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 4:21-24)

첨부 1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 4:21-24) 

오늘 본문의 말씀은 회심한 한 이방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의 내용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경을 지나시다가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다. 이 여인은 세상에서 심한 갈증 가운데 있다가 생수가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대화 중에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알고 믿게 되었다. 그러자 이 여인의 삶에 전격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픈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올바른 예배자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예배에 실패하고 있다. 어느 정도로 실패하고 있는가? 심각할 정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거부하시는 예배,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다. 

1.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예배

1)장소주의적 예배를 거부하신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사마리아여인은 지금까지 자신과 대화한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단순히 지나가는 유대인 나그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허물을 드러낸 놀라운 일로 인해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경외심은 곧바로 예배에 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예배드렸던 곳, 곧 그리심산에서의 예배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의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만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는데 누가 맞는 것입니까?

이 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라고 하지 않았다. 장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답변하셨다. 사마리아인들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그리심산에서의 예배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참 예배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만이 참된 예배라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다 해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그 예배는 헛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배드리는 그곳에 계시냐는 것이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예배당,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수준 높은 찬양대가 있는 교회당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아니하시면 의미가 없다. 

화려하고 거대한 예배당을 보려면 로마나 파리, 런던, 유럽의 대도시를 가보면 쉽게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예배드려야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한 장소에 묶어 놓고 그 장소를 거룩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사람에 의해 한 지정된 장소에 묶여 계신 분이 아니시다. 인위적인 성소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2) 우상주의적 예배를 거부하신다.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수님께서 장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이나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배의 대상에 대해서는 사마리아인들이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지적하셨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사마리아는 우상숭배의 진원지가 되었다.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르호보암의 학정으로 인해 북쪽의 10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독립하였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한 가지 있었는데 백성들이 예배드릴 성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도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을 두 곳 지정해서 벧엘과 단에 제단과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가짜 제사장들을 세우고 그곳에서 예배드리도록 했던 것이다. 

여로보암은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우상을 장려했고, 백성들은 편의주의와 기복주의에 편승한 격이 되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실상은 알지 못하는 신 곧 물질과 풍요의 신을 섬겼던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자기에게 맞는 하나님을 만드는 편의주의적 기복주의적 신앙을 선호한다. 그것은 분명 신앙을 가장한 우상주의임을 알아야 한다. 예)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소주의와 우상주의적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왜 그런가? 예배자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2.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렇다면 참으로 예배하는 자의 예배는 무엇인가? 

1)영으로 예배드림

성경주석가 윌리암 헨드릭슨, “온 마음이 행동화 될 정도로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바리새파 사람들의 형식주의와 외식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이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이 불붙었을 때 직장이 부산인 남자 애인은 서울에 있는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나 KTX 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한 번 약속한 것은 어떤 희생을 치루고라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번 주에 일이 너무 많이 밀렸어. 올라가기 힘들 것 같아. 가보도록 노력해 볼께.” 

일주일 내내 여자 친구가 별로 생각나지도 않고, 다른 여성에게 눈이 돌아가게 된다. 사랑의 열기가 식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사랑의 열기가 식으면 의무감으로 살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랑이 식으면 지각하게 되고, 의무감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게 된다. 한 시간 드리는 예배가 지루하고 빨리 끝나서 다른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 첫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이다. 

김남준 목사의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요즘 예배가 성도들에게 인내를 필요로 하는 종교적인 의무라고 이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배를 견디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딴생각파, 주보에 밑줄을 긋고 교정까지 보는 읽기파, 졸면서 예배드리는 수면파, 수시로 시계 들여다보는 시간절약파, 옆 사람과 글로 대화를 나누는 쪽지파, 예배후 있을 회의 준비하는 회의파, 성경읽기로 시간 때우는 실속파...” 

영으로 드리는 예배란? 간절함, 사모함, 열심과 열정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다.

2) 진리로 예배드림

“진리로”라는 말은 역시 성경 주석가 윌리암 헨드릭슨,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에서 나온 하나님에 대한 뚜렷한 지식을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곧 예배의 실패로 이어진다. 우상주의로, 장소주의로 전락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나님 아닌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원하는 것만을 고집하게 된다. 

그러나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아 볼 때 비로소 예배에 대한 안목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그리스도로 알게 되었을 때 그 여인은 물동이를 던져 놓고 동네로 달려 들어갔다. 이 여인의 전파로 말미암아 수가성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요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사마리아 수가성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진리의 말씀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제자인 빌립이 예수님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러자 예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 곁에서 항상 말씀을 들었고, 함께 있었어도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한다. 

오래 믿는다고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타성에 붙어 예배를 소홀히 여기고 은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직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를 보라.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예수님을 알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려면 성경 특별히 복음서를 읽으면 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 일부분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린다. 온 마음과 열심을 다하여 예배에 집중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는 지식을 가지고 예배드린다.


3. 성도의 삶에 있어서 핵심은 예배다. 

선교도 중요하고, 교육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지만 예배는 더 중요하다. 때때로 봉사하는 일로 인해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교사들, 식사 당번, 예배 순서 맡은 분들, 찬양대원들. 실패하기 쉽다. 하나님 앞에 예배는 드렸는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다. 모든 예배가 중요하지만 특별히 주일 예배는 더욱 중요하다. 

온 성도가 흩어졌다가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기에 하나님의 관심이 더욱 크다. 바로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하여 계신 줄로 믿는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며, 예배를 통해서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고, 세상을 향하여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TV뉴스에, 프랑스 파리에서 의류 세일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평상시 보다 20-30% 싸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백화점 앞에 사람들이 대기해 있다가 개점 시간이 되니까 달리기 하듯 매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세일 기간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더 많이 몰린다고 한다.

썩어질 육신의 몸 치장을 위해 세일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사모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구원자되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의무감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이다.

찬송가 249장 2절, 
주 믿지 않는 자 다 찬송 못하나 천부의 자녀된 자들 천부의 자녀된 자들 그 기쁨 전하세 그 기쁨 전하세.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있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일고 있다면 일요일이 단순한 예배드리는 날이 아닐 것이다.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날을 기다릴 것이다. 

주일 아침이 되면 가장 좋은 옷을 미리 준비하고, 성경책 가슴에 안고 기쁨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기대를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 

이번 미국 방문의 주 목적은 나이스크 심포지움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 목적은 나이스크 월드미션의 대표로 있는 최고센 목사의 목회지인 뉴욕서광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소문대로 그 교회 성도들은 참된 예배자로 성공하고 있는가? 이민 사회에서 과연 그런 예배가 가능한가? 소문을 확인하고 싶었다.

예배 시간 전에 이미 교인들은 예배당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배에는 모든 교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 150여명이 빽빽이 들어차 예배를 드렸다. 설교시간은 약 1시간 15분, 전체 예배 시간을 2시간. 1시가 넘어서 예배가 끝났다. 어린이들로부터 어른까지 그들은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다. 학생들도 넥타이는 매지 않았어도 정장 차림으로 예배에 임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와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발견한 한 가지 사실, 그들은 예배를 그들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두 사람은 똑 같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한 사람은 실패했다. 왜 그런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먼저 돌아봐야 할 중요한 것은 예배다. 예배를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찾으신다. 

예배에 실패한 사람들, 가인,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 사울왕, 솔로몬왕,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그러나 예배에 성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왜 찾으시겠는가? 복주시기 위해 찾으신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가정이 회복된다. 자신의 예배 모습을 돌아보라. 예배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아니다. 최우선이며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