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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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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5∼30절)


사람들은 모두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며 삽니다. 돈이 많으면 돈 때문에 수고하고 허덕이고 권력이 있으면 권력 때문에 수고합니다. 우리는 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벽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자진하여 우리의 의지할 수 있는 벽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국 위스콘신 의과대학의 리처드 스웬슨 박사의 <여유>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유가 없는 삶은 마치 여백도 없고 띄어쓰기도 안 된 채 글자만 빼곡히 채워진 페이지를 읽는 것과 같다’


여백도 없고 띄어쓰기도 없이 글자만 가득한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여유가 없는 삶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바쁘고 피곤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되어 이전에는 며칠씩 걸리던 일을 몇 초 만에 해치우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바쁩니다. “바쁘다”는 말이 입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바쁘게 살다 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피로를 호소합니다. 예전에는 휴가철이면 예전에는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났는데 요즘은 ‘무위 휴가’가 인기입니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가가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휴가를 떠나면 그 휴가 자체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적 피로보다 더 무서운 게 근심이 걱정이 마음을 짓누르고 그 마음이 피곤해 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면 최고급 호텔에서 쉰다고 하더라도 참된 쉼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고 쉼을 얻으려면 예수님께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고 말씀하시며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화해를 이루지 못하면 참 휴식은 마음에 가질 수가 없습니다.


1.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질문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질문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늘과 땅과 우주가 제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것이지요. 삶이 제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지요. 그러면 저는 오늘밤 안심하고 평안히 자도 괜찮지요?”


우주가 내 것이고 삶이 내 것이라면 내가 걱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모두 예수님의 것으로 우리는 안심하고 편안하게 쉬면 됩니다.


‘우주가 누구 것인가?’를 우리가 은밀하게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역대상 29장 11절에 “야훼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야훼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 땅, 밤, 낮, 나의 생명이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 그렇다면 여러분도 편히 주무십시오. 만일 이것들이 다 내 것이면 평안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 것이 여러분이 대신하여 편안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편 121편 4절로 6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생들을 일컬을 때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표현합니다. 보배는 예수님, 질그릇은 여러분과 접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이 보잘 것없는 존재이지만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보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창기에 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왔는데, 그 외국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화장실 사용이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에게 편하게 용변을 보라고 집집마다 요강을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에 심방을 갔더니 그 선교사들이 전부 요강을 들고 나옵니다. 왜 요강을 들고 나오는가 보니까 요강 안에 과자들을 잔뜩 넣어가지고서 찾아오는 한국 사람들에게 대접한다고 내놓으니 요강통이 아니라 과자통입니다. 졸지에 더러운 오물을 담는 요강이 맛있는 사탕 그릇이 된 것입니다. 가장 천한 그릇이 가장 귀한 그릇이 된 것입니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싼 도자기라도 그 안에 쓰레기가 들어 있으면 쓰레기통입니다. “아 그렇게 귀한 통을 왜 쓰레기통이라고 하느냐?” 내용이 쓰레기 있으니까 쓰레기통이라고 그러지요. 아무리 보잘것없는 질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물이 담겨 있으면 보물단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도 판정을 받을 때, 보배단지가 될 수 있습니다.


2.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 보배로운 예수님을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담아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한없이 값이 나가는 보화에 비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보화를 우리에게 담고 있으면 우리는 보배를 담은 함이 되고 예수님은 우리 속에 거처를 마련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속에 모시고 있으니까 보배함이 되어서 사람들이 짓밟을 수 없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서 부서질 것 같은데 그 보배함 속에 보배가 들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배를 그대로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보배함은 질그릇이라도 질그릇 안에 보배인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 잘못 건드리면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그 안에 담아놓은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어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복하시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겨쌈을 당하는 자는 보배인즉, 누구든지 우리를 공격하면 보배이신 예수님의 반격에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만 따로 계산하지 말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우리를 계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우리와 같이 계시니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 없는 형식적인 신앙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님을 담고 있는 그릇인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9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원수들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몸담고 계시는 보배함이 우리 몸이기에 예수님이 완벽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원수마귀가 여러분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을 해나가면 마귀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귀는 우리를 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이 진흙그릇이 힘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고 난 다음에는 간혹 마귀가 흉악한 모습을 가지고 잠을 자는 저를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마음에 염려 근심을 퍼부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엄청난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늘 기억해야 될 것은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심으로 나는 아무리 질그릇이라도 예수이름으로 대적하여 싸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고 찬송을 부르고 그렇게 하면 원수 마귀가 떠나가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우리는 항상 우리 속에 예수님을 힘차게 모시고 예수님 십자가 밑에 항복해 놓은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야, 나는 예수님의 보혈을 밑에 있다. 보혈이 나를 덮고 있으니 나를 훼방하지 못한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성령을 모실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는데 우리는 건강을 얻을 수가 있다. 예수님이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으니까. 우리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축복해줄 수 있는 이유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매달려 우리가 받을 저주를 청산해 주셨으니까 우리는 저주받은 존재가 아니라 축복받은 존재가 되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셨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이 죽었다가 부활한 존재가 되었음으로 네가 나를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내려갈 수가 없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무장을 하고서 마귀에 일일이 변호사가 변호인을 위해서 변호해주는 것처럼 저희들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귀에게 대놓고 이야기를 해주고 고함을 치면 마귀가 떠나가요.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 한 주부가 우리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정신적인 혼란을 많이 겪고 있을 뿐 아니라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중풍기가 좀 있어요. 그런데 그 남편이 적십자 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의사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남편이 자기 부인을 온갖 정성을 다해서 돌보았으나 건강하지 못합니다. 자꾸 헛소리를 하고 마음에 고통을 느낍니다.

