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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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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2.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빨리 가서’: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았습니다. 가서 보니 교인이 몇 명이요? 교인이 두 명.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 어리지만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볼 때에 뭐가 없어요? 십자가가 없잖아요. 설교하는 강대상도 없고 교회라는 어떤 간판도 없고 찬양대도 없고. 뭐 이러냐?

 

오늘날 교회본질을 모르는 교인들이 볼 때는 대제사장 율법사 서기관 바리새교인들이 모두 참단으로 보이고 말구유에 누인 짐승의 구유에 누인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 신앙은 이단으로 보이는 겁니다. 이런 신앙사상이 나중에 예수님을 죽일 때에 대제사장 율법사 서기관 유대종교인들이 로마의 인준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인준이 없으면 예수님은 이단으로 몰아 죽이는 겁니다. , 지금도 그래요.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지금도 그래요. 오늘날 세상과 세상소원 목적으로 믿는 자들 종교운동 목적으로 종교사업적으로 믿는 자들은 전부 다 외식자들인데 이들이 진리본질의 신앙을 가진 자들을 이단자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예수님을 이단자라 하는 거와 똑같습니다. 이치는 같이 들어가요.

 

오늘날 외식자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리하고 있으니 의사적으로는 겉으로는 예수를 믿는데 의사적으로는 내적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팽팽하게 예수님과 대립이 돼 있습니다. 왜 이런 꼴이 생길까? 그것은 성경 글자 문자로만 보았고 일반도덕성으로만 보았고 하나의 종교로만 보았지 그 문자 속의 그 역사 속의 은밀계시를 모르면 하나님의 뜻 은밀계시를 모르면 귀신들린 정신병자 소리를 하게 돼 있습니다. 선악과 먹은 지식이기 때문에.

 

목자들이 가서 확인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 인도자들은 오늘날도 이 표적이 영의 눈으로 보인다면 크리스마스 절기 때만 필요한 성경구절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목자들이 말한 것이 언제냐?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지요? 시간적으로 이천 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아직까지 절기적인 예수탄생만 알고 있습니다. 절기적인 예수탄생만 알고 있더라. 역사 속에 들어있는 계시를 모르면 마리아 같은 요셉 같은 신앙을 갖지를 못하는 겁니다. 저속적인 간증거리 만들어 붕붕 뜨려고 하지 말고 깨닫고 만들어지라고 준 성경을 깨닫고 산다면 본질에 입각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지요. 실속 있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렇지 아니하면 전부 다 바람이 들어간 세상바람 타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꼴이 뭐냐 그 말이요. 꼴이 뭐냐?

 

17-20: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빨리 가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기들이 어떻게 온 것을 다 말하고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천사의 계시대로 목자들은 그 시대의 표적을 보았습니다. 표적은 보이는 것. 그 시대에 보이는 것. , 첫째는 무슨 표적을 보았느냐? 여관집 같은 오늘날의 교회는 돈에다 신경을 쓰느라고 사람머리 숫자 세는 것을 보았고, 두 번째는 잠자고 떠나갈 하룻밤 인생들은 어떻게 하면 고급침대에서 몸을 붕붕 굴리면서 기쁨과 쾌락을 누리고 가나?’ 하지만 오늘날의 요셉과 마리아의 신앙의 감명을 받은 자는 곤란한 가운데서도 원망과 불평도 없이 생명을 안고 참 꿈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겁니다.

 

짐승의 구유는 막대기를 척척 걸쳐놓은 천막으로 볼 것 없어요. 십자가도 없고 무슨 교회라는 간판도 없고 강대상도 없고 찬양대도 없고 장로 헌금기도 하는 것도 없고 교인이라고 해야 요셉과 마리아. 그 외 몇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께 영광되고 찬송 부를만한 건더기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만약의 경우에 상황적으로 요셉의 어머니가 와서 본다면 얼마나 측은하게 보일까? 그렇지요? 그리고 또 요셉의 장모나 장인이 와서 그 모양을 본다면 어떻게 볼까요? ‘마리아야, 너 시집 잘못 갔구나. 지금이라도 그 애기 집에 데리고 오던지 고아원에 맡기고 가든지 넌 딴 데 시집을 가라안 그러겠냐고요?

