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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共生)공빈(共貧), 공빈(共貧)공락(共樂) 그리고 맥추절

막6:30-44

  

오늘 설교 제목으로 쓴 ‘공생공빈’이란 ‘가난으로 더불어 사는 삶’이고, ‘공빈공락’이란 ‘함께 기뻐하며 사는 삶’의 한자어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추수감사)의 공의적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막6:30-44절 에는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겼다고 합니다. 8:1-10에서는 같은 양의 떡과 물고기로 4천명을 먹이고 여섯 광주리에 남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한 마가는 당시에 전해져 내려오는 많은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 중에서 두 개를 추려서 그의 책에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 이야기를 단지 빵을 먹고 물고기를 먹는 놀라운 식사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빵과 고기를 나눠주기 전에 하셨다는 어떤 예식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적의 식사 전에 예수님이 음식을 두 손에 받혀 높이 치켜들고 하늘을 향해 축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장면과 같습니다. 같은 책 마가복음은 14:22절에서 최후의 만찬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관성에 관한 정보들은 도처에 있는데, 로마의 카타콤베라는 지하 동굴에 가면 최후의 만찬에 오병이어가 놓여 있는 벽화들이 많습니다. 이렇듯 고대 교회에서는 이 오병이어를 최후의 만찬과 연관해서 이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에게 있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는 단지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사건이 아니라 ‘생명의 빵’ 즉,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표상으로 은유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식사기적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빵 이야기는 나오는데 식사 기적의 원천재료였던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최후의 만찬에서는 고기는 없고 포도주와 빵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식사 기적이야기에서는 포도주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대 교회가 포도주를 성직자만 마시게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 신도에게는 빵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성직자 그룹에는 최후의 만찬으로, 일반 백성들에겐 오병이어의 식사 기적으로 나뉘어서 전해지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포도주가 물고기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로 보건데 마가의 관심은 5천명이나 4천명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었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마가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는 성만찬과 관련을 지어 이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으로 모든 인생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가가 전하는 ‘오병이어의 식사기적’이 단지 예수의 몸을 유비한 최후의 만찬과만 해석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라 오는 것을 보시고 34절에 ‘목자 없는 양 같이’불쌍하게 여기셨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 27:17에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할 때 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군중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마가에게 이 기적이야기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연관성을 갖지만 그 만큼 중요한 다른 하나는 나날이 먹을 것이 부족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공감과 연민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연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일과 이 식사기적에서 보여주는 연민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식사기적에서 예수 자신을 굶주린 세상의 영혼들을 위해 생명의 양식으로 공궤하는 십자가의 죽음까지를 연결해서 읽어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냥 배불렀던 기억으로 밖에 남지 않습니다.

 

자 잘 들어 보세요. 이야기 앞에는 헤롯안티파스의 생일잔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굶주린 백성들과 헤롯왕의 어마어마한 잔치장면을 배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헤롯의 잔치와 예수의 잔치에 대한 비교이기도 합니다. 헤롯의 잔치는 초대받은 사람들만의 호화로운 잔치였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뽐내느라 요한의 목숨까지 빼앗는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잔치 자리에 참여한 고관대작들이 진정으로 배가 부르고 기억 속에 고마움으로 남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반면 이어지는 예수의 잔치를 보세요. 헤롯의 잔치와는 다른 손님들, 손님들의 처지, 잔치라고는 하나 그 어느 것도 헤롯의 잔치에 견줄 수 없는 초라함이 보입니다. 예수는 가진 것이 없었고 수많은 군중들은 굶주려서 ‘목자 없는 양 같은’그런 처지였습니다. 이 초라한 잔치의 기본 재료는 어린아이 손에 들렸다는 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였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수천 명이 먹고 남았다는 겁니다. 얼마나 당시의 사람들이 감격했던지 두고두고 이 비슷한 이야기가 증폭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 두 잔치가 무척 비교되지 않습니까? 헤롯의 잔치는 호화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음험한 흉계와 아첨하는 혀가 재빠르게 움직였을 겁니다. 야하고 음탕한 춤과 세례요한의 목이 눈요깃감으로 등장하는 질탕하고 흥청망청한 잔치였습니다. 그 잔치는 피를 부르고 피를 청하는 잔치였습니다. 즉 백성들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행위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 상류계층의 잔치는 이랬습니다. 당시의 잔치는 초대된 이들이 한 밥상에서 한 음식을 먹는 잔치가 아닙니다. 손님의 지위고하에 따라 윗자리와 아랫자리가 정해지고, 그리고 어느 자리에 앉는가에 따라 음식의 양과 질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로마의 독설가 마르쿠스 마르티알리스는 친구가 초대한 잔치에 갔다가 경험한 모욕감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식사에 나를 불러 놓고, 그것도 전처럼 돈 주고 사온 손님도 아닌데 왜 당신이 받은 상과 똑같은 음식을 내게는 안 주는 거요? 당신은 루크린 해안에서 자란 퉁퉁하게 살찐 굴을 먹는데 나는 꼬막을 빨아 먹고, 당신은 송이를 먹는데 나는 피리 버섯을, 당신은 큰 참가자미를 먹는데 나는 막가자미를, 당신은 노란 기름이 흐르는 산비둘기의 살찐 엉덩이를 포식하는데 내 앞에는 새 장에서 죽은 까치가 놓여 있소. 여보게 폰티쿠스, 내가 당신과 식사를 같이 하지만 자네 없이 혼자 먹는 것만도 못하잖아.”

