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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할 때와 약할 때 (삿 15: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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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할 때와 약할 때 (삿 15:14-19)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명을 죽이고 16.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더미 두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명을 죽였도다 17.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삿 15:14-19) 


I. 본문해설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에, 하나님은 사사들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하셨다. 사사라고 하는 인물의 원뜻은 “쇼패트”로 재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정치를 이끌고 또한 종교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런 지도자였다. 삼손은 매우 해학적인 인물이다. 전대미문의 큰 육체의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고, 20년 동안 사사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큰 힘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과 싸우고 있는 삼손이 등장한다. 블레셋은 해양 민족으로 팔레스타인에 자리를 잡고 일찍이 발달한 철기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마병을 거느린 잘 훈련된 군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이 마땅치 않아 인근의 나라를 약탈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고, 추수때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해서 노략질을 많이 했다. 하나님은 이 블레셋을 회초리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치셨다. 

본문 앞에 보면 삼손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많은 갈등이 기록되어 있다. 삼손은 블레셋과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그의 장인과 아내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삼손은 보복하기 위해 추수철에 블레셋의 모든 곡식을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국력이 약한 것을 이용해 병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나아가 삼손을 내놓지 않으면 전쟁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삼손은 순순히 붙잡혔다. 이제 블레셋 사람들은 눈의 가시처럼 자기들을 괴롭혔던 삼손을 제거하기 위해 일시에 나오고 있었다. 그때에 삼손을 묶고 있었던 삼줄이 힘없이 풀어지고 삼손은 괴력을 발하며 혼자서 전투를 수행하게 된다. 


II. 삼손의 강함 

A. 하나님의 권능 

삼손의 강함은 여호와의 신의 큰 권능이 임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적으로도 삼손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장사였으나, 어려울때마다 하나님의 큰 권능이 그에게 임하였고 그때마다 그는 괴력을 발휘하며 적군을 물리친 것이다. 

B. 위기의 순간 

또한 이때는 절실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블레셋에 붙잡혀 가고, 이스라엘 민족이 짓밟히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사사 삼손에게 큰 권능을 부어주셨다. 그리하여 그는 강한 사람이 되었다. 무장을 하고 나온 블레셋에 비해 삼손은 바위틈에 은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무기가 없었다. 주위에서 단단해 보이는 나귀 턱뼈 하나를 발견했다. 삼손은 이 나귀의 턱뼈를 쥐고 자기를 향해 물밀 듯 밀려오는 수많은 블레셋 군사들과 전투하였다. 일천명의 블레셋 군사를 때려죽였으니 정말 굉장한 혼자만의 전쟁이었다. 

우리의 신앙의 과거를 돌아보면 이렇게 강하고 큰 능력과 힘을 가지고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심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이기면서 살았던 때가 주님 때문에 이겼던 때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붙잡으신 주님의 손에서 우리가 멀어질 때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지극이 연약한 자이며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공급하지만 우리가 그 은혜만을 믿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은혜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도록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 바로 신앙의 본질이다. 


III. 기도와 영적소생 

삼손은 일천 여명의 병사들을 때려 죽였고 아마 남은 군사들은 두려움 속에서 도주하였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에게 항거하는 군인이 없을 그때에 순식간에 탈진하게 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목마름이 엄습하였다. 턱뼈를 던져버리고 그는 어린 아이처럼 주저 앉아 울부짖었다. 

“주께서 주의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습니다만은 내가 이제는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손에 빠진다고 하는 것은 그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도망갔던 블레셋의 군사 중 가장 연약한 군사 하나가 와서 자기의 목에 칼을 겨누어도 항거할 기운이 없어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죽어 버리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어지는 교훈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기도와 영적인 소생의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A. 탈진과 목마름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은 탈진과 목마름이다. 그는 죽음의 위기를 느꼈다. 모든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삼손이 힘겨운 전투를 수행할 때, 그 앞에 샘물이 줄기처럼 솟아나 샘물을 마시면서 전쟁을 하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권능이 삼손을 붙들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온 힘을 소진하여 싸우게 하셨고, 끝났을 때는 죽을 것 같은 탈진과 목마름 속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강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 강함이 자신에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힘과 능력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의존을 통해서만 공급된다는 것을 믿도록 만들어 주신다. 

