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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갈에서 요단까지 (왕하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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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갈에서 요단까지 (왕하 2:1-6)


“야훼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야훼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야훼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야훼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야훼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야훼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열왕기하 2장 1∼6절


성경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죽음을 겪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은 사람이 둘 있는데, 바로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성경은 에녹에 대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에 죽음을 겪지 않고 들림을 받은 인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에 대해서는 그의 사역과 일생, 그리고 승천하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들림을 받기 전 길갈과 벧엘, 여리고를 거쳐 마지막으로 요단으로 갔습니다. 네 도시를 거치는 동안 제자 엘리사가 엘리야와 동행했습니다. 오늘은 엘리야가 마지막으로 이곳들을 다녀간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길갈
 
엘리야는 승천하기 전 제일 먼저 길갈로 갔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에게 역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장소였습니다.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홍해를 가르듯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은 진을 쳤는데, 그곳이 바로 길갈이었습니다(수 4:19). 

길갈에 진을 친 여호수아는 요단강에서 열두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후손이 강에 길을 내어 육지 위를 걷듯이 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통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날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받은 날, 눈물 흘리며 회개하여 죄로 가득한 과거를 청산하고 구원받은 날이 있었습니다. 이 날들은 우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날이요, 주의 은혜의 해가 비추인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 날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가 몇 개나 세워져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사도가 된 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도,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받게 되는 모든 칭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안할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감사하며 주님께 충성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기념비를 세운 후 할례를 행했습니다(수 5:2). 할례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증표이자,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오늘날의 침례와 그 의미가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 중 할례를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하심으로써 애굽 종살이 때의 멸시, 천대의 수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가 회복되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십자가 밑에서 승리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과거의 모든 죄와 절망, 수치와 슬픔은 다 떠나갔음을 선포하고,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변화된 승리자로 살아가야 합니다(롬 8:1∼2).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고(고후 8:9, 벧전 2:24) 영원한 하늘나라를 상속한 천국 백성으로서 주 안에서 변화된 새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벧엘
 
길갈에 머물렀던 엘리야는 벧엘로 옮겨갔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자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해 외삼촌 라반에게 도망치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창 28:15). 벧엘에서 하나님께서는 돌 베개를 베고 잠든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은 후 그 곳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장소였습니다. 야곱에게 있어 벧엘은 은혜의 자리이자 기도의 자리, 새로운 결단과 서원의 자리,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복된 자리였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드리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영성의 기초이자 부흥의 비결이며 능력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온전케 하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던 벧엘에 여로보암 왕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워(왕상 12:27∼29)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게 하였습니다. 우상 숭배의 결과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금송아지를 섬길 때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교회가 금권주의, 물질만능주의의 우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축복으로 물질을 허락하십니다. 

물질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질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물질을 얻고자 하는 수단으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겨납니다. 성도의 신앙과 삶이 부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아두는 ‘곳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물질을 흘려보내는 ‘통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수단과 목적이 본말이 바뀌지 않도록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늘 힘써야 합니다. 

3. 여리고
 
엘리야 선지자는 길갈에서 벧엘로, 그 다음 여리고로 나아갔습니다. ‘향기’라는 뜻의 여리고는 크고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읍 중 하나로 꼽힙니다. 누가복음에서 강도 만난 자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은 곳이 여리고였고,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한 곳이 여리고였으며, 맹인 바디메오가 눈을 뜬 곳도 여리고였습니다.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의 삶은 교회를 출석하는 차원의 신앙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 신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나는 제자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여리고는 또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 제일 먼저 공략한 성이었습니다(수 6:1∼2). 야자수가 우거져 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 조건을 지닌 휴양도시였던 여리고는 가나안 도성 중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도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 여리고를 꼭 무너뜨려야 했던 것 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풍요로움, 자기만족의 성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또한 여리고의 풍요로움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하실 때, 그 풍요로움에 머물러있지 말고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눌 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이 만방에 증거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요단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요단으로 갔습니다. 요단은 북쪽의 헐몬 산으로부터 남쪽 사해로 흐르는 강입니다(수 3:17).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건너야 했던 강으로, 신앙에 있어서는 종종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단계 즉, 옛 사람을 버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갈 2:20), 성령 충만한 삶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요단강에 다다른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말아 물을 치자 강이 이리저리 갈라져서 엘리야와 엘리사는 육지 위로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엘리야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을 취하시리라는 것을 알고 엘리사에게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 자신에게 있기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구나’라고 대답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옛 사람을 버려야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나를 취하여 올라가는 모습을 네가 보면 네 요구가 이루어 질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엘리사는 엘리야가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위대한 사건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갑절의 성령 충만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주님께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엘리야를 따라다녔던 엘리사에게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지역에 머물고 있습니까? 엘리사가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까지 엘리야를 따라간 것처럼, 우리 모두 주님을 따라가며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구원의 은혜와 예배의 즐거움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 모두 더욱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의 향기를 날리는 삶,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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