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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벤에셀의 하나님! (삼상 7: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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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하나님! (삼상 7:3-15)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경은 '지극히 적은 것에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지극히 적은 것에서부터 얻어진답니다. 우리는 저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가 보면 거기에 미국에서부터 캐나다까지 구름다리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그 구름다리가 놓여진 유래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구름다리가 처음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하면 '연을 날리는 소년'이 공모한 것을 제안해서 ‘연을 이용하여 다리를 놓았다’는 설과 또한 ‘솔개라는 새의 다리에다 실을 매달아 이쪽에서 저쪽까지 날린 후 그 실을 이용해서 다리를 만들었다’고 설이 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결해서 그 넓은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만들어 졌지만 분명한 것은 처음에는 연약한 실을 이용해 시작하여 공사가 진행 되었고, 실 끝에다 코일을 매달아 잡아 당겼고, 코일이 연결된 다음 코일 끝에 철사를 매달아 잡아 당겼고, 이젠 철사 끝에 루프를 매달아 잡아 당겼습니다. 이젠 루프 끝에 굵은 쇠밧줄을 연결해서 구름다리를 연결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위대한 구름다리도 적은 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저도 미국에서  케나다쪽으로 건너가서 나이아가라폭포를 보았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은 것부터 출발되어지는 것입니다. 거창한 것 보다는 예배부터 시작하고, 기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결국 예배를 잘 드리는 신앙, 기도를 계속하는 신앙생활은 성장하고 발전하고 받은 증거가 있는 삶으로 연결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의 역사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간섭이 나타납니다.  

기도에도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믿어야 합니다. 막11: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은 것으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막11: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주시고, 만나고, 열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는 이런 원칙에 근거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으므로 기적의 통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 모두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삼상 7장부터 본격적으로 사무엘 선지자가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엘리 제사장이 은퇴하고 신진 사무엘의 등장은 한마디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정식으로 하나님의 말씀 공부를 하고 자란 정규코스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이 통치하던 시대에는 도와주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이 외면하셨으므로 전쟁에서 실패는 물론 하나님의 법궤까지 블레셋 원수들에게 빼앗기고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 시대'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제사장이 되어 통치하는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도와주시므로 전쟁의 승리는 물론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를 다시 찾아오는 이스라엘의 신앙 부흥과 아울러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충만하게 '에벤에셀'로 함께 하시므로 국가가 평안하고 전쟁이 없는 시대가 도래되었습니다. 

동일한 민족이지만 하나님께서 외면하기도 하였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움을 받을만한 사람, 즉 믿음으로 사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너무 곤고함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자신들을 여호와께로 인도해 줄 지도자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백성들은 훌륭한 지도자를 갈망합니다. 극단적으로 인류의 역사는 곧 '영웅이 역사'라고까지 '칼라일'은 말했습니다. 

여러분, 한시대의 비극은 뭐니 뭐니 해도 훌륭한 지도자가 없을 때입니다. 그것은 마치 목자 없는 양들이 흩어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또 목자란 양이 없으면 그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백성 없는 지도자는 무의미하며 또 지도자 없는 백성 역시 방향을 못 찾고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를 구하여 여호와를 간절히 사모할 때 훌륭한 인격과 덕망을 갖춘 신앙적 지도자 사무엘이 등장하여 그들을 인도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국민 총회를 열고, 비로소 사사로 취임하고 자신만만한 정견을 발표하며,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국집회를 열어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여기 '미스바'는 '파수대'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13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784m의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가 지리적으로 모이기에 가장 좋은 지점이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불러 모은 것 같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우상숭배 때문에 산산이 흩어져서 여호와로부터 멀어졌으며 그야말로 망각의 시대에 버림받고 있었는데, 이제 사무엘은 여호와를 중심으로 한 총화단결을 호소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려야 한다'고 강하게 설파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며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의 오랜 숙원인 블레셋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호소에 모두 호응하게 되어 미스바에 모였고,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어 맹세의 표를 삼았고, 또 금식을 선포하고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민족의 활로는 마침내 열리게 되었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회개는 한 개인의 활로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한 국가, 한 민족에게도 해당됩니다. 회개하는 개인은 삽니다. 회개하는 민족은 삽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써 왕정시대에 막이 오르려는 민족적 과도기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1.  사무엘은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였습니까?