 

제가 아는 집사님이 있었는데 사람 볼 줄 모르는 청년들이 자기들끼리 소개해가지고 자기들끼리 살더니 싸우니까 신랑의 어머니가 헤어져버려라. 애기는 내가 키울 줄 테니까 헤어져라.’ 그래, 그 뒤로 이게 어찌 됐을까? 애기 있는 그런 남자한테 새 처녀가 오려고 하겠어요? 안 그래요? 곧 죽어도 새 총각한테 가려고 그러겠지. 나이든 총각은 곧 죽어도 새 처녀한테 가려고 그러겠지 누가 애기 있는 그런 여자한테 가려고 하겠어? 바꿔놓고 생각하면 똑같다. 그럼 어떻게?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참 기가 막히지요?

 

그러니까 애당초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신앙의 심신을 잘 닦아 올라오면 서로 욕심내서 데리고 간다. 그런데 몰라서 못 그랬고 안 가르쳐서 잘못 믿었고, 그나마도 이상한데 들어가서 이상한 짓거리로 다 나왔으니 이게 가정이 되나 사람 꼴이 되나 자식교육이 되나 방청소가 되나? 이게 엉망진창이요. 엉망진창이요. 방 안에 들어가면 뭐 중풍병 든 냄새가 풀풀 나지요? 이게 참 사는 거냐? 예수 믿으니 바람은 피울 수 없고 뭐 어디 태국여자인지 중국여자인지 또 하나. 그 뭐요? 돈 벌어가지고 내놓나? 안 내놓는다. 외국 자기 집에 들어갈 때에 갖고 가려고 한 푼도 안 내놓는다. 청소를 하나 밥을 하나? 참 그 신앙사상의 품행이라든지 이게 결과가 참말로 비참하다. 참말로 비참하다.

 

우리교회서는 그런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도록. 하나님 앞에 똑바로 믿고 많은 사람 보기에 참 그 심성이 고운 것을 신앙믿음으로 나타내요. 안 그러면 참 어렵다. 남의 말이나 하고 픽픽 돌아가고 흉이나 보고 돌아가고 배우는 자세도 아니고 이래놓으면 참말로 힘들다. 결국 불신자하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찌 되겠어요? 그 결과가 어찌 되겠냐? 불을 보듯 빤한 겁니까? 사람의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비뚤어져 있으면 참 그 불행을 자꾸 만들어 가면서 산다.

 

찬송을 부를만한 건더기가 없다. 어느 장면이요?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장소 그 장면이. 그런데 바로 옆의 여관은 건물도 크고 사람도 많고 돈도 많습니다. 손님은 하루저녁 인생이지만 여관집 주인은 찬송이 저절로 나와요. 유대백성이니까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니까 찬송이 안 나오겠어요? 가만있어도 방 있습니까?’ ‘없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내가 웃돈 따따뿔로 올려줄 테니까.’ 찬송 안 나오겠어요? 안 나와요? 눈물만 나와요? 이런 장면을 요셉과 마리아가 자기 현실을 비교해 보면 마리아는 요셉을 원망 요셉은 마리아를 원망하지 않을까요? 왜 그러냐? 있는 상황이 원망 투성이라.

 

목자들도 천사의 지시 하늘의 계시가 아니었더라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어린예수를 찾기란 힘들었을 거요. 어떻게 찾아요? 무슨 수로. 못 찾는다. 구유 속에서 구주 예수 못 찾은 신앙이면 오늘날도 여전히 외부 표면 덩치보고 외모 모양보고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찬송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영광이 되겠느냐? 무엇이 영광이 될까?

 

우리 입장에서는 무엇이 영광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 되어 오신 것을 발견한 거. 그게 참 영광이요. 아무 눈에나 띄어요? ‘심봤다.’ 산에 가서 그거 산삼 아무 눈에나 안 보인다면서요? 그래요? 아무 눈에나 안 보인데요. 그러니까 산에 올라가려면 하나님께 백일기도하고 올라가요. 영의 눈을 띄어달라고. 이왕이면 자기 눈에 확대경을 요렇게 딱 붙여가지고 가요.

