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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추양 한경직 목사의 성서적 복읍주의 신앙과 영락교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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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양(秋陽) 한경직(韓景職) 목사의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과 영락교회의 과제:

그의 개혁신앙을 재조명하면서

 

 

1.1.1. 소기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교수/예수말씀허브 부소장)

 

 

 

Ⅰ. 서론

 

필자는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영락교회를 통하여 신앙을 키웠으며, 지금도 여전히 노부모와 함께 영락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에 한경직 목사(이하에서 한경직이라 부른다. 본 소고에서 다른 분들도 존칭 없이 호칭하는 것을 양지해주기를 바란다)가 은퇴하였는데, 필자는 당시에 매 주일 아침마다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였던 그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필자는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을 펼치고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항상 책상위에 놓고서, 그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회자로서 닮고 싶은 아름다운 분’으로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비록 1973년에 한경직은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추대되었지만, 1977년에 그는 ‘올바른 신앙노선’이라는 설교를 주일저녁하면서, ‘복음주의 신앙’을 첫 번째로 언급하였다.

 

「여기 복음주의 신앙」이라 함은 우리 신교의 중심사상인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개혁 때의 표어인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신앙입니다. 이 신앙은 오직 성서를 중심한 신앙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요 그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이러한 그의 복음주의 신앙은 창립초기부터 선교와 교육과 봉사라는 세 가지 사업목표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본당을 중심으로 ‘선교관’과 ‘교육관’과 ‘봉사관’을 세워서 삼대사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갔다. 그는 이러한 삼대사업을 장로교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에서 물려받았다. 이로써 그의 복음주의 신앙은 첫째, 선교는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집중하였으므로 그 특징이 ‘그리스도 중심주의’라고 평가될 수 있다. 둘째, 교육은 성경을 가르치는데 집중하였으므로 그 특징이 ‘성경중심주의’라고 평가될 수 있다. 셋째, 봉사는 십자가의 진리에 집중하였으므로 그 특징이 ‘십자가 중심주의’라고 평가될 수 있다.

 

한 마디로 복음주의는 성경중심주의, 그리스도 중심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 성서적 신앙의 터전 위에 언제나 굳게 서야 합니다.

 

한경직이 이렇게 교회목표를 설정한 것은 과거 한국교회에서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의의가 있었다. 이러한 교회목표는 당시 한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교회마다 목회방향을 재정립하고 사업목표를 신학적으로 구축하게 하였다.

한경직의 복음주의 신앙은 철저히 종교개혁 때의 표어인 ‘이신득의(justification)’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필자는 본 소고에서 그의 개혁신앙을 재조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선교에, ‘성경중심주의’를 교육에, 마지막으로 ‘십자가 중심주의’를 봉사에 연결하고자 한다. 필자는 방법론적으로 자료비평적 접근을 통하여 그의 설교를 중심으로 (1) 선교와 ‘그리스도 중심주의’ (2) 교육과 ‘성경중심주의’ (3) 봉사와 ‘십자가 중심주의’를 차례로 살펴보고, 또한 구술전달 방법과 여러 문헌적 증거들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개혁신앙이 ‘성서적 신앙의 터전’ 위에 서있었다는 사실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곧 성서적 신앙은 개혁신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기 때문에, 필자는 본 소고에서 그의 복음주의를 ‘성서적 복음주의’라고 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왜 많은 학자들이 그의 신학을 ‘온건한 복음주의’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또한 어떻게 그의 복음주의 신앙을 개혁신앙의 전통 위해서 성서적 복음주의와 연관을 지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성서적 복음주의’가 ‘경건한 복음주의’로 재해석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신학은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향후 영락교회가 추구할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삼대 사업목표인 ‘선교와 교육과 봉사’에 ‘성도의 교제’가 추가된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한경직의 개혁신앙에 근거한 신앙노선이 역대 후임담임목사들의 계속적인 사역에 어떠한 과제를 부여하는지를 연구하고, 또한 결론적으로 현재 영락교회가 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Ⅱ. 한경직의 ‘복음주의 신앙’과 개혁신앙

 

한경직의 ‘복음주의 신앙’을 개혁신앙과 연결을 짓는 작업은 종교개혁자들의 ‘이신득의(justification)’ 신앙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경직에 의하면, 종교개혁자들은 성서중심의 전통을 수립함으로써 로마 천주교와 분명히 구별되는 새로운 신앙전통을 제안할 수 있었다. 한경직은 미국 유학 시절에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당시 소위 신신학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박사과정에서 교회사를 공부하여 교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신학의 역사에 관해서도 정통하였다. 그러던 중에 건강상의 이유로 박사과정에 진학을 못하고 요양 후에 귀국하여서, 그는 미국 아빙돈 출판사(Abingdon Press)가 발행한 10권의 주석 시리즈를 『단권주석』으로 번역 출판하는 일에 관여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동기생인 김재준과 견해를 달리하여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멀리하고 복음주의적 신앙을 중시하였으며, 동시에 근본주의적인 신학에도 기울지 않았다. 그러면 그가 견지한 복음주의 신앙을 간략하게 개혁신앙의 틀 속에서 정리를 보자.

