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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떠나는 결혼 (창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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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결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인간에게 주신 가장 첫 계명인 5계명은 ‘효도’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같은 말씀이 신약에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제 일 원칙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헌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효도’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결혼하는 것을 부모를 떠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그러나 결혼은 고려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부모를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요, 또 부모와 한 집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씀도 아닌 것을 압니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도 부모를 떠난 결혼이 있고, 부모님과 따로 살면서도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떠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자브’입니다. 문자 그대로 떠나는 겁니다. 헬라어로는 ‘카타레이포’ 즉 사람이나 사물을 ‘뒤에 남겨놓다’ 입니다. 영어의 'Reave'입니다. 떠나면... 함께하던 사람들과 사물들 또 장소들은 뒤에 남겨두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먼저 ‘효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6;1) 효도는 순종입니다.  순종(順從)은 ‘부모가 결정하면 자녀는 그 결정을 따르는 것’ 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은 ‘부모가 자녀들의 결정권자라는 의미’ 입니다. ‘決定, 決定權’ 의 문제가 순종입니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자녀위에 세우신 결정권자입니다. 부모님이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이 하나님의 결정과 다르지 않는 한, 자녀는 부모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6;1) 효도란 가장 기본적으로 부모의 말과 결정을 따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녀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부모님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결정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상사가 야근을 해야겠다, 휴일에 출근을 해야 겠다 하면... 다른 모든 약속을 취소하지 않습니까?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억지로 웃으면서 그 결정에 따릅니다. 애인하고 굳게 약속을 했어도 미뤄야 하고, 때로는 회사일로 며칠씩 출장을 가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오히려 남들 다하는 야근, 남들 다가는 출장을 자기만 안 가는 것이 불안합니다.  

이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군인(軍人)들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성격 나쁜 고참을 만나면 군 생활 내내 힘들지만 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총알이 날아와도 ‘돌격 앞으로’ 하면 죽을 줄 알고도 돌격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남의 말은 억지로라도 들으면서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의 결정은 안 듣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그리고 사랑 때문이 아니라도 자녀는 부모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요 법이기 때문입니다. (신21;18-21)“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너무 가혹한 성경말씀입니까?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이렇게 돌에 맞아 죽을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요?  ‘완악하고 패역하여...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서 돌에 맞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아서 죽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성도여러분, 효도는 하면 좋은 것이고, 안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지요? 이렇게 부모에게 순종이 중요합니다.  자녀의 결정권은 자녀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의 결정권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자녀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삶의 원칙입니다.  특히 자녀여러분,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그런 것을 성경에서 이렇게 강하게 주장하시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부모님에게 순종하면 누가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될까요?  부모가 자녀의 결정권자가 되고, 자녀가 부모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유지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모의 결정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부모의 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곧 부모에게 결정권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훈계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내버려두라. 간섭하지 마시라’ 고 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부모님 말씀위에 세우는 것이고, 부모를 세우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가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주안에서 순종하라” 하셨으니 성경을 거스리는 것이 아닌 모든 일반적인 것은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또 성경은  부모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하십니다. 부모는 자기감정대로 자녀에게 강제로 하면서,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본(本)’으로 가르칩니다. 성경의 교육은 ‘本 敎育’입니다.  부모여러분, 말이 아니라 본으로 자녀를 훈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녀들은, 본을 보이는 부모에게도 순종해야 하고, 본을 보이지 못하는 부모에게도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판단해서 순종과 불순종을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는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자녀들이 울분을 토하며 하는 말이 ‘우리 부모는 이중적’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것이 이중적인데... 부모는 추하게 살면서 자녀에게는 깨끗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이중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이중적(二重的)이라고 부모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부모를 이중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부모가 이중적이 아니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저분한 인생을 사는 부모가 어린 자녀를 앉혀 놓고 더럽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도둑질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경찰에게 잡히지 않고 도둑질하는 법을 가르치고, 허황된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대신 도박을 가르치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는 특별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자신은 악할 지라도 자녀에게는 선을 행하라고 하는 마음,  자신은 비록 형편없이 살지라도 자녀에게는 제대로 살고,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는 이중성을 부모에게 주셨습니다.  

(마23;2-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죽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말씀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훌륭한 부모님이지만, 완벽한 부모는 아니기에, 부모님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계신다고 한다면 자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에 신학생때에 목사님들과의 자유로운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한 전도사님이 이것과 비슷한 질문을 담당 목사님에게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뭔가를 잘 못하고 계신다면 전도사이자 부교역자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적을 해야 합니까? 그냥 넘어가야 합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하신 대답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관계(關係)’가 제일 먼저랍니다. 평소에 서로 허물없이 말을 주고 받는 관계가 되어있으면 조심스럽게, 예의를 잊지 않고 이야기를 꺼내도 아무 문제가 없고, 평소에 서로 가까이 말을 주고 받는 관계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말도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충고가 먼저가 아니라 관계형성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가 형성되어있지 않으면 천사의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대답으로 제가 평생을 가슴에 간직하는 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결혼’에 대하여 드리는 이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혹시 저하고 무슨 일이 있어서 저한테 섭섭한 마음을 가진 분이 있다면 이 말이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나쁜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기보다는 ‘저 위선적인 사람’ 이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관계’가 형성되어있지 않으면 천사의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여러분과 잘 지내려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 서운한 일이 있으시면 그냥 그대로 계시지 말고 연락주십시오. 제가 밥 한번 쏘겠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부모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사명감에 불타서 부모와 다투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가 나서서 잘못을 고치겠다고 하기보다는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 자녀가 부모에게 묶이지 않고 자유하게 됩니다.  성경은 부모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다고 하나님이 자녀에게 책임을 물으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더 나아가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윗사람의 잘못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났으니, 우리는 윗사람들의 잘못을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분들이니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라고 간절한 마음과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심할 것은 자녀는 부모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는 없으나 자기의 잘못은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먼저 변하면 다른 사람도 따라 변합니다. 자녀는 순종하고 효도하는 사람이지 대적하고 충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멘?

