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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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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 (행 16:6-10)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을 달고 다니는데 자신은 네비게이션을 안달고 다닌다고 왜 그러십니까? 그걸 달면 굉장히 편리한데 그랬더니 집에서 부인한테 잔소리듣는것도 괴로워 주겠는데 차까지 와서 잔소리를 들어야 하겠느냐고 네비게이션속에 여자가 있습니다. 이리가라, 저리가라, 돌아가라, 그게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아주 좋은 차를 타고 다니시지만 네비게이션을 안달고 다니십니다. 

가끔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저희교회에 그분이 한번 집회하러 오셨는데 길을 찾다가 잘못찾으신 것입니다. 당산동쪽에 가서 전화하셔서 나 도저희 못찾겠다 나 데리고 가라고 해서 가서 모셔 온적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왠만하면 차에 답니다. 편리하기 때문에. 사실 지난번 부산에 갈때도 그랬습니다. 네비게이션만 해 놓으면 부산 시골의 작은 길까지 정확하게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고속도로도 전국에 2~30개가 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경부, 중부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20개가 넘습니다. 그러니 어떤 고속도로로 가면 빨리 갈 수 있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는데 그걸 정확하게 인도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참 많이 받습니다. 저는 네비게이션을 사용할 때마다 그런생각을 합니다. 네비게이션이 길 안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안내해주면 얼마나 좋을 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이 많은데 네비게이션이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런 고민은 네비게이션이 해결을 못해줍니다. 그런 인생의 네비게이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종종 사람들에게 이런문제, 저런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담자도 그렇습니다. 실컫 듣고나서는 내 생각은 이렇지만 결정은 당신이 하라고 이것은 내 의견이니까 참고하고 결정은 당신이 하라고 결정권이 나에게 넘어오는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어려운 결정앞에 어떻게 그 결정을 이루어 나아가는지를 우리는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주 짧은 본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이것은 2차 전도여행입니다. 두 번째 전도여행에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더베와 루스드라라는 곳에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복음이 잘 전해지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갔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오래 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아시아지역은 지금의 터키지역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복음을 전해야 겠다고 했더니 성령께서 그것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너는 아시아에서 복음전하지 말고 다른곳으로 가야해. 성령님이 왜 길을 막으실까.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서 비두니아라는 곳으로 갈려고 했더니 예수의 영이 그곳마저도 허락하지 않으셨다라는 것입니다. 또 막으십니다. 그럼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 그래서 그가 결국 드로아라는 항구도시로 밀려서 내려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몹시 낙십했습니다. 이런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계속 내 앞길을 막으시나. 그렇다고 성령의 뜻을 어기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밤에 성령을 통해서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다 건너, 드로아에서 보면 바다건너가 유럽인데 마게도냐 또는 아가야라고 불렀는데 마게도냐에 한 사람이 서서 손을 흔들면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소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니 저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 보다 그래서 바울은 그 다음날 배를 타고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누구를 만나느냐 아주 부유한 루디아라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빌립보 첫 교회를 유럽의 첫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유럽에 복음이 번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획을 가지고 사도바울을 이끌어 가셨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6절 7절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성령께서는 사도바울의 길을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막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더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가끔 교인들중에도 그렇습니다. 나는 어떤 문제가 급해서 하나님께 막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급하지 않으신가봐. 하나님은 더 좋은 때를 위해서, 더 좋은 결정을 위해서 때로 우리의 계획을 보류하실때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높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실 내 눈앞에 것까지밖에 못봅니다. 내 눈앞에 이익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돼지를 잡는 사람이 돼지가 안달려오니까 돼지 앞에 콩을 던져 놓으니까 돼지가 콩을 먹으려고 쫓아오다고 어디까지 오는 겁니까? 도살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린 눈앞에 이익만 보고 저 멀리는 못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앞에 이익보다는 저 멀리 더 아름다운 결과를 주시기 위해서 때로 우리의 길을 막기도 하시고 교정하기도 하시고 이끌어가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를 성령으로 이끌어 가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할까? 

먼저는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속성자체가 우리를 인도하시는 보혜사,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진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른길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의의 길로, 올바른 길로, 정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불의한 길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이익이 되도 불의한 길로 부정한 길로, 범죄하는 길로 성령이 인도하는 법은 없습니다. 이 길이 내가 보기에는 옳은 것 같은데 성령이 막으신다 그러면 성령이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않게하려고 그 길을 피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영이십니다.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얼마나 좋은 분이십니까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네비게이션보다 더 훌륭합니다. 왜? 네비게이션은 가끔 업그레이드를 안하면 다른곳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길이 새로 생긴지도 모르고. 한번은 제가 어디를 가느라고 고가 위를 타고가는데 제가 잠깐 졸다가 놓쳐버렸습니다. 그래서 내려야 되는데 못내리고 그냥 갔더니 이 네비게이션이 고가라는 것을 생각안하고 아랫길인지 알고 자꾸 빠져나가라는데 고가에서 내리면 죽는데 어디로 내립니까. 