 

하늘의 사람을 발견한 것이 영광이요. 그 분의 성품으로 입어지는 것. 이거 참 영광이요. 하늘의 영광을 발견한 것. 땅의 영광 아니고 하늘의 영광을 발견한 것. 그리고 오신 이유를 발견한 것이 참 영광이요. 참 사람을 발견한 것,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 영광이요. , 하늘의 것으로만 들어가 있는 게 영광이요.

 

세상에서 대통령이 악수만 해주어도 영광입니까? 그 사람? 그러니까 대통령이 막 지나갈 때 서로 막 손을 그래요? 대통령이 지나가면서 껌 한 통 얻어먹으면 그 영광이요? 요번에 누가 죽었어요? 그 노래 잘하는 사람? 마이클잭슨? 그래, 여기 잭슨하고 어떻게 악수한 사람 있어요? 그 영광 아니요? 악수만 해도 돈이 얼마인데 아무나 해 줘요? 어떤 사람은 군수하고 악수만 해도 손을 안 씻는데요. 씻으면 악수한 그게 씻겨가니까. 하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것도 영광입니다. 아무나 전하는 게 아니요. , 이 참 이거 기독교 복음을 오늘날 교회들은 목사님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 성경에 보면 형제의 눈 속의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못 깨닫느냐? , 들보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형제 눈 속의 티를 뺄 수 있나요? 들보가 뭐요? 천정에 크게 있는 거요? 그 대들보라 그래요? 집 짓는데 새로 지으면 천장에 쳐다보면 길게 해서 뭐 연도 써놓고. 뭐 대들보라 그러지요? 들보 가의 거는? 석가래. 그래, 네 눈에 들보가 있는데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뺀다?

 

눈에 티가 들어가면 어때요? 제대로 뜰 수 있어요? 상황 그대로를 한 번 가만 보라고요. 눈을 제대로 뜰 수 있나요? 얼마나 쓰라리고 아프고 눈을 뜨려고 할수록 이건 더 힘들어 이건 고통이야. 전 신경이 그 쪽으로 다 가. 눈 쪽으로 다 가. 그런데 형제의 눈에 티가 있는 그걸 보고 그 말이요. 이 무슨 말이냐? ‘왜 자기 눈에 티가 들어가면 전 신경이 자기 눈에 가 있는 것처럼 남의 작은 티만 자꾸 보냐그 말이요?

 

그럼 티하고 들보하고는 이건 전혀 다른 각도에요. 알고 보면. 티는 말하자면 하나의 일반적인 도덕성적인 의미로서 뭐 하나 조금 잘 못한 거. 그런 거. 그런데 이 눈에 티가 들은 것처럼 그걸 전 신경을 가지고 보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 일반 도덕적 개념을 가지고 그걸 본단 말이요. 그걸 보는 눈이 지금 그 속에 들보가 있다.

 

왜 들보라는 표현을 썼을까? 들보는 집하고 관계가 있지요? 들보가 내려앉으면 어떻게 돼요? 그 집은? 집이 세워지지를 않아. 들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집이 안 세워져요. 무슨 말이냐? 네가 그걸 보는 그 눈이 지금 문제다. 네가. 그 눈이 있는 한 네가 서지를 않는다. 영의 집이 서지를 않는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기준에서 형제의 눈이든 티든 뭐든 이렇게 보고 지적해서 고칠 수는 있는 건데 일반 도덕적 개념을 가지고 그걸 보고 있으니 너는 지금 틀려먹었다. 넌 안 된다. 넌 사람이 지금 문제다. 남의 허물을 보는 그 사고방식 지식이 문제다. 그걸 고치자 그 말이요. 남 잘하고 잘못하는 그걸 보는 눈, 네가 지금 비뚤어졌다. 그 눈을 영의 눈으로 지금 하나님 앞에 그걸 고치자. 그렇게 들어가는 거요.