이제 결혼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지는 마지막(?) 결정권이 자녀의 결혼에 대한 결정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결혼을 허락 받습니다. ‘저희들이 서로 좋다는 것을 부모가 어떻게 말려요?’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의 결정을 따랐던 것처럼 자녀는 결혼까지도 부모의 결정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의 허락이 없다면 허락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에게 분명히 허락할 마음을 주실 것이다.’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도 허락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지금이 조선시대냐’ 하시겠지만 저는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녀가 결혼(結婚)을 합니다. 
성경은 결혼에 대해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이 생기는 것을 ‘부모를 떠나 둘이 하나가 되는 일’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부모를 떠난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는 결혼은 꼭 기쁨의 날 만은 아닙니다. 떠나보내는 부모에게는 아픔이 있을 수 있지요. 너무 섭섭하고 아깝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자녀를 어른으로,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아픔입니다. 자녀를 어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녀를 존중하는 것이며, 자녀가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하도록 지켜보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부모를 떠나는 것은 독립입니다. 당연히  精神的, 財政的인 독립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자녀는 재정적으로도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대면 안 됩니다. 오히려 재정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또 부모는 결혼한 자녀에게 과도하게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해서도 안 됩니다. 전 세계에서 자녀에게 모든 것을 계속 퍼붓는 일등이 대한민국입니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를 재정적으로 계속 의지하도록 하는 것이고, 자녀가 부모를 못 떠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양하도록 지혜롭게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는 정신적으로는 물론이요 재정적으로도 독립되어야 합니다.  결혼한 자녀가 스스로 자신들의 일을 결정합니다. 부모는 모든 일에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하며, 자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영원한 결정권자가 아니라, 자녀가 결혼을 하면 부모는 결정권을 자녀에게 넘겨줍니다.  결혼식은 결정권이양의 날입니다.  결혼후에는 부모님의 말씀을 참고는 하되 결정은 자녀가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부모를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은 ‘장가(丈家)보내는 것’ 이었습니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남자는 결혼을 하면 장가(丈家), 장인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교의 영향으로 ‘시집(媤시집 시, 남편의 집)가는 것’ 으로 바뀌었지요.  그래서 자녀의 결혼에 대해서 ‘딸을 시집보냈다’ 고 말하고, ‘며느리를 얻었다. 며느리를 맞이했다. 새 사람이 들어왔다’ 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부모들이 자녀의 결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시집을 왔으면 시댁의 가풍을 따라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서는 부모가 결정권을 넘겨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결정 아래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은 고려나 조선의 결혼과는 다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결혼은 두 번째 탯줄 끊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탯줄을 끊어야 삽니다.  엄마가 내가 이 줄로 열달 동안 우리 아이를 먹여 살렸는데 어떻게 이것을 끊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탯줄 끊기를 거절하면 엄마도 죽고 아이도 죽습니다.  즉 결혼하면 자녀를 떠나보내야 자녀도 살고 부모도 사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법을 정하신 것입니다. 가정의 법은 결혼으로 결정권을 자녀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결혼한 자녀가 미래를 위해 유학을 가기로 생각을 했는데 부모는 유학을 안 가기를 원한다면, 자녀가 집을 사기로 의논을 마쳤는데 부모는 지금은 집을 살 때가 아니라고 한다면,  자녀가 회사를 옮기기로 했는데 부모가 그건 안 된다면서 그대로 있어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구의 결정을 따라야 하나요?  이 사람의 결정은 선이고 다른 사람의 결정은 악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잘못된 판단이나,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매사에 어떤 형태이든지 결정은 내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후에는 새 가정을 이룬 자녀에게 자기 가정의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인생의 지혜가 있으니 그분들의 결정을 잘 듣고 따르는 것이 잘 사는 비결중의 하나입니다. 자녀는 충분히 부모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부모의 결정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자녀가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가, 오늘 퇴근하는 길에 집에 들렀다 가거라.’ 이것은 자녀를 안 떠나보낸 것입니다. 여전히 결정을 부모가 내리고 그 결정을 통보하는 것입니다.  ‘아가, 오늘 퇴근하고 혹시 집에 들렀다 갈 수있겠니?’ 이 경우는 결정권을 며느리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한 장남이 그 집안의 결정권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남은 새로 이룬 자신의 가정의 결정권자일 뿐이고, 아버지가 여전히 그 집안의 결정권자이 아버지가 안 계시면 어머니가 결정권자입니다.
 
여러분,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생명이고, 풍성함입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아래에 두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정권을 이해하는 사람은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잘 적응하고 은총을 받고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며, 예수님의 내 인생의 결정권자로 모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내꺼냐. 내 맘대로 할꺼야’ 하면 그 결과가 어떤지는 저와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너의 인생도 내꺼야. 너는 내 시키는 대로 해야 되’ 하는 그런 고통도 많이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모든 것이 더해지는 복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 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뱀은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누구의 말대로 되었습니까? 누구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이고 누구의 말이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까?  

이제 여러분은 살리는 말씀에 순종을 하시겠습니까? 죽이는 말에 따르겠습니까?  살리는 말씀 부모와 자녀를 다 살리는 말씀이며, 죽이는 말은 부모와 자녀를 다 죽이는 말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그 말씀에 순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다 생명과 풍성함이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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