⑴ 기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로 응답 받고 사무엘을 나았으며,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 성전에서 신앙교육을 철두철미하게 받았습니다. 기도로 낳은 사무엘이기에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상12: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고 그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지도자 밑에 있는 백성은 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종의 밑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는 영적으로 삽니다. 기도는 중요합니다. 기도 없는 신앙은 뿌리 없는 나무요 말라버린 시냇가입니다. 

기도의 사람들은 결단코 망하지 않습니다. 모세를 보겠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기도의 사람이었고, 다윗 왕도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에겐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게 교회를 섬기며 살고, 우리 성도들이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레 6:12절에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찌며” 

레 6:13절에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레 24:2~4 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찌며 / 아론은 회막안 1)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찌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 기도의 불, 찬양의 불, 감사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⑵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직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백성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십니다. 위로하실 때도, 책망하실 때도 그리고 멸망을 선포하실 때에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즉 선지자는 메신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에는 저들은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반대로 두 눈을 가리우고 두 귀를 막고 목에다 힘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을 때 저들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정치, 경제, 산업, 문화, 예술, 교육, 군사의 근본입니다. 말씀의 터 위에 모든 것이 세워질 때 반석처럼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⑶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정치, 군사 또 모든 문제를 지도하는 사사입니다. 그런데 철두철미하게 그가 민족의 지도자로써 지키고 또 지킨 사실은 자신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심부름 꾼'이라는 원칙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지도의 이념과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들이 '내가 한다'고 했을 때 넘어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을 때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물러섰다가는 다시 전진했고, 실패했다가도 다시 성공했습니다. 
  

2.  당시 불레셋 진영의 동태는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블레셋 진영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맞아서 사기가 충천, 국민총화 단결을 기도하며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문을 듣고는 '저들을 그냥 두었다가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먹히겠다. 먼저 수를 쓰자, 지금 저들이 금식하고 있을 때 적기다'라는 쪽으로 여론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연방의 연합군을 편성해 가지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군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30년 내내 그들의 손아귀에 꼼짝을 못했던 터라 벌벌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어린양을 취하여 번제를 드리고 계속 기도하여 마침내 하나님께 응답되어 때마침 블레셋 대군이 사무엘의 번제 현장까지 육박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큰 우레를 발하시니 저들의 머리가 모두 어지러워져서 마침내는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패주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은 이들을 추격, 벧갈 아래까지 이르러 완전 소탕하여 그야말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수십 년 간에 걸친 블레셋에 의한 압제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지난날의 수치를 완전히 설욕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승리의 축제가 열렸습니다. 사무엘은 승리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며 그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미스바와 셋 사이에 전승 기념비를 세우고 그 묘비에 '에벤에셀' 이라고 썼습니다. 에벤에셀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태리 항공사인 알 이탈리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노라면 다른 나라 항공기와 다른 점 하나가 있답니다. 그것은 비행기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친다는 것입니다. 그 박수가 무슨 박수겠습니까? 
  
그 박수는 감사의 박수입니다. 무사히 착륙하게 된 안도에 박수요, 승무원들의 노고에 대한 격려의 박수요, 이젠 비행기에서 내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의 박수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이스라엘의 크게 승리하고 미스바에 에벤에셀 기념비를 세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의 박수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본래 블레셋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 가운데 한 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개척을 시작하자마자 블레셋은 곧 이스라엘은 쳐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살면 그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셨지만, 바로 살지 않고, 우상으로 탐심으로 타락했을 때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고 그들의 노예로 만들어 굴욕의 세월을 살게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한 죄는 '우상을 섬김 죄, 교만했던 죄, 기도하지 않은 죄, 바로 살지 못한 죄'였다고 성경학자는 지적했습니다. 