 

그 자들이 누구냐? 외식자들이요. 외식자들이 누구냐? 예수 믿으면서 세상축복 물질축복운운하니 이게 전부 외식자들이요. 기준 개념이 그렇게 들어가 있어요. 얼마나 잘못됐는지? 인간기준 개념으로 들어가 있으면 인간의 행동을 자꾸 꼬집어 뜯어요.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기준에 인간 정신 마음 사상 이런 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거요. 자꾸 바로 세우는 거요. 뭘 잘못된 행동을 지금 뜯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고자 하는 그 생각 마음 정신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거요. 그게 복음이요. 그게 기독교 복음이요. 그게 하늘나라 천국복음이요. 기독교복음과 이 세상복음과는 다른 거요. 질이 전혀 다른 거. 기독교복음은 사람의 생각과 정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것.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바로 세우는 것. 그게 바로 안 되면 안 세우면 선악과 따먹은 인간기준 개념을 가지고 사람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뭘 보게 되느냐? 도덕적인 뭘 잘못하는 그걸 자꾸 뜯게 된단 말이요. 그럼 그거 뜯어가지고 사람 바로 세워지나요? 절대로 안 세워져요. 싸움만 일어나고 마귀시험만 타지 절대로 못 세운다. 사람이 세워지지 않아요.

 

하늘의 뜻을 아무나 못 전한다. 영의 눈이 밝은 자라야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한 자라야 전할 수 있다. 안 되면 발견을 못 했으면 뭐가 하나님의 영광인지 모른다. 교회의 교훈도 온 교인이 하나님의 성품을 입은 자로서의 하나님 앞에 영광자로 나타나야 하나님께서 너는 내 영광이다하는 거요. 사람이요. 사람.

 

우리가 신명기에 보지만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들어가도 재앙 나가도 재앙. 뭐가 문제라는 거요? 사람이 문제라는 거요. 사람이. 신명기를 긍정적으로 돌려서도 보고 부정적으로 돌려서도 보면 정답은 다 나와요. 사람이 문제야. 사람이. 하나님의 이적기사를 믿을 진데 왜 자기에게 주시는 은혜가 이적기사적으로 이적적으로 왜 안 나타나겠어요? 사람이 문제다.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아이를 생기게 할 때 이름을 예수라하라 그랬지요? 아이를 생기게 할 때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안 믿는 사람은 애기가 태어난 후에, 옛날에는 태어난 후라도 이름을 바로 짓지를 못했어요. 왜 그러냐? 태어나서 잘 죽으니까. 그래서 한 한 달이나 아니면 석 달이나 아니면 일 년 있다가 출생신고 하고 그러거든? 그래서 나이하고 호적하고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그나마도 옛날사람들은 이름도 잘 지을 줄 모르고 또 누구보고 지어 달라 그러고. 이게 한글도 모르고 그러니까 참말로 무식한 거지요. 그러니까 이장한테, 읍내를 나가야 면사무소든지 뭐가 있든지 하니까 오늘 읍내 나가면 우리 애 이름 좀 올려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요. ‘이름이 뭐요?’ 하니까 그 자리서는 알았는데 다리 건너가서는 잊어버렸어. 또 읍내 가서 누구누구 만나다 보니 이름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거라.

 

OO이 집에 누가 이름을 다르게 올렸어? 누구 이름이 달라져 버렸어? 딴 집은? 그런 일이 많아요. 학교에서는 전해준 이름을 부르고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전혀 다르니 이게 어떻게 알아들어. 이게. 하여튼 가만히 보면 무식하면 다름 사람이 이름을 아무렇게 지어 불러도 이게 뭐 그대로 그냥 돼버리는구나. 우리교회는 아들 낳을 경우는 이름을 요렇게. 만일에 딸일 경우는 이제 요렇게. 예를 들자면 아들이면 식이딸일 경우 순이.’ 허허허.

 

