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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수를 사랑하라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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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                         

눅6:27-36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라는 것은 성도 각 개인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하셨던 일들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하셨던 일은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교회는, 성도 각 개인은 주님께서 하셨던 이 일들을 계속해나가야 합니다.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계속해나가야 할 주님의 일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이 그 몸의 지체라는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여 달라고,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난감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들의 요구는 당연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면 누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천국시민의 윤리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놀랍고 새로운 교훈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교훈들은 하나님 나라의 윤리,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지켜야 할 윤리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 백성에게는 지켜야 할 하나님 나라의 윤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윤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윤리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천국의 새로운 윤리는 세상의 윤리와 다릅니다. 따라서 천국의 윤리를 따라 사는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거룩하고 능력 있고 선한 모습을 타나내게 됩니다. 이러한 천국 백성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께서는 천국 백성이 지켜야 할 윤리를 가르치시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7-28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어떤 사람이 우리의 원수일까요? 우리는 대개 누군가에게 모욕을 받거나 부당한 손해를 당할 때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며, 이것이 심해지면 복수할 기회를 찾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바보가 되는 것 아닐까요? 또 우리가 당한 모욕과 손해는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은 좋은 말씀이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문제를 감정의 문제로 접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를 모욕하고 부당하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감정, 심지어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이 어디 명령으로 되는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그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하셨습니다. 35절에도 같은 구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그를 선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하여 사랑스런 감정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선대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미운 감정이 남아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미워하는 감정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선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스런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그를 선대하며 기꺼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감정적인 문제로 보기 이전에 의지적인 순종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


  그런데 원수를 미워하는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미움을 당장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미워하는 감정을 계속 품고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7-28절) 원수를 선대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 해도, 그를 선대하며 위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함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워하는 감정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감정을 처리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무슨 배경이나 사정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정말 믿음이 좋은 분인데, 이상하게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야단을 잘 쳤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살아온 과거를 알고 나자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믿음을 지키고 인생을 헤쳐 왔기 때문에 성격이 강해졌고, 시원찮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터졌던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늘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감정은 그렇더라도 그를 잘 대해주고 기꺼이 도와주도록 하십시오. 그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감정까지도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맡기라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어떻게 순종할 수 있습니까? 나에게 모욕을 주고 부당하게 손해를 끼치는 원수라도 기꺼이 사랑하고 선대하며, 그 사람을 축복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받은 손해는 누가 보상해주겠습니까? 나는 늘 손해만 보고, 부당한 일을 당하기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에게 과연 그렇게까지 감당할 능력이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저주하고 심판하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사랑할 것만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욕과 손해를 당해 억울하고 분할 때 꼭 앙갚음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툼과 갈등이 깊어지고, 우리 자신은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하다보면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판단하고 저주하고 복수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복수하면 죄를 짓게 되며,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공의로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가장 선하고 적절하게 처리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말씀은 곧 원수를 선대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 선대하는 것은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황금률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윤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천국 백성의 윤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절)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유대인 랍비들이나 헬라 철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도 “네가 싫어하는 일은 타인에게도 행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황금률은 ‘이웃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문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내가 이렇게 해주었으니 당신도 나에게 그렇게 해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헌신의 자세로 남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오직 상대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윤리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행동할 때 거기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관대하라


  본문의 교훈들은 ‘관대하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라”(29-30절)


  이 말씀은 폭행과 절도를 당할 때, 그냥 당하거나 그런 행동을 방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뺨을 맞는다는 것은 가장 모욕적인 일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천국백성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참을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덮어주도록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맞대응을 하면 싸움은 커지고 죄를 짓게 되며, 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더 때리라고 하면서 계속 맞아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참고 사랑으로 덮어주되, 되도록 속히 그 자리에서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야 더 곤란한 상황과 싸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무엇을 구한다면, 하나님 백성인 우리는 그 사람에게 구하는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베풀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의 고통과 불행을 외면하지 말고 동정하며 돕되, 고난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관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주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 구원해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격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죄인에게 쉬지 않고 은혜 베풀어주신 것을 기억하며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나 같은 죄인을 여전히 붙들어 주시고 사용해주시는 것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관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운 이웃에게 관대하게 대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분에 넘치도록 은혜 베풀어주신 것을 기억하며 이웃에게 관대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대상을 확대하라


  우리는 대개 자기 가족만 위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고 사랑을 베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은 누구나, 심지어는 악한 자들도 다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은 마땅히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32-35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백성이라면, 자기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선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에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부담스럽고, 아직도 원수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며 선대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라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답게 된다는 뜻입니다. 누가 보아도 이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으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36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5:45)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뿐 아니라 악한 자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땅히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관대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선대함으로 하나님 자녀인 것을 분명히 나타내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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