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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권위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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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권위                              

눅4:31-44


  성자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3년여의 짧은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공생애 기간은 3년여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 짧은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셨을까요? 우리는 80년을 살아도 할 일을 못다 하고 죽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집중하셨으며, 권세 있고 능력 있게 그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말씀에 대한 권위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지만,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신앙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가버나움에 오셔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는데,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31-32절)


  마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1:22) 당시 회당에서 가르치던 랍비들은 선임자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설교했습니다. 랍비들은 오랫동안 율법을 연구해왔으며, 수많은 주석과 보조 자료들을 집필해왔습니다. 당시의 랍비들은 율법에 대한 이러한 주석과 자료들을 참고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러므로 랍비들에게는 자신의 권위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이러한 랍비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운 이론이나 누구의 견해를 인용하여 말씀하시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듣는 사람들은 모두 그 권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권위에서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도 그 차원이 랍비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사랑으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때로 주님께서는 이들을 보시고 우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은 듣고 배운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서기관들이나 랍비들의 설교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말씀이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권세 있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을 겸손히 들을 뿐만 아니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나고, 우리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확신하게 됩니다.

  

  귀신에 대한 권위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거기 있던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33-34절)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귀신들림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거나 무시합니다. 그러나 귀신들림은 정신병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나타는 특징은 악하고 교활하며, 때로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정신병자들은 악의가 없으며 순진한 경향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귀신들린 사람에게서는 그 사람 안에 새로운 인격이 나타나는데, 이 인격은 끈질기고 일관되게 악하며 파괴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은 물론 그 사람 안에서 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사람 안에 들어가 그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두려워하면서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꾸짖어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35절) 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복종하여 그 사람에게서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복종시켜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36절)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신 곳마다 사탄의 세력은 쫓겨났습니다.


  귀신의 역사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귀신은 교활하게 우리를 속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때로 귀신들이 돌아가신 부모나 특정인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속아서는 안 됩니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의 육체는 이미 땅에 묻혔거나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우리에게 나타나거나 이 세상을 떠도는 일은 없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그런 경우에 마음이 약해져 현혹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하고 담대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마귀는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며 쫓겨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물리치기 바랍니다.


    질병에 대한 권위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 예수님께서는 병들어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를 위하여 예수께 간구하니”(38절)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의사였던 누가의 특징적인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시몬의 장모가 그냥 열병으로 누워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중한 열병’이라고 그 증세와 병명을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중한 열병에 걸려 극심한 고열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너무나도 중한 열병을 앓고 있어서였던지 직접 예수님께 고쳐주시라고 구하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예수님께 대신 구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그 집에 가셨다고 기록했는데, 아마도 그 제자들이 예수님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라고 간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가셔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9절)


  이 사실은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 중에는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세계선교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교회와 주의 종들을 위해, 믿지 않는 가족들과 이웃을 위해 쉬지 말고 힘써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침상에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서신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병자를 고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전능하신 의사 되시는 예수님께서 열병을 꾸짖으시자 병이 곧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만이 아니라 질병과 바람, 바다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님께서 꾸짖으시자 즉시 복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과 만유를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자, 그녀는 즉시 일어나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중한 열병으로 침상에 누워 일어날 수 없었던 중환자였습니다. 그런데 점진적으로 차차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즉시 완전히 나아서 기운을 회복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치유는 즉각적이고 완전했습니다. 목회하면서 주님께서 고치시고 해결하시면 즉시 완전하게 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병자들을 고치심


  예수님께서 놀라운 권위로 말씀을 전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병을 고치시자,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37절) 이렇게 예수님의 소문이 사방에 퍼지자, 사람들이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40절)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은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면 그 날이 끝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 ‘해질 무렵’은 안식일이 끝난 시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병자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병자들에게 일일이 안수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자들을 한 번에 고쳐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한 사람씩 안수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 그 날 병자들은 자신을 어루만져 고쳐주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병을 얼마든지 고쳐주십니다. 특히 주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실 때, 우리는 온몸으로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병 고침 받는 것은 참으로 은혜롭고 복된 일입니다. 당신은 병 고침을 받으며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온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병원에 입원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그 병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 어려운 문제로 힘들 때, 주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몸과 마음으로 충만하게 체험하게 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병자들만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들도 예수님께 데려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을 꾸짖어 쫓아내셨습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41절) 예수님께서 꾸짖으시자 귀신들은 예수님에 대해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외치며 쫓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귀신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금하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아직 하셔야 할 일이 많았는데, 그 일들을 이루시기까지 불필요한 반대와 방해를 받지 않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들, 특히 그들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들이 당신에 대해 증거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과 성령님께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권위의 비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으며,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중한 열병을 앓고 있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해질 무렵에 찾아온 수많은 병자들을 일일이 안수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아마도 이 일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날 얼마나 지치고 피곤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42절) 마가는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러 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과 긴밀하게 동행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나님과 친밀하게 만나는 일을 사모하며 힘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로 밤을 새워 하나님과 단둘이 교제하셨으며,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게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시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집중하며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가장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의 비결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권위 있게 선포하셨으며,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고, 질병을 치유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보내심 받은 사명과 목적을 확인하셨고, 끝까지 흔들림 없이 그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새벽 밝기 전부터 기도하고 계시던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들에게서 떠나가지 마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고 다른 마을로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43-44절)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며 병을 고쳐주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속 자기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런 놀라운 기적 베풀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6:15)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으며,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위에 오르시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으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뿌리치시고 다른 곳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유혹들을 물리치시고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기도에 힘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게 기도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그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짧은 공생에 동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인간관계와 바쁜 일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칫하면 인생의 목적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렇게 살다 인생이 끝나면 우리는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주님처럼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더욱 힘써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과 본분을 완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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