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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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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2016년 11월 19일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2 왕의 자리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 2:1-3)

 

얼마 전 페이스북에 링크된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대학교 때 친구가 시국 선언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국문과 교수가 되어 있었다. 동영상 뉴스에서 그는 ‘괴뢰(傀儡)’라는 말의 뜻을 설명했다. 사전적인 뜻이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최순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현 박근혜 정부는 다름 아닌 ‘괴뢰정권’이라고 규정했다. 1세기 유대 땅에도 괴뢰 정권이 있었다. 헤롯대왕이었다. 그는 로마황제의 임명을 받아 로마 정복지의 한 부분을 통치하는 괴뢰 정권의 왕이였다.


통치자에게는 권력이라는 힘이 주어진다. 권력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통치자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의 논리를 따르는 것을 보게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절대 권력이라는 반지를 끼게 되면 그 반지의 지배를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최고통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힘을 가질수록 그 힘은 사람을 변질시키고 집단도 변질시킨다. 권력을 가진 세력은 그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고 영속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힘을 사용한다. 그 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린다. 권력은 무엇일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오늘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헤롯과 예수님, 이 두 왕의 자리를 비교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예수님은 헤롯대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통치할 때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다. 유대인도 아닌 에돔의 후예 헤롯은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 되었는가? 그 과정을 살펴보겠다. 중요한 신약의 배경사이기 때문에 세계사 공부한다 생각하고 따라와 주기 바란다.


헤롯의 아버지는 안티파터다. 그는 이두매인이었다. 이두매는 히브리어 에돔의 헬라식 표기다. 남유다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사이 유다 남쪽지역에 자리잡게 된 에돔 족속들이 이두매인들이었다. 유대 마카비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는 BC 125년 이두매 지역을 정복하면서 에돔인들을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시킨다. 그래서 헤롯의 아버지와 그 아들들도 반유대인이 된다. 안티파터는 당시 이두매 지역의 총독으로 페트라 지역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 키프러스와 결혼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헤롯은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아버지 안티파터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의 직계 라인이었다. 폼페이우스가 누군가? BC 63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장군이다. 그런데 BC 48년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와의 대결상황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이제 로마제국에서는 카이사르가 최고 권력자가 된다.


니이체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권력에의 의지’라고 말했다. 끈임없이 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힘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는가? 누가 힘 있는 사람인지, 누가 힘 없는 사람인지 빨리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줄타기를 잘한다.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터 역시 줄타기의 달인이었다. 폼페이우스의 직계라인이었던 그는 카이사르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이르자 나바테안 왕국의 군사 3000명을 빌려서 그를 도우러 간다. BC 47년 이 전쟁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안티파터에게 로마시민권을 준다. 그리고 이전에 유대 지역 행정관이었던 그의 직위를 한 단계 높여서 행정장관으로 임명한다. 이 때 안티파터는 자신의 장남을 유대 총독으로, 그리고 자신의 스물 다섯살 된 차남 헤롯을 갈릴리 총독으로 세운다.


그런데 BC 44년 카이사르는 그의 부하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당시 카이사르의 오른팔은 안토니우스였다. 그는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되고자하는 야망이 있었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죽기 전 18살인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임명한다. 그래서 로마의 권력은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이 두 사람의 불편한 연합으로 재편된다. 그리하여 안토니우스는 동방 정벌에, 옥타비아누스는 서방 정벌에 나선다. 로마 제국 동쪽의 실세가 된 안토니우스는 헤롯에게 엄청난 뇌물을 받고 헤롯과 그의 형을 분봉왕으로 임명해 유대 땅의 통치를 맡긴다.