그런데 오른쪽으로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길이 없는데 그리로 내려가면 큰일납니다. 네비게이션이 그런착각을 합니다. 고가인지 아랫길인지 똑같은 길이면 혼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혼동하는 경우가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를 정확하게 가르치시고 정확하게 깨우쳐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보면 다윗은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구약에서는 성령님의 역사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늘 성령의 감동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구했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23장 2절입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매사에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내가 블레셋을 치리이까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래 가서 치고 그 일라 백성을 구원해라.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내 뜻이 아니라,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받기를 다짐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중 한사람을 뽑으라면 스펄젼목사님이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분이십니다. 젊을때부터 큰 사역을 하신 분이신데 스펄젼목사님이 자그마한 고아원을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브리스튼이라는 침례교회가 있는 곳에가서 세군데의 침례교회의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가서 설교하면서 내가 운영하고 있는 고아원이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3백파운드가 필요한데 이걸 모금하고 있으니 여러분 십시일반으로 협력해 주십시오 했더니 이분저분이 즐겁게 헌금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으니까 3백파운드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기분이 좋아서 집회도 잘하고 모금도 하고 이제 고아원이 걱정이 없겠다 하고 돌아와서 기분좋게 자려고 했더니 잠들기 전에 기도를 했더니 성령께서 스펄젼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스펄젼아 너 그 3백파운드 있지? 있습니다. 그럼 그것을 죠지 밀러에게 가져다 주어라. 죠지밀러도 고아원을 엄청나게 운영하는 목사님입니다. 죠지 밀러에게 주어라. 

우리고아원에 쓸건데 왜 거기다 주라고 하십니까. 내가 잘못들었겠지. 그랬더니 웬걸 성령께서 또 말씀을 하십니다.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스펄젼목사야 죠지밀러목사에게 가져다 주어라. 스펄젼목사님은 성령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가고싶지는 않지만 성령님이 말씀을 하시니까 3백파운드를 가지고 죠지밀러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죠지 밀러목사님이 스펄젼목사님의 방문을 받고 3백파운드를 받더니 오 할렐루야 합니다. 

무슨 할렐루야 나는 기분도 안좋은데. 내가 이 3백파운드가 필요해서 몇주동안 기도해 왔다고 합니다. 당신을 통해서 내 기도의 응답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리고 스펄젼목사님은 돌아왔습니다. 좀 시무룩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렇게 차별하시나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 런던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사무실에 봉투가 하나 있습니다. 무슨 봉투지하고 뜯어봤더니 거기에 정확히 3백기니라는 영국의 화폐단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3백기니는 3백파운드에다가 300실링을 더한돈입니다. 그래서 스펄젼이 이랬습니다. 아 하나님이 원금만이 아니라 이자까지 더해쳐주시는구나. 

이게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의 인도에 예민한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기도할 때 성령님은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해가시기 때문에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되고 순종해야 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가?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영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참놀라운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줄 것이다. 

그런데 그 성령님은 너희가 아는 분이고 그리고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분이 성령이시다. 우리는 때로 의논할 상대가 없어서 이 문제를 누구와 의논하면 좋을까. 아닙니다. 우리속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계신 성령님과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속에 계시겠음이라. 세상사람들은 성령이라는 것이 있는 줄 모릅니다. 성령님이 존재하는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보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속에 계신 성령님과 대화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삶은 기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감사한게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특별한 사람들, 다윗이라든가, 모세라든가, 기드온이라든가 이런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미 그 속에 성령님이 임재해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면 예수를 주시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할 때 이미 내 속에 성령님이 임재해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니까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니 했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여러분 가까이 여러분속에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분에게 여러분 인생의 진로를 물을 때 그분은 가장 정확한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실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할까. 성령은 반드시 유익한 결과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과 10절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의 길을 두 번이나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환상속에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를 도우라 그럴 때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구나. 그리고 어떻게 했을까요. 