 

1. 선교와 ‘그리스도 중심주의’

 

현재 영락교회가 4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선교이며, ‘봉사 활동’과 연계되어 ‘나눔’과 ‘실천’과 ‘이웃 사랑’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락교회의 선교적인 관심은 한경직이 제안한 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중심으로 학원선교와 군 선교와 방송선교와 병원전도를 통하여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는 평소에 이러한 선교현장들을 ‘황금어장’이라고 불었는데, 요즘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가두리 어장’일 것이다. 그는 특히 군부대를 찾아가서 진중 세례식을 베풀고 성찬식을 집전하는 일을 힘썼는데, 이는 7성례를 중시하는 로마 천주교와는 구별되게 오직 세례와 성찬을 중시하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계승하는 복음 선교의 실천이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의 대위임령이기도 한 복음 선교를 실천하기 위하여 교회 창립기념 주일에 즈음하여 교회표어를 정하면서 ‘삼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고 하였고, 인구 증가에 따라 ‘오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고 하였다. 이는 그가 추구하는 대외적인 선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입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아니하십니다. 이 그리스도를 믿고, 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이 그리스도를 순종하고, 이 그리스도와 같이 살며, 이 그리스도와 죽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신앙생활의 중심에 둔 한경직은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기치를 높이 들었고, 그 일환으로 기록한 것이 전도소책자인 “기독교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에서 그는 개혁신앙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2. 교육과 ‘성경중심주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4항에 나타나 있는 ‘성경’에 관한 내용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권위는 어떠한 인간이나 교회에 의해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성경에는 권위가 있다. 그 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저자이시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벧후 1:19-21, 딤후 3:16, 요일 5:9, 살전 2:13).

 

개혁교회의 신앙을 가장 체계적으로 확립해 놓은 이러한 신앙고백은 성경의 권위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한경직은 개혁신앙 위에서 철저하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설교하고 가르쳤다. 그는 토요일마다 영락기도원에 가서 밤새 기도하며 주일설교를 준비하는 ‘성언운반일념(聖言運搬一念)’에 충실한 목회자이었다. 그의 설교와 가르침은 쉽고 단순하고 분명하였다. 그는 항상 설교 서두에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여,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청중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처음부터 그의 설교를 경청하였다. 그러나 설교가 계속되면서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한마디 한마디를 온 몸으로 토해내었다. 그가 또박 또박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심장을 도려내는 듯하였다. 그는 ‘이 설교가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신념으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한경직의 말씀을 향한 열정은 성도들에게 각종 성경공부 반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혁교회의 전통이 성경에 기초하여, 성경의 권위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는 삶을 중시한 것처럼, 영락교회는 어떤 모임보다 성경공부를 위해 시간과 장소를 할애하여 남녀노소 모든 연령층에 맞게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모였다.

현재 영락교회가 사대 교회목표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교육이다. 영락교회는 많은 평신도부서를 두고 있는데, 이는 어린이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각종 교육부로 활성화되어 있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평신도들을 훈련하고 있다. 본 소고의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영락교회가 창립초기부터 평신도를 중시한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개혁교회가 로마 천주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제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 중심이라는 점이며, 또한 교리공부가 아니라 성경공부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3. 봉사와 ‘십자가 중심주의’

 

봉사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십자가에는 고상이 달려 있지 않다. 이는 십자가 이외에 그 어떤 형상도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십자가는 개혁신앙 전통에 있어서 복음 그 자체이다.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였다. 이는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의 참된 모습을 일깨우는 말씀이다. 마가복음의 제자도가 실패한 제자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들만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가신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 간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하여 누가복음은 여성들이 ‘물질로 예수의 사역을 도왔다’고 전하면서, 바로 그 여인들이 마지막까지 예수를 따라간 제자들로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목격자한 사람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로써 누가복음은 여인들의 섬김과 봉사가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것으로 나아갔다는 사실과 예수의 부활을 체험함으로써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한경직은 1995년 4월 4일 사순절에 요한복음 12장 24절로 ‘십자가의 인력’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십자가에 끄는 힘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의 설교를 이렇게 끝난다.

 

십자가의 인력으로 주님 앞에 나와야 하고, 십자가의 인력으로 하나로 뭉쳐서 복음을 전파하고, 이 사회와 국가를 봉사하는 한국의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그는 십자가와 봉사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결코 십자가가 없이는 참다운 봉사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영락교회가 사대 교회목표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봉사에 관한 설명을 보면, 선교에 대한 설명과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선교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회봉사라는 표현을 통해서, 정작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사회복지에 관한 언급이 비록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이웃 사랑이라는 관점을 다루고 있다. 영락교회는 창립되자마자 각종 사회복지를 위한 요람으로서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을 힘써왔다. 이것이 한경직의 십자가 중심주의에 입각한 예수사랑의 실천이며, 십자가 이외의 그 어떤 형상도 용납하지 않는 개혁교회 신앙 전통을 계승한 봉사 정신이다.