, 아이를 낳고 예수, 예수활동도 예수.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요? 예수활동도 예수. 그 말이 무슨 말이요? 예수가 뭐요? 구원. 구원이라는 게 뭐지요?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하게 닮는 것. 그게 구원. 그러니까 아이를 낳을 때 이름을 예수. ‘예수야, 너는 이름이 예수이듯이 너의 언행심사 모든 활동이 예수다.’ 무슨 말이요? 구원이다. 삶의 전체적인 열매가 예수. 성령의 열매로서 삶의 전체적인 열매가 예수. 그래서 예수는 구원이라. 세례요한도 생기기 전에 요한, 태어나서도 요한, 활동도 요한.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라. 그 얼마나 좋아요? 오늘날 모두 자기 이름값 해요? 이름값 하느냐고요? 아니면 얼굴값 해요? 키값 해요? 어떻게 등치 값해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말이 있어. ‘아이고 이놈아, 덩치 값 좀 해라. 덩치가 얼마짜리인데 나이 값 좀 해라. 왜 그렇게 철이 없냐? 나이 값 좀 해라그런 말이 있습니까? 자기 이름들 다 좋아요? 나쁜 이름 있어요? OO, 너 이름 나쁘냐? 촌스럽냐? 그럼 OO이는? 누가 순심이라고 지었냐? 왜 그렇게 촌스럽냐? 이름이 왜 촌스럽냐? 왜 촌스러워. 아버지는 멋있는데. 얼마나 순하고 순하면 OO이냐? 엄마 이름을 네가 한 번 지어봐라. 영심이라고 지어? 다 한자로 했든 이름이 좋을 거예요. 그 우리가 신앙 면으로 바라보는 이름값을 좀 하고 살자 그 말이요.

 

이삭도 태어나기 전에 이삭, 태어난 후에도 이삭. 이삭은 뭐라고요? 웃음이라. 이삭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이름이 고쳐진 후에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 이름을 바꾼 후에 줬다는 의미는 그 신앙의 어떤 사상이나 정신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사람에게 별명이 있지요? 좋은 별명은 좋지만 나쁜 별명을 가지면 참 그 듣기가 그래요. 사래가 아들을 주겠다할 때에 피식 웃어버렸어요. 웃었지요? 며느리 들어오는 거 못보고 죽었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을 못보고 죽었습니다. 왜 그런 거 같아요? , 뭐 뚜렷한 증거는 모르겠으나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피식 웃냐?

 

피식 웃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요? 옳은 말을 하면 하고 피식하고 웃고. 이거 참 고쳐야 된다. 그거. 사가랴는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태어난다는데 육신생각으로 잘 믿지 않았어요. 그만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 안 믿으면 그렇게 돼요.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다. 왜 안 믿냐? 안 믿으면 누구만 손해냐? 하나님께서 은혜 주겠다고 그러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겠다고 그러는데 왜 안 믿냐? 안 믿으면 뭐가 되겠어요? 재앙으로 바꿔진다. 여호와께서 주신다 말씀하실 때에 주시겠다 말씀하실 때에 육의 이해타산 평가성을 가지고 따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피식 웃지를 말아라. 다시 말씀드리면 믿지 않고 피식 웃는 자기는 좋은 꼴을 못 본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구원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인간육신 육의 생각 그 범주 안에 들지를 않습니다. 그걸 믿으세요. 자기의 육신생각 그 범주 안에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 육신생각대로 뭘 하나님께 달라고 떼를 쓰지 말아라.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바로 살려고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주시고 위로를 해주시는 날이 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일이 있다 그 말이요. 왜 안 믿냐?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려서 보여주었어요. 육의 생각으로 이것이 될 일이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에 따라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자들이 있었는데 성읍에 들어가서 다시 살아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활 때 살아날 것을 기본적 계시적으로 보여준 거요. 예수님 부활할 때에 딴 무덤에서도 살아났단 말이요. 그 살아나서 우리 집에 가자. 가서 봐야지.’ 아들딸들 자기 아내 다 만나봤겠지? 얼마나 놀랐을까?

 

성읍에 들어가서 살아난 몸을 보여준 자들이 조금 전에 죽은 자들이었나? 죽은 지 몇 년 몇 십 년이 된 자들도 있었을까? 예수님 부활 때에 살아난 자들 있잖아요. 그러니까 다 엊그제 죽은 사람들 같으면 뭐 다 살이 있겠지요? 근데 죽은 지 한 십 년 이십 년 되면 살이 다 녹고 머리카락도 다 빠지고 해골만 남아요. 그래가지고 들어갔을까요? 어떻게 알아보겠어? 그걸? 해골이 자꾸 마누라 마누라하고 따라다니면 기겁을 하지 않겠냐? 하나님께서 다 살을 붙여서. 모르긴 해도 부활한 사람들의 그 살결은 더 좋을 것 같아요. 여드름이 나고 뾰록지 나고 그랬을까요?

