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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의 방주 (창 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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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창 6:14-16) 
 
 
노아방주는 우리의 신앙을 실험하는 시험대가 됩니다. 지금까지 불신앙하는 사람들, 특히 인본주의적인 지식층에 속한 사람들 즉 무신론자, 이성주의자, 인본주의자, 과학주의자, 진화론자 등과 같은 사람들은 노아방주를 이유로 들어서 성경을 허구적이다고 공격해왔습니다. 그리고 비과학적이라고 폄하해 왔습니다. 방주의 크기, 그리고 각종동물들을 다 모아서 1년이 넘도록 방주에서 함께 사는 것 등등 노아방주와 관련된 것들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노아방주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설화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재미 있게 꾸며만든 이야기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비과학적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노아홍수와 노아의 방주를 믿는 사람들을 과학적으로 무식한 종교적 열심가들일뿐이라고 독설을 퍼붓고 비웃어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노아의 방주는 불신자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방해했고,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었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기록들은 때때로 우리의 지식과 경험, 우리의 이성이 포용하고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차고 넘치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신앙과 불신앙을 가르게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부딪칠때마다 사람의 생각으로 불가능하면 하나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불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신본주의, 신정주의의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난제에 봉착할 때마다 답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시다"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인정하게 되고 믿음을 더욱 굳게 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그분이 하나님이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도 아주 가볍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의 노아홍수와 노아의 방주 기록을 설화나 후세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로 생각한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던 그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의 권위를 어떤 사람의 말이나 세상 학문의 지식보다 높은 위치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과 습관과 말과 계획과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물로서 세상을 멸하셨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서 다시 한번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성경 말씀도 믿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노아의 방주에 주목해 봅시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노아 방주에 대한 정보를 몇가지 얻게 됩니다. 

1. 방주의 재료가 언급되어 있는데 "너는 고페르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라고 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전무후무한 대홍수 때를 위하여 건조되는 배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견뎌내려면 방주의 재질은 매우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단단한 재질을 지닌 고페르나무 즉 잣나무를 사용하여 방주를 지으라 하신 것입니다.
  
잣나무는 측백나뭇과의 편백을 가리킵니다. 키가 30m 정도까지 자라나며 백향목에 견줄만한 좋은 재목감입니다. 잣나무로 관을 쓰면 시신이 썩지 않고 미라가 될 정도로 썩지 않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잣나무는 솔로몬 성전의 마루와 외소의 두 문짝에도 쓰여졌으며(열왕기상 6:14-35), 고대로부터 선박용 목재로 사용되었습니다.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의 문도 이 잣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부터 100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썩지 않고 있는 단단하고 견고한 나무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도 세상이라고 하는 험한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인 천국에 안전하게 이르기 위해서도 영적으로는 잣나무와 같은 성질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세상의 풍파를 헤쳐 나가야 하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원수 마귀 사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로 잣나무와 같은 강하고 단단한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짓는데 사용하라 명하신 고페르나무는 영적으로 변개함이 없는 단단한 중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변개함 없는 곧은 중심을 가질 때만이 강하고 단단한 잣나무로 만든 방주가 홍수를 견뎌내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던 것처럼 마침내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고 했습니다. 
나무외에 사용된 재료는 역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명하셨습니다. 나무와 나무를 접해 놓은 틈새를 통해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작은 틈새까지라도 역청을 발라 막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세상과 함께 하며 살아가되 세상의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방주의 겉은 항상 물과 닿아 있어야 하는데 이때 조그만 틈새라도 생겨서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밀려들어오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결코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 중심에 있지만 결코 세상 닮아가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세상 닮아가는 것을 세속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속화 떄문에 그 능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결코 세상의 물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겉모습에 있어서도 결코 세속적인 물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영육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청을 방주 안팎에 칠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 될 것을 깨우쳐주시는 것입니다.

2. 방주의 크기를 한번 살펴보십시다.
  