 

 

Ⅲ. ‘성서적 복음주의’와 ‘경건한 복음주의’

 

한경직은 1947년에 영락교회의 전신인 베다니 교회에서 행한 주일 설교에서 디모데후서 3장 10-17절을 중심으로 ‘성경과 현대인’이라는 제목으로 성경에 대한 두 가지의 그릇된 견해를 지적하였다. 하나는 성경을 ‘천재의 기록으로 보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성경을 ‘문자적 구수로 보는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견해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하나님]는 성경 기자들에게 성신[령]으로 감동하신 것입니다... (중략) ...[이들 견해는] 성경 저자의 인격과 지식과 연구를 무시하는 견해입니다.

 

이로써 자유주의적인 견해와 근본주의적인 견해 모두 성경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한경직은 나름대로 복음주의적 성경이해를 견지하였다. 이로써 그는 성경에 관한 바른 이해에서 출발하는 복음주의적 신앙생활의 기초를 놓으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은 그의 개혁신앙이 ‘성서적 복음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의 성서적 복음주의를 언제부터인가 영락교회는 ‘경건한 복음주의’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면 한경직의 복음주의와 영락교회의 경건한 복음주의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1. ‘성서적 복음주의’

 

한경직의 ‘복음주의 신앙’은 온건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신학적인 혼란으로 야기된 장로교단의 분열 속에서도 그는 온건한 복음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예장과 기장의 중도의 입장에 서있었던 통합 교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통합 교단 내에서 그의 이러한 성향에 관해서 이만열은 그를 가리켜 ‘중도적 지도자’라고 평가하였다. 그의 중도적 역할이 통합측 교단 내에서만 조명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한경직이 통합측 교단 내에서 가졌던 위상은 곧 한국교회에서의 위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세계교회에서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는데, 그 결과로 1992년에 그에게 수여된 것이 템플턴상(Templeton Prize)이다.

한경직은 ‘온건한 복음주의’를 지향하였다. 그가 말하는 온건한 복음주의는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노선을 말한다. 많은 학자들이 한경직의 신앙과 신학을 온건한 복음주의적 특징에서 다루고 있다. 이는 이미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가 한국교회에게 ‘올바른 신앙노선’을 제안하기 위해 복음주의 신앙에 관해 언급한 것과 연결된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온건한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한경직목사 기념사업회는 한경직의 성역 50년을 기념하는 자료집을 발간하면서, 그의 ‘온건한 복음주의’를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이라고 평가하였다.

 

(전략)... 영락교회는 처음부터 복음주의 노선을 고수하여 왔다. 「처단과 분열」 「좌와 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영락교회는 한목사의 지도방침에 따라 온건하고 전통적인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노선을 고수하였다. 독선적인 근본주의적 보수정통의 유혹에 기울어지지도 않았고 오만한 자유주의의 흐름에도 한 눈 팔지 않았다.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의 길에서 흔들림이 없이 걸어왔다.

 

여기서 그의 복음주의 신앙에 관하여 “온건하고 전통적인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노선”이라고 한 평가는 아주 중요하다. 이 설명에 의하면, ‘온건한 복음주의’는 곧바로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에 연결되고 있다. 이는 아주 중요한 통찰이다. 그 이유는 성서를 중시하는 전통이 개혁신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성서를 중시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전파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점에서 그의 복음주의 신앙은 철저하게 성경의 도태위에 서있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지역 중심으로 발전해 나감으로써 후에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큰 줄기를 양분되었다. 그런데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오게 된 계기가 지역 교회 전통에 매여 종교적인 습관에 치우치다보면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교회의 정체성 문제이다. 곧 루터는 교회의 정체성을 전통이나 관습에서 찾으려 하면 자연히 교회가 제도적인 특징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 참다운 교회의 모습은 성경적 진리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보편적인 공교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중시하면서 성경을 통한 교회개혁을 부르짖었다.

한경직은 성경 위에 서있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1961년 2월 12일에 마태복음 5장 38-48절로 ‘신앙생활의 표준’이라는 설교를 통해, 온전하신 하나님을 닮아 인생을 하나님의 온전한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자세에 관해서 말하였다. 여기서 그가 갈망한 온전한 삶은 성경을 중심으로 한 온건한 삶이다.

한경직은 성경을 중심한 개혁교회의 전통을 중시하여 일찍부터 영락교회의 프로그램 중에 성경공부를 강화하였다. 그 일환으로 각종 주일성경공부반, 주중 성경공부반, 구역 성경공부반 등을 활성화하였다. 다 큰 성인들을 누가 일일이 그 길을 지도하겠는가? 아이라면 부모가 곁에서 잔소리라도 하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새로운 길을 일깨워 주겠지만, 다 큰 어른들을 그 부모인들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옛 날에 우리 선현(先賢)들은 명심보감(明心寶鑑)과 같은 글을 자주 읽으면서 마음을 수양하였다. 이제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음으로써 영혼의 참된 양식을 삼아야 하는데, 한경직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성도들에게 성경공부반에 열심히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큰 교회의 목회자가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신앙지도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경직은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 상황 속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굳게 잡고 나가는 방법으로 개개인이 성경에 뿌리를 내리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강조하였다. 이것이 그가 강조한 온건한 신앙생활이다. 그래서 그의 복음주의는 성서중심의 복음주의 곧 ‘성서적 복음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교회마다 신앙교육을 강조하고 주력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목회자들이 열심히 성경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부지런히 배움으로써, 교회가 추구하는 귀한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다. 흔히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수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인데, 한경직은 전교인으로 하여금 한 개 이상의 성경공부반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고 또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성도들이 미리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고 예방하는 차원 높은 목회를 실행하였다. 이것은 그의 목회사역이 성서적 복음주의에 입각한 개혁신앙의 전통위에 서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경건한 복음주의’

