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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하지 않으면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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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으면                         

눅13:1-17
 
  갑자기 사고나 어려움이 닥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죄입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이런 일이 닥쳤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이 양심은 자기가 알고 있는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온전히 인정하게 될 것이며, 아무 변명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모든 죄를 즉시 심판하지는 않으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대로 즉시 심판하신다면 이 세상에 남아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의 모든 죄를 즉시 심판하지 않으실까요?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8-14)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당장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날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오늘 당장 우리의 죄를 심판하지 않으시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다려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에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빌라도에게 희생된 갈릴리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날씨의 징조는 분간하면서 시대의 징조는 분간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시면서 심판이 이르기 전에 속히 회개해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일단 심판이 임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으며, 한 번 심판을 받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몇몇 유대인들이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1절)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릴 때 로마 총독 빌라도가 군대를 보내 이 사람들을 죽인 비참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에 해당하는 BC 169년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 피를 뿌리고, 제사를 금지하고, 모진 핍박을 했습니다. 이때 레위 지파와 유다 지파의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피해 갈릴리 지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갈릴리는 저항세력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대는 늘 갈릴리 사람들을 감시해왔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절기를 지키며 제사드릴 때를 이용해 로마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거나 테러를 감행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총독이 이러한 갈릴리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간혹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린 사건도 그런 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왜 이 사건을 들고 나왔을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가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은 경건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심판의 경고는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학살당한 사건을 들었습니다. 유대들은 그 갈릴리 사람들이 참혹하게 학살당한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해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그런 재앙을 당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며, 그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의 경고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당하는 불행이나 재난은 그 사람이 범한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범한 죄만큼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제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9:1-2) 이런 불행을 타고 난 사람은 틀림없이 죄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러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학살당한 갈릴리 사람들은 그런 일을 당할만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며, 그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라고 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2-3절)


  예수님께서는 당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의 사람이 죽은 사건을 예로 드셨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4-5절)


  실로암은 기드론 계곡의 기혼샘에서 예루살렘으로 공급되는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였습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세워놓은 망대가 있었는데, 그 망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18명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재난을 당해 죽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지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그들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렇게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3절과 5절에서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재난이나 불행한 일 당하는 것을 보고 그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마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과 같은 교만하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우리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회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 의해 학살당한 갈릴리 사람들이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죄를 더 지어서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들은 심판이 갈릴리 사람들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회개하지 않으면 결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도 언제 심판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장 심판하지 않으실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를 설명하시기 위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6-9절)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삼 년이 지나면 열매를 맺는데, 이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그 후로도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주인이 삼 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는 이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일 년만 참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8-9절)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을 택하사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시고 특별한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사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며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노하신 음성이 들려옵니다.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참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기회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회가 지나가면 심판이 오게 될 것이며, 더 이상 기회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지금 당장 속히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8년 된 병자를 고치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그곳에 오랫동안 고통당해온 한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10-11절) 이 여자는 18년 동안이나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 여자의 병이 귀신에 의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12-13절)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고쳐주신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을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35:5-6)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께서 사탄에게서 이 여자를 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18년 동안 그렇게 고통을 당한 것은 귀신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사탄에게 매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파하시고 이 여자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자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사이에 영적인 전쟁이 일어났으며, 사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에 의해 패배하고 파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안식일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고쳐주시자,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회당장이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고 화를 냈습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14절) 회당장은 예수님께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무리에게 분을 냈는데, 그날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장은 오랫동안 사탄에 매여 질병으로 고통당해온 여자가 고침 받은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심으로 안식일을 범하셨다고 화를 냈습니다.


  이렇게 분내는 회당장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15-16절)


  안식일 계명은 매우 엄격하게 지켜온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가축이 풀을 뜯어먹도록 밖에 내다 매거나, 가축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정도는 허용되었습니다. 하물며 안식일에 사탄에게 매여 고통당하는 여자를 풀어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안식을 누리는 날이지만,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힘쓰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쳐주신 일에 대해 안식일을 어겼다면서 분노한 것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기회를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사이에 영적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사탄의 지배를 받느냐, 하나님 나라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과 가르치신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회당장을 비롯한 유대인 지도자들은 외식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거절하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을 통해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고,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으며, 이제부터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 나라를 거절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유대인은 그로부터 약 30-40년 후인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게 멸망당할 때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무서운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금 당장 회개하지 않으면 갑자기 심판이 닥칠 것이며,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혹시 형식적으로만 교회에 나오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힘을 다해 순종하고 있습니까? 성령충만하여 주님과 동행하며 친밀하게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을 돌아보고,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 당장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하십시오.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 기회가 지나가면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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