자 그런데 안토니우스가 동방 정벌에 나서자 파르티아라는 제국이 불편했다. 그래서 파르티아 왕은 로마의 속주인 시리아를 먼저 공격한다. 이 때 헤롯형제에게 밀려 정권을 빼앗긴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아 왕을 찾아간다. ‘자신을 다시 왕위에 앉게 해준다면 그 대가로 일천 달란트의 돈과 여자 500명을 바치겠다’고 밀약한다. 결국 파르티아의 도움으로 안티고누스는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왕과 제사장이 된다. 그 과정에서 헤롯의 형은 자결하고 헤롯은 로마로 도망친다.


헤롯이 누구를 찾아갔을까? 안토니우스다. 그는 그동안의 상황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안토니우스는 원로원을 설득하여 그를 분봉왕이 아닌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한다. 그래야 파르티아제국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기에 그를 꼭두각시 왕으로 삼은 것이다. 안토니우스는 헤롯이 유대 땅으로 갈 때 로마군을 딸려 보낸다. 결국 헤롯은 유대 땅에 돌아와 반란군을 진압하고 실질적인 유대인의 왕이 된다. 그것이 BC 37년의 일이다.


BC 37년 정권을 잡으면서 헤롯은 산헤드린 의원 46명과 유대 하스모니안 왕조의 관리 300여명을 처형한다. 그는 대제사장으로 그의 처남 아르스토불르스 3세를 임명한다. 그런데 순수 유대인 혈통의 대제사장인 처남의 인기가 높아지자 헤롯은 그의 여리고 수영장에서 사고로 가장하여 그를 암살한다. 이것으로 그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 미리암네와 사이가 나빠진다. 그리고 결국 그의 아내와 장모 마저 처형한다.


한편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진다. 이집트에서 안토니우스는 로마에 있는 부인 옥타비아에게 이혼을 알리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에게는 아예 로마를 동과 서로 양분하자고 요구했다. 로마는 안토니우스의 정신 나간 짓에 분노한다. 결국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대결한다. 누가 이겼을까? 전쟁은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끝났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이 후 옥타비아누스는 BC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존엄자’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로마제국의 초대황제로 등극한다.


헤롯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줄타기의 달인이었다. 그는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를 찾아간다. 그는 안토니우스가 사라진 시점에서 이제 충성을 바쳐야 할 유일한 대상이 옥타비아누스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과거에 누구와 우호관계였는지를 보지 말고 자신이 어떻게 그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는가를 살펴봐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결국 다시 로마의 신임을 얻게 된다.


정적들을 제거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은 헤롯은 이제 건축사업에 열을 올린다.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해준 로마를 감동시키기 위해 건축에 힘쓴 것이다. BC 22년 가이사랴 건축을 시작하면서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에게 봉헌한다. 사마리아 옛 폐허 위에 세바스테라는 도시를 건설하면서 거기에 옥타비아누스에게 바치는 신전을 세운다. BC 18년 시작한 헤롯성전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입지가 불안한 그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BC 7년 헤롯은 아내 미리암네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마저 처형한다. 그의 동생 살로메가 그들이 헤롯의 왕위를 넘본다고 중상모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BC 4년 헤롯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 만난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헤롯은 불안했다.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동방에서 사람들이 온 것이다.


구약에서 동방은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바벨론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그 징조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총리로 활약했던 다니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메시아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을 연구했을 거라 짐작된다. 다니엘은 메시아를 ‘인자’로 소개한다. 단 7:13-14,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기서 인자는 단순히 사람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의 아들, 즉 왕권을 가진 메시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받게 되는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이 인자가 과연 언제 나타날 것인가’는 동방 박사들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바로 다니엘서가 말하고 있는 ‘인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린다. 황금은 왕을 상징하는 것이다. 유향은 제사장이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가져올 예수님의 사역을 상징한다. 몰약은 시체를 방부 처리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다.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 죽기 위해 태어나신 것이다. 동방 박사의 세 가지 선물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 삶이 될런지 예견할 수 있는 선물인 것이다.


