득할 수 있다고 하여 성경을 그리 중요시 하지 않는다. 곧 그들은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사실 위에 섰고, 성경을 토대로 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재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경험하기만 하면 제일차 부활주일 아침에 된 일을 성경이 어떻게 말하든지 우리는 오직 그 경험 사실을 확집하고 만족할 뿐이라 하며,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이 이 성경에 어떻게 기재되었든지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계속적으로 경험하면 그만이 아니냐고 역설한다. . . . 경험은 역자적 사실의 진정함을 증거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는지는 몰라도 역사적 사실을 창조하지는 못할 것이다. . . .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밖에 기독교의 권위가 될 아무 다른 것이 없다고 우리는 확신하는 바이다.

 

박형룡의 지적은 비록 시대가 다를지라도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서 벗어나 체험으로서의 기독교를 만들고자 하는 새 설교학자들의 주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경고하는 말처럼 들린다. 기독교 설교가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관에 기초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해석학과 설교학적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영감관이 무너지면 해석의 축은 더 이상 영감을 준 궁극적인 저자인 하나님과 성경본문에 주어지지 않고 해석자인 독자에게로 넘어간다. 기독교 설교자는 정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라는 성경관을 배제한 채 진정한 기독교적인 설교가 가능한가? 물론 필자의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박형룡의 성경관에 근거한 설교는 성경적인 주해자와 설교자가 지녀야 할 출발자세를 바르게 정립해 준다.

박형룡의 설교신학이 작금의 설교학 흐름에 주는 또 하나의 도전이 있다. 설교의 적용에 대한 부분이다. 새 설교학자들은 더 이상 청중에게 구체적인 적용은 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설교자는 본문을 해석할 뿐 적용과 결론은 청중의 자율에 맡기라는 말이다. 이들의 주장은 청중을 매우 배려하는 말로 들리지만 이러한 주장에 내재한 사고는 성경이 절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진리가 아니기에 자신의 해석만 들려 줄 뿐 결론은 각자가 알아서 내리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설교라는 행위를 통해 청중에게 경험이 일어나도록 전달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박형룡의 설교는 철저히 적용 중심의 설교이다. 비록 그의 적용이 본문의 문맥 속에서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이나 시각에 따라 본문의 의미에서 벗어난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가 가진 설교신학은 철저히 삶으로 말씀을 뿌리내리려는 적용중심이다. 말씀 앞에 오늘을 살아가는 청중이 어떻게 적용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촉구한다.

박형룡의 설교신학은 개혁주의 설교가 내려야 할 가장 중요한 뿌리와 개혁주의 설교가 나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방향을 동시에 대변한다. 즉,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청중의 변화를 위해 본문을 시대와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필자는 죽산 박형룡 박사의 설교를 통하여 그의 설교신학과 설교의 특징을 고찰했다. 하나님께서는 박형룡을 세우셔서 한국교회에 절대적인 성경관에 근거한 정통신학을 세우게 하셨고 그의 노력은 한국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건전한 신학을 형성해 오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박형룡은 신학적 작업뿐 아니라 설교를 통해 일제 통치와 전쟁의 화염으로 인해 암울했던 조국교회의 성도들에게 소망을 심어주고 역경 가운데 거룩한 삶을 촉구함으로 신앙과 삶의 일치를 부르짖었다.

필자는 박형룡의 설교신학을 네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 그는 변증학적 설교를 통해 올바른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고자 했다. 조직신학과 변증학의 저술을 통해 학교에서 올바른 신학을 정립했듯이 그는 강단을 통해 교인들에게 기독교를 변증하고 성도의 삶을 분명한 진리 위에 세우는데 삶을 바쳤다. 둘째, 박형룡은 제목설교의 유형을 통해 설교의 주제를 분명하게 제시함으로 청중에게 기독교의 중심 되는 교리와 기독교인의 삶을 설득했다.

셋째, 박형룡의 설교는 단순히 본문을 해설하는 주해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시대와 청중의 삶에 뿌리 내리는 적용적 설교였으며 말씀에 근거하여 거룩한 삶을 촉구하는 청교도 설교의 특징을 보이는 설교였다. 삶의 현장에 말씀을 적용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사변적으로 흐르는 신학과 설교에 경종을 울린다. 넷째, 무오한 성경관에 근거한 그의 설교신학 그리고 삶을 향한 철저한 적용과 촉구는 오늘날 새로운 설교학(New Homiletic)의 흐름에 성경적인 설교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제시한다.

필자는 박형룡의 설교에서 오늘날 성경적인 주해자와 설교자가 보완해야 할 점도 지적했다. 박형룡의 설교에는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위해 본문을 선택하고 주제와 제목과 관련시켜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예를 많이 나타난다. 따라서 그의 설교가 성경의 저자가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본문의 문맥 속에서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성경적인 설교자는 성경을 설교자의 사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성경의 사고에 굴복하고자 하는 정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주시는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는 주해자의 노력과 오늘을 살아가는 청중의 삶으로 적실하게 적용하는 목자의 관심이 동시에 요구된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개혁주의 성경관과 본문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는 해석 그리고 삶에 뿌리 내리는 설교신학을 통해 죽은 자들을 살려 내고 살아난 자들에게 거룩한 헌신자의 삶을 일으킴으로써 조국교회에 말씀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부흥을 일으켜야 할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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