 

한경직은 ‘복음주의 신앙’을 견지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것을 많은 학자들이 ‘온건한 복음주의’로 재조명하였지만, 필자는 성서적 복음주의라고 정리하였다. 그러나 그의 복음주의 신앙을 재조명한 학자들의 온건한 복음주의 혹은 성서적 복음주의와는 달리, 현재 영락교회는 ‘경건한 복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영락교회가 재해석한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은 한국교회가 한경직의 복음주의 신앙을 온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재조명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한경직의 ‘복음주의 신앙’을 ‘온건한 복음주의’로 제조명한 많은 학자들은 그의 신학이 우와 좌를 아우르는 중도에 선 입장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그의 복음주의 신앙은 온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재조명되면서, 통합측 교단에서는 지지를 받지만 상대적으로 기장측 교단과 합동측 교단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측면이 있기에, 영락교회가 비록 문장 다듬기의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지만 그의 복음주의 신앙을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인식한 것은 잘 된 일이다. 온건한 복음주의에 관해서 교단의 입장 차이로 인해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만, 경건한 복음주의에 관해서 교단의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락교회의 사대 신앙지도원칙 가운데 제1대 원칙이 한경직이 제시한 ‘복음주의 신앙의 육성’인데, 지금은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의 육성’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복음주의라는 표현을 매우 좋아한다... (중략) ...분명한 것은 사회복음으로 이해될 복음주의나 부흥운동으로 해석될 복음주의가 아니라는 뜻으로 복음주의를 택하면서,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의 육성”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보면 왜 ‘경건한 복음주의’이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한 설명에 관해서 다분히 논쟁적인 성격이 강하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사회복음으로 이해될 복음주의나 부흥운동으로 해석될 복음주의가 아니라는 뜻’으로 ‘경건한 복음주의’를 지향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경직의 ‘복음주의’를 지금 영락교회는 ‘경건한 복음주의’로 재해석하고 있지만, 이는 역시 한국교회가 온건한 복음주의로 재조명하면서 한경직의 복음주의에 관해 통합측 교단의 특색을 지닌 것으로 간주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물론 영락교회는 문장 다듬기를 통하여 ‘경건한 복음주의’라는 주제가 지닌 함축적인 의미를 원래 한경직이 그냥 ‘복음주의’라고 언급한 것과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원하였다. 비록 경건한 복음주의를 설명하면서 통합측 교단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영락교회는 그의 복음주의 신앙을 단순하게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본 소고는 한경직의 개혁신앙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그의 복음주의 신앙에 국한하여 많은 분들이 온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간주한 것을 왜 영락교회가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재해석하게 되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경건한’이란 문구를 추가함으로써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온건한 복음주의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경건한 복음주의란 의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은 무엇인가?

경건한 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덕목이다. 그러나 단지 신앙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요, 삶까지 문제 삼는 덕목이다. 복음주의 신앙이 경건한 복음주의로 재해석 되면서, 영락교회는 복음의 진리에 기초한 경건한 신앙생활을 추구하겠다는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곧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이란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오늘 이 세상 한 복판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원리를 말하기에, 한경직이 단순하게 표현한 복음주의 신앙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경건한 복음주의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도 영락교회는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노선’을 회복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경건한 삶은 성경에 근거한 생활과 실천 속에 있을 때 가능하다. 성경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때, 자연히 우리의 삶 속에 경건한 삶을 이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영락교회가 한경직의 복음주의 신앙에 관해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재조명한 것을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으로 간주한다.

 

3. 영락교회의 변화

 

영락교회는 ‘복음주의 신앙’을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재조명하였다. 한국교회가 한경직의 복음주의를 온건한 복음주의라고 재조명한 것을 경건한 복음주의로 재해석한 영락교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영락교회는 한경직의 삼대 사업목표인 ‘선교와 교육과 봉사’에 덧붙여서 ‘성도의 교제’를 추가하였다. 다시 말해서, 현재 영락교회는 사대목표로서 교육, 성도의 교제, 선교 그리고 봉사를 추진하고 있다.

영락교회가 한경직의 삼대사업인 선교와 교육과 봉사에 덧붙여서 성도의 교제를 추가한 이유가 무엇일까? 선교와 교육과 봉사는 교회창립 때부터 줄기차게 강조된 것이지만, 성도의 교제는 교회목표라고 부르기에는 부적절한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영락교회가 대형교회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한경직이 1945년 11월 25일에 백경보의 집에서 베다니전도교회를 시작할 때, 겨우 7명이 모여서 첫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북한의 공산 정권이 싫어서 탈북한 성도들이 고향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성해지면서, 교회 창립 2년여 만에 2천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영락교회의 초창기 모습은 끈끈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성도의 교제가 중심을 이루었다. 곧 창립초기에 영락교회는 민족의 수난기에 피난민을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신앙 공동체의 특징이 강하였다.