오늘 사도행전 16장 11절에보니까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그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성에 갔더니 거기도 예수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루디아라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교회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 빌립보에 많이 있었고 강가에 가서 회중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가다가 루디아를 만나고 의기가 통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 첫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이게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유럽에 첫교회가 세워지고 또 어떻게 합니까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간수장과 가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많은 지역에 복음이 증거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길을 막으신 것은 선하고 유익한 결과를 주시기 위함이였다하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이 꿈을 꿨더니 자기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을하는 꿈을 꿨습니다. 부모도 자기에게 절을 하는, 그래서 무슨꿈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보면 하나님이 요셉을 귀하게 쓰신다는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꿈하고는 정반대로 요셉의 길은 정반대로 가지 않습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받아서 노예로 팔려가고 노예로 좀 살만하나까 억울한 모함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죄수들이나 돌보는 사람이 되고 이래가지고 언제 출세하겠습니까. 점점 반대의 길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생애를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파란만장한 삶이다. 여러분의 삶에도 내가 원하고 계획하는 것하고는 다른길로 자꾸 갈수가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 

어떤 목사님이 퀴즈를 냈습니다. 요셉의 일생의 목적이 뭐냐? 파란만장한 삶을 산 요셉의 목적이 뭐냐 물었더니 답은 일억을 모으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갑자기 왜 일억을 모으는 것이냐고 했더니 파란돈 일만장이면 일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의 생이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한다 합니다. 하여튼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삶이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가 지하로 떨어지고 떨어지고 꿈과 멀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꿈과 가장 가까운 길이였습니다. 지하감옥에 들어온 술만드는 관리와 떡만드는 관리를 만나서 그들이 꿈을 꿨는데 요셉이 그 꿈을 해몽해 주었더니 그들중에 한 사람이 살아나가서 꿈을 꾼 바로의 꿈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니까 내가 지하 감옥에서 유대청년을 만났는데 그가 꿈을 잘 해석하더라고 그에게 물어보시죠. 그래서 직통했습니다. 바로앞에 갔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해서 하루아침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갈길을 하나님께서 왜 자꾸 멀리가게하시나 하지만 그게 가장 지름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에 예민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이야기 입니다만 지난주 성남에 있는 문무대에 가서 ROTC 학생들, 후보생들 1720명정도 예배에 참석해서 우리교회 성가대가 찬양하고 저도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만 가기전날 ROTC학생들에게 무슨 설교를 할까 왜 너무 귀중한 기회인데. 그들은 학교에서도 다 똑똑한 젊은이들입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한 일꾼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위대한 일들을 하실수 있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까 고민했습니다. 

몇가지 본문을 가지고 기도하다가 정한게 사사기 6장 11절부터 '큰 용사여'라는 본문과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알려줬습니다. 그걸 놓고 기도하는데 토요일에 하나님께서 제게 다른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사기 가지고 설교해도 이들에게 공감대가 이루어지지않을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4장 13절 14절을 가지고 설교하라 하십니다. 

본문도 정해졌는데 전화했더니 군목이 그럽니다. 주보는 이미 인쇄해서 고칠수 없고, 자막은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 아무래도 요한복음을 가지고 설교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저는 결국 요한복음 4장 13절 14절 말씀을 가지고 '생수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우들이 기도해주신 덕분에 설교를 잘 했습니다. 마음을 열고 다 졸려고 앉아있던 젊은이들이 설교시간에는 거의 졸지않고 눈을 뜨고 그 시간에 청종을 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끝나고 나니 거기 집사님들이 인사를 하면서 오늘 좋은 설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우리가 보기에 많은 결신자가 생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와 3일 지났는데 군목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놀라지 마십시오. 지난주일 목사님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인도해주셨는데 그 1720명중에 1000명은 이미 크리스챤입니다. 세례를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계를 안받은 불신자가운데서 620명이 세례를 받겠다고 자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일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문무대 역사상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세례받겠다고 나선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는 감사해서 우리 교우들에게도 자랑을 했습니다만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를 하신다. 1720명가운데 천여명정도는 자기 종교가 기독교라고 또 세례받은 이들이고, 불신자는 칠, 팔백명되는데 그중에 620명이 세례를 받겠다고 손을 들고 나와서 그들이 일주일간 세례공부를 하고 오늘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인도하시나 의아해할때도 있지만 그것이 성령의 인도라면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될 이유가 있다 성령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만큼 위대한 선물은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삶, 성화의 삶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또한 교회를 세워가시는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겸손히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 16장 3절입니다.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장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가 계획을 세워도 성령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올바른 인생을 향해서는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구하는 자에게 임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니 성령님은 이미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구하시고 성령의 도움을 구함으로 가장 올바른 선택 지혜로운 길로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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