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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함으로 받으라 (딤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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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받으라 (딤전 4:1-5)   

<맥추감사절의 유래>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난 뒤 50일 만에 오는 절기이므로 오순절, 혹은 칠칠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맥추절은 유월절, 수장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맥추절은 여름축제로서 보리와 밀을 수확한 것을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어서 처음 보리와 밀을 거두어들였을 때 그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피땀으로 직접 거둔 열매들을 보았을 때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감격해서 첫 열매인 보리를 가루로 빻고 기름과 유향을 그 위에 얹어서 화제(레 1: 13), 즉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드렸던 것이지요. 온전한 헌신과 진정한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맥추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맞아서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

오늘 맥추감사절에 선택한 본문 말씀은 디모데가 섬겼던 에베소 교회를 어지럽혔던 이단 종파들에 대한 경고 말씀입니다. 이들 거짓 교사들은 아마도 유대교적인 영향을 받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 즉 영지주의자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나누고 영혼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육체는 무조건 나쁜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육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다 보니 자연 육체와 관련된 것을 나쁘게 여겼겠지요. 그래서 3절 말씀 그대로 이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어서 안 된다며 까다로운 규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볼 때 이들은 에베소 교회는 물론이고 기독교 전체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이단이었습니다. 이들 이단사설을 퍼뜨리는 이들은 오늘도 마찬가지이지만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보니까 이들은 첫째로, 믿음에서 떠난 이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떠나 어떤 미신이나 자신의 주의 주장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말이지요. 

둘째로, 이들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대개 이단종파에 빠지는 이들을 보면 겉모습이 멀쩡합니다. 배우기도 많이 했고 말도 잘하고 똑똑합니다. 도저히 저런 사람이 황당무계한 이단종파에 빠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그대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받아 조종당하기 때문에 이단사설에 빠지는 것이지요. 

2절에 보니까 셋째로, 이들은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 화인(火印)은 말 그대로 불도장이지요. 불도장으로 찍혀서 화상을 입게 되면 피부의 다른 부위와 달리 감각이 마비되겠지요. 그러므로 양심이 화인을 맞았다는 말은 분별력을 상실해서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이들은 외식, 즉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이단 성향이 있는 이들의 특징이 이와 같습니다. 그들의 인격과 가르침을 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이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아 외식합니다. 겉과 속이 다릅니다. 그러다보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됩니다. 

디모데가 목회하던 에베소 교회를 어지럽히던 거짓 교사들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입니다. 육체는 더러운 것이므로 절대로 결혼을 해서는 안 되고, 어떤 음식들은 먹으면 우리 몸을 더럽힐 수 있으므로 절대로 입에 대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볼 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적 구원뿐만 아니라 육체도 구원 받아야 합니다. 더욱이 어떤 음식을 먹어서 우리가 거룩해지거나 더러워진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마 15: 11)이기 때문이지요. 본문 5절에서 바울 사도는 어떤 것이 거룩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뿐이지 사람의 행위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라>

바울 선생은 이와 같이 잘못된 생각을 퍼뜨리는 거짓 교사들을 대항해서 우리 성도들이 특히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초대 교회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결혼’과 ‘음식’에 대한 태도였다고 합니다. 결혼은 인간의 정욕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전서 7장에서 할 수 있으면 결혼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지만 정욕이 불같이 타올라 절제할 수 없을 경우에는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비록 자신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결혼이 악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창조의 질서라고 말씀합니다. 

그 다음에 초대 교회에 또 한 가지 큰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은 음식에 대한 규정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에 보면 유난히 음식에 대해서 까다로운 규정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유대교인이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에도 이러한 유대적인 관습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어떤 음식은 입에 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바울 선생은 이처럼 까다롭고 또 지키기 어려운 신앙의 율법을 강요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속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왜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우리를 귀찮게 하나” 때로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교회에는 새벽 기도회가 없습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새벽 기도회를 하는 나라가 몇 나라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한국에는 새벽 기도회가 있어서 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어떤 미국 장로교 목사님이 한국에 있는 대형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새벽 기도회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과연 새벽 기도회 때문에 한국 교회가 크게 부흥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서는 미국에 돌아온 뒤 자기 교회에도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매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주일 새벽에만 기도회를 열기로 광고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시작한 첫 번째 주일은 목사님을 비롯해서 장로님들 대 여섯 명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 주일 새벽 기도회는 두 사람만 나왔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만 나왔지요. 그러다가 세 번째 주일 새벽은 아예 사모님도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어서 목사님 혼자 새벽 기도를 하다가 꼭 3 주 만에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도 어떤 날 새벽에는 몸이 천근만근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새벽 기도회 누가 만들어서 이 고생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자신의 영성은 물론이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새벽 기도회는 정말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웨슬리가 말한 것처럼 굉장히 중요한 ‘은혜의 수단’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이 새벽 기도회는 우리가 감사함으로 받기만 하면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축복의 길잡이가 됩니다.