  
3. 사무엘은 에벤에셀의 승리가 오기까지 백성들에게 취한 조치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⑴ 회개 운동을 하였습니다.

6절 하반 절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개선입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고, 하나님을 멀리했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오는 것이고, 하나님을 괴롭혔던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외면했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낯을 드리는 것이고, '이젠 주만 바라보나이다'라는 결단입니다. /할/ 또 자기중심으로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참 회개입니다. 

사무엘은 '이방신과 아스다롯을 제하라'고 했습니다. 바알신은 남신이요, 아스다롯은 여신입니다. 바알신은 농사를 잘 짓게 해 준다고 가나안 사람들이 믿었던 ‘농경신, 풍요신’입니다. 아스다롯은 ‘풍요와 성을 주관하는 신’으로 난잡한 우상 숭배사상입니다.  

오늘도 이 우상이 있습니다. 물질 우상, 쾌락우상이 우리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런 우상을 집에다 모셔놓지 않았으니까 자신들은 이 우상숭배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이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는 오늘날에도 최고로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의 목표입니다.  

물질이나 즐거움이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고, 그것을 얻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죄를 지어서라도 얻으려고 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섬김의 대상인 신의 자리에까지 차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또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을 선포하고 입으로는 철저하게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며 자복하고 통회했습니다. 

'물을 부었다'는 것은 시22:l4절에서 시편 기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또한 렘애2:l9절에서는 하나님 백성의 간구가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가 계신 곳에서 '물처럼' 쏟아졌다는 말로 묘사했습니다.

삼하l4:l4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쏟아진 물은 마음의 고통에 대한 상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선택받은 이 백성의 세속적인 상태와 영적인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땅에 쏟아진 물처럼 죄 때문에 유용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물을 쏟아 붓듯이, 깨끗이 씻음 받고 회복되기를 위해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을 쏟아 붓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새로운 심령의 부흥은 회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찾아옵니다. 새 시대는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도래됩니다. 천국은 회개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주님의 복음의 일성이 '회개하라'입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실 때는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십니다. 

시66: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또 욜2:12-13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을 막을 방해물을 제거합시다. 방해물이 무엇입니까? 불 신앙, 거짓된 것, 탐욕, 배은망덕, 불신, 불성실, 용서하지 않은 것, 시기, 질투, 이기심, 위선 등입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상한 심령입니다. 시51: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막2:17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1901년에 시작된 노벨상은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상중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이것을 국가적인 경사라고 하여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노벨상에 버금가는 큰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템플턴상'입니다 1971년에 제정된 이 상은 영국계 미국인 실업가인 J.M. 템플턴이 노벨상에 종교부문이 빠진 것을 못내 아쉬워하여 자신의 사재를 털어 마련한 상으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어지는 상입니다. 

1972년 테레사 수녀를 첫 수상자로 하여 솔제니친, 빌리 그레함 목사님 등이 이 상을 탔는데, 지난 1994년 스물한 번째 수상자로 우리나라의 고 한경직 목사님이 이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님은 이 상을 받으신 뒤 축하예배 장소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한 죄인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이런 큰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 날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사님의 이 고백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노종의 진심 어린 회개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열립니다. 영적 운동은 회개운동과 기도의 운동이 동반됩니다. 모든 신령한 은혜의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기도는 축복의 옥동자를 잉태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요14:14절에서 주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고, 

또 요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전쟁의 위기에서 무기를 점검하고 병사의 숫자를 점검하기에 앞서 먼저 회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버려 두지 않으시고 승리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가 330장의 가사를 보세요!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옵니다. 실망한 이 몸 힘을 얻고 예수의 크신 사랑 받아 하늘에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 

낭패와 실망의 계곡에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돌아서는 길이 회개요, 그래야 길이 열리고 살게 됩니다. 

