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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두 제자를 부르심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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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를 부르심                       

눅6:12-16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맨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쓰시고자 하시는 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요즘 우리는 이사야를 묵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때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택하신 열두 제자가 나옵니다. 이들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 쓰임을 받음으로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군중과 제자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셨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으며,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에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제자들을 부르셨는데, 이렇게 부름 받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특별히 양육하시고 훈련하여 전도자와 교회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무리를 다르게 대하셨습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소수의 제자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고 많았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고, 한 사람이라도 더 병 고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보다 소수의 제자들에게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래 계시지 않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신다 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고침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양육하셔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계속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전략은 놀랍게 적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생 팔레스타인 지방을 벗어나 외국에 나가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께서 양육하신 제자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심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열두 제자를 택하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12-13절)


  지난 본문에서 누가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적대와 핍박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할 것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계속 전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양육하셔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신 후에도 그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택하셨습니다.


  이 일이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적대와 핍박이 심해진 것을 걱정하시면서 밤을 새우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택하시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단둘이서 친밀하게 교제하시면서 밤을 새우셨습니다. 그렇게 밤을 새워 하나님 아버지와 깊이 교제하는 시간이야말로 예수님에게 가장 행복하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새워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오늘 당신은 중요한 문제를 놓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중요한 문제, 염려되는 문제를 가지고 밤을 새워 염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무나도 피곤하고 바쁘셨지만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삶을 검토하고 일을 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삶이 고갈되고 인생은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아무리 바쁠 때도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바쁠수록, 중요한 일이 있을수록, 염려가 클수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열두 제자


  예수님께서 택하신 제자는 열두 명이었습니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14-16절)


  당신은 열두 제자의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까? 누가가 기록한 명단은 이렇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나다나엘), 마태, 도마(디두모),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다대오), 가룟 유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을 제자로 부르신 후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헬라어인데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를 ‘게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게바’도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인데,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요1:40) 안드레는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났고,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1:41-42)


  야고보와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들이며 성격이 매우 급했습니다. 예수님께 이들에게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고”(막3:17)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습니다.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벳세다 출신이며,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바돌로메는 빌립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과 동일인입니다.


  마태는 누가가 앞에서 기록한 대로 세리 출신 레위입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세리였던 자신의 과거를 서슴없이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9:9) 마태가 부끄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서슴없이 기록한 것은 그를 구원하시고 제자로 불러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마는 ‘디두모’라고도 불렸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동료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라고 부릅니다.


  ‘셀롯이라는 시몬’은 베드로와 구별하기 위해 ‘가나안인 시몬’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나안인’은 가나안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열심당원이라는 뜻입니다. 셀롯 역시 같은 뜻입니다. 열심당은 반로마적인 독립투쟁단체인데, 유대의 독립을 위해 살인, 방화, 약탈 등 폭력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나오는데, 마태와 마가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다대오’라고 불렀습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 공동체에서 신뢰와 신망을 받아 회계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계를 맡아보면서 재정을 빼돌렸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12:4-6)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으며,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겼습니다.

  

  교회의 초석


  예수님께서는 왜 열두 명을 택하셨을까요? 먼저 구약의 역사와 연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되어 있었습니다. 열두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후, 열두 지파는 붕괴되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남 왕국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이스라엘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새 이스라엘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되며, 새 이스라엘이 됩니다. 새 이스라엘은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게 될 참된 하나님 백성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늘에 있는 도성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 성의 열두 기초석에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썼습니다.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계21:14)


    제자를 부르신 목적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택하여 부르신 목적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막3:14-15)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훈련을 받았으며, 예수님의 인격과 삶과 사역을 지켜보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양육하셔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또 하나의 목적은 그들을 세상에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훈련을 받은 후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을 옥에 가두고 매를 때리며 위협했지만 아무도, 그 무엇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마지막 목적은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건설해나가는 일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사탄에게 얽매었던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사탄과의 영적인 전투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필요합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며 예수 이름으로 명할 때 귀신들이 쫓겨났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도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시고 세상을 떠나가실 것이었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훈련하셔서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들을 계속하게 하실 작정이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능력을 입혀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고, 사탄의 세력들이 쫓겨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권위와 능력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온 세상에 확장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불러 교회로 삼아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의 한 교회에 마을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이유는 그 교회 마당에 있는 예수님 상 때문이었습니다. 폭격을 맞아 예수님 상의 두 팔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마을 대표들은 떨어진 두 팔만 복원시킬 것인가, 아니면 아예 다시 만들 것인가를 두고 토의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예수님 상을 폭격 맞아서 두 팔이 없는 그대로 놔두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안에 이렇게 써넣읍시다. 예수님은 당신과 나의 팔을 필요로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계속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우리가 과연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열두 제자들도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열두 제자는 가룟 유다만 빼고는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는 학자나 유명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다혈질이어서 실수도 많았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성질이 급해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셀롯인 시몬은 로마인들을 쫓아내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적인 투쟁도 불사했던 지하 혁명가였습니다. 열둘 중 가룟 유다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겼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문제가 많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온 세상에 복음 전파하는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매일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만일 당신이 말씀을 묵상하지 못하거나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피곤하다면, 인생을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의 제자로 굳게 서서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감당해나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음으로 당신의 인생이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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