 

이것은 밥을 나누며 우정과 환대를 나누는 잔치가 아닙니다. 한자리에 먹으면서도 먹는 행위를 통해 권력과 통치행위를 지향하는, 사람을 부리는 하나의 방식으로 식사를 하는 겁니다.

 

반면 수없이 벌어졌을 예수님의 잔치는(오병이어의 잔치 같은)당시 권력자의 잔치와는 완전히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 명이 먹는 이야기는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 전혀 다른 잔치를 보여줍니다. 아울러 ‘다섯 개 두 개’라는 계량 즉 숫자와, 오천 명 이라는 단위가 지명하는 바가 진정 숫자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게 합니다. 아마도 이런 식사기적이야기가 대중에게 자꾸 알려지고 있을 때 헤롯의 왕궁에서는 화가 단단히 났을지 모릅니다. 이는 예수라는 이가 펼치는 왕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이 헤롯의 불의를 고발할 때 분노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들이 상하층위를 만들며 피의 잔치를 할 때 예수님은 가난한 민중이 가진 참 허접한 양식을 나누어 먹음으로 자치와 자급의 감동을 기적이야기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단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초자연적으로 자꾸 늘어났다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배고픔과 가난이라는 삶의 조건 속에서도, 권력자의 그 행태와는 반대로 먹을 것을 나누고 마음을 나눔으로 삶을 함께 영위했던 깊은 감격(感激)에 대한 기억인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앞의 헤롯 안티파스의 잔치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의 잔치는 먹는 가운데 하나 됨과 기쁨을 나누는 잔치가 아니죠. 우월한 존재들의 과시이고, 압력이고, 무언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고, 열등한 자의 쓴맛을 보여주는 잔치입니다. 이들의 잔치에서 사람의 목숨은 그저 여흥거리였습니다. 웃지만 웃는 게 아닌, 흥청망청하지만 결코 흥겹지 않은, 음산하고 음험한 연회입니다. 나아가 헤롯의 잔치는 약자들에게 착취한 재료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초라한 잔치는 어떻습니까? 삶의 고난과 역경을 함께 헤쳐 나아간 지혜로운 사람들의 경험 속에 자리한 잔치입니다. 예수님의 잔치는 아무 가진 것이 없이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땅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 고난과 역경에 복종하고 반항하는 가운데 터득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주는 기쁨과 풍성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공생공빈, 공생공락 즉 ‘가난으로 더불어, 함께 기뻐하며 사는 삶’의 기적이야기인 것입니다. 그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이른바 오병이어의 식사기적이야기입니다. 이는 다시 마가의 해석으로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는 성만찬으로 이어집니다. 어린아이에게 들린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 명을 배불리 먹였듯이, 예수의 몸과 피가 생명의 양식이 되듯이, 너희들도 헤롯의 잔치로 살지 말고 예수의 잔치로 살라는 언명인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란, 바로 그 언명의 실천을 상기하는 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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