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 그 자매님에게 안수기도를 했는데 그 자매님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떨치면서 ‘네가 무엇인데 남의 부인의 머리에 손을 얹느냐? 내가 네게 쫓겨나갈 줄 아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매님, 왜이러십니까?’ ‘왜 이러긴 뭘 왜이래? 네가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내가 이 여자 속에 들어 있은지 오랜 세월이 됐는데 쉽게 나갈 줄 아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 누구요?’라고 질문하자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너는 나를 쫓아내려고 그러느냐? 나는 이 여자 몸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입입니다. 제가 ‘귀신들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을 모아가지고서 그 마귀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나가라” “안 나간다” “나가라” “안 나간다” “나가라” “안 나간다” 그 이야기 밖에 할 이야기가 없어요. “예수님 보혈의 능력으로 명한다. 나가라” “나는 안 나간다. 나갈 곳이 없다” 저녁에 날이 어두워져 가는데 그때야 그 자매님 속에 있던 귀신이 “우리 좋은 말하고 헤어지지, 서로 미워하면서 헤어지지 말자.”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네가 사람을 점령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용납할 수가 없다.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고 외치니까 그 자매님 속에 있던 귀신이 큰 소리로 고함을 치더니 정상적인 정신으로 돌아왔어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이 아니라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 우리가 사람 괴롭히는 이단들인가 오해를 사겠다고. 새벽에 교회에 나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집에 안돌아가니 어떻게 하냐고. 빨리 나가라고.” 그래 집으로 보냈는데 얼마 안 있다가 또 고함을 치고 들어와요. “아이고, 하나님 못해먹겠습니다. 실컷 하루 종일 싸워서 이겨놨는데 이제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난 뒤에 도로 돌아오니 어떻게 합니까? 돌아가시지 왜 또 돌아옵니까?” “아이고, 목사님 나 좀 보십시오. 날 좀 보소.” “왜요?” “내가 절름발이였는데 온전한 몸이 되었습니다. 걸어가다가 보니까 내가 몸을 온전히 사용해서 걷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마귀가 정신적으로 여자를 속박하고 육체적인 질병을 가져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이 그릇이 좋은 그릇인지 나쁜 그릇인지 그 자체는 평가할 수가 없고 그 그릇 속에 계신 예수님을 평가하면 높임을 받는데,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것은 우겨쌈을 당한 보배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있음으로 예수님과 같이 사방으로 우겨싸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 8장 31절~32절)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과 더불어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누가복음 10장 19절)


여러분이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원수 마귀가 여러분을 쉽게 짓밟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그 사실을 알고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게 원수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기 아니합니다. 우리 질그릇이 답답한 일을 당해도 질그릇 안에 보배인 예수님이 와계심으로 예수님께 의지하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44편 7절에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우리를 나쁘게 고통을 주려고 해도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서 12장 9절)


우리가 이 세상에 너무나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직접 당해도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이 갚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하면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갚아주시는 것은 감사한데 제가 경험을 해보니까 하나님 시간이 너무 멀게 계산을 했어요. “하나님 지금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좀 더 기다려라.” 하나님 기다리라니까 나중에는 원수가 누군지 모르게 되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베드로전서 2장 9절)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닌 고귀한 사람으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 버리면 예수님 그 진토 속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버림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해서 버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박해를 받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기지 못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장 38절~39절)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부둥켜안고 있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시에 뜨겁게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망하게 되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예수님 정복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껴안고 있으면 죽음도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편 1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안고 있으면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함으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가 않습니다.


“야훼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편 23~24절) 우리가 예수님을 품에 품고 있으면 예수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습니다.


 결론


질그릇인 우리에게 보배를 담아 놓고 그 질그릇을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거리에 내동댕이쳐 놓아도 진흙그릇이 속에 있는 보배를 끌어안고 있으면 아무도 그 질그릇을 훔쳐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 알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질그릇으로 잘나지도 못했고 높은 자리에 있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질그릇을 축복한 것은 예수님을 담아놓은 질그릇이기 때문에 질그릇이 아니고 보배함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질그릇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여러분 그릇에 그리스도가 들어 있음으로 질그릇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보배함인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질그릇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심으로 보배함이 되었다.” 하늘의 천사들도 다 우리를 존경하고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지 않을 이유가 바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음으로 여러분은 존귀한 자가 되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으로 하나님과 동일하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자기를 무시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은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 가슴 속에 예수님이 와계시고 저의 가슴에도 예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장 8절)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데리고 주님 원하시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와 칼빈은 카톨릭의 우물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면서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씀과 믿음으로 주님의 은혜로 세우시는 교회를 꿈꾸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밖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로운 꿈과 목표를 갖게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사람보고 “너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러면 네 눈으로 보는 그 이상 하나님의 눈으로 보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고 새로운 꿈과 목표를 갖게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 바라보는 그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게 되고, 스터드는 하나님 바라보는 눈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게 되고, 윌리엄 캐리는 인도를 바라보는 하나님 눈을 바라보게 되어 인도를 위해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우리는 어찌하든지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배기 때문에 여러분 보배함이 되고, 하나님이 천국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여러분 함께 천국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승리자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함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예수님을 모셨음으로 모든 일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계획하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일하고 살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데리고 같이 바라보자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면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혼육의 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늘 우리를 보호하사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7.09. pm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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