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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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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마 26:36-46)

시작하는 말
 
물고기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습니다. 죽을 때도 눈을 뜨고 죽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물고기 특유의 현상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초대교회 시절,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로마 외곽의 지하 동굴 카타콤으로 도피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시체를 매장하는 곳이었습니다. 로마는 장례 지를 신성불가침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에 접근을 꺼렸습니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사람들은 카타콤 벽면에 물고기 그림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곳에 물고기를 그려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나 깨나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겉사람은 후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죽은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나이아가라 폭포,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라도 타고 올라갑니다. 죽은 영혼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깨어있는 사람만이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1. 마귀는 시험할 자를 찾습니다.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고 크리스천들을 시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탄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탄에게 노출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➀ 거짓된 정보를 흘립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짓된 정보를 흘렸습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면에서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결국 일을 그르치게 만들려고 합니다. 

➁ 인간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여 비정상적인 탐욕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와서 미움, 분노, 시기, 질투,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좌절, 절망 그리고 우울감에 빠지게 하여 정서적인 것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 분노, 시기, 질투와 같은 감정과 생각들이 있다면 마귀가 틈탄 줄 알고 훌훌 털어버려야 합니다. 

➂ 인본주의자를 이용합니다. 인본주의로 살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자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에게 속아 인본주의적인 결정을 했을 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선악과를 먹으므로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귀가 들어오면 사람은 완고해져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고집과 아집에 서서 자기가 옳다는 생각만 합니다. 

➃ 사람의 육체를 점령합니다. 오늘날 의사들은 말하기를 우리 육신의 병의 70∼80%는 스트레스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우리의 육신은 질병으로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와는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교만에 빠집니다. 아합왕은 우상의 사슬에 걸려 무너지고 맙니다. 

가룟유다는 인본주의자입니다. 

➀ 그의 이름은 “주님을 찬양하다.”는 뜻입니다.
➁ 그는 12제자 중 유일하게 비갈릴리 출신입니다. 
➂ 그의 무서운 범죄는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시109:5-8, 행1:16). 
➃ 그가 스승을 팔아넘기는 것도 이미 예언되어 있습니다(슥11:12-13). 
➄ 그는 악마의 화신(a devil-incarnate)이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의 화신(God-incarnate)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➅ 그는 멸망의 자식(son of perdition)이 됩니다. 멸망의 자식들은 가룟 유다의 화신(Judas incarnate)입니다. 
➆ 그는 도적입니다. 주님의 재정을 맡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것이 올무가 되고 맙니다. 
➇ 예수님께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악당들에게 넘겨줍니다. 겉으로 악수하고 속으로 앙심을 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➈ 그는 그가 가야할 곳으로 갑니다(행1:25). 
➉ 그는 자기 스스로 자기파문(self-excommunication)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파문시키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파문대신에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사도들 중 가장 위대한 사도로 모세와 같이 자전적 성경을 기록했을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아까운 인재가 왜 악마의 화신이 되었습니까? 철저한 인본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5: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말씀합니다. 


2. 한 여자는 귀한 향유를 붓습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제자 가룟 유다는 스승인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앞장섭니다. 반면에 본문의 한 여자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는데 앞장섭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여인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요12:3)입니다. 이 설화석고(雪花石膏) 대리석 옥합에 담긴 나드 향유는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습니다. 현싯가로 3.000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향윱니다. 

제자들은 분개하여 여자에게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마26:8-9)라고 비난했습니다. 제자들이 놀랄 만도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120데나리온), 현싯가로 1.200만원 정도로 거래 중이니 말입니다. 

제자들은 한 여인의 신앙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는 것을 허비하는 것으로 봅니다. 차라리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26:10-13)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주님 자신의 장례를 위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합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눅8:2-3)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제자들은 겟세마네에서 잠만 잡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는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것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신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덟 제자들(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 인 시몬)에게는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마26:36)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화 산에는 아예 데려가지도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 입구에 앉아만 있는 것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덟 제자들은 앉아만 있지도 못했습니다.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잠만 자고 있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잡혀 가실 때에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세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기도의 장소로 가셨습니다. 변화 산으로 기도하러 가실 때에도 그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와 세계선교사역의 주역이 될 제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같은 제목을 가지고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내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우리의 많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마옵시고 내 원대로 하옵소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끝맺는 말

우리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별 볼일 없는 여덟 제자들에게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주역이 될 세 제자들에게는 
➀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38) 
➁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40) 
➂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41) 
➃ 이제는 자고 쉬라(45)... 

악마의 화신이 된 가룟 유다에게는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5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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