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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박신애 <2> 뜻밖의 800달러…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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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애틀랜타 공항으로 남편의 누님이 황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오셨다. 누님은 책임자에게 조목조목 따졌다.

“학생이 수업에 차질 없도록 배려해야 할 항공사가 어떻게 탑승한 사람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나요. 이것은 신문에 낼 큰 기삿거리 아닌가요?”

처음엔 우리를 내심 깔보며 다음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로 줄지, 아니면 현금으로 돌려줄지를 묻던 이들이 쩔쩔매며 실수를 인정했다. 그들은 비행기 표를 다시 끊어주며 사과의 표시로 800달러를 주었다. 800달러. 그 돈은 남편이 앞으로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받을 월급과 신기하게도 일치하는 금액이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가난한 유학생인 우리를 위해 한 달간의 월급을 그런 식으로 당겨주셨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확신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학을 구체적으로 주관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사실과 앞으로 미국생활을 축복하실 것을 말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우리의 전 재산은 1만1000달러였다. 남편이 대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5년간 근무해 받은 퇴직금과 내가 적금 넣은 것, 그리고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다. 열심히 공부해 성공하지 않으면 돌아갈 비행기 표조차 살 돈이 없었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터스컬루사에 도착한 다음 날은 1985년 1월 첫째 주 주일이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땅 미국에 와 먼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창 8:20) 아직 영어가 서투른 우린 한인교회에서 한국말로 마음껏 예배를 드릴 수 있어 기뻤다.

남편은 학교 아파트 로즈타워 712호에 이민가방 6개를 올려주고 시험을 치르러 학교로 갔다. 짐을 풀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런저런 생필품들을 가방에 손톱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꽉 눌러 넣어주셨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모님이 그리워지면서 한국에서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말했던 것처럼 나도 3대째 모태신앙이다. 외할머니는 부산 수정교회 권사님이셨다. 외할머니는 평생 하나님과 교우를 섬겼다.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어린 나에게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무언중에 가르쳐주었다.

외할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은 어머니 유선희 권사 역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셨다. 여학교 때부터 시작한 주일학교 교사를 돌아가실 때까지 쉬지 않으셨다. 아버지 박경수 장로는 군복무 중 세례를 받고 열심히 주를 섬겼다. 평생 교회와 5분 거리에서 사셨다.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을 ‘하늘나라 저축’이라고 말씀하셨다. 은행 지점장이신 아버지가 은행에 저축하지 않고 당장 찾아 쓰지도 못하는 하늘나라에 왜 저축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하면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아버지는 확실한 곳 가장 높은 이자를 주는 곳에 저축하신 것이다. 그 덕분에 나와 우리 형제들은 지금 마음껏 찾아 쓰고 있다. 나와 여동생은 신실한 신앙의 가정을 이뤘고 남동생 박제복 목사는 외할머니 때부터 섬겨온 부산 수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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