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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예배 365-7월 24일] 일곱째 재앙, 참된 회개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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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아버지여 이 죄인을’ 276장(통 3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출애굽기 9장 22∼35절


말씀 : 언제 사람이 변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두 번 후회의 말을 할 때일까요. 아니면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이킬 때일까요. 답은 자명합니다. 말은 누구나 쉽게 내뱉을 수 있지만 행동은 바꾸기 심히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요, 생각보다 삶입니다. 말로는 잘못을 수없이 반성할 수 있고, 생각만으로도 끊임없이 뉘우치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모습을 돌이키는 행동을 보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뜻하는 머리와 입은 가깝고 행동을 의미하는 손과 발은 멀다고 하나 봅니다.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서 입은 가깝고 손과 발은 먼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재앙이 시작되는데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개국 이래로 이런 일이 없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우박과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집니다.(24절) 우렛소리가 땅을 진동하고 집 밖에 있던 짐승과 사람은 우박에 맞아 죽어갑니다. 여기저기서 사람과 동물의 아우성이 들립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심지어 들에 있는 식물들도 다 땅에 떨어져 버립니다. 여기저기서 “이제 우리는 끝났다”며 장탄식을 합니다.

두 눈으로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재앙이 애굽 사람에게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사는 곳에는 우박도 불덩이도 없고 고요합니다. 누가 봐도 이건 하나님이 한 일입니다.

바로는 예고된 재앙이 닥치자 급하게 모세와 아론을 부릅니다. 그리고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습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27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일견 반성처럼 보이고 회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습니다. ‘이번은’ 범죄했다면 지금까지는 잘못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범죄했으면 여호와께 죄를 고하고 즉각적으로 히브리인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럴 마음 자체가 없었습니다. 즉 입으로는 뉘우쳤지만 행동으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걸 회개라고 볼 수 있을까요. 당장 상황만 모면하려고 그저 입에 발린 말을 한 것일 따름입니다. 이처럼 말로는 쉽게 회개하고 반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행태는 그대로인데 입으로만 하는 회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혹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도 말로만 회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된 회개는 말과 함께 늘 행동과 삶의 변화가 동반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와 그 신하들처럼 입에 발린 회개,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회개를 할 뿐입니다. 나의 회개는 어떠합니까. 말로만 하는 회개, 생각으로만 하는 회개가 아닌지요. 오늘 하루 스스로 깊이 묵상해 봅시다. 죄인인 우리 역시 머리와 입은 가깝고 손과 발은 먼 법입니다.

기도 : 말뿐인 회개가 아닌 손과 발로 하는 회개, 삶으로 돌이키는 회개를 하게 해 주십시오. 또 이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신웅 목사 (예장고신 총회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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