  
⑵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침략군 블레셋이 쳐들어오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즉 하나님의 구원은 시급하게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3:13절에 보면, 애굽으로 들어가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로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상대적 절망은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절망, 절대 위기는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합니다.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기네 힘으로는 도저히 민족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자각한 그들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전능하신 주여 구원하소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이 이런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살려달라고 매달리면 꼼짝 못하시고 들어주십니다. 

  
⑶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온전한 '번제'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번제는 '각을 떠서 불에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죽는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역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잘 먹고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을 무찌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기독교의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져야 이깁니다. 죽어야 삽니다. 희생해야 새 생명이 일어납니다.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승리의 법칙은 나를 번제로 드리고 내가 일단 죽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세요!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죽어야 예수님께서 살리십니다.

▶남편에 골머리를 앓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 때문에 신경성 소화불량과 관절염 불면증까지 겹쳐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그 7년 동안 단 한번도 '나 때문이다'라는 반성이나 후회나 깨달음을 가져본 일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증오심, 복수심, 적개심만 높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한 알의 밀 알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즉 십자가의 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썩어야 삯이 나고 죽어야 살고, 져야 이기고 물러서야 전진하고 넘어서야 일어선다는 그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이 자매님이 은혜를 받고 나서 7년 걸렸던 부부의 갈등이 1년 만에 해결되는 기적을 체험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깁니다. 


4. 마침내 이스라엘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10절이 설명해 줍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하나님의 폭탄이 터진 것입니다. 보십시오, 번제 후에 하나님의 우레를 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뇌성벽력 소리에 블레셋 대군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고, 그 뒤를 이스라엘이 바짝 추격하여 대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전투에 승리해야 육체의 싸움에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정신력, 신앙력이 강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은 중단되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은 살아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우리 하나님의 '우렛소리가 내 생활 속에서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기적이 언제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신앙의 뜨거운 열정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이 불탈 때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대한 애정, 사모, 앙망 함 그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애정과 사모함과 앙모함이 사라질 때 신앙은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신앙은 열정이 살아지면 생명은 시들고 껍질 밖에 안 남습니다. 부부도 사랑이 식어지면 큰일납니다. 친구간에도 우정이 식어져 버리면 우정의 금이 갑니다. 

시42:1-2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울꼬"

새 계명의 첫 번째는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성도가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성경 이사야서는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에게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오는 새 힘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주님만 사랑합시다. 

본문에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우리들의 마음이 나뉘어 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전심을 다하여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전부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5. 사무엘은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기적이 있은 후 사무엘이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취하여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이 에벤에셀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늘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기념비가 세워진 에벤에셀은 삼상4:1절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에벤에셀이라는 곳에 진을 쳤다'는 기록이 있고, 삼상5:1절을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긴 장소'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빼앗긴 장소, 패배한 장소에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들도 패배한 장소, 빼앗겼던 장소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어려울 때 도우시고 함께 하시던 하나님을 만난 곳 벧엘을 잃어버린 채 20년을 타지에서 살았습니다. 돈도 모았고, 처자식을 거느리게 되었을 무렵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벧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얼마나 큰 시험을 당했습니까? 집안에 큰 시험이 닥치고 수치와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절대 잊지 마십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어도 아니면 살기가 편해졌다 할지라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사람의 두 사건을 늘 마음속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 불꽃이고 다른 하나는 요나 고래뱃속입니다.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가시떨기에 불꽃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불이 이스라엘에 떨어져도 이스라엘을 타게는 못 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불과 재앙도 이스라엘을 재로 만들 수는 없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미래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요나가 고래뱃속에 들어갔습니다. 3일 3야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래는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 하고 결국은 토해놓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삼켜도 소화시키지 못 할 것이고, 누가 이스라엘을 삼켜도 먹어 치우지는 못 할 것이라는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그런 환난 중에도 인내하고 견디었습니다. 


