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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 세우기 (느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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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세우기 (느 7:1-4)             

 
우리교회의 올해 표어는 다음세대입니다.
복음을 다음세대로 전달하는데 실패하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합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발원지인 ‘비텐 베르그 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한 교인은 놀랍게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 대여섯 명뿐이었습니다. 
설교자는 아예 노인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방문객 20여명을 상대로 설교를 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열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도 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청장년들은, 20년 전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청년들이었습니다.
저가 교육목사로서 지도했던 중, 고등학생들이 금방 성장하여 교회를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다음세대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교회의 내일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다음세대란 표어는 결국 사람세우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52일 만에 성벽 건축을 완성했습니다. 
느헤미야 6장 15-16절을 보십시오.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람을 세우라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진정한 건축은 벽돌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점에 주목했다는 것은 그의 탁월함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했던 위대한 일은 성벽을 건축한 것보다 사람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한 후에 사람을 세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문제입니다. 
건물도, 사상도, 정치 개혁도, 제도 개혁도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어떤 체제도 개혁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세 가지 방식이 있었습니다. 
먼저 혁명가적 방식입니다. 
혁명가는 정치체제를 바꿉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그 예입니다. 
러시아 혁명은 300년 동안 계속된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고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공산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70년이 못 되어 그 체제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체제를 바꾸었지만 사람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개혁가적 방식입니다. 
개혁가는 사상을 바꿉니다. 
개혁가들은 사상을 말하고, 사상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완전한 사상은 나타나지 않았고, 유토피아 사회는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방식은 사람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그는 로마가 다스리는 시대에 로마의 정치체제를 바꾸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열두 사람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이 변화되었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배자를 세우라
그런데 느헤미야가 사람을 세웠는데 어떤 사람을 세웠는가를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가장 먼저 예배자를 세웠습니다.

노래하는 자란 성전에서 주야로 찬양하는 자입니다.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 양이나 소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하고, 성전 문을 열고 닫으며, 아침저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왜 느헤미야가 예배자를 먼저 세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까? 
이것은 성벽공사를 하는 목적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성벽공사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그 성 안에 사람을 살게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의 구조를 주목하셔야 합니다. 
느헤미야 1장부터 6장까지는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한 이야기입니다. 
7장부터 12장까지는 사람을 세우고 훈련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3장은 세상과 역사를 변화시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길 바라십니다. 
평생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삶이 복잡해지고,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 되어갈 때 다 집어치우고 예배부터 시작하십시오.
예배성공, 인생성공 
이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니를 세우라
느헤미야가 또 어떤 사람을 세웠습니까? 
본문의 2절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느헤미야는 두 사람을 더 세웁니다. 
이 두 사람이 누구입니까?

먼저, 하나니입니다. 
그는 느헤미야의 동생이었습니다. 
하나니가 처음 등장한 것은 느헤미야 1장 2절입니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하나니는 처음부터 느헤미야의 곁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느헤미야 곁에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의 동생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느헤미야와 같은 비전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국을 생각했습니다. 
비록 몸은 이역만리 페르시아에 있지만 마음은 늘 조국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조국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가 본 조국은 참담한 모습이었습니다. 
앗수르에 눌린 지 약 150년, 또 다시 바벨론에 짓밟히고, 그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자 다시 페르시아에게 시달린 예루살렘, 조국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열강의 침입으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보며 울었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벽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형을 찾았습니다.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전적으로 하나니의 수고와 동역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니는 갑자가 나타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느헤미야와 함께 고락을 같이하던, 신앙과 비전의 동역자였습니다. 
그 사람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의 지도자로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닥부터’라는 말을 좋아합니까? 
아마 대부분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바닥부터’ 훈련된 사람입니다.
‘바닥부터’란 ‘처음부터’, ‘사소한 일부터’, ‘시련으로부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물의 차이가 아닙니다. 
가문의 차이도 아닙니다. 
태어난 순서의 차이도 아닙니다. 
사울은 광야를 거치지 않고 왕이 되고, 다윗은 광야를 거친 후에 왕이 되었다는 차이입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어떤 시련이나 시험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져서 왕이 되었습니다. 
20대에 기름 부음 받고, 30대에 광야로 쫓겨나 40대에 고생하다가 50대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승리했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 중에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선택하셨는지 아십니까? 
여호수아가 수십 년 동안 모세와 함께 살면서 그에게 충성하고, 그와 비전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여호수아에 대하여 기록할 때마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라고 합니다. 
‘바닥으로부터’
이것이 느헤미야의 동생 하나니가 쓰임 받은 이유입니다. 
이것이 둘째입니다.

하나냐를 세우라
느헤미야가 세운 마지막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냐입니다. 
다시 2절을 보십시오.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영문의 관원’이 무엇인가 해서 영어 성경을 보았더니 ‘commander of the city’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시를 지키는 사령관’ 즉 수도경비사령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니가 느헤미야의 동생으로 바닥부터 고락을 같이한 사람의 모델이라면, 하나냐는 뛰어난 성품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의 모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냐의 최고의 덕목은 ‘충성심’입니다.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왜 충성심이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됩니까?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충성’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많았습니다. 
노아는 술꾼이었습니다. 

야곱은 거짓말쟁이였습니다. 
기도온은 겁쟁이었습니다. 
모세는 말을 더듬었습니다.
미리암은 모세를 향해 비난을 퍼붓던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처첩을 많이 거느렸습니다. 
엘리야는 낙심하여 자살 직전까지 갔습니다. 
요나는 사명을 거부하고 피해 도망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비겁하고 스승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마르다는 잔걱정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바울 몰래 도망간 사람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의 문제를 말한다면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모자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완전해서 사용하신 것이 아니고, 단 한 가지 때문에 사용하셨습니다. 
‘충성심’ 때문에 사용하셨습니다.

완전하기 때문에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완벽하셨습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perfectionist)는 아니셨습니다. 
리처드 월터스는 그의 책 <덫으로부터의 탈출>(Escape the Walters)에서 완벽주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완벽주의는 자신이 흠 없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믿으며, 그런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자신을 꾸짖고 벌하는 불행한 삶이다. 삶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은 좌절의 흔적을 남기고 더 많은 문제를 낳는다. 완벽주의자는 대개 이렇게 산다.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며, 미래를 두려워한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너무 완벽주의를 추구하지는 않습니까? 
그 결과 과거의 실수에 지나치게 붙잡혀 있지 않습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선포되었는데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또한 현재의 부족함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확대하지 않습니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현재의 삶을 못마땅히 여기고 불평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미래를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습니까?

고 김용기 장로님은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고 선포했는데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내일을 염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은 과거를 되새겨 교훈을 받고, 주어진 현실을 기뻐하며 감사하고, 미래를 향해 기대감과 긍정적인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미래에 잘 될 줄 믿으십시오.
미래에 축복 받을 줄 믿으십시오.
미래에 자녀들이 잘 될 줄 믿으십시오.
충성스런 사람은 이렇게 삽니다. 
하나님은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으십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기러기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V자형으로 날아갑니다.
조류학자들은 기러기들이 같이 날아가면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71%나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무리의 법칙’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무리에 속해 있으면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무리에 속해 있으면 인물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사람을 키우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세대를 구축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되십시오.
이 교회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을 키우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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