저는 교회 안에 들어오는 성도들에게도 이 말씀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모든 성도들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한 사람도 버릴 영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누구누구는 이래서 안 되고 누구누구는 또 저래서 안 되고 우리의 기분이나 편견에 따라서 사람을 판단하면 교회 안에는 살아남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우리 교회에 불러주신 이들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끼리끼리 모이려는데 있습니다. 한국의 어머니 교회 우리 교회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믿는 이들은 다 찾아 올 수 있는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넓은 품으로 우리 교회에 보내주신 모든 형제자매들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환경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내게 주신 사람, 내게 허락하신 환경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고통과 시련, 가난과 상처, 갈등이라는 문제를 만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문젯거리를 더 큰 축복으로 바꾸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잘 받아서 소화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넓은 마음을 갖는데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2011년의 상반기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반 년 동안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이것은 받아들이고 저것은 물리치고, 올라가는 것은 기분 좋고 내려가는 것은 기분 나쁘고, 형통은 좋고 불통은 나쁘고, 성공하는 것은 좋고 실패하는 것은 나쁘고, 건강은 좋고 질병은 나쁘고, 이렇게 가리지 맙시다. 한 번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봅시다. 그리하면 4절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저것도 좋은 것이 됩니다. 올라가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것도 좋습니다. 형통만 좋은 것이 아니라 때로 불통도 좋습니다. 성공도 좋지만 때로 실패도 좋습니다. 건강도 좋지만 질병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그저 감사함으로 받으면 됩니다(롬 8: 28).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

두 번째로,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보기 좋은 것, 기분 좋은 것만 받아들이려고 하지 보기 싫은 것 기분 나쁜 것은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바로 이어 5절에서 “말씀과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것을 받아들이기 거북하고 힘들 때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거룩해질 수가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이 30대쯤 이미 아주 유명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을 때 신앙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과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지 의심이 갔습니다. 특히 가까운 친구였던 첰 템플톤과 몇 사람이 그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마구 뿌려댔습니다. 철학적이고 심리학적 주장을 펼치면서 성경이 믿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빌리 그레이엄의 믿음을 흔들어댔던 것입니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자서전 『이 모습 이 대로』( Just As I Am)에서 이러한 영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버나디오 산의 달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숲에서 무릎을 꿇고서는 자기 앞에 있는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다가 성경을 펼쳤습니다. “오, 하나님! 성경 안에는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성경 안에는 서로 모순되는 말씀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현대 과학과 충돌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실로 성경 안에는 현대인들이 받아들을 수 없는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주님, 저는 첰 템플톤과 여러 사람들이 제기한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다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성경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지적인 질문이나 의심보다 믿음을 앞세우고, 이 믿음으로 성경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줄로 믿겠습니다!” 

그 해 8월 한밤중에 수풀에서 이런 경험을 한 빌리 그레이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여러 달 동안 의심으로 인해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의 모든 의심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의심이라는 큰 다리를 넘어선 것은 분명했습니다. 자신 안에 일어난 영적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 안에 의심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마구 흔들어대는 원수들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앞세우십시오. 신기하게도 의심이 확신이 됩니다. 원수들이 물러가고 내 마음에 평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에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고난도 시련도 슬픔도 상처도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 만물은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닮아서 모두 선합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선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기분 나쁘고 두렵고 짜증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앞세우십시오. 하나님께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고난의 재가 변하여 영광의 화관으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의 기름으로, 근심이 변하여 찬송의 옷이 될 것입니다(사 61: 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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