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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감정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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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감정표현

 

 

서명수 교수(협성대/구약학)

 

 

I. 서언

 

구약성서의 하나님과 신약성서의 하나님의 성품이 상반된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구절은 널리 회자되는 요한복음 3장 16절(“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과 요한1서 4장 16절(“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랑 안에 있습니다.”)일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그리스어는 ?γ?πη이다. 반대로 분노(anger, wrath)를 나타낼 때는 ?ργ?와 θυμ??가 사용된다(야고보1:19; 누가복음4:28). 본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θυμ??는 내적 분노의 감정을 나타낼 때, ?ργ?는 외적으로 표출된 감정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으나 칠십인역(LXX)에서는 동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는 ?γ?πη가 전용어로 사용되는 반면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낼 때는 인간의 분노를 나타타낼 때도 사용되는 ?ργ?와 θυμ??가 사용되고 있다. 어쨌든 신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의 분노보다는 사랑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신약성서의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을 품은 신으로 느껴진다.

반면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분명한 사랑의 선포에도 불구하고(출34장6절: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 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일견 두렵고, 성마르고, 과격하며, 전쟁에서 적들을 다 진멸하도록 요구하는 무서운 신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런 까닭에 구약성서의 하나님과 신약성서의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러한 의문을 최초로 강력하게 제기했던 사람이 바로 2세기 마르시온(Marcion)이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가현적(docetic) 현시를 통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자비의 신이 계시되었다고 주장한 그는 구약성서의 하나님을 배척하였다. 마르시온은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창조한 등급이 낮은 신 데미우르고스(D?miourgos)로 그의 감정표출은 신약성서의 하나님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저급한 성품의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구약의 하나님은 비호감형의 신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과연 구약의 하나님이 그런 신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감정유형과 표현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감정표현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의 이면적 의미를 들추어내어 구약성서의 하나님에게 씌워진 비호감형이라는 혐의를 벗겨내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II. 하나님의 부정적 감정들

 

흔히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 용서, 긍휼의 감정과 대비되는 매우 불완전하고 격한 감정으로 지적되는 대표적인 감정은 질투와 분노이다. 그러나 인간의 질투와 분노 감정은 구약성서에 제시된 신의 질투와 분노의 감정과 결코 동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쉽게 신의 분노와 질투의 감정과 감정표현을 인간의 그것처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 있는 다른 의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하나님의 질투

 

십계명에 관한 언급에서 하나님은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 ????? ???? 출애굽기20:5; 신명기5:9)고 선언하고 있다. 구약성서는 왜 야웨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일까?

어근 ‘질투하다’(???)는 구약성서에서 총 85회 등장한다. 명사 ‘질투’(????)는 43회 등장한다. 오경에는 단지 7회(민5:14[2회], 30; 25:11[3회]; 신29:19[3회]) 등장하는 반면, 예언서에는 20회가 등장하는데 특별히 이사야서(7회)와 에스겔서(10회)에 집중되어 있다. 예언서에서는 이사야 11장 13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질투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대조적으로 지혜문학에서는 인간의 질투를 다루고 있다(19회). 형용사 ???(출20:5; 34:14[2회]; 신4:24; 5:9; 6:15)와 ????(수24:19; 나1:2)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들 용례에서 나훔1장2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질투의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동사는 대부분의 경우 피엘 형태로 사용되고 있으며(30회), 히필 형태로는 단지 4회 사용된다(신32:21[하나님이 주체]; 신32:16[인간이 주체]; 시78:58[이스라엘이 주체]; 겔8:3[우상이 주체]).

전체적으로 볼 때, 신의 감정으로 24회, 인간의 감정으로 19회 등장하는데, 신의 감정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충성에 대한 징벌과 관련된 행동을 드러내기 위해(민25:11; 신29:19; 시79:5; 겔16:38; 스1:18; 3:8 etc.),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는 이방민족들을 징벌하고 언약백성을 옹호하는 행동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인간의 감정과 관련해서는 열심(zeal,왕하10:16; 시69:10; 119:139), 질투(jealousy,잠6:34; 14:30; 27:4), 경쟁심(competitive spirit,전4:4; 9:6), 고통(suffering,아8:6), 적의(enmity, animosity)와 분노(anger, wrath,민5:14,30)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위의 많은 용례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다른 신을 마음에 둘 경우 하나님은 질투하게 된다. 하나님이 질투하는 신이라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본문은 출애굽기 20장 5절과 신명기 5장 9절로 이 두 본문은 십계명 중 제1~2계명에 관한 언급 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소위 야웨의 특권법이라 불리는 출애굽기 34장 14절에 들어 있다.

제1계명(“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에서는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일실론(monotheism)보다는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한 신만을 섬기는 일신론(monolatry)의 형태인 monoyahwism 또는 practical monotheism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 단계의 신은 다른 신들과의 관계에서 그다지 배타적이거나 독점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신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하는 신”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것은 일신론에서 유일신론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사에서 “질투하는 신” 개념은 이 단계에서 나온 것으로 추축해볼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 어떤 신의 다른 신들에 대한 질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신들 사이의 위계질서나 상하지배관계는 자주 목격되나 어떤 신의 절대적 배타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님 역시 다른 신들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택한 백성들과의 독점적, 배타적 관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려할 때/섬길 때 하나님의 질투는 발동된다. 하나님의 이러한 질투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인간의 한 감정, 특별히 남녀 간의 관계에서 질투를 느끼듯이 하나님이 다른 신을 질투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질투는 질투자와 피질투자 사이에 현저한 질적 차이나 우열이 존재하지 않을 때 보다 쉽고 강력하게 나타난다.

반면 하나님의 질투는 다른 신들과의 절대적인 차이, 즉 자신의 초월성과 위엄, 특별히 거룩성 때문에 자신의 계약백성이 다른 신들에게 마음을 돌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투는 그의 거룩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는 가나안 정복 이후 세겜에서 드린 계약갱신 의식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거룩한 신이며, 질투하는 신이기 때문에(??????? ??? ????? ????????) 당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여호수아24장 19절. Cf. 에스겔39:25)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신의 다른 신들에 대한 질투개념은 고대 근동에서는 낯선 것인데, 여기서는 신의 거룩성을 매개로 야웨와 질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신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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