방주를 많은 사람들이 그냥 큰 배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구체적으로 그 크기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방주는 성서시대의 단위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규빗입니다. 규빗은 길이단위입니다. 길이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1규빗은  대개 팔꿈치에서 손가락끝까지의 길이를 말하며 약 45 ~50 cm 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방주의 크기를 요즈음 단위로 환산하면 방주의 길이는 136.8미터, 넓이는 22.8미터, 높이는 13,7미터의 크기입니다. 그리고 '길이(136m) X 너비(23m) X 높이(14m)'의 치수를 곱하면 약 43,000㎥의 방주 부피가 나옵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면 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축구장 넓이가 가로 68미터 세로 105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노아의 방가 얼마나 큰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주는 현재 축구장보다 길이는 더 길고 폭은 약간 좁은 넓이의 상, 중, 하 삼층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방주는 통상적인 배가 아니라 바지선 형태의 거대한 선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중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도구가 갖추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재료가 준비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맨바닥, 맨 몸, 맨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형편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단지 명령만 하셨습니다. 고페르나무로 방주를 이와같은 크기로 만들고 방주 안에 간을 두고 방주 안밖을 역청으로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의 크기나 자신의 형편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만 바라보았습니다. 오직 방주를 짓는데 집중했습니다. 

3. 방주의 안전성의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홍수기간 동안에 폭풍과 파도속에서도 노아의 식구들과 모든 짐승들을 태우고도 충분히 견디어 냈습니다
그래서 선박공학자들이 노아의 방주를 연구해 보았더니 노아방주는 선박으로써 가장 뛰어난 안전성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선박의 길이와 폭의 비율 6 : 1은 매우 뛰어난 선박 안정성을 보이는 비율인데 노아의 방주가 바로 이 비율로 되어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방주의 규모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의 저명한 조선건축가 디키씨는 미국 전함 U.S.S.오레건 호를 설계할 때 노아가 방주를 건조할 때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설계 비율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해군에서는 U.S.S.오레건 호를 지금까지 건조된 군함 중 가장 견고한 군함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는 선박건조 기술도 없었을 터인데 이와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지혜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함이 인간이 지혜로움보다 낫고,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의 강함보다 월씬 낫습니다.   

4. 방주의 용도
 
방주는 본래 수면에서 빠르게 이동하려는 목적의 '배'가 아니었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홍수로 멸망할 때였기 때문에 그 어느 곳으로 간다고 안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대홍수 가운데서도 배 안에 선적하고 있는 각종 생물과 짐승, 그리고 사람을 일정기간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장소로 건조된 매우 커다란 나무 상자에 가깝습니다. 노아의 8식구와 각종동물을 홍수에서 안전하게 지켜줄 용도가 바로 노아방주의 용도였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을 때 방주 안에 칸을 만들도록 했는데 여기 사용된 "칸"이란 말은 "보금자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보금자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방주는 내부에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노나 키가 없었습니다. 단지 뜨기만 하고 조정이 불가능하여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는 거대한 나무상자와 같았습다. 이것은 모세가 간난아기일 때 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지혜로운 그의 부모가 만들었던 갈대상자와 같았습니다. 모새의 방주, 모세의 상자는 물위에 떠 있으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아의 방주는 물위에 떠 있으면 되는 용도입니다.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단지 뜨기만 하고 나의 삶을 내가 조정하지 않고 성령님께 맡기는 신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주 먼 옛날 엤적의 노아 홍수와 노아의 방주는 21세기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노아 홍수와 노아의 방주의 실재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시대에 공격을 받게 될 성경의 교훈들을 말하면서 노아 홍수를 한 예로 들고 있습니다. 
  
벧후 3:3~6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했습니다. 

베드로는 말세에 공격을 받게 될 성경에 나오는 세가지 큰 사건을 말하면서 창조와 홍수와 그리스도의 강림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믿음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창조와 홍수와 예수님의 강림을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라도 넘어지게 하고 믿지 않는 자는 더욱 믿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하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홍수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고 그 방주를 통해서 노아의 식구들과 생물과 동물들을 구원하셔서 새지구를 만드셨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신줄로 믿습니다.
그 중심에 계신 하나님께서 주님의 재림과 마지막 떄에 물이 아닌 불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도 확실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불에 타지 않는 믿음의 집, 믿음의 방주를 하나님의 명령대로 짓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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