그런데 지금 매주일 옆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서로 알지 못하고 헤어지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치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 거의 무관심으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장로와 안수집사와 같은 교회의 중직자들을 선택해야 할 때, 제대로 일꾼을 세우지 못하는 불행한 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영락교회가 실시하는 선거제도는 대형교회의 형편에 맞지 않는 옷과 같다. 그에 어울리는 선거법 개정이나 적당한 교회내규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 보니, 선거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서로 비방하는 일까지 생겨 성도의 교제에 해악이 되고 있다. 그러면 성도의 교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영락교회에서 대형화가 가져 온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구역모임과 소규모 사조직과 각종 성경공부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는 성도들은 열악한 형편이지만 일꾼이 될 만한 사람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모임마저도 선거 기간 중에는 불법 선거운동을 염려하여 공정선거 관리위원회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Ⅳ. 한경직의 역대 후임담임목사들과 영락교회의 과제

 

영락교회는 목회자가 아니라 평신도가 주도하는 교회이다. 이는 개혁교회의 전통에 아주 가까운 모습이다. 루터는 만인제사장주의를 주창하였다. 흔히 ‘제사장 나라’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표현을 오해하여서, 지금 한국에 많은 신학생들과 목회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원래 그 표현들은 루터가 이해한 것처럼 목회자들의 왕적인 지위가 아니라, 모든 평신도들이 제사장의 권한을 가지고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영락교회는 일찍부터 평신도들이 교회의 사역에 중요한 일을 감당하였다. 물론 설교와 성찬 집례와 성경공부 인도와 심방은 철저하게 목회자들의 몫이었지만, 교회 행정과 목회 계획의 수립과 실행은 장로와 안수집사와 같은 평신도 중직자들의 몫이었다. 이러한 정신은 한경직의 설교와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종교개혁의 삼대원리라고 정리한 ‘오직 복음’과 ‘오직 성경’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굳게 서서 나간다면, ‘하나님께 직접 복을 받을 수 있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개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 철저한 개혁신앙을 실천하였다.

한경직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로마 천주교회가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면서 속죄표를 판매한 것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빌미가 되었는데, 과연 영락교회가 대형예배당을 건축한 일은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 1950년 6월 4일에 영락교회는 양쪽에 날개를 단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하기 이전 예배당인 306평의 돌로 지은 본당에 입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6.25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불행하게도 공산군에 의해 신축예배당을 징발당한 영락교회의 성도들은 인사동에 있는 승동교회를 빌어서 예배를 드렸다. 그 때 피난을 가지 않고 혼자 예배당을 지켰던 장로 김응락이 9월 24일에 예배당 앞에서 순교를 하였다. 이 사건은 영락교회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평신도의 교회 사랑의 마음과 예배당을 지키려는 의지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많은 분들이 영락교회의 담임목사를 포함한 모든 교역자들이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 사랑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인정을 할 정도로, 영락교회는 현재의 예배당을 지키려는 정신력이 아주 투철하다. 지금도 영락교회의 설교단은 우뚝 솟아있다. 이것은 개혁교회가 지향하는 말씀중심의 전통과 맞물려서 예배가 이루어지고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를 중요시하는 영락교회의 특이한 정서이다. 한경직은 이러한 정서를 존중하여, 예배당에서 예배와 말씀선포를 충실하게 진행하였다. 여전히 그의 신학은 말씀을 중시하는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1. 한경직의 역대 후임담임목사들

 

그러면 한경직의 뒤를 이어서 역대 후임담임목사들이 영락교회를 창립한 그의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노선’을 얼마나 따랐는지 검토하면서, 그들이 감당한 영락교회에서의 전현직 사역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비록 현재로서는 눈치도 보여서 다루기 힘들고 금기시 되는 대목이지만,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박조준(1973년-1984년 재임)의 사역이다. 그는 한경직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몸짓과 제스처뿐만 아니라, 설교할 때 목소리와 억양까지도 그대로 모방하였다. 그는 리더십이 뛰어나고 초교파적인 연합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영락교회가 요구하는 대내외적 카리스마와 영적인 이미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목회자였다.

그러나 그는 강남의 영락교회 부지로 예배당 이전계획을 수립하였을 때, 김응락의 순교의 피가 서려있는 예배당을 지키려는 성도들과 본의 아니게 갈등하여 무산되었다. 그 후에 1985년에 한국교회는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가졌다. 그 때에 지금은 사라진 여의도 광장에 100만 명의 신도가 모여서 한국교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자축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해에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치료차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마련해 준 미화를 지참하고 나가게 되었는데, 당시 엄격하였던 외환관리법을 위반하게 되어서 현장에서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이 TV 카메라에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 사건은 한경직의 청빈한 이미지와 설교자의 엄중함을 좋아하던 성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박조준은 이 일로 갑작스럽게 영락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 이는 과거에 한국에서 작은 교회들이 난립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제는 대형교회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는 부정적인 사건이었다.