 

부활 때 다 같이 동시에 변화 부활의 몸으로 나온다는 것. 인간육신의 생각으로 될 일인가? 이해될 일인가? 아니다. 살아난 자들이 성안으로 들어갈 때 눈과 귀와 입이 썩어서 뼈다귀로 해골로 살아서 들어가지는 않았을 거다. 죽은 지 백 년이 넘은 자가 살아서 자기 집에 찾아갔을 때에 자식들이 죽고 아내도 다 죽고 없어서 살아난들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예수부활한 날에 같이 살아난 자들이 성읍에 들어갔다면 온 성안이 발칵 뒤집혔을 텐데, 살아서 돌아왔다고 부둥켜안고 좋아하는 자도 있었을 것이고 저 놈이 살아서 또 돌아온다고 문 닫고 못 들어오게 하는 그런 식구들은 없었을까? 저놈이 살아서 또 들어온다고.

 

, 이것은 세계적인 뉴스 토픽 감인데 왜 조용했을까 그 말이요. 무덤에서 살아나온 그날로 왔다 갔다 하면서 부활 때 다시 만나요 하며 인사하고 가면서 자식들보고 너 임마, 예수 잘 믿어.’ 아내 보고도 다른데 시집가지 말고 구원 많이 이루고 다시 부활 때 만나요하고 무덤 안으로 도로 들어가 버렸을까? 그래서 소문이 더 이상 안 나고 퍼지지 않았던 것인가? 상상을 좀 해봐요. 졸려고 하지 말고. 얼마나 재밌는 뉴스인데. 허허허.

 

진리신앙 사상으로 자기가 다시 거듭났느냐? 거듭난 신앙사상이 만 사람에게 보여야 할 것이다. 그 안에 그런 뜻이 들었단 말이요. 돼지처럼 먹고 잠만 자는 신앙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교인들은 월요일이나 뭐 어디 토요일이나 하여튼 어디를 가든 제발 뭐 사이사이에 뭐 좀 먹을게 나오면 달려가서 제발 그릇에 이렇게 고봉을 해서 갖고 오지 말아라. 자기 먹을 것만 딱 적당히.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교회만 토요일 날 모여도 80명 정도 되지요? 목사님, 몰라요? 그 음식보고 사람 수를 보고 자기 먹을 것만 조금 갖고 와서. 그게 참 음식문화에 신사적이요. ‘달려가서 그릇에 누구 것도 갖다 준다면서. 그럼 나중에 못 먹는 사람은 어떻게 할 거요? 그것도 숨겨가지고 제 집에 갖고 가고. 그 참 우리교회서는 그런 사람 있어서는 안 돼요. 정말 촌놈이야. 먹는 문화 하나 똑바로. 그게 육의 사람이야. 육의 사람. 음식 탐식가는 육의 사람이에요. 그걸 알아야 돼요.

 

항상 남을 배려하고 못 먹는 사람이 있나하고 자기 것은 자기가 딱 갖다먹고 그렇게 하세요. 딴 사람들도 벌떡 벌떡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좀 그래야지 어떻게 다리가 말라붙었나 굳어버렸나? 갖다 달라고 그럴 거냐 그 말이요. 자기 먹을 거 갖다가 자리에 딱 앉아서. 저 앞에서 하고 붙어있으니 화장실 나갈 사람이 갈 수가 있어야지. 나가든지 들어가든지 해야지 문 앞에 서가지고 남도 못 가게 하고. 어떤 사람들이 그랬어요? 성경에? 하여튼 음식문화 깨끗해야 돼요. 사람이 하나하나 그거 고쳐 들어가야 돼. 진리의 사람들은. 다음에는 그런 얘기 안 나오도록. 물론 우리교인이 그런 건 아니에요. 딴 교인들이 그러지.

 

이제 변화 부활은 인간생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섭리의 구원역사도 인간생각으로 풀려고 하면 안 돼요. 사람구원은 인간생각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사로,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겁니다. 참 사람이 되는 거요. 하나님 앞에 예쁘게만 보이고 잘만 보여 봐요. 하나님이 뭘 안 주겠어?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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