B. 엔학고레의 샘 

삼손이 피 묻은 나귀 턱뼈를 던져버리고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우묵한 곳을 터치셨으니 여기가 바로 ‘엔학고레’의 샘이다. 당신이 직접 은혜의 샘을 터치셨다. ‘엔’은 샘물이라는 뜻이고 ‘학고레’는 그 부르짖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분사의 원래의 뿌리가 되는 동사 ‘카라’(ארק)는 ‘말하다. 부르짖다. 외치다’라는 뜻인데 마음속으로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목청껏 외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 이는 삼손이 라맛 레히에 주저앉아서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큰 소리로 부르짖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소관이지만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이 은혜를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주신다.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영혼의 목마른 갈망은 바로 간절한 기도로 나타나는 것이다. 천하장사인 삼손도 하나님 앞에 ‘엔학고레’의 샘에서 물이 터져 나올 그때까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탈진한 가운데 절망하며 낙심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 새로운 기력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그 앞에 샘을 터치셨다. 맑은 생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삼손은 거기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소생하여 다시금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블레셋 군사들이 다시 쳐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 많이 분산되어 있고, 여러 가지로 많이 혼란스러워져 있다. 우리의 인생을 에워싸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 있는 자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 결과는 영혼의 더 큰 고통과 부자유함이다. 그리고 마음이 깊이 탈진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로 떨어지고 만다. 도대체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인 문제들을 어디에서 해결 받을 수 있을까? 만약 여러분들이 염려하고 근심하는 시간만큼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에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을 의존하는 신자의 가장 훌륭한 외적인 고백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이다. 

C. 소생하게 하시는 하나님 

삼손은 소생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삼손은 물을 먹고 정신이 새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영혼도 소생하는 놀라운 은혜를 누렸다. 지쳐버린 자신을 위해 기적의 샘을 터트리는 주님을 보면서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소원은 여러분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물 붓듯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어두운 세상에서 흠 없는 빛들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한 떨기 별똥처럼 그렇게 줄을 그으며 이 어두운 세상에 불꽃처럼 살게 하고 싶으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기를 매우 인색해 하는 구두쇠 같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지은 큰 죄는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모독이며 오해이다. 

문제는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부르짖지 않기 때문에 샘이 터지는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의 위대한 힘은 두 발은 이 땅을 딛고 살아도 영혼으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경건한 성도들은 주 앞에 부르짖을 때에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니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간청하는 구원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가식과 위선의 껍질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도할 수 없다. 그러나 진실해지는 사람은 그 사람 가장 가까운 곳에 기도의 은혜가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정직해져야 한다. 나를 버리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용서의 은혜를 주신다. 마음이 모아지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산산이 찢어진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새롭게 모아지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주님은 놀랍게도 우리의 영혼을 수습해 주셔서 산지사방으로 찢어진 우리의 정신을 십자가로 모아 주신다. 


IV. 결론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굳게 믿는 것만이 무신론이 아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실천적인 무신론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관념적인 무신론이라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기도하지 않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고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영혼의 닻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불러라. 마치 자기를 두고 멀리 떠난 엄마를 부르는 어린 아이의 울부짖음처럼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아무 희망이 없고, 내 앞에 펼쳐진 이 난관과 모든 시련이 내가 하나님 없이 살아온 교만의 결과였다고 고백을 하며 이제는 돌이키게 해 달라고, 이제는 주님의 은혜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이제는 주님 없이 넉넉히 살아가는 교만을 거두게 해 달라고 어린 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라.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마음을 모으고 주님 한 분 이외에 아무 곳에도 시선을 주지 말고 주님의 은혜를 갈망해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충분한 은혜를 갈망하며 인생의 어느 골목 한 모퉁이에서라도 당신의 이름을 사모하며 부르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 없이 은혜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은 만족스러울 수 없다. 그러나 어두움 가운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신뢰하고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은 약속의 보증이 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할 것이며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노라’ 라고 하는 약속이 깃들어 있다.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에게 권면하노니 마음을 수습하고 하나님 한 분을 앙망하며 간절히 기도해라. 주님이 여러분들의 곤고한 인생 그 현장 바로 앞에 은혜의 샘을 터트려 주실 것이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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