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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전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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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전 11:23-26)

오늘은 성례주일입니다. 기독교 성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할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표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막16:16절에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구원의 약속에 대한 상징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성찬은 주의 만찬을 의미합니다. 이 성찬은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정하신 참으로 의미 깊은 예식입니다. 성찬의 떡은 우리를 위하여 상하고 찢기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이고, 성찬의 잔은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성도 간에도 하나가 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세례는 일생에 한번만 받으면 되지만 성찬은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받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매 주일 모일 때마다 성찬을 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일 때마다 성찬의 떡과 잔을 나눔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생각하고, 그들이 받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세례와 성찬이 이처럼 뜻 깊은 의식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저 하나의 종교의식에 불과하므로 참여할지라도 별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의 의미를 바로 알고 성찬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의 기원은 오늘 본문 23절 말씀에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성찬의 시작이 우리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가집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떡을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셨고, 잔을 나누어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 성찬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4절 말씀에 보며 “이것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찬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찬을 계속적으로 행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찬을 행할 때 떡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고 하는 화체설(化體說)을 주장합니다. 화체설이란, 신부가 이 떡과 잔을 들고 축복기도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가 주장하는 화체설(化體說)은 분명히 비성경적입니다. 떡과 포도주의 본질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루터교에서는 루터가 주장한 공재설(共在說)을 믿습니다. 공재설은 이 떡과 잔에 예수님이 육신으로 직접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 개신교에서 기념설을 주장합니다. 기념설이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말 그대로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즉 주님은 성찬예식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구속 사역을 기억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신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뜻있는 예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여러분이 처음 이 은혜를 알고 깨달았을 때에 얼마나 큰 감격과 열정에 사로잡혔습니까? 그러나 세월이 흐름으로 우리의 감격과 열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부부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결혼하기 전 연애할 때 서로가 얼마나 좋아하였습니까? 얼마나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했습니까? 그러나 10년 20년 혹은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러한 열정적 사랑이 있습니까? 이렇게 세월은 우리의 열정적 사랑을 식게 합니다. 

이것은 비단 부부만의 사랑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삶 가운데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며 삽니까?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을 생각합니까?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고 결단하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영향을 미칩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은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나 겨우 기억되는 분은 아니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이 거룩한 성찬예식을 기념해야 할 예식으로 제정하셨습니까? 세월이 가져다주는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사랑의 퇴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은 식을 대로 식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에 대해 반성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나 중심의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생각으로 다시 바꾸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대상이 예수님이심을 재확인하고 내 삶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 예식을 행할 때마다 우리들의 의식과 행동 속에 놀라운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나 위주로 나를 위해 살아왔던 인생이 그리스도 중심,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으로 전환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찬의 떡을 먹고 성찬의 잔을 마실 때, 다시 한 번 주님의 대속의 은총을 깊이 깨닫고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성찬예식을 통하여 무엇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까? 기억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의 떡과 포도즙을 나누면서 주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당하신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 사랑과 뜻을 되새기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살다가 사라진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모든 인류를 위해 자기 몸을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속죄양으로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엡 2:3절 말씀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죄로 부패하여 쓸모없고 무가치한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또한 딤전1:15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돈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강압적으로, 말로 우리를 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피를 흘리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히 9: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피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은 달리 말하면 생명을 희생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생명으로 우리의 생명을 바꾸셨습니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기독교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주거나 인생의 번뇌를 해결하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죄와 마귀의 종살이하는 인생을 실제로 해방시켜서 참 자유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서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성찬은 이처럼 쓸모없는 내가 주님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기념하여 되새기는 예식입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심으로 나의 죄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기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가 이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6절 말씀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가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전하라’는 말은 선포하라는 말입니다. 주의 죽음을 선포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려주시고 최후에는 생명을 내어 주셨다는 것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성찬예식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도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오늘 성찬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잔을 통해 은혜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복음을 힘 있게 전해야만 합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작은 떡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떡을 먹고 잔을 마신 자는 마음속에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되새기는 거룩하고 고귀한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의 떡과 잔을 대할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격이 넘쳐야 합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이제 부터는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주를 위해 살겠다는 결심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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