헤롯은 동방 박사의 출현에 충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자신의 자리에 대해 불안했던 터였다. 그는 박사들이 별을 본 때를 기준하여 넉넉잡아 두 살 아래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다 죽였다. 그러나 헤롯은 바로 그 해 죽게 된다. 그토록 지키려 했던 왕의 자리를 두고 악질에 걸려 사망한 것이다. 죽기 5일 전에 그는 장남인 안티파터 마저 처형한다. 헤롯이 죽은 해는 BC 4년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는 BC 4년에서 BC 6년 사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행히 예수님은 꿈에 천사의 지시로 애굽으로 피하여 죽음을 면하게 된다. 마 2:19-23,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헤롯대왕은 죽었지만 그 보다 더 잔인한 아켈라오가 왕이 된다.


헤롯대왕은 죽기 전 남은 세 아들에게 통치권을 나누어 준다. 골란 지역은 헤롯 빌립에게,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은 헤롯 안티파스에게, 유대와 사마리아는 헤롯 아켈라오에게 넘겨준다. 그런데 아켈라오는 독재자로 악명이 높았다. 부임 첫 해 반란 사건이 있자 군대를 동원하여 유대인 3000명을 학살한다. 예수님의 부모는 이 아켈라오를 무서워하여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나사렛으로 가서 사셨다. 아켈라오의 학정은 주민들의 반발을 사서 그는 결국 AD 6년 로마에 의해 파면된다. 그리고 로마는 이 때부터 직접 총독을 파견해 유대 사마리아 지역은 로마 총독의 통치를 받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본디오 빌라도는 여섯 번째 파견된 총독이다.


악한 권력자가 사라지면 좋은 세상이 오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음 권력을 통해서도 악이 반복됨을 본다. 절대 권력의 반지를 낀 자가 그 권력에 취해 그 반지의 지배를 받는 모습을 또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정말 누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가? 그 권력의 진정한 비선 실세는 누구인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엡 6: 10-12,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혈과 육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영적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헤롯이 베들레헴 아이들을 죽인 것은 결국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려는 사단의 궤계였다. 즉 헤롯은 사단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것이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사단의 밥이 되기 쉽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금단의 열매를 따먹을 유혹이 많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금지하신 것은 아담의 권세가 하나님의 절대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것임을 늘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아담에게 땅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권력 자체는 선한 것이다. 인간이 땅을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고 사랑으로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그 사명을 위해 아담에게 힘과 권력을 주신 것이다. 이런 권력의 본질을 잊어버리면 인간은 우상숭배에 빠진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왕과 대통령의 자리도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평을 행사하라고 주어진 자리다. 그렇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혼돈과 상처만 준다면 그 자리는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 악한 권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은 돈이다. 돈의 배후에는 하나의 권세가 있다. 예수님은 이것을 맘몬이라고 한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가 맘몬이 주는 가치다. 돈 때문에 악한 일도 서슴지 않고 한다면 그것은 맘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이다. 한국 고등학생 56%가 ‘내가 만일 10억을 가질 수 있다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이 크면 얼마든지 권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돈에 대한 주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 것,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맘몬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동안 권력의 자리를 남용하며 자기 배를 불린 사람들은 혹 역사의 심판을 피해간다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계 18: 3-8,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5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6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7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8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사단이 세상의 꼭두각시들을 통해 벌이고 있는 모든 혼돈들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헤롯이 사단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그 때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예수님은 힘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지 않으셨다.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말씀하셨다. 마 20:25-28,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다. 섬김과 희생은 세상의 힘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섬기는 것이 권력인 것이다. 여러분은 이 권력을 사용하고 있는가? 돈이 있다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부리는 권력은 사실 힘이 없다. 결국 망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 권세를 나누어 주신다. 사단은 여전히 그의 똘마니들에게 절대반지를 나누어 주며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교회도 힘을 가진 집단이 되어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들은 십자가의 길을 가며 사단이 이 땅에 심는 혼돈들을 정리할 것이다. 나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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