둘째, 김윤국(1985년-1988년 재임)의 사역이다. 그는 변호사답게 정확하고 꼼꼼하게 목회사역을 감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영락교회에 머문 것은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과도기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짧은 목회기간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영락교회가 요구하는 이른바 ‘사람들과 친화적이고 영어를 잘하고 대외적인 인물감’이라는 명성에 합하는 목회자라는 점에서 많은 성도들이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가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담당 주치의가 무조건 쉬라는 경고에 따라 갑작스럽게 교회를 사임하였다. 그가 그처럼 쉽게 교회를 사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경직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영락교회는 담임목사가 목회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회하시는 교회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영락교회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강화되어 있지만, 영락의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한경직을 위시한 후임목회자들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영락교회를 이끄신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한경직은 이와 같은 신앙으로 1966년 베를린에서 모인 세계전도대회에서 스가랴 4장 6절을 본문으로 ‘오직 나의 신으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신만이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시라”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개혁교회가 추구하는 전통 중에 ‘하나님의 선교’ 개념 못지않게 ‘하나님의 목회’ 개념도 아주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임영수(1988년-1997년 재임)의 사역이다. 그는 재임 초에 팀 목회를 추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교육목사인 김동호와 행정목사인 이성희를 청빙하여 자신은 설교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이른바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참신한 목회를 조심스럽게 주도하였지만, 평신도가 주도하는 특성이 강한 교회에서 중직자들의 많은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이어서, 내면세계를 돌아보고 영성수련을 강조하는 목회를 지속하였다. 그는 많은 어려움 중에도 10년 가까이 영락교회를 섬기면서 성도들이 영적 성숙과 개개인의 신앙생활이 변화하는 것에 의미를 둘 것을 가르친 공로가 크다.

어떤 면에서 대형교회는 목회자에게 리더십보다는 쇼맨십을 더 요구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대형교회는 교회 내적으로 큰살림을 하고 대외적으로 업적을 남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 앉는 슈퍼스타 목회자의 이미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임영수는 외적인 치장보다는 진실하게 내면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일에 더 큰 보람을 가졌다. 정작 이러한 영성 목회가 당시 영락교회에 더욱 더 절실하게 필요하여서 많은 성도들이 그의 설교와 목회에 큰 감동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영락의 성도들이 그를 가리켜서 내면적으로 한경직을 가장 많이 닮은 목회자이었다고 회상한다.

넷째, 이철신(1997년-현재 재임)의 사역이다. 그는 여러 경우의 문제들로 영락교회를 떠난 전임 목회자들이 남긴 어려움을 잘 알고서 부임하여서인지, 처음부터 기도를 강조하는 목회를 표방하였다. 지금도 영락교회 안에서 그는 ‘기도하는 목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모든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많은 성도들이 대형교회 목회자로서 자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기도하지는 못하나, 그가 전체 교인들을 놓고서 기도한 것이 자신들에게 온전히 응답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강직하게 교회개혁을 추진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당회와 제직회의 마찰을 초래하였지만, 그는 언제나 개혁교회의 전통인 말씀중심으로 설교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한경직이 설교를 위해 토요일에 전적으로 설교준비에만 매달린 것처럼, 그도 토요일에 설교준비 이외에 일체의 제반 목회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는다.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은혜 가운데 합력하여 선하게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서, 그는 강단에서 순교하겠다는 각오로 영락교회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다섯째,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미래의 영락교회를 맡게 될 담임목사의 사역이다. 한경직의 후임을 청빙하면서 영락교회는 지금까지 ‘북한 출신 목회자나 그 후손’이라는 잣대를 중시하였다. 후임과 관련된 문제가 일차적으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영락교회는 평신도가 책임지고 사역을 감당하는 전통이 세워진 특별한 교회이다. 그 결과로 평신도의 자부심이 강하고, 또한 장로가 목회 일선에서 사역을 주도하는 교회이다 보니, 이러한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후임목사는 당회와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후임자가 부임하여 교회파악을 한다고 하여도, 영락교회를 체질적으로 아는 본 교회 출신 목회자를 따라갈 수는 없다. 이제 영락교회의 역사도 62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서 그동안 모교회가 길러낸 목회자들이 국내외에서 목회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영락교회 출신 목회자들이라고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기에 엄밀하게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앞으로 이런 분들이 본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아울러 미래의 좋은 후임목사를 청빙하기 위해서 영락교회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인재를 길러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동안 세간에 여러 차례 알려진 바 있지만, 영락교회 내에서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사이의 차이에 관한 불필요한 논쟁이 일어났다. 앞으로는 상호간에 이런 불편한 일들이 해소되어야 한다. 성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한경직 목사님은 100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분이시다”라는 표현이 있다. 물론 한경직과 같은 분을 흉내 내거나 따라 갈 수 있는 후임자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과거에 한경직을 사용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여전히 후임목사들을 통하여 영락교회에 요긴한 목회를 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 이미 한경직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또한 그의 신학적 혹은 목회적 의미도 계속해서 재조명되어 모든 교회들이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분을 후임자로 청빙한 이후에, 그가 소신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교회에서 목사직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당회와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도와드려야 한다.