6.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⑴ 어제를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금년에도 수많은 어려움 들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습니다. 온 국민들이 다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에벤에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⑵ 오늘도 도우실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말은 여기까지만 도우시고 여기서부터는 안 도우시고 멀리 가버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신 것은 여기에서도 도우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도 도우셨습니다. 광야에서도 숫한 어려움 속에서도 도우셨습니다. 물이 없어도 물을 주시고, 먹을 것이 없어도 만나를 주셨습니다. 옷이 없어도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더워도 구름기둥으로 막아 주셨습니다. 추워도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어제도 도우셨습니다.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여기에서 블레셋이 쳐들어 올 때 도우셨습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여기서부터 또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오늘부터도 또 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어제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오늘도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에벤에셀입니다. 

  
⑶ 내일도 도우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에벤에셀,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여기서부터도 영원토록 도우실 것입니다. 시121: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에릭 리들'은 100m 경기의 금메달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나 경기일정이 주일 오후로 잡히자 즉시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경기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국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며 그를 가리켜 '조국을 배반한 위선자,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없이 출전을 포기하고 그 날을 평소처럼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며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에릭의 이러한 결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자기 희생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어려움 속에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며칠 뒤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400m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서운 속도로 달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마다 '저렇게 달리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 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상치 못했던 세계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에릭은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처음 200m는 내 힘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을 때, 100m에서 놓친 금메달을 주종목이 아닌 400m에서 목에 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7. 우리에게는 세 가지의 은혜가 있습니다. 

⑴ 에벤에셀의 은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목숨이 유지되고 있는 것과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건강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입을 옷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에벤에셀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⑵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같이 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십니다. 


⑶ 여호와이레의 은혜가 있습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앞으로도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34장에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고 노래합니다.  

▶4회 연속 직선 숙명여자대학교의 전 총장이신 이경숙박사가 계십니다. 그가 1994년 숙대의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친구들에게 '당신 불쌍해서 어떻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당시 숙대는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숙대의 땅은 본래 고종황제가 하사한 것인데 해방 후에 토지 정리를 해 놓지 않아서 국유지로 묶여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종이 하사한 땅문서를 손에 쥐고도 수억 원의 임대료와 벌금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이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땅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무원과 담당자들을 찾아다녔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몸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갈 곳은 기도만 하셨습니다. 기도실에 가서 얼마나 울며 기도했는지 얼마쯤 지나서 희미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언제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느냐? 너 혼자 뛰어다니고 너 혼자 다 하지 않았느냐?' 그때 이 총장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음성에 따라 사람도 만나고 움직여야 했었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해 놓고 주님보고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능력도 체력도 부족해서 저는 기권입니다. 보잘것없지만 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숙대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그 날 이후 숙대의 총장은 하나님이라고 믿고 자신은 심부름하는 청지기가 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학교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람 왜 왔느냐'는 듯 무시하던 담당자들이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결국 그 해 12월 31일 땅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제2의 창학을 선언한 후에 기독교 학교가 아닌 일반 대학 정문에 수1:9절의 말씀을 새겨 넣게 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8.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도우신 결과를 알아보겠습니다. 

⑴ 13절에서 ‘블레셋이 굴복'을 했습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⑵ 14절에서 '잃은 땅'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⑶ 14절에서 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블레셋 원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을 막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원수를 막고 재앙을 막고 시험을 막고 하나님의 큰손이 나를 지킬 때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잃어 버렸던 것들을 다시 찾게 됩니다. 잃어버린 건강, 행복, 가치, 삶의 의미 기쁨, 평안을 다시 찾는 길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와 함께 할 때 내 마음 속에 또 내 가정에 생수가 넘쳐나게 됩니다. 불화가 화목으로, 불평이 감사로, 원망이 찬송으로, 고통과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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