 

2. 영락교회의 과제

 

많은 성도들이 영락교회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있다. 이는 비단 영락교회의 바람만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한국의 성도들이 영락교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영락교회의 과제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1973년 1월 2일 오후 2시에 약 3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거행된 원로목사 추대식을 주목하자. 그 자리에서 홍현설은 한경직이 영락교회에서 갖는 위상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서의 위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영락교회의 한 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시작된다.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와 아니 한국교회와 분리될 수 없는 분이다. 그는 세계에서도 뛰어난 교역자이다. 위대한 설교자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소유해야 하는데 한경직 목사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강한 삶과 약한 사람, 그리고 학식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을 구별 없이 사랑한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영락교회를 넘어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영락교회는 그를 대신하여 대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 영락교회는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 영락교회는 한국교회역사에 길이 남을만하다. 영락교회가 한국교회의 위상을 국내외적으로 드높이며, 많은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분열과 갈등의 역사에 대해서 영락교회는 깊은 반성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경직이 영락교회를 창립하여 만 27년간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분열과 갈등이 교회 내외에 있었다. 교회적으로 1948년 6월 20일에 제2회 장로로서 12명을 세웠는데, 그중에 한 분은 담임목사를 반대하여 무려 한경직이 여러 번이나 사표를 제출할 마음을 갖게 하였다. 교단적으로 1959년 9월 대전중앙교회에서 개최된 제44회 총회가 연동과 승동으로 양분되었을 때, 유학 시절에 프린스턴 신학교의 분열과정을 기억하던 한경직은 연동측 대표로 나서서 반쪽이 된 통합측 교단을 수습하였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도 있다. 이제 영락교회는 분열과 갈등의 상처를 씻고, 서로 보듬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하여야 한다. 한경직이 당회를 운영하면서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였다는데, 이는 당회가 하나 되는 것이 교회의 화평과 일치를 이루는 길임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영락교회는 개혁교회의 가장 큰 장점인 오직 성경의 권위만을 존중해야 한다. 흔히 영락교회를 일컬어서 장자교단의 장자교회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과거에도 그런 말은 아주 조심스러운 말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영락교회는 이 말을 즐겨 사용한다. ‘영락교회 성도들은 영락의 깃발아래 모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본 교회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강하다. 물론 좋은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지만, 여전히 주관적 감정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표현이다. 과거 로마 천주교가 교황 무오설을 중심으로 교회전통에 의해 수립된 교리만을 중시한 나머지 많은 오류를 범하였던 전철을 기억하고, 영락교회는 그릇된 전통을 지양해야 한다. 최근에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가톨릭 이외의 다른 기독교 종파는 결함이 있거나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 가톨릭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말하였다. 아직도 로마 천주교회는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교회전통만을 중시하는 로마 천주교회의 고질적인 병폐이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성경 이외의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영락교회는 대형교회의 자부심에서 벗어나 주위에 얼마든지 더 큰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식하고서, 교회의 외적인 권위인 전통보다는 내적인 권위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셋째, 영락교회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에 힘써야 한다. 영락교회만큼 씀씀이가 큰 교회도 드물다.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일에 음식이나 물품 혹은 기자재를 기부하는 일들이 흔하다. 그럴 때면, 사회자가 모든 기부자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내용을 공개하는 일이 교회행사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그리스도인의 덕목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행동이다. 예수께서는 ‘좀이나 동록이 해치지 못하게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아두라’고 권면하셨고, 또한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권면하셨다. 이렇게 권면하시는 이유는 사람이 칭찬과 영예를 받는 것은 올바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가르침이었다.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이것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장 깔뱅이다. 그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최우선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서적 말미에 항상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라는 문구를 넣을 정도였다. 이제 영락교회는 이러한 개혁신앙의 전통을 본받아서 매사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창립 50주년 기념주일에서 당시 담임목사였던 임영수는 “영락교회는 숨어서 봉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21세기의 주역이 될 세계선교를 위해서도 헌신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영락교회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하는 봉사와 선교가 낳게 될 극대화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넷째, 다시 영락교회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기치를 더욱 더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 한경직은 당회를 인도하면서 여러 가지 이견이 개진될 때, ‘일리(一理)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일리가 있다는 말은 그가 하는 말이 진리(眞理)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뜻이 있다는 발언이기에 듣는 이에게 호감을 주는 표현이다. 그가 선교에 박차를 가할 때 국내외적으로 ‘국내 전도가 우선이냐?’ 아니면 ‘해외 선교가 우선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당시에 제기된 모든 의견들을 수렴하고 조정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라는 큰 틀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서, 성도들로 하여금 각종 선교회에 가입하여 회비를 내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의 본질적인 가치인 선교 공동체로서 감당해야할 사명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현재 영락교회가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다. 영락교회는 이 땅의 교회가 복음전도를 위해 부름 받았다는 본질적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복음전도가 영락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사역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이러한 일차적인 일을 등한히 하고 부차적인 일에 힘을 기울 일 때,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한다.

다섯째, 영락교회는 평균 연령이 점점 고령화되어가는 문제를 해결하고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힘쓰는 일이 시급하다. 물론 현재 영락교회는 젊은이들을 교회에 끌어 들이기 위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외적으로는 영락교회의 교육시설이 그 어느 교회와 비교할 때 뒤진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많은 교회의 부러움을 사온 것이 지금까지의 영락교회의 교회교육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문제는 외적인 교육여건을 개선하는데 주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교육을 담당하는 지도자들의 교육철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왜 교회교육에 젊은이들이 흥미를 잃고 있는지, 왜 주일예배에 젊은이들보다는 노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지, 과거에 교육부를 전문 목회자가 담당하게 하다가 이제는 상당 부분을 부목사와 전임전도사로 대체하여 지도하게 하는지 등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게 한 후에 문제점과 대안을 근원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여섯째, 영락교회는 지교회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세계교회와 우주적 교회의 이념을 구현해야 한다. 한경직은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도 부모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노년에 “하나님과 아이 자신과 부모와 교회와 국가가 긴밀한 협동을 할 때만 이것이 가능합니다.”라고 설교하였다. 흔히 자녀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동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설교는 지교회적인 개념을 탈피하고 범세계적으로 인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육한다는 우주적 교회이념의 발로이다. 그는 또한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도 주님의 복음전파에 대한 부탁은 실로 지상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세계교회와 우주적 교회이념을 가진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분명히 보여준다. 영락교회는 62년을 대형교회로 지내오면서도, 아직도 지역교회의 면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영락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들을 교회사역의 전면에 세워야 한다. 교인 수에 비하여 여전이 부교역자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하며,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성도들을 장로와 안수집사로 기용하지 못하고, 많은 여성들이 교회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 부목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것과, 세계화의 추세에 발을 맞추어서 평신도 지도자들이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현상 등이 현재 영락교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다. 이제 영락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서서 일하지 못하는 경직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책임적인 일을 하고, 그 힘을 전체적으로 묶어서 이 사회와 세계를 위해 발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일곱째, 개혁교회의 표어 중에 라틴어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가 있다. 이 뜻은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The church reformed and always to be reformed).’이다. 특히 reformatareformanda라는 단어는 개혁의 주체가가 하나님이시며 개혁의 대상은 교회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어떤 사람도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오직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개혁될 대상이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도 교회를 개혁한 주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영락교회는 이 같은 개혁교회의 신앙전통을 항상 올바르게 숙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영락교회에서 교회개혁을 부르짖고 시도한 많은 사례들을 보면, 모두 어느 특정 인간이 개혁을 주도하다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교회개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고 인위적으로 개혁을 주도하려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개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위험성을 면하기 위하여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안일한 자세도 올바른 개혁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락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신앙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과 기도를 해야 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물은 언제나 아래로 흘러가야 하듯이, 영락교회는 낮은 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필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이 일을 주관하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Ⅴ. 결론

 

개혁교회는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에 비추어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개혁신학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영락교회는 과거의 자랑에서 탈피하여, 새 시대에 어울리는 교회의 참다운 이미지를 세워나가기 위하여 성경말씀의 가르침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날마다 성경의 권위에 기초하여 자신을 개혁해 나가는 것이 개혁교회의 참 모습이다. 곧 한경직의 복음주의는 성서적 복음주의이기 때문이다.

한경직의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이 비록 그의 개혁신앙이 지니고 있는 중도적인 성향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온건한 복음주의 신앙으로 재해석되었지만, 영락교회는 여전히 그의 개혁신학을 경건한 복음주의로 이해하기를 고집하고 있다. 본 소고는 이러한 사실을 주목하면서 현재 영락교회가 얼마나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 전통에 경건하게 서있는지 점검해 보면서 향후 영락교회의 과제가 무엇인지 제안해 보았다.

필자는 한경직의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노선을 개혁신앙의 전통에서 살펴보면서, 영락교회의 역대 후임담임목사들의 사역이 지닌 의미와 지금 영락교회가 감당해야 할 과제뿐만 아니라, 향후 개혁교회의 전통에 굳게 서서 영락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안해 보았다. 이제 창립 62주년을 맞이한 영락교회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도 영락교회 위에 하나님의 촛대가 머물러 있다.

과거의 영락교회는 한경직을 중심으로 공산정권이 싫어서 북한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성도들을 중심으로 세워져 한국사회를 재건하는 일에 앞장선 교회였다. 이제는 이 시대의 죄악상을 직시하고 참다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시기를 기대하며 미래의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새롭게 지향하는 우주적인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간혹 한경직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형교회의 목회자이었다는 사실이 그를 올바르게 평가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 소고는 그의 청빈하고 겸손한 삶과 목회가 개혁신앙의 전통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조명하였으며, 그의 영향력이 지금도 영락교회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향후 영락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제에 관해서도 제안을 해 보았다. 지면 관계상 많은 내용을 모두 다루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여기 거명된 많은 인사들 중에 당사자들 혹은 그 후손들이나 친인척인 분들이 많을 텐데 혹시 그들에게 누가 되는 점이 있다면 모두 필자의 소견